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7월호 (통권 692호)

김영배의 건축 파빌리온 ‘네 번째 자연’ 설치 전경 / ©Kim Hyerin

네 번째 자연 내부 모습 / ©Kim Hyerin
지난 5월 2일 유동룡미술관에서 <제주 파빌리온 프로젝트: 이 땅을 여끄다>가 개막했다. 건축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2025 박물관·미술관 주간’의 프로그램 ‘뮤지엄 × 즐기다’의 선정작 중하나이기도 하다. 전시 제목인 ‘이 땅을 여끄다’는 이타미 준(유동룡)이 강조했던 지역성을 상징하는 ‘이 땅’과, ‘엮다’의 제주어인 ‘여끄다’를 결합한 표현으로, 이 땅의 자연과 파빌리온을 엮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동룡미술관은 이 전시를 통해 형태가 없는 파빌리온부터 실체를 갖춘 건축 파빌리온까지 다양한 개념의 파빌리온을 선보인다.
전시는 유동룡미술관의 야외 공간에서 진행된다. 대로변과 떨어져 곶자왈을 면하고 있는 미술관 주변으로는 제주말로 ‘빌레’라고 부르는 용암이 흐른 자국이 남은 너른 바위가 둘러싸고 있다. 이는 미술관 착공 시 발견한 것으로, 박물관의 건축가이자 관장인 유이화(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건물 설계를 빌레를 존중하는 배치로 다시 조정하기도 했다(「SPACE(공간)」 665호 참고).
전시는 유동룡미술관의 계절과 빌레를 향기로 풀어낸 향기 파빌리온 ‘빌레의 숨결&여끈돌’로 시작된다. 관람객들은 향기 작가 한서형이 조향한 ‘빌레의 숨결’을 머금은 향기 리본을 지닌 채 뜨거운 용암과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빌레를 거닐게 된다. 빌레의 곳곳에는 ‘빌레의 숨결’을 담아낸 오브제 ‘여끈돌’이 보인다. 화산석과 삼나무 등을 천으로 감싼 ‘여끈돌’은 공간의 날씨나 온도, 습도에 따라 향을 머금기도 하고, 발산하기도 하며, 무형의 향을 통해 하나의 공간을 축조한다.
소리 파빌리온 ‘자연에 앉다’에서 관람객들은 ‘숲이 젖는 자리’와 ‘깊은 숲, 첫 울음’이 재생되는 사운드 체어에 앉아 곶자왈의 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지향성 스피커를 사용해 사운드 체어에 앉은 사람에게만 소리가 전달되며, 이 소리의 경계는 하나의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한다. 또 공간 곳곳에 배치된 QR 코드를 통해서는 제주 자연에서 수집한 다양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제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은 더사운드벙커가, 사운드 체어의 디자인과 제작은 컬러랩제주가 맡아 협업한 작업이다.
건축 파빌리온 ‘네 번째 자연’은 유동룡미술관과 한국건축가협회,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가 함께 진행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이다. 김영배(드로잉웍스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수, 풍, 석 미술관에서 영감을 받아 제주 자연의 특징인 물, 바람, 돌에 이어 빛을 제주의네 번째 자연으로 해석한다. 해체된 ‘석(미술관)’의 물성을 반복하는 구조체로 전나무 통목을 사용했고, 내부의 틈을 따라 흐르는 빛은 ‘수(미술관)’의 투과성과 흐름을 암시한다. 또 틈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의 떨림은 ‘풍(미술관)’의 속성을 담아낸 것이다. 가로 1.2m, 세로 2.8m, 높이 3.6m 크기의 한 평 남짓한 파빌리온에 들어서면, 전나무 침목을 태워 어둡게 조성한 구조체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나무의 향과 어둠은 외부와 내부를 분리시키며, 그 사이에서 관람객은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좁은 내부에서 바깥세상은 오직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서만 인지되고, 관람객들은 바깥의 환한 빛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던 미세한 빛의 결을 감각할 수 있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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