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2월호 (통권 687호)
‘미술관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미술, 미술관, 공공성’ 심포지엄 현장 ©Lee Sowoon
(아래) 테이트 모던 터빈 홀에 설치된 ‘쉽볼렛’(2007) 전경 ©Doris Salcedo
지난해 12월 1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에서 국제 심포지엄 ‘미술관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미술, 미술관, 공공성’이 개최되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MMCA 연구 프로젝트 ‘미술관은 무엇을 하는가’의 다섯 번째 학술 행사로서, 미술과 미술관의 지향점이자 존재 근거가 되는 공공성의 의미에 대해 전문가 여섯 명과 논의하고자 마련되었다. 심포지엄은 1부 ‘공공성의 개념’, 2부 ‘실천 원리로서의 공공성’, 3부 ‘공공의 확장, 공공성의 자리’로 나뉘어 각 주제별 발제자의 발표와 토론을 통해 진행됐다.
1부에서는 공공성의 개념에 관한 논의를 통해 미술관의 정치적 함의와 그 가능성을 사유했다. 김영민(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은 현대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 공론장이 이성적 공공성을 구현하기보다는 과시를 통한 자기 홍보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하며, 예술을 통한 ‘전시적 공공성’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잠재의식에 기반한 심미적 체험이 정의의 문제와 같은 공적 이슈로 우리를 인도할 때 이성적 토론 과정에서는 불가능했던 자기 반성과 행동 촉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술관의 공적 역할에 관한 논의를 이어받은 심보선(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은 공공성을 표방한 포용예술 정책이 장애예술의 급진적인 도전을 수용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며, 작금의 미술관이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성찰을 위한 ‘논쟁적 공론장’과 문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온정주의적 공론장' 두 가치 시스템으로 분열 및 양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급진적 예술에서 오는 불편함을 맞닥뜨려야만 비로소 공공미술관이 절충주의적 공론장을 넘어 논쟁적 공론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2부와 3부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미술관의 활동 영역이 공공성과 연관되는 지점을 짚었다. 말레이시아 페락 주정부 산하 예술집단 포트의 총괄 매니저 누르 하님 카이루딘은 ‘이포’라는 도시공간 내에서 포트가 진행한 청소년 창작 캠프, 이포국제예술제, 예술인 레지던스 운영 등 풍부한 실천적 사례들을 통해 예술계와 지역사회의 협업이 도시 공간 활성화의 매개로 작동하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어서 조선령(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은 전시의 미학적 형식에 주목하여, 미술관 공간을 ‘일시적 공동체’의 플랫폼으로 변형시키는 전시 사례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타자(관람객)의 존재가 전시 의미 생산의 중요한 부분일 때 일시적 공동체가 형성되며, 이때 미술관은 공적 공간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테이트 모던의 터빈 홀과 같은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미술관의 전시는 ‘집회’와 유사한 사회적 공간을 형성한다. 로드니 해리슨(유니버시티 칼리지 문화유산학 교수)은 최근 10년간 공공성의 개념을 전지구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탈식민주의 활동가들의 움직임을 소개하면서, 노예 무역에서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독성 유산’을 극복하려는 초국가적인 노력에 미술관도 참여할 것을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최춘웅(서울대학교 교수)은 1부와 2부의 논의를 종합하며 동시대 미술의 역할은 관객의 참여를 바탕으로 정치적 담론을 생산하는 것이므로, 앞으로 동시대 미술을 담는 건축 역시 기념비적인 수장고가 아닌 무한한 확장과 변형을 수용하는 임시 건축물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국제심포지엄의 논의를 심화해 내년에 연구총서를 출판 예정이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