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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비일상, 낮과 밤, 우리의 이야기가 있는: LCDC 서울

사진
진효숙 (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아뜰리에 에크리튜
진행
박세미 기자

지난해 말, 성수동에 또 하나의 낡은 공장이 새로운 공간 플랫폼으로 재탄생했다. 이 전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지만, LCDC 서울은 그간 보아왔던 복합 상업 공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다. 아마 언어로 직조된 치밀한 기획과 그의 단단한 배경이 되어주는 건축, 그리고 동네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비롯된 차이일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기획팀 김재원(아뜰리에 에크리튜 대표)과 정강화(건국대학교 교수), 그리고 건축을 맡은 서승모(사무소효자동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 김재원 아뜰리에 에크리튜 대표, 서승모 사무소효자동 대표, 정강화 건국대학교 교수 × 박세미 기자 사진 진효숙(별도표기 외)

 

 

박세미(박): LCDC 서울(이하 LCDC) 프로젝트의 시작에 대해 듣고 싶다.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요청을 받고,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가?

김재원(김): 처음에는 에스제이 그룹에서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80평 정도의 패션 편집숍 브랜딩을 요청했다. 그 당시에는 장소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80평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염두에 두고 브랜딩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지금의 LCDC 부지를 만나게 되면서 공간 기획을 다시 하게 됐다. 80평에서 갑자기 500평이 된 셈인데, 메인 브랜드 공간 하나를 양적으로 늘리는 것은 무리가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원래 자동차 정비소였던 세 개 동의 건물을 각 층별로 어떻게 구성할까를 생각했고, 여러 전문가들과 협업하게 됐다.

 

박: 클라이언트 프로젝트인 것에 비해 자율성이 높았던 작업이었던 만큼 일관성 있고 탄탄한 기획이 필요했을 것 같다.

정강화(정):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들을 보면 많은 경우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참여 아티스트들의 생각이 다 달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톤으로 완성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건축물이 지어지고 나면, 그다음에 인테리어가, 그다음에 공간 콘텐츠, 이렇게 레이어가 쌓이는 식이었다. 이 방식은 각각의 요소가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갖기 때문에 재미있는 부분들이 발현되기도 하지만 하나의 맥락을 갖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LCDC에서는 ‘초기의 생각을 끝까지 그대로 굵직하게 끌고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초기 단계부터 이 프로젝트가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 각 요소가 왜 필요한지를 클라이언트에게 충실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클라이언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디렉션을 만들고, 세부적인 요청들을 아티스트들에게 전달했다. 건축이라는 큰 그림에서부터 음악, 오디오와 같은 세부 디테일까지 조화를 맞추려고 했다. 서승모가 정말 좋은 배경으로서의 건축을 만들어주었다. 행복하게 일했던 프로젝트였다.

 

박: 이해관계나 참여 주체가 많을수록 치밀한 기획과 그에 따른 소통 방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뜰리에 에크리튜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레퍼런스 이미지에 의존하기보다 개념적 언어를 매개 삼아 움직인다고 들었다.

김: LCDC 프로젝트 같은 경우 여러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작업했다. 건축, 인테리어, 조명, 조경, 그래픽을 포함해 작은 아트워크 작가들도 참여했다. 초반에 브랜딩 작업을 다 정리해놓고 시작했기 때문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오히려 수월했다. 브랜드 매뉴얼북을 만들어 계속 소통하고 아카이빙했다. 추후 운영 단계에서 들어온 F&B팀에게도 역시 매뉴얼북이 가이드가 되고 소통 매체가 됐다. 사실 3층의 도어스에는 여섯 개 브랜드와 팝업까지 총 아홉 테넌트가 섭외됐는데, 그 시점은 건물이 철거되는 단계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어올 공간을 보지도 못하고 들어오기로 결정한 것이다. 브랜드 콘셉트부터 구체적 전략들이 담긴 매뉴얼북을 잘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 LCDC 역시 ‘여정’이라는 큰 주제 아래 ‘이야기 속의 이야기(Le Conte des Contes)’라는 언어적 구조를 따른다. 내부 콘텐츠의 배치와 시퀀스는 어떻게 이를 반영하는가?

김: 현재 2층에 있는 편집숍이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는 그 편집숍이 1층에 배치되는 걸 제안했다. 여러 논의 끝에 1층에 무조건 카페가 있고, 위층으로 갈수록 콘텐츠가 강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패션 편집숍이 1층보다 중요하지 않아서 2층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숍보다 대중적이고 편한 카페가 1층에 있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었다.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가는 여정이 중요했다. 특히 3층의 콘텐츠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각 브랜드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며 하나의 단편집을 이루는 콘셉트를 공간적으로도 잘 구현하려고 했다. ‘3층이 개미지옥이다’라는 리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웃음) LCDC가 와서 잠깐 보고 나가는 공간이기보다는 머물고 놀다갈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다. 1층에서 앉아 있다가 2~3층에서 돌아다니며 놀고, 좀 어둑해지면 4층 바에 가는 그런 상상을 하며 만들었다. 각 층이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순환하기를 원했다. 공교롭게도 서승모가 원래 양쪽으로 계단이 있던 기존 건물에 중앙 계단을 계획했는데, 실은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손실이 많은 구조였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 와서 보면 훌륭한 선택이었다. 중앙 계단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층을 자유롭게 오르내리며 공간을 누리고 있다.

 

 

©Jang Sooin

©Jang Sooin

 

박: LCDC에서 건축은 그간 성수동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인더스트리얼한, 기존 공간의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극대화하는 어법을 따르고 있지 않다. 오히려 동네 분위기와 대비된 새로운 공간으로의 진입을 느끼게 한다. 건축은 LCDC에서 어떤 물리적 틀을 제공하고 있는가?

서승모(서): 건축에서는 크게 세 가지에 집중했다. 박제와 틈, 그리고 마당이다. 박제는 ‘기존 건물의 질서를 어떻게 남겨놓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기존의 창들 중 필요 없는 부분들은 창의 모양은 남기되 내부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해 막았다. 창이 필요한 부분은 기존 질서에서 어긋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다양한 기능을 하는 틈을 고안했다. 예를 들어 1층 출입구를 2층까지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내고 유리를 설치해 양쪽 내부 공간과 2층의 테넌트까지 원근감 있게 보이도록 한 것이다. 또 다른 입구 역시 기존 건물과 신축 건물 사이의 틈이다. 중정을 둘러싼 벽으로부터 생성되는 틈들도 있다. 신축 건물이 중정의 ㅁ자 벽을 기둥 없이 들고 있는데, 기존 건물 옆으로 붙어서 구조적으로 안정화시킨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 건물과 벽 사이에 틈이 발생하는데, 어떤 부분은 계단실이 되고, 어떤 부분은 2층에 채광을 가능하게 하고, 어떤 부분은 3층의 테라스, 4층의 조경 공간이 되는 식이다. 마당은 기존 건물과 신축 건물, 그리고 작은 공간들을 연결해주고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요지의 공간이다. 이 중정을 형성하는 벽이 2~3층에 걸쳐 있다 보니, 1층에서는 3, 4 연동 창 등을 사용해 마당의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설비시설들도 충분히 갖춰 다양한 활동들을 수용할 수 있게끔 했다. 더불어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메가베이터’라고 부르는 엘리베이터다. 메가베이터는 헤르조그&드 뫼롱이 미국의 파크 애비뉴 아르모리를 리노베이션 하면서 선보인 개념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에서 다니던 학교의 회화동 건물에서 경험한 엘리베이터가 인상 깊게 남아있었다. 큰 회화 작품을 수용하기 위해서 깊은 비례의 공간으로 만들어졌던 것인데, 같지는 않지만 최대한 큰 스케일의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방문객들이 층간 이동을 하는 동안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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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LCDC는 밤의 풍경도 인상적이다. 감도 높은 공간을 위해 공간에서의 빛과 음향은 어떻게 설계했나?

정: 성수동 중에서도 현재 LCDC가 있는 곳은 개발이 안 된 지역이었다. 이 길에 어느 정도 밝기가 필요했다. 외부 조명은 전체 시퀀스로부터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심플하게 디자인했다. 내부에서는 무빙 라이트라든지 프로젝션 조명을 활용해서 적극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지만, 예산 문제로 미뤄졌다. 조명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전반적으로는 건축의 표현을 잘 지원하고, 그 결 안에서 낮과 밤에 서로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건축의 언어를 다양하게 하는 데 일조하도록 계획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가들과 조명 디자이너들이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각각의 전문 분야의 질이 좋아야 전체적인 완성도도 높아진다. 그런 부분을 장기적으로 육성한다는 생각으로 투자해야 한다. 왜 같이 일해야 하고, 왜 투자가 되어야 하는지 클라이언트에게 하나하나 설득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클라이언트 역시 적극적으로 투자를 통해 그 이상의 가치를 경험해보는 게 필요하다.

서: 조명에 관해 첨언을 하자면, 건축의 입장에서 좋았던 점은 조명이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의 요소들을 표현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밤이 되면 조명이 벽을 월워싱하면서 질감이 센 벽을 하이라이팅 해주거나, 계단의 핸드레일을 따라 빛이 들어오면서 정보를 주는 역할을 하거나, 기존 건물의 박제된 면들의 질감을 살려주고 있다.

 

박: 그간 각자 쌓아온 작업 목록, 태도 안에서 이번 LCDC가 가지는 의미를 듣고 싶다. 또한 도시 안에서 복합 문화 공간이 갖는 공공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들려 달라.

정: 2014년 김재원과 함께 카페 자그마치를 만들었을 때 성수동은 낙후되어 있지만 가능성이 큰 동네였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재미있는 일들을 서로 만들어내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이런 공간을 통한 공적인 측면의 기여라고 본다. 조명 분야도 마찬가지다. 빛의 도시라고 불리는 프랑스 리옹 시에서는 건물주에게 조명 비용의 70%까지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 아름다운 건물이 결국 도시에 기여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건물에 조명을 설치했을 때 치안 면에서 도움이 된다든지, 동네 분위기를 바꿀 수 있거나 야간 활동이 늘어날 수 있거나 관광산업에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에 따라 지원해주는 것이다. 거기서 공공성이 발생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시끄러운 조명이 아니라 거리 안에서 남을 배려하는 태도로 자신의 건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 좋은 것을 만들면 공공의 가치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배려가 품격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LCDC 역시 지역 사람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란다.

김: 맞는 말이다. 최근 동네 일화가 있다. 얼마전 성수동의 연무장길에 빨간 구두 모양의 가로등이 쭉 들어섰다. 연무장길이 수제화 거리라는 이유로 그런 가로등을 만든 것이다. 그것에 충격받아 SNS에 올렸는데,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 거기서 더욱 충격을 받았다. 꽤 많은 예산을 들여 제작하고 설치했을 텐데 말이다. 사실 그런 구두 모양의 가로등이 동네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LCDC 같은 공간이 동네의 이정표가 될 수 있고, 동네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윤에 상관없이 공익에 기여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성과 사업성은 같이 갈 수 있다. 사람들이 자그마치를 보기 위해 성수동을 오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바로 옆에 대림창고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림창고가 생기고 더 잘 됐다. 동네에 활기를 주고 경제도 활성화시키는 비즈니스는 결국 공공성을 갖게 된다.

서: 도시와 건축의 입장에서 공공성을 담보하는 공간을 말한다면 도서관, 미술관, 체육시설 등이 있을 것이다. 이것들이 전통적으로 말하는 공공건축이라 한다면, 아마 지금 시대에는 복합 상업 공간이 공공건축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물자를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비일상적 경험을 제공하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소통하게 하는 공간으로서 공공성을 갖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의 카페가 상행위만 하는 곳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공간이다. 비교하자면 한국의 카페는 그런 측면에서 조금은 변질되어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한국적인 성향이 반영된 공공건축일 수 있다. 그간 사무소효자동에서 주로 작업한 유형은 주거 공간이었다. 주거가 일상을 위한 배경이라면, 복합 상업 공간은 비일상을 위한 배경인 것 같다. 배경을 만든다는 점에서 그간 우리가 했던 태도와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비일상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평소 먹던 밥이 아니라 파스타가 있을 수 있고, 빵이 있을 수 있고, 사고 싶었던 물건이 있을 수 있다. LCDC는 그런 것들의 배경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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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정강화, 서승모
김재원은 디자인 기획 컴퍼니 아뜰리에 에크리튜 대표다. 자그마치, 오르에르를 거쳐 문구점 포인트오브뷰와 과자가게 오드 투 스윗을 만들었다. 자체 브랜드 운영은 물론, 지금은 다양한 외부 프로젝트의 아트디렉션도 담당하고 있다. 런던 세인마틴 텍스타일 디자인 전공을 거쳐 건국대학교 리빙디자인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건국대학교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정강화는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에 재직하면서 디자인 기획 컴퍼니 아뜰리에 에크리튜 자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물과 공간,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으며, 대학원 과정에 디자인 기획 전공과 공간경험 디자인 전공을 개설하여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아뜰리에 에크리튜 내부에 워크숍 공방을 설치하고 다양한 공간 디테일과 물성, 조형에 관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서승모는 1971년 교토 출생으로, 경원대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예술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미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2년간 동 대학교 비상근 강사였으며, 2004년 서울에서 독립했다. 이후 2010년 사무소명을 사무소효자동으로 개칭하고, 주거, 호텔, 업무시설 등 다방면으로 설계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는 SJ 한옥리노베이션, 현대카드 바이닐 앤 플라스틱 파사드 리노베이션, 띠어리 파사드 리노베이션 , LCDC 서울, 안국빌딩 리노베이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