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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처이자 도피처: 〈동굴(Grotto)〉

exhibition 김제연 기자 2026.09.15


「SPACE(공간)」 2026년 9월호 (통권 706호) 

 

 

이덕영의 개인전 〈동굴(Grotto)〉이 7월 18일부터 8월 14일까지 서울 연남동 챕터투에서 열렸다. 이덕영은 사회적 관계와 개인적 경험 속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안식, 그리고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심리적 균형을 탐구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공물의 불규칙함과 자연물의 질서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보호와 억압이 공존하는 내면의 풍경을 펼쳐 보였다.

전시의 제목인 ‘동굴’은 작가에게 안전한 은신처이면서 동시에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도피처를 의미한다. 서울에 올라와 레지던시에서 보낸 1년 동안 작가가 머문 5평 남짓한 공간 역시 편안함과 답답함을 함께 품고 있었다. 공간에서 답답함을 느낄 때마다 밖으로 나가 주변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그렇게 발견한 도시의 모습은 다시 자신의 거주 공간과 연결되어 전시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이덕영의 ‘거리의 화석’(2025), ‘완전한 방치’(2025), ‘완벽한 균형’(2025)​. Image courtesy of Chapter II

 

 

작품 ‘거리의 화석’(2025)에서는 충정아파트의 입면과 화석의 이미지가 수직으로 놓인다. ‘한국의 가장 오래된 아파트’라는 말을 듣고 찾아간 건물에서 작가는 관리되지 않은 외관을 보고 화석을 떠올렸다. 내부의 무질서한 전선, 쓰레기, 먼지는 인간의 불완전한 심리 속을 들여다보는 듯했고, 복잡한 복도식 구조는 미로처럼 느껴졌다. 폐허처럼 변해버린 건물은 동굴 속에 들어가 누군가의 접근을 밀어내는 인간을 바라보는 듯한 낯선 감각을 전달했다. 그러나 통제를 벗어난 이 오래된 아파트는 오히려 작가에게 아름답게 다가왔다고 말한다.

작가의 시야는 폐허에 자연이 스며들기 시작한 모습으로 넓혀진다. 인간의 손을 떠나 방치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덩굴이 자라나는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한 구조로 보았다. 작품 ‘완전한 방치’(2025)와 ‘완벽한 균형’(2025)에서 콘크리트 벽과 무성한 덩굴은 서로 다른 질서를 가진 채 공존한다. 이런 시도는 다른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작가가 거주하던 레지던시 입구에 전원적인 자연의 풍경을 덧붙인 작품 ‘103호’(2025)와 건축 공간 안으로 억새가 무성하게 뻗어나와 대비감을 이루는 작품 ‘동굴’(2026)에서도 대립항 속 편안함과 긴장감이 동시에 감지된다.​ 

 

 

 

이덕영의 ‘동굴’(2026)​. Image courtesy of Chapter II​

 

 

전시 공간 맞은편 서점 스프링플레어에도 이덕영 작가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펜으로 세세히 그린 산, 나무, 주거단지가 담긴 ‘산과 삶’(2026), ‘불균형’(2026), ‘어두운 산’(2026), ‘균형’(2026) 네 점이다. 처음에는 명료하게 묘사된 도시의 인공물과 복잡하게 표현된 자연물이 대비되는 듯하지만, 화면을 오래 바라보면 그 구분은 점차 흔들린다. 인공물은 무질서하게 보이고, 반대로 자연은 단순한 형태로 인지된다. 작품 뒤편에는 작가가 추천한 한병철의 『고통 없는 사회』를 포함, 세 권의 책이 놓였다. 『고통 없는 사회』가 고통을 두려워해 밀어내기만 하다 만성 마취에 빠진 작금의 사회를 분석했다면, 〈동굴(Grotto)〉은 도시 속 낡고 닳은 것, 뻗어나오고 튀어나온 것들을 드러내고 끌어안는 방식으로 마비되었던 감각을 회복시켜보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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