열화된 듯한 바다 이미지가 눈앞을 채운다. 분홍빛 하늘, 남색 바다, 검게 윤곽만 남은 섬, 불에 그을린 듯한 형태의 구름까지 각각의 요소들은 의도적으로 콘트라스트를 올린 듯 울긋불긋하다. 어딘가 거칠고 낯설고 호기심을 일으키는 장면이 문을 열면 또다시 펼쳐진다. 사람 크기로 확대된 담배꽁초, 해질녘 방콕의 어느 사원, 반려 동물을 묻은 무덤 등 각각의 이미지들은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시각적으로 흥미롭지만 ‘문을 열어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작품 제목도 막연히 ‘어딘가에 있을 법한’이라고만 표현하는,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설치 연작이다.
갤러리바톤에서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개인전 <트루스 댓 우드 비 매드닝 위드아웃 러브>가 열렸다. 이미지, 조각, 설치 등 매체와 규모를 넘나드는 토비아스 레베르거는 특유의 감각적이고 화려한 색상으로 관람객의 눈을 현혹시키면서도 ‘예술’에 대한 개념적인 질문을 놓치지 않는 작가다. 그는 조각-설치-건축, 예술-일상, 미학-기능 등 예술의 장르와 역할을 둘러싼 이분법적 경계를 탐구해왔는데, 이번 개인전도 이러한 탐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그에 따르면, 전시 제목에서 “진리는 ‘개념’을, 사랑은 ‘감정’을 의미”한다. “지성과 신중함 없이 예술 작품은 존재할 수 없지만, 또한 작품은 의도하지 않은 것, 감정적이고 느슨한 것 없이 만들어질 수 없음”을 말하려고 했다. 이는 지성사적 맥락에서 이성을 맹신하고 감정을 도외시했던 태도에 반기를 드는 시도이기도 하다.
작가는 기다란 갤러리의 공간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전시장을 다섯 구간으로 나눠 벽을 세우고, 각 공간마다 확대·왜곡된 일상적 이미지를 붙여놓았다. 클릭과 터치 한 번으로 진행되는 스크린 위 시각 경험이, 이처럼 문을 열고 거대한 이미지를 마주하는 체험으로 변환돼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시대, 작가는 ‘본다’는 경험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미지 벽들에 이어 관람객은 3D 프린터로 출력한 ‘오브제’들의 공간을 만나게 된다. ‘재떨이’로 명명된 이 오브제들은 인터넷에서 무작위로 찾아낸 이미지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담배를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있다는 이유로 ‘재떨이’로 명명됐는데, 기능과 역할이 어떻게 정립되는가에 대한 탐구 작업이다. 끝으로 가로변에 면한 전시 공간에는 토비아스 레베르거 특유의 네온과 세라믹 조각이 설치돼 있다. 기능이 불분명한, 그러나 다채롭고 강렬한 이 작업들도 예술과 일상, 미학과 기능 등의 구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전시는 5월 13일까지. <이성제 기자>


<트루스 댓 우드 비 매드닝 위드아웃 러브> 전시 전경 / Images courtesy of Gallery Baton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