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9월호 (통권 706호)
경기도미술관에서 개관 20주년을 맞아 개최한 청년작가 기획전 〈우리의 여름에게〉가 9월 27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가능성과 불안 사이에서 뜨겁고 치열하게 ‘여름’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26팀의 대표작 93점을 선보인다.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공예, 건축, 디자인, 퍼포먼스 등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작품에 집중한 만큼, 개별 작품의 다양성과 독자성을 살리기 위해 특정 주제나 섹션 구분을 없애고 작가별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야생흙, 땅, 사람’(알오에스), ‘가족, 공존, 혼성성’(김희재)처럼 작가별로 제시된 키워드를 단서로 삼아 관람객들이 주체적으로 작품들을 선택해 관람동선을 짜도록 제안한 것이다. 이를 위해 브로슈어 또한 가이드맵 형태로 제작됐다.

〈우리의 여름에게〉 전시 모습. 이현화(왼쪽), 이규한(가운데)의 작업이 마주보고 있다. Image courtesy of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특히 전시는 공예와 디자인, 건축과 같이 청년작가들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포착되는 경계 실험과 외연 확장을 중요하게 다룬다.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전재우(하이퍼스팬드럴 대표)의 ‘화장실은 2층에 없습니다’(2026) 연작은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건축가인 그는 로비, 전시장 입구, 계단 등 이동하는 지점마다 ‘2층에 화장실이 없다’는 정보를 안내판, 전광판, 모니터 등 다양한 형태로 시각화한다. ‘화장실의 부재’라는 불편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정보 전달을 빌미로 전시 환경과 관람 동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공간이 지닌 규칙과 제도를 위트 있게 비튼 작업이다. 남다현의 ‘2008년 7월 12일 청구3차 106동 507호’(2017~2026)는 창작과 복제의 경계를 실험한다. 작가가 유년 시절 거주했던 집의 풍경을 가구부터 집기 하나까지 고증하듯 섬세하게 재현하지만 그 재료는 스티로폼이다. 치밀한 고증이 조악한 물성으로 구현된 이 작업은 청구3차 106동에 ‘507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작가는 허구의 시공간이 전달하는 바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아니라 작품이 촉발하는 서사와 기억, 경험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꼬집는다.

남다현의 ‘2008년 7월12일 청구3차 106동 507호’(2017~2026) 설치 모습 ©Bang Yukyung
디자인, 공예 분야의 작가들도 소환됐다. 염원을 담아 돌탑을 쌓듯, 실에 금속 와이어를 삽입해 입체 구조로 제작한 ‘기원의 돌’(2024), 먹으로 염색한 면 원단의 실을 한 올씩 풀어서 다시 엮은 태피스트리 ‘여명’(2024), 자신의 머리카락을 태우고 남은 잿가루와 콩테로 그린 회화 ‘달집 태우기’(2024). 부정한 것들을 태워버리고 내면의 정화와 평화를 기원하는 이현화의 수행적인 섬유 작업 앞에는 이규한의 ‘맥도날드의 포장 봉투 조명’ 연작(2025)이 놓였다. 소비사회에서 쉽게 버려지는 종이 봉투를 전통과 현대를 잇는 조명으로 되살린 작업과 병치해 장인과 디자이너, 예술가 사이의 구분과 경계를 탐색하는 작가들의 공통된 문제의식과 작업 방식, 태도 등을 읽어내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영상을 구성하는 초당 30개 프레임의 정지 이미지를 출력한 종이 더미를 관람객들이 한 장씩 뜯어가도록 설치한 이수지의 ‘움직임을 만드는 방법: 프리미어’(2026), 도시의 클로버형 인터체인지를 따라 출구 없는 무한 순환 루프를 차량으로 이동하는 영상을 담은 한재석의 ‘미궁 Ⅱ’(2026) 역시 영상 매체에 천착해 시간성과 움직임을 탐구한 작업들도 함께 병치됐다. 이처럼 작가들의 자유로운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관람객들은 전시장 안에서 길을 잃거나 혹은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는 경험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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