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선수촌아파트, 선유도공원, 의재미술관의 건축가로 잘 알려진 조성룡이 건축 인생 40여 년을 아우르는 『건축과 풍화』를 출간했다. 조성룡은 오래된 장소의 가치를 찾아내고 재해석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작업에 집중해왔다.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이루는 작업을 통해 그는 ‘풍화’라는 현상에 주목하게 되었다. 조성룡은 시간의 작용에 따라 바래고 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건축의 숙명이라면, 가능한 한 풍화를 지연하거나 노화를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건축과 풍화』는 이런 ‘시간 속의 건축’과 그의 생각을 엮어냈다. 이 책은 서울을 중심으로 우리 땅의 자연지리와 인문지리, 전통과
근대의 여러 문제를 조성룡이 어떻게 녹이고, 풀어냈는지 이야기하는 데서 출발한다. 또한 우리 건축이 처한 고민은 무엇인지, 공공성은 무엇인지, 도시 생활의 본질은 무엇인지 등 다양한 주제를 언급한다.
『건축과 풍화』는 조성룡의 작업 배경과 그 과정을 복기해 되도록 솔직하게 기록했다. 그 가운데 아시아선수촌아파트에서 출발한 남다른 주거와 삶에 대한 생각이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저층 집합주택을 만들 때 더 많은 세대의 입주를 위해, 또는 부동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조성룡은 “아파트가 작은 마을이 될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는 각 동을 ㄴ자 모양의 클러스터로 만들어 작은 동네 단위로 나누었다. 거주자들이 한동네에 산다는 느낌이 들도록, 주거동과 길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마주보는 각 클러스터들 가운데에 주차장을 배치해 함께 쓰도록 계획했다. 또한 집 현관문에서 엘리베이터까지 완만하게 경사진 긴 복도를 두어 거주자들이 눈길이나마 서로 마주보고 교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조성룡의 주거에 관한 독특한 생각은 다양한 유형의 도시 주택에서도 이어진다. 땅의 모양을 따라 집의 윤곽을 만든 가회동 11번지, 해운대 바다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뒷집 전망을 고려한 해운대빌리지 등에서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한 조성룡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흔히 보던 건축가의 작품집이나 평론집이 아니다. 조성룡이 구술한 내용을 수류산방의 심세중 편집장이 채록하고 엮었다. 마치 마주앉아 이야기를 듣는 듯 편안한 글을 읽다 보면, 건축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도 우리가 집과 여러 공간, 건축과 도시에서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느끼게 될 것이다.
한편 『건축과 풍화』는 수류산방 단행본 시리즈 ‘아주까리수첩’의 첫 책이다. 김인환의 『과학과 문학』, 윤병하의 『합궁과 미학』 등이 차례로 출간될 예정이다. <편집부>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