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2월호 (통권 675호)
Source: Korean Christian Museum at Soongsil University
Sourc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2023년 12월 28일,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동아시아 건축역사 연구실이 주관한 제72차 동아시아 건축도시역사 콜로키움이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이번 콜로키움은 발제를 맡은 정재훈(경북대학교 교수)이 엮은 『18세기 조선이 만난 문명: 연행록을 연행록으로 해설한 연구』(2023)에 기반해 18세기 조선의 연행록(燕行錄)을 주제로 진행됐다. 연행록은 조선의 연행사들이 관찰한 청의 모습을 기록한 기행문을 일컫는다. 당시 조선인에게 낯설었던 청의 일상적 풍경을 자세하게 기술해 건축·도시사의 주요한 사료로 연구된다. 18세기의 연행록에 주목한 이유는 이전까지 운문 형식이던 연행록이 산문 형식으로 변화하여 더욱 상세한 기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8세기 후반에 그려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의 ‘연행도(燕行圖)’를 중심으로 당시 연경(燕京, 현재 베이징)의 건축적 풍경을 살폈다. 숭실대학교의 ‘연행도’에는 다른 연행도나 현재의 베이징에는 남아있지 않은 조양문(朝陽門)과 그 일대가 자세히 그려져 있어 기록적 가치가 크다. 조선 후기의 연행로와 연경의 주요 건축물, 경치 등을 그린 열세 폭의 ‘연행도’를 통해 18세기 조선이 청의 문물을 인정하며 수용해 온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정조는 연행으로 얻은 청에 관한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조는 ‘연행도’의 배경이 된 정조 13년(1789)의 동지사행(冬至使行)에 당대 최고의 화원 김홍도와 이명기를 파견했다. 연행에 참여한 김홍도가 그렸다고 추정되는 산해관 동나성(山海關 東羅城)의 그림과 수원 화성의 장안문(長安門)을 비교해 보면, 문이 난 방향의 차이는 있으나 2층으로 된 누각이나 성벽이 양옆으로 튀어나온 모습이 거의 유사하다. 연행에서 그려온 건축물의 모습을 당시 건설 예정이던 화성의 자료로 활용한 것이다. 궁궐 정전 앞의 조정 품계석 그림 역시 동일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조 1년(1777)의 기사를 보면 연행을 언급하지는 않으나, 품계석을 설치했다는 내용이 있다. 다만, 청의 품계석은 동인 데 반해 조선의 품계석은 돌이다. 청의 문화를 단순히 수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선이 새로 구상한 정국을 실현하기 위해 이를 변용한 것이다. 연행록이 모두 객관적이고 정확한 것은 아니다. 구혈대(嘔血臺) 그림은 묘사가 세밀하여 높은 수준을 자랑하지만, 장소에 대한 설명에는 와전된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청의 전신인 후금의 초대 칸 누르하치(奴爾哈赤)가 명과 청의 영원대첩(寧遠大捷, 1626) 때 이곳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서술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연행록을 쓰며 이전의 연행록을 참고하기 때문에 오류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에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연행록과 연행도의 묘사가 얼마나 객관적인지, 이 기록을 통해 당시 건축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정재훈은 영원패루(寧遠牌樓) 그림을 보면 건물이 20m 정도 되어 보이나 실제로는 그렇게 크지 않다는 점에 대해 답사 경험을 떠올리며 “패루 밑에 서면 느껴지는 웅장함을 그림에 반영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부분적인 변형이나 과장이 있긴 하나, 거리의 풍경과 건축물의 구조는 사실에 가깝게 그리려 노력했고, 이를 묘사한 글도 비교적 신빙성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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