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6월호 (통권 703호)

〈균류: 아나키스트 디자이너〉 전시 전경 ©Aad Hoogendoorn
디자인은 인간이 세계를 계획하고 조직하는 행위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세계를 바꾸는 힘을 인간의 설계 행위에 한정할 수 있을까? 지난 2025년 11월 21일부터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니우어 인스티튜트에서 진행 중인 전시 〈균류: 아나키스트 디자이너〉는 균류를 통해 이 관점을 전개한다.
인류학자 애나 칭과 건축가·예술가 페이페이 저우(테리스토리즈 대표)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균류를 일종의 신소재로 간주해 디자인과 생산 과정에 편입하려는 최근의 흐름에 대해 반대편의 관점을 취한다. 전시는 균류를 ‘무정부주의적 공동 설계자’라 정의하며, 인간이 만든 공간과 생산 체계, 생태적 순환 속에서 균류가 그것들의 의도된 작동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다룬다.
전시에 소개되는 여러 작업은 과학자와 예술가의 협업을 통해 제작됐다. 생태학자 이베트 페르펙토와 재커리 하지언-포루샤니, 그리고 작가 필리프 그루브노프는 라틴아메리카의 산업적 단일재배 커피 플랜테이션에서 발견되는 곰팡이인 커피 녹병의 확산 경로를 지도화했다. 인간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단순화한 농업 환경 안에서, 작은 균류가 어떻게 전체 시스템을 흔드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또 다른 작업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의 방사능 순환을 다룬다. 인류학자 베티나 슈퇴처, 작가 듀오 베르크벨트, 예술가이자 연구자인 오사 소냐스도테르는 일부 균류가 토양 깊은 곳의 방사성 물질을 흡수하고, 이를 먹은 멧돼지가 이동하면서 방사능이 순환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여기서 균류는 인간이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물질의 이동에 관여하는 생명체로 나타난다.
이 밖에도 병든 개구리, 식기세척기, 병원 침대, 흰개미집, 인간의 소화기관, 바나나와 침엽수 플랜테이션, 정글 등 다양한 장소와 규모에서 균류가 작동하는 방식을 다룬다. 전시는 8월 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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