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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자연 사이의 베이스캠프: 부곡 프라이데이 하우스

사진
송유섭
자료제공
TRU 건축사사무소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부곡 프라이데이 하우스는 전형적인 교외 주택단지에 지어진 주말 주택이다. 단지 내 막다른 골목 끝에 이르면 대나무 담으로 둘러진 작은 집을 만날 수 있다. 박공지붕 아래 단층 주택은 위압감을 주는 주변 집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띈다. 아파트와 별장 사이, 쉼을 위한 작은 집의 전형을 만들고 싶다는 건축가 조성익의 바람은 이곳에서 어떻게 실현되었을까? 그와 함께 집 안팎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조성익 홍익대학교 교수 × 방유경 기자  ​

 

 

 

 

방유경(방): 서울 근교에 있는 주말 주택을 설계했다. 건축주와 처음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그들의 요구 사항은 무엇이었나? 

조성익(조): 건축주는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부부다. 술과 책, 등산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취미 생활을 공유하고 지인들과 편히 쉴 수 있는 주말 주택을 원했다. 첫 만남 때, 건축주에게 집을 돌보고 관리하는 일을 즐겁게 하려면 손이 덜 가는 작은 집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주변에서 모두 큰 집을 지으라고 부추기는데, 작은 집을 고집하는 것이 인상적이어서 나에게 설계를 맡기게 됐다고 했다. (웃음)

 

방: 같은 주택단지 안에 지어진 집들과 비교하면 정말 작은 규모다. 

조: 주말 주택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뉴요커들의 여름 휴양지인 롱아일랜드 몬탁이었다. 이곳에는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거대한 호화 별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 휴식을 위한 평범하고 겸손한 인상의 집들이 대부분이다.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모험이 이미 특별하니, 마음 편히 쉬는 전초기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말 주택이란 ‘휴식을 위한 베이스캠프’라는 생각을 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만든 베이스캠프처럼 안정감을 갖추되 모든 기능을 장착하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집이라는 의미다.

 

방: 교외로 떠난다는 행위에는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만끽한다는 목적이 있지 않나? 그런데 아주 멀리 가지는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울 지근거리에 지어진 것을 보면, 교외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중성 같은 것이 느껴진다.

조: ‘어정쩡하다’는 말이 정확히 맞는 표현이다. 도시환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깊은 자연 속에 있을 때 정말 마음이 편안하다고 느끼게 될까? 도시인에게는 ‘숲은 좋지만 벌레는 싫다’ 같은 어쩔 수 없는 모순이 존재한다. 우리는 휴식의 환경을 ‘야생의 자연’과 ‘편리한 문명’으로 이분법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도시 아파트와 ‘숲속 집’ 사이에 어정쩡한 휴식을 담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주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교외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의 근원적인 욕망을 ‘쉼’으로 단일화하기보다 ‘잠깐 들르는 집’, ‘혼자 쉬는 집’, ‘한달살이를 위한 집’ 등으로 분화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주거에서 휴식에 대한 욕망을 다층화하는 접근이, 특히 팬데믹을 계기로 휴식의 의미가 진화하고 있는 요즘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방: 휴식을 위한 주택은 일반적인 주택과 무엇이 다른가? 건축가로서 단독주택을 설계할 때와는 접근 방식이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하다.

조: 한국의 아파트는 모든 기능들이 딱딱 맞춰진, 기능적으로 정제된 주택이다. 이런 아파트에서는 담기 힘든 여유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대청마루처럼 용도를 규정하지 않은 공간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 집을 통해 주말 주택의 새로운 프로토타입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단독주택을 설계할 때는 건축가나 건축주의 자아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이 집에서는 무언가를 의도하려는 힘을 조금 빼고 하나의 ‘유형’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기존에 보기 힘든 집의 장르를 하나 만들자는 것이다. 먼저 관리가 쉬워야 한다. 그러려면 집의 규모는 줄이고 단층집으로 간소화한다. 조경은 최소한으로 두고, 구조는 증개축이 쉬운 철골조를 섞어 짓는다. 재료는 유지와 보수를 위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한다. 설치와 해체가 쉬운 골강판과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하는 것이 그 예다. 이런 요소들이 모여 가볍게 쉬는 집의 전형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거주자의 행동 패턴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교외 주택에 살면 집 안과 밖을 수시로 드나들 일이 많다. ‘들어오자마자 공용 현관에서 손을 씻는다’는 행동에 맞춰 수돗가를 만들었다. 놀러 오는 손님이 많을 것이니 ‘거주자 영역과 손님 영역 사이에 공용 화장실을 둔다’ 같은 결정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방: 대문을 지나면 너른 마당이 있고 집은 한쪽으로 물러나 있다. 배치에서 중요하게 고려한 점은 무엇인가?

조: 이 집은 산비탈을 절토한 뒤 석축을 쌓아 만든 주택단지 막다른 골목 끝에 위치한다. 대지의 가장 큰 장점은 남쪽으로 마주한 북한산 전경이다. 일반적으로 남쪽의 전망이 좋으면, 건물을 북쪽에 두고 남쪽에 큰 마당을 만든다. 집에서도 마당에서도 경치를 즐기려는 의도다. 하지만 이 집은 남쪽 끝으로 건물을 배치해 실내에서 보는 경치를 살리고, 북쪽에 집과 담장으로 둘러싸인 뒷마당을 만들었다. 아늑한 뒷마당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풍광을 발견하도록 하고 싶었다.

 

방: 대나무 담장, 골강판 지붕, 노출콘크리트 벽, 목재 기둥, 툇마루 등 외부 요소들은 현대적이면서도 전통 한옥 같은 인상을 준다. 

조: 겸손하고 단순한 형태의 집을 생각했다. 박공지붕에 쓰인 골강판은 집 전체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재료다. 이 골강판을 거푸집으로 활용해 노출콘크리트 표면에도 같은 무늬를 만들었다. 박공지붕 앞뒤에는 덧지붕을 추가했다. 직사광선이 실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스케일을 낮춰 아늑한 공간감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지붕의 길이와 높이의 비례는 전통 한옥의 시각적 비례를 반영해 설계했다. 묵직한 지붕이 가벼운 기둥에 올라앉은 느낌이 든다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덧지붕을 받치는 목재 기둥은 골강판 표면의 리듬에 맞춰 2×6in(38×140mm) 규격의 스터드 두 개를 붙여 만들었다. 단순한 형태의 작은 집에서는 이런 디테일이 보는 재미를 준다.

 

 


 

 

방: 내부를 보면 일반적인 주택과는 사뭇 다르다. 상대적으로 넓은 주방 면적, 화장실을 거쳐 방으로 들어가는 동선 등 평면 구성이 독특하다.

조: 일반적인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평면이었다. 사람들이 이 집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모습을 상상하며 공간을 구성했다. 현관을 중심으로 긴 건물을 반으로 나눠 한쪽에는 주방을, 다른 한쪽에는 서비스 공간을 모았다. 집의 중심 공간인 주방은 일종의 멀티 스페이스다. 책과 술을 좋아하는 건축주가 의자에 앉아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도록 실내 크기를 정했다. 요리하면서 맞은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춰 대화할 수 있도록 바닥의 높이를 조절하는 등 온전히 먹고 놀고 쉬는 것에 집중한 공간이다. 나머지 화장실과 욕실, 침실은 최소한으로 구성했다.


방: 절제된 외부와 달리 내부에는 다양한 컬러가 사용되었다. 가구도 직접 디자인했다고 들었는데 인테리어의 주된 콘셉트는 무엇이었나?

조: 나무의 자연색을 그대로 살리되, 공간의 쓰임에 따라 ‘자연의 색’을 닮은 컬러를 적용했다. 저녁에 주로 이용하는 주방 천장에는 밤하늘을 닮은 딥 퍼플을, 침실에는 아침 햇살을 닮은 인디언 핑크를 사용하는 식이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이런 컬러를 ‘애매색’이라고 부른다. 컬러휠에서 봤을 때 삼원색의 가운데 위치한 중간색, 다시 이 중간색들의 중간에 있는 색이다. 예를 들어 오렌지라 부르기도, 노랑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색이다. 실내 마감과 가구는 젊은 목수가 운영하는 오크우드 스튜디오와 함께 작업했다. 작은 공간일수록 결국 손에 잡히는 것들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공간의 콘셉트를 이해하는 전문가라서 큰 도움이 됐다. 책장, 술장, 테이블, 식탁의자를 비롯해 포렴을 거는 거치대 등 집 구석구석을 살피다 보면 전문가의 세심한 손길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무실은 대청마루에 놓은 라운지 체어와 침실 책상을 디자인했는데 우리의 의도를 이해하는 시공자, 목수와 협업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공간 안에 내용물을 채운다는 개념이 아니라 공간과 인테리어, 가구가 일체화되어야 하는 작은 집이기 때문에 건축가, 시공자, 목수가 초반부터 팀워크를 이루는 것이 중요했다.

 

방: 스테이 서비스가 각광받고 있는 현상을 보면 새로운 주거 공간을 경험하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고 보인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 그간 관광지에서 보아온 숙박시설이 아니라 집에 머무는 듯한 경험을 주는 숙박시설을 즐기기 시작한 건 10년도 안 된 일이다. 주거 공간 자체가 즐길 거리가 된 것이다. 제주를 비롯한 지방 도시들의 오래된 동네에 이런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집에 직접 살아보면서 경험한다’는 개념은 대중에게 거주의 경험을 넓혀주는 순기능을 한다. 이런 현상의 다음 단계가 있다면, 집 한 채가 주는 경험을 넘어 집들이 모인 동네에서 누리는 휴식이 아닐까? 편의 위주로 계획된 리조트가 아니라 집으로 가는 골목, 느긋한 마을 중심의 상업시설까지 휴식을 테마로 디자인된 마을이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 일종의 ‘주말 주택 빌리지’라고 할 수 있는데 언젠가 설계할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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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익
조성익은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이며, TRU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다. 서울대학교와 미국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진천 벚꽃집, 라일락 옥상집, 0914 시몬느 플래그십 스토어를 설계했다. 건축설계를 통해 발견한 아이디어를 확장하기 위해 매력도시 연구소를 설립하여 도시의 삶에 관한 연구를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