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9월호 (통권 670호)
건축주는 기능이 집약된 오랜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자연과 가까운 집을 짓고자 했다. 가족이 요구한 집은 40평 남짓한 규모로 기존 아파트의 크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로젝트는 200평이 넘는 땅 크기에 비해 작은 집이 주변 자연과 어떻게 균형 있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화조풍월’은 집 안팎으로 변화하는 자연을 담아내기 위해 다각적인 시도를 한 결과다. 집과 자연이 맞닿는 접점을 넓히기 위해 외부 공간 또한 집의 방과 같은 개념으로 인식했고, 전체 대지는 매스 배치가 아닌 평단면 계획을 통해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넓은 땅에서 집과 자연이 최대한으로 만날 수 있도록 낮게 펼쳐진 단층으로 계획했다. 넓은 대지의 중심에는 큰 지붕을 계획하고 가족을 위한 공간을 두었는데, 그 지붕을 중심으로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고려해 내외부의 공간을 확장했다. 빛과 그림자, 소리, 계절, 시간 등의 비물리적인 요소들을 공간의 단면적 형상, 공간과 공간 사이의 틈, 공간을 감싸는 재료의 물성 등을 통해 공간의 분위기로 만들고, 자연의 변화를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자연을 담아내는 방식
대지의 전면은 큰 도로변의 차량 소음과 정리되지 않은 나대지에 인접한다. 혼잡한 인접 조건과 달리 도로보다 높은 위치의 땅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먼 풍경이 아름답다. 어지러운 주변 환경과 거리를 두고, 먼 풍경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바깥 정원은 시선을 조율할 수 있는 경계를 가진 외부 공간으로 계획했다. 바깥 정원을 둘러싸는 담장은 건축물과 연결된 벽이다. 이 벽은 시각적인 경계를 만들지만 하부가 열린 떠 있는 구조로 외부 마당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다. 육중한 콘크리트를 띄우기 위해 안쪽 벽은 물결치는 형태가 됐는데, 이는 바깥 정원의 조경을 에워싸며 위요감을 만든다. 바깥 정원의 벽은 하단과 상단에 틈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틈으로 만들어진 각 영역마다 자연을 구분해 들이고자 했다. 땅과 띄워진 틈 사이의 낮은 영역에는 초화류 등을 식재해 계절과 시간에 따라 바깥 정원과 외부 마당의 경계가 바뀔 수 있도록 계획했다. 녹음이 짙은 봄, 여름철에는 초화류가 틈을 넘어 자라나 정원과 마당의 경계가 사라지고, 가을, 겨울에는 낮게 드리우는 빛으로 생기는 그림자의 음영이 정원과 마당의 경계를 만든다. 파동 치는 벽을 배경으로 하는 중간 영역에는 잎이 무성한 여름에는 바람과 빛에 잘 반응하고, 겨울에는 벽을 배경으로 드러나는 줄기의 미감을 고려해 식재를 계획했다. 정원의 가장 높은 영역에는 띄워진 벽을 잡는 구조체와 캐노피 형식의 지붕, 그리고 벽이 만들어낸 틈이 있다. 이 틈은 먼 산의 풍경을 바깥 정원으로 들여온다. 산자락 끝에서 시작해 맞은편 먼 풍경의 산으로 흐르듯 연결되는 산세를 지붕의 높낮이를 조금씩 다르게 해 자연스럽게 이어주었다. 서로 다른 높이와 깊이로 중첩되는 지붕은 주변 산세와 새롭게 어우러져 집안으로 먼 산을 들여온다. 숲과 가장 가까운 산자락 끝에 계절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반외부 성격의 별채를 계획했고, 작은 안마당을 두어 본채와 연계했다. 별채와 본채 사이의 안마당은 자연과 가장 가까운 외부 공간으로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식재와 우드 칩을 활용해 원래의 자연은 시각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안마당은 후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깊숙하고 사적인 안마당을 따라서는 가족들의 온전한 휴식을 위한 명상실과 자쿠지, 침실 등이 위치한다.
감각적 기억의 장치
화조풍월은 넓은 대지의 중심에 가족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이 자리하면서 시작된다. 기존의 집과 같은 거실, 식당이라는 기능의 제안이 아닌 세대를 이어서 가족을 연결하는, 다른 집에는 없는 우리 집만의 공간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크게 비워진 공간은 가족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아이들이 공부도 하는 등 무엇으로든 채워질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기능을 담기보다 기억의 장치로서 공간에 흐르는 분위기를 계획하고자 반원형의 큰 천장을 제안했다. 거대한 천장은 최소한의 구조로 지지하고 내부를 비워내 창을 열면 안팎의 자연과 연결되는 ‘루(樓)’가 된다. 천장의 마감은 내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설정하기 위해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노출 콘크리트로 계획했다. 노출콘크리트의 거친 마감은 해와 달을 보며 살고 싶다는 건축주에게 달의 표면을 연상하게 하는 은유와 감각의 장치다. 떠 있는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붕의 네 면이 벽과 만나는 경계에 틈을 만들었다. 벽과 지붕 사이의 틈은 집 안에서 하늘을 볼 수 있는 장치인 동시에 틈으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상징적 지붕 아래 무색, 무취의 비워진 명상적 공간은 가족들에게 온전한 휴식과 특별한 기억의 경험을 공유하게 해줄 것이다.
배경으로서의 재료와 재료의 감각
화조풍월은 원래의 자연과 만들어진 자연(바깥 정원, 안마당)이 주인공인 집이다. 자연을 담아내기 위해 최소한의 기능을 위한 공간으로 구획하고 크게 비워냈다. 크게 비워진 공간은 새소리와 꽃과 나무, 바람의 움직임으로 시시각각 다르게 채워진다. 내외부로 크게 비워진 공간을 에워싸는 물성은 노출콘크리트다. 노출콘크리트는 합판 거푸집, 각재 심기, 표면 갈기, 표면 쪼기(치핑)의 네 가지 다른 방식으로 구축된다. 서로 다른 질감의 노출콘크리트 표면은 각 공간의 감성과 함께 맞닿는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다. 땅과 직접 닿는 기단부는 땅의 질감이 연속된 느낌의 표면 쪼기 방식을, 사람들의 손이 가장 많이 닿는 중간 부분은 매끈한 합판 거푸집을, 정원의 중간부는 심긴 나무가 보여주는 계절의 변화와 빛의 움직임을 받아들이기 위해 다소 거친 질감이 균질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표면 갈기를 적용했다. 빛을 제일 많이 받아들이는 건축물의 상부는 각재 심기 후 탈거해 거친 세로 줄무늬의 질감을 주었다. 상부는 하루 동안 빛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부분으로 시간에 따라 다른 방향과 깊이의 그림자를 드리워 집이 자연과 더 입체적으로 반응한다. 세로 방향의 거친 질감은 주변 나무의 질감과 중첩되어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주변 풍경과 동화된다. 자연과 가장 가까운 별채는 목재를 사용해 천연 나무의 본래 색에서 빛이 닿아 점차적으로 노출콘크리트와 같은 회색으로 변하는 질감을 통해 자연스러운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고자 했다. (글 고석홍, 김미희 / 진행 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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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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