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2023년 2월호 (통권 663호)
출입구가 있는 남측 가장 낮은 도로에서부터 10m가량 높아지는 서측 도로, 북측 나대지를 따라 걸으면서 담 안쪽으로 독특하고 섬세하게 마감된 색색의 벽돌 구조물을 감상한다. 대지 중앙부에 주택이 들어앉고, 그 주변으로 마당들이 필요보다 길게 뻗어난 벽돌벽으로 구획되어 대지 사방으로 전개됐다. 주변의 여느 단독주택들이 넓은 마당과 한 켠에 놓인 건축물로 구성된 것과 확연히 차별된다. 언뜻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브릭 컨트리 하우스(1923, 미완공)를 연상케 한다.
약간 가파른 계단을 올라 대문이 아닌 벽체 개구부를 지나면 곧바로 주택 현관이 있는, 붉은 벽돌로 높게 둘러싸여 고립된 작은 마당(입구마당)에 들어선다. 도로를 따라 인지됐던 건축물 전체의 인상은 잠시 사라진다. 좁게 의도된 현관과 복도를 지나면 1층 중심 공간인 다이닝룸과 남동측 남한강 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두 번째 마당(메인마당)을 마주한다. 도로로부터 꽤 높아진 마당 끝에 서면 멀리 남한강과 겹겹이 원경의 산들을 볼 수 있다. 뒤돌아서면 층층이 두 겹의 또 다른 벽돌담이 둘러싼다. 세 번째 마당은 다이닝룸 끝에 붙은 피트니스룸에서 폴딩도어로 연계된 운동마당이다. 주택 2층 외벽에서 연속된 벽돌담, 인접한 시선이 차단된 높은 법면 화단으로 둘러싸여 있어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고 깊이감을 가진다. 주방 뒤편 가장 높은 벽돌담을 두른 네 번째 마당(뒷마당)은 서비스 공간으로서 차량이 직접 드나들도록 계획됐다. 2층으로 난 계단참에서는 두 개의 마당을 만난다. 북측 높은 대지와 주택 사이의 좁고 높고 길쭉한, 내부 실과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 다섯 번째 마당(시크릿마당), 그리고 불과 몇 계단을 지나서 잔디, 활엽수 조경, 가장 독특하게 쌓인 적벽돌 담장을 가진 여섯 번째 마당(놀이마당)이다. 마지막으로 침실 공간과 서재 앞에 다다르면 테라스가 화려한 벽돌벽을 배경으로 길게 굽어 있다. 건축가는 재료, 깊이와 넓이, 내부 공간과의 연관성, 대지와 경계가 되는 담, 이 네 가지 수단을 섬세하게 조정하여 각 외부 공간의 고유성을 확보해냈다.
다양한 일곱 개 외부 공간과 달리 1~2층의 두 지붕면은 각각 수평선으로 가지런하다. 마당마다 다른 의도로 확장한 벽들의 상단 높이는 모두 이 두 수평면에 수렴한다. 지붕 선의 단순함은 외관상으로 다소 산만해 보일 수도 있는 다양한 외부 공간을 하나로 통합한다. 아울러 이 특성은 내부 공간에 대한 기획 의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부엌과 게스트룸 영역을 제외하고 각 층 모든 실의 천장은 동일한 높이에 백색 도장으로 마감됐다. 각 방의 출입문도 상인방 없이 천장까지 높게 처리했다. 개별화된 외부 공간과 다르게 주택 내부는 층별로 하나의 공간이고자 하는 의도가 역력하다.
칸막이벽, 방문, 다소 화려한 고정 가구들을 생략한 채 내부 공간을 상상하고 싶어진다. 마치 하나의 전시관처럼 상상하면, 드디어 외부 일곱 개 영역과 대지 경계 너머 남한강까지 한꺼번에 인지하게 된다. 2층의 넓고 높은 서재는 이러한 원심적 공간감이 현실화하여 나타난다. 거주자들은 오랫동안 살아가면서 쌓이고 쌓이는 단편들을 통해 ‘세상의 중심’으로 그들만의 집을 인지해낼 것이라 기대한다.
이 주택은 다섯 레벨을 갖는 일곱 개 외부 공간과 네 레벨의 여섯 개 내부 공간으로 구성된다. 1층에 입구마당, 메인마당, 운동마당, 뒷마당, 계단참에 시크릿마당, 놀이마당, 2층에 테라스까지가 일곱 개 외부 공간이다. 이에 더해 1층에 게스트룸, 현관, 주방, 다이닝룸, 피트니스룸 2층에 침실, 서재를 여섯 개 내부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건축가는 712m2의 전체 대지와 283m2의 모든 바닥을 구석구석 세분해 각각을 하나하나의 프로젝트처럼 밀도 있게 사고했다. 외부 공간 전체는 마치 건물 내부 평면을 계획하듯 누락된 부분 없이 꼼꼼히 구획됐다. 건축가는 각각의 외부 공간을 루이스 칸이 얘기하는 ‘방(room)’처럼 취급해 의도가 부여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다. 마당을 단순히 주택 오브제의 배경으로 여기지 않았다. 단면처럼 역전된 포치(porch) 돔이 나열된 이슬람 모스크의 중정을 떠오르게 한다. 내외부가 역전된 양상이다. 거주자들의 추억이 쌓여갈 기억저장소는 내부보다 외부 공간에 디자인됐다.
특히 각 외부 마당을 위요하는 벽돌담은 세세한 디테일 처리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치밀하고 치열하다. 다른 벽돌이 만나는 코너, 이종의 쌓기 방식이 만나는 코너, 굽은 벽면의 조적 방식 처리가 매우 논리적으로 착안됐다. 수직 줄눈 없이 수평 줄눈만으로 마무리된 조적벽은 확장 벽면의 곡면성과 수평성을 더욱 강조한다.
개인적으로는 의도가 미치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아쉬움을 느낀다. 나는 어릴 적 살던 집과 동네를 아직도 생각한다. 사진으로 남아 있거나 머릿속으로 명확하게 기억되는 공간보다 들어가보지 못한 곳, 올라가보지 못한 곳, 마당 깊은 구석, 못 가본 골목들, 틀림없이 그곳에 있었지만 기억이 흐릿한 곳곳이 그립다. ‘미지의 세상이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그때 그곳을 계속 추억하게 한다.
개체로서의 고유성은 건축을 하게끔 하는 결정적 동인이다. 특히 단독주택은 더욱 그러하다. 이 주택의 경우 내외부의 역전된 공간 개념에서 그 고유함이 발현한다. 그 최소 의도는 건축가로부터 비롯했을 거라 판단된다. 초기 스터디 모델들에서 볼 수 있듯 처음부터 마당의 분화와 그 수단으로 다양한 재료의 확장 벽들이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중간 소통 과정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끝까지 관철됐다. 이 소통 과정에서 관례적인 합의 상태로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다. 그래서 많은 건축물이 우리 주변에 비슷비슷하게 채워진다. 이 집의 건축주는 그러한 단독주택이라면 “차라리 도심 아파트에 살지” 라고 했을 듯하다. 건축가에 대한 건축주의 신뢰에서 고유한 개체는 탄생한다. (글 임도균 / 진행 한가람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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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휘(한양대학교), 소나건축사사무소(권순주)
김현수, 이현우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단독주택
712㎡
141㎡
283㎡
지상 2층, 지하 1층
2대
7.7m
16.76%
39.81%
철근콘크리트조
콘크리트벽돌
원목마루, 수성페인트, 석재타일, 폴리카보네이트
(주)제이더블유 구조안전 기술사사무소
엠케이청효주식회사
티앤아이건설 주식회사
2020. 12. ~ 2021. 10.
2021. 11. ~ 2022. 9.
이세환
모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