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지붕 아래 자세를 낮추고: 개 / 인간

EKAR 아키텍츠

사진
룽킷 차론와트
자료제공
EKAR 아키텍츠
진행
한가람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2022년 11월호 (통권 660호)


지붕 아래 자세를 낮추고


에카팝 두앙캐우 EKAR 아키텍츠 대표 × 한가람 기자


한가람(한): 태국에 위치한 이 건물에는 사람을 위한 주거 공간과 개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섞여 있다. 건축주는 이곳을 누가, 어떻게 쓰길 원했고, 무엇을 중요하게 요구했나?

에카팝 두앙캐우(두앙캐우): 원래 부지는 아무 건물도 없는 공터였다. 건축주는 자신이 키우는 그레이트 피레니즈들이 잔디밭에서 뛰어놀게 하고자 이 땅을 매입했다. 이후 방콕에서 고향으로 이주해 반려견들과 함께하는 은퇴 생활을 계획했다. 그 계획은 자신과 개들이 거주하는 공간, 동시에 다른 애견인과 강아지를 위한 애견 서비스 시설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설계를 맡기던 날, 그는 완벽한 집보다 그저 반려견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강조했다.

 

한: 약 1,500m2 부지에 건물을 용도 및 사용자 별로 나눠 배치했다. 공적-사적, 개-인간과 같은 서로 다른 특성이 공간구성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설명해 달라. 

두앙캐우: 도면에서 나타나듯 대지의 3분의 2는 호텔, 살롱, 정원, 수영장을 포함한 애견 시설들이 차지한다. 리셉션 공간은 도로변에 있는 본관에 자리하며 이곳을 방문한 애견인과 강아지들이 서로 만나는 장소다. 애견 호텔과 살롱은 도로 반대편에 있는 운하 근처에 별동으로 배치하여 주변 이웃에 끼치는 소음을 줄였다. 건축주의 집은 본관에 있으나 중앙 정원을 두어 공적 공간과 거리가 있어 조용한 개인 공간이 조성된다. 대지 가장자리에 위치한 집은 전체 부지를 훑을 수 있는 위치다. 그 덕에 건축주는 강아지가 어디에 있든 늘 시야에 들어오는 곳에서 사생활을 즐긴다.

 

 

한: 조감사진을 보면 건축 규모와 지붕 형태 등이 주변 건물과 비슷하게 어우러진 모습이다. 설계에 앞서 나콘 파톰(Nakhon Pathom) 지역의 건축 특성을 조사했다고 들었다.

두앙캐우: 우리는 설계 시에 인간과 인간, 인간과 개뿐만 아니라 건축과 주변 환경에 대해서도 최대한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싶었다. 주변 환경을 존중하는 방법으로 지역 역사를 연구했다. 나콘 파톰은 토양이 비옥하고 강우량이 풍부하며 운하가 발달했다. 따라서 쌀뿐만 아니라 돼지와 닭을 길러 다른 지방에 수출하는 농장이 많았다고 한다. 주변 가축 시설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각종 동물의 스케일에 맞춰 지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닭과 돼지 축사의 낮은 지붕도 작은 동물 몸집에 맞춘 결과이다. 또한 건물 자체가 작은 이유도 현지인이 시공할 때 기술이 비교적 쉽고 공사비도 현저히 줄어서다. 우리는 이러한 건물 유형들에 주목했다.

 

한: 콘텍스트에 대한 조사 대상은 물리적 환경에 그치지 않고 추상적 관계로 이어졌다. 개와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연구했고 그 결과 어떤 요소를 건축 언어로 발전시켰나? 

두앙캐우: 우리에게 콘텍스트란 주변 환경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관계도 포함한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개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살펴봤다. 개는 주인이 있을 때 기뻐하고 주인이 가까이 갈수록 더 큰 사랑을 느낀다. 다시 말해, 개가 주인과의 거리감을 지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개와 인간 사이의 거리감을 줄이고자 건축물에서 ‘스케일’을 조정했다.

 

한: 위와 같은 분석을 핵심으로 적용한 부분이 지붕이다. 사람만큼이나 강아지도 지붕, 벽 등으로 둘러싸인 장소에서 받는 위요감이 중요한데, 주변 축사의 지붕과 이용자 스케일을 재해석해 두 존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공간을 구현한 점이 인상 깊다. 이곳에서 지붕은 어떤 역할을 하나?

두앙캐우: 지역 건물의 지붕 형태를 기본으로 하지만, 경사를 조절해 이용자의 경계를 살며시 구분하려 했다. 지붕 아래에 인간이 걷거나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개의 영역에서는 천장고가 낮아져 인간이 자연스럽게 자세를 낮춰 개와 더 가까워진다. 낯선 사이일지라도 거리를 좁히면 서로가 믿음을 주고받기 쉽다. 그리하여 좌석 및 지붕의 높이는 주인이 개와 동등한 높이에서 개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설정했다. 앉아 있는 인간과 풀밭 경사 꼭대기에 있는 개의 시선이 맞닿음으로써 거리감이 줄어든다. 땅에 닿을 듯이 낮은 지붕은 인간과 개 사이의 공간을 규정하는 기능을 넘어 외부로부터 사생활을 보호하기도 한다. 재료는 지붕이 방문자에게 가깝게 기울어진 형태를 고려했다. 주로 쓰이는 철 시트 대신 아스팔트 타일을 택했는데 아스팔트 타일이 철 시트에 비해 촉감이 좋아서다. 지붕의 중간 부분에는 투명한 재료를 사용하고 개구부를 두어 자연광을 마당에 들이기도 했다.

 

 

 

 

한: 이외에도 기둥이나 수영장 등에서 강아지를 배려한 설계가 돋보인다. 강아지의 어떠한 습성을 고려하고 반영한 결과인가?

두앙캐우: 보통 강아지는 벽, 바퀴, 기둥 등에 소변을 본다. 노출콘크리트 기둥은 개들이 소변을 보도록 의도적으로 계획했다. 기둥 말단을 둥그렇게 처리했고 이 모양은 세척에도 유용하다. 강아지들의 기둥 사용을 막지 않는 한 이곳은 전적으로 개들이 소유한 공간이 될 것이다. 정원은 좁은 산책길이 있고 강아지의 후각 활동을 자극하여 스트레스를 완화한다. 수영장 계단은 강아지에게 적합한 길이와 높이로 설계했다. 수영장을 포함한 모든 바닥은 거친 표면의 재료로 마감했는데 매끈한 바닥이 강아지의 뼈와 근육에 무리를 주기 때문이다.

 

한: 강아지 외에 다른 생명체도 고려했는데 이와 소통하기 위한 건축적 장치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두앙캐우: 다른 생명이란 집 안에서 뛰어다니는 개뿐만 아니라 나무와 꽃, 그리고 나무 위에 서식하는 새, 꽃에 모여드는 곤충 등을 의미한다. 우리는 일부러 지붕에 직사각형 개구부를 내고 홈통을 없애기도 했다. 나무는 지붕을 벗어나 하늘로 뻗어 자연광을 직접 받는다. 빗물은 지붕을 타고 정원으로 떨어져 식물에 물을 공급한다. 이렇듯 여러 생명체는 건물 안에 있지만 자연환경에 있듯 자라난다.

 

 

 

한: 그동안 당신은 사무실 소개에서 볼 수 있듯 ‘세세한 조사’를 통해 ‘구체적 맥락’에 인간의 삶을 공들여 만들어왔다. 그중 이번 작업은 인간뿐만 아닌 여러 생명체의 삶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세계적으로 반려동물, 반려식물과 사는 인구가 늘어난 만큼 이 프로젝트가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가?

두앙캐우: 사람들은 강아지와 쉽게 관계를 맺고 정서를 교류하지만, 나무가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사람들이 이 건축을 보고 체험하며 우리의 의도를 느끼면 좋겠다. 물리적 건축 요소나 디테일을 넘어 그들이 읽어냈으면 하는 바는 이웃이든 강아지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에카팝 두앙캐우
에카팝 두앙캐우는 태국 방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축가다. 그는 2015년에 EKAR 아키텍츠를 설립했다. 대표작으로는 개 / 인간(2022), 산책 / 집(2020) 등이 있고, 산책 / 집 프로젝트는 시카고 아테네움이 수여하는 2022 국제건축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