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9월호 (통권 694호)

백현진의 ‘난제’ (2025, 왼쪽), ‘결심’ (2025, 오른쪽)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 photo: Sangtae Kim

이요나의 ‘간 방 벽’(2025) 설치 전경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 photo: Sangtae Kim
7월 25일부터 한국작가 그룹전 〈두번째 삶▼1〉이 도산공원 앞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진행 중이다. 전시 제목에서 삶을 서수로 표현한 것은 (현실에서도) 우리의 삶은 단일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각자의 삶이 수많은 변곡점을 지나면서 두번째, 세번째 국면으로 나아가 저마다의 궤적을 갖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전시는 삶의 복수성(複數性)이라는 주제 아래 서로 간의 관계가 희박한 작가 다섯 명(팀)의 신작을 느슨하게 엮어내며, 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작업하는지 그 고유한 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요나의 작업은 어린 시절 뉴질랜드로 이주해 정착의 감각을 갖지 못한 채 성장한 작가의 개인적 삶과 연결된다. 그의 특징적인 스테인리스 스틸 구조물은 이동의 경험 속 손잡이, 계단의 난간, 회전식 개찰구에서 유래하는데, 머무르지 못하고 미끄러지듯 스쳐지나가는 비장소적 공간을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간 방 벽’(2025) 또한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벽처럼 공간을 구획하면서도 그의 작품 중에서는 처음으로 실제 문을 도입해 양쪽 공간을 연결했다. 작가는 여기에 소파, 벤치, 침대 등 휴식과 관련된 오브제들을 덧붙여 안과 밖, 스쳐 지나감과 머무름 등 상반된 신체적, 심리적 경험을 전달했고 이는 삶의 양가성을 떠올리게 한다. 백현진은 노래와 연기, 회화를 오가는 다면적 인물로 백현진이라는 육체를 관통해 표현되는 온갖 장르의 결과물들은 그의 신체적 조건이 빚어내는 독자성을 갖는다. 회화 작가로서의 행적에만 한정해서 생각해본다면, 2000년대 초반 선보인 꼬불꼬불한 선으로 구성한 작업부터 두꺼운 물감층에 얼굴을 닮은 형상을 덧댄 작업을 거쳐 도시 외관의 패턴을 나열과 증식으로 표현한 작업에 이르기까지 각각 한 시기의 성취로 끝낸 것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삶의 조건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무심히 말한 바 있다. 이번 신작 회화들은 시작과 끝이 모호하고 마치 덜 그린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어깨 통증이 수반된 신체 조건과 그 리듬을 따른 백현진만의 감각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한 & 모나(「SPACE(공간)」 678호 참고)는 중국 소수민족 출신의 마한칭과 한국인 유모나가 결성한 협업 듀오로 버려진 공간에 관심을 두고 이를 이미지 또는 물리적 공간으로 되살리는 작업들을 주로 선보여왔다. 이들에게 빛은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구성 요소이자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치로도 작동하는데 이번 작품 ‘LISTEN, I KNOW’(2025)에서는 중정에 ‘Listen’과 ‘I Know’에 각각 대응하는 모스 부호를 서로 마주보는 조명으로 설치해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대화를 전달한다. 길이가 다른 두 문장은 서로 어긋나지만 6분을 주기로 동기화되며 이는 서로 다른 모국어를 가진 두 사람 사이의 충돌과 회복을 의미한다. 그 밖에 김보경의 면실 뜨개 작업들은 연고가 없는 베를린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는 동안 발견한 아칸서스 문양을 뜨개질로 재현한 것으로 권력과 문명의 표상으로 쓰였던 아칸서스 장식을 부드러운 조각으로 탈바꿈하며, 박민하의 ‘유령 해부학’(2025)은 생성형 AI의 잠재 공간을 시각화한 작업으로 AI라는 기술적 타자에 3D 캐릭터 ‘노아’의 이미지를 부여해 그의 무의식 심층부를 들여다보는 최면치료 과정을 그린다. 전시는 10월 5일까지.
1 2003년 린든랩이 개발한 메타버스 서비스의 이름 ‘세컨드 라이프’를 직역한 것으로 세컨드 라이프가 현실의 욕망을 투영한 대안적 스펙터클이라면 전시는 현실의 삶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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