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2023년 1월호 (통권 662호)
바다와 언덕 사이, 변두리 건축은
니시지마 코스케 인리스튜디오 대표 × 윤예림 기자
니시지마 코스케(니시지마): 꽝빈성은
베트남해와 안남산맥 사이에 끼어 있어 기후가 혹독한 지방이다. 여름에는 산맥에서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겨울에는 바다에서 차갑고 습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곳에는 건축이랄
것이 거의 없다. 프로젝트는 꽝빈성에서 티타늄 원자재를 채굴하고 수출하는 공장의 행정 업무용 건물이다. 사업이 확장되며 새 공장을 짓게 되자 공장주는 편한 근무 및 주거 환경을 제공하면서 공장의 상징이 될 만한
건물의 설계를 요청했다. 공장의 전체 대지는 약 4.8ha인데, 그중 절반은 녹지로 지정되어 있었다. 프로젝트는 이 큰 녹지 벨트의
모서리에 위치한다. 건물 발코니에 서면 푸른 바다와 열대나무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윤: ‘만화경’이라는 이름은
그러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자 함인가.
니시지마: 열대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들은 험한 기후에 대한
대응으로 자연과의 연결을 포기한다. 꽝빈성의 가옥 대부분도 기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유리가
아닌 목재 창문 패널을 이용하고 있다. 자연환경을 즐기기보다 차라리 어두움에 거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한편 도심에서는 많은 오피스 건물이 서구의 방식에 의문을 품지 않고 입면 전체에 유리를 사용했다가 결국 일년
내내 블라인드를 내리고 생활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이름에는 이러한 건물들의 대안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겼다. 만화경은 주변 풍경과 환경을 바라보는 관측창이다. 각
면에서 바라본 풍경은 지구의 자전에서 동력을 공급받아 때와 날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윤: 무엇보다 지붕의 존재감이 크다.
베트남 모자 ‘농라(non la )’를 형상화한
것으로, 환기와 단열 등의 기능과도 관련이 있다고 들었다.
니시지마: 열대기후에서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좋은
그늘과 환기다. 농라는 베트남의 오랜 지혜에서 탄생한 기술적 산물로,
이 단순한 모자의 원칙은 건축에도 적용된다. 원뿔 모양 지붕의 기하학은 내외부 조건에 맞춰
구체적인 모습을 완성해나갔다. 여섯 개 호로 구성된 지붕 둘레는 건물에 낮은 처마를 드리우는 동시에, 높게 솟은 원호의 양단마다 바깥으로 열려 사이의 풍경을 제공한다. 지붕
단면은 주변 언덕과 어울리도록 한 가파른 경사의 상부 레이어와 내부 천장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계산된 하부 레이어로 구성된다. 내부 평면은 지붕 둘레와 수직을 이루는 벽을 세워 일곱 개의 삼각형 볼륨으로 분절했다. 지붕에 보이는 일곱 구멍은 일곱 개의 볼륨이 가지는 기능적인 옥상이다. 각각의
옥상은 설비 시스템을 둘 평평한 테라스와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 흙을 담아 단열재 역할을 하는 커다란
화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윤: 기후가 지붕의 형태로, 지붕이
평면의 구성으로 가는 길잡이가 된 듯하다. 한편 슬래브와 계단의 부드러운 곡선과 양감은 기하학적 이미지의
평면과는 또 다른 심상을 준다.
니시지마: 도심에 비해 농촌의 건물은 내외부의 경계선이 희미하고 주거와
일이 연속성을 띠고 있다. 만화경 역시 농촌의 유연한 삶의 방식을 반영해 내부-외부의 공간이나 주거-일 기능의 구분을 하지 않았다. 큰 지붕은 모든 활동을 포괄할 수 있는 장이 되어주고, 일곱 개
삼각형 볼륨은 공간이나 기능을 구분하지는 않아도 공과 사를 구별해주며 각종 활동을 최소한의 의미로 수용하는 장소가 되어준다. 슬래브와 계단은 이러한 기능적 역할에서 한발 물러서서, 새로운 평면을
추가하고 변화를 주는 요소다. 묵직한 덩어리의 완곡한 모서리는 인위적인 공간과 자연 사이의 경계선을
흐린다.
윤: 1층 필로티 공간의 쓰임이 궁금하다. 주변의 풍부한 녹지에도 불구하고, 건물 내의 외부 공간이 내부 공간 못지않게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
니시지마: 건물에는 용도가 지정된 공간과 지정되지 않은 공간이 있는데, 후자가 건물의 풍성함을 결정한다. 필로티의 목적은 첫째로 건물을
지면에서 띄워 흙의 수분으로부터 보호하고 좋은 경관을 확보하는 것, 둘째로 강우량이 높은 지역에 필수적인
자동차와 전기 카트의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건축주가 이곳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바닷바람을 쐬며 커피를 마시고, 파티를 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물 안의 외부 공간은 예상치 못한 활동, 즉 설계 요구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지만 실제
생활에는 필요한 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다. 이는 주변의 녹지로 대체될 수 없다.
윤: 입면의 블록은 베트남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환기 블록보다 두
배 이상 크게 제작됐다. 때문에 건물은 마치 단층 건물처럼 인식되었다가, 사람이나 가구와 함께 봤을 때 비로소 스케일을 실감하게 된다.
니시지마: 일반적인 환기 블록 구멍의 높이는 20cm 정도지만 이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블록의 높이는 50cm 정도다. 도시에 적합한 기존 블록과 달리 자연적인 맥락을 고려한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도시적 맥락에서 ‘집이란 거주하기 위한 기계’라고
했다면, 자연 속의 이 프로젝트는 ‘거주하기 위한 오브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위적인 스케일 요소들이 없는 자연 풍경은
종종 스케일의 착시를 일으킨다.
윤: 설계부터 시공까지 장장 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었는가? 긴 시간이었던
만큼 그간에 얻은 개념이나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니시지마: 한번에 두세 달씩 지속되는 태풍 때문에 시공이 전면 중단되기 일쑤였다. 시공업체의 경험 부족으로 수많은 가설물이 들어섰다가 철거되기를 반복한 것도 한몫했다. 5년의 기간은 도시 밖의 ‘변두리 건축’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도시 밖의 건축은 건축가의 욕구에 기반한 미지의 어휘들을 발굴하는 데에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정한 변두리 건축은 토속 문화의 성장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만화경은 지역 특색을 표면적으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현지인에게 일할 기회와 경험의 체득, 그리고 지역사회의 긍지로 이어지는 성취감과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윤: 일본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호치민에서 실무를 시작했고 5년 후 인리스튜디오를 개소해 정착했다. 만화경은 독립 후 처음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완성한 건축 프로젝트다. 이 시점에서 ‘일본인이 이끄는 호치민 기반의 건축사사무소’의 정체성과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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