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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두 집

리베라니-몰테니 아키테티 + 에이치에이치 아키텍스

최춘웅(서울대학교 교수)
사진
시모네 보시
자료제공
에이치에이치 아키텍스
background

탄력 있는 선들의 즐거움

 

성북동 두 집 프로젝트는 최근 번지고 있는 다원적이며 느슨한 사고를 통한 건축으로의 접근 방식을 충실하게 실현하고 있는 사례이다.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제도 또는 기관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하나의 공동체에 속하는 것보다는 단순히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서로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정도에서 관계를 멈추는 것을 선호하는 오늘의 젊은 건축가들. 이들은 폐쇄적이고 자기참조적, 또는 자아도취적인 개념이나 이론에 대해서는 더 이상 호기심이 없다. 복잡한 논쟁이나 담론들은 무의식적인 듯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대신 다소 불손하고 편한, 답이 정해져 있지도 않지만 굳이 질문을 하지도 않는, 계층과 위계가 없는, 단순하게 즐기기 위한 놀이로서의 건축 행위를 선호한다. 역사학자들에게 인정받은 소수의 이른바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들의 작업에 국한된 참조목록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모양들과 다수의 선례들을 다양한 패턴으로 섞어 흥미로운 이미지로 즉석 조합하는 과정일 뿐이다.

포괄적이며 개방적인 태도를 갖추고 디자인 작업을 공동체 속의 놀이 행위로 승화하려는 노력은 바우하우스의 초기 시절에도 시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일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를 중요시하던 바우하우스에서 기초과정을 지도한 클레와 칸딘스키의 교육 방식은 점, 선 그리고 면의 관계를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칸딘스키에게 점은 ‘시간적으로 가장 간결한’ 형태였고 선은 ‘점이 이동한 흔적 또는 결과물’이었다. 즉 점이 공간 속에서 이동할 때 선이 그려지고, 그 움직임은 점의 고립된 정적을 파괴하는 행위인 것이다(칸딘스키, 『점・선・면』, 1926). 점이 0 또는 침묵과 시각적으로 동등하다면 선은 디자이너를 통해 그 침묵을 깨고 움직임을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점, 선, 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모양(shape)을 원소(elements)라고 부르며 이는 움직임이 없고 무기력한 기하학적 도형과는 차별화된다.

 

평범한 직사각형의 집인 듯 세 개의 가지런한 창문들이 네모 반듯한 입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첫 모습은 그 뒤에 탄력 있는 선들의 조합을 숨기고 있다. 

 

원소 또는 움직이고 있는 모양들로 이뤄진 조합으로 성북동 두 집의 도면을 이해한다면 정적인 형태보다 역동적인 모양과 그에 따른 상황을 선호하는 리베라니-몰테니의 작업 성향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원소적인 그림들을 통해 지어진 공간 속의 장면들은 즐거운 상황을 연출하는데 그 첫 번째 상황은 거리에서의 마주침이다. 평범한 직사각형의 집인 듯 세 개의 가지런한 창문들이 네모 반듯한 입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첫 모습은 그 뒤에 전혀 다른 선들의 조합을 숨기고 있다. 그 벽돌벽 아래 음각으로 파인 납작한 삼각형 공간이 입구다. 그 꼭지점으로 끌려 들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을 넘어 계단 위로 복잡한 대각선들이 교차하며 시야를 혼란시키고, 그 선들이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꼭지점에 도달할 때 비로소 모든 혼란스러운 움직임이 잠시 멈춰 선다. 꼭지점에서 양방향으로 연장되는 선들은 각각의 소실점을 향해 뻗어나가고 그 소실점들은 동시에 안마당의 경계를 이룬다. 2층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지만 한쪽에서는 시야가 아래층으로 뚫린 보이드 속으로 빠져들고 다른 쪽에서는 은밀한 샤워 공간 속으로 스며들며 사라진다. 선들의 움직임이 시야의 움직임으로 연결되고 은밀한 엿보기와 시원한 노출 사이에 다양한 공과 사의 교란이 이루어진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을 넘어 계단 위로 복잡한 대각선들이 교차하며 시야를 혼란시킨다.

 

리베라나-몰테니의 작업을 살펴보면 간혹 이론의 틀에 사로잡혀 헛돌기 쉬운 복잡한 설계과정을 스케치와 모형들을 통해 마치 종이접기와 같은 즐거운 놀이로 변형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그린 그림 속의 선들은 무의미한 좌표들을 잇고 멈춰선 선들의 공식화된 나열이라기보다 잠시 멈춘 탄력 있는 끈들의 움직임과 같다. 마우스를 잡고 컴퓨터로 그린다면 하나의 노드점에 연결된 여러 선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겠다. 각 집의 평면 속에는 여섯 개의 노드점과 여섯 개의 선이 있고, 중심에 있는 점을 움직이면 지붕선들과 안마당의 선들이 모두 함께 움직이게 된다. 이와 함께 마당을 품고 있는 커튼월의 방향과 길이, 그리고 지붕의 경사도 또한 동시에 변형된다. 최종 모형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부지런히 움직이던 점들과 선들이 순간 정지된 모습으로, 마치 두 팔과 두 다리를 뻗고 있는 두 명의 무용수들이 잠시 춤을 멈추고 있는 듯하다.

 

선들의 움직임이 시야의 움직임으로 연결되고 은밀한 엿보기와 시원한 노출 사이 다양한 공과 사의 교란이 이루어진다. 

 

성북동 두 집을 설계한 건축가들은 단순한 ‘V’자 모양을 나란히 엮어 두 채의 집이 최대한 가까이 있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재치 있게 조합했다. 마치 타이포그래피 작업과 같이 단순한 패턴을 통해 개념으로 가장한 허세를 거부한다. 프로그램이나 대지 상황을 그저 형태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로 삼는 대신 다양한 삶의 흥미로운 상황으로 해석한 건축가들의 결과물은 당당한 자신감이 맴도는 신선한 순수함으로 다가온다. V 형태의 안마당들은 성북동 계곡의 절경을 품고, 각 꼭지점들은 마치 고무줄을 당겨서 만든 글자와 같이 긴장감 있게 두 개의 대지를 채우고 있다. 단면 속에서도 사용된 V자 모양은 각각 솟아오르거나 내려앉은 지붕이 되어 두 집이 하나의 연속적인 톱니바퀴 모양으로 조합되도록 돕는다. (아직은 두 집 중 윗집만 지어졌다.) 이러한 다양한 모양의 조합들은 전체적으로 개방적이고 편안하며 부담 없는,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주변의 지나친 조심스러움과 강요된 소심함과 상반되는 활기를 더하고 있다.​ <진행 박성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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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리베라니-몰테니 아키테티(안드레아 리베라니, 엔리코 몰테니) + 에이치에이치 아키텍스(한혜

설계담당

리베라니-몰테니 아키테티 - 로렌조 탐베리, 마티아 카바리에리 / 에이치에이치 아키텍스 -

위치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772m2

건축면적

203.17m2

연면적

579.83m2

규모

지상 2층, 지하 1층

주차

4대

높이

10.9m

건폐율

26.84%

용적률

49.41%

구조

철근콘크리트

외부마감

벽돌, 알루미늄시트, 콘크리트 폴리싱

내부마감

수성페인트, 마모륨, 시멘트보드

구조설계

터구조

기계설계

주성엠이씨

전기설계

한길엔지니어링

시공

서우산업개발

설계기간

2014. 10. ~ 2016. 2.

시공기간

2016. 3. ~ 2017. 2.

협력설계

이우건축사사무소


리베라니-몰테니 아키테티
안드레아 리베라니와 엔리코 몰테니는 1999년부터 밀라노에서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그들은 약 90개의 국제설계경기에 참가했으며, 2015 밀라노엑스포 서비스관 당선을 포함해 23번의 수상 경력이 있다. 2005년 IN/ARCH National Award, 2004년 Arches Award와 Piranesi Award, 2006년 Accademia Nazionale di San Luca에서 건축상을 수상했다. 영화감독을 위한 집은 2013년 Architectural Review House Awards에 지명됐다. 2006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이탈리아 파빌리온에 참가했다. 엔리코 몰테니는 Accademia di Mendrisio에서 강의하였고, 현재 밀라노와 제노바에서 강의 중이며 「카사벨라」 편집위원이다.
에이치에이치 아키텍스
한혜영은 큰 것보다는 작은 것,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 중심보다는 주변에 더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있는 건축가이다. 국민대학교 건축학과를 거쳐 스페인 마드리드 공과대학 대학원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하고, 2014년부터 에이치에이치 아키텍스를 이끌고 있다. 앞서 원오원건축, 아이아크건축, OCA건축에서 서로 다른 색깔과 스케일의 실무를 경험했다. 대표작으로는 남동 나비집, 성북동 두 집, 군포 다문화가족 프로젝트 등이 있으며, 현재 국민대학교에 출강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