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4월호 (통권 677호)
세컨찬스라이브러리는 넘어진 청소년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건네는 도서관이다. 새로운 나, 새로운 타인, 새로운 세상에 닿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나는 공간으로 사단법인 세상을품은아이들이 운영하며, 도서문화재단씨앗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세상을품은아이들은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내면의 가치를 되찾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단체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넘어지고, 그릇된 선택 속에서 무너져버려 범죄자로 낙인 찍힌 아이들이 법원의 소년보호처분을 통해 이곳에 보내진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돌봄과 교육을 제공하고 ‘두 번째 기회를 만드는 사람(Second Chance Maker)’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의 길을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다. 우주로, 티티섬, 라이브러리 피치 등 청소년들을 위한 새로운 유형의 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해온 도서문화재단씨앗에서 이곳의 청소년들을 위해 도서관 건축을 후원하면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세상과 연결되는 공간, 도서관
포천의 북쪽 외곽에 위치한 기존의 낡은 건물을 인수하고 아이들이 생활하는 생활관과 배우는 공간인 스네일랩, 식당과 예배당 등 필요한 공간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별다른 물리적 경계 없이 사방이 자연으로 둘러싸인 캠퍼스는 에너지가 넘치는 청소년들이 지내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지만, 세상을품은아이들의 열정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담기에 내부 공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기존의 공간들은 세상과 분리를 기반으로 내부에서 교육이 이루어지지만 새로 들어서는 도서관은 아이들이 세상과 연결되는 공간으로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획됐다.
외곽에 위치한 넓은 부지를 상상하며 현장을 방문했다. 입구와 경계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어수선한 부지에서 도서관을 지을 위치를 찾았다. 산재한 건물들을 서로 연결하고 또 세상과 아이들을 연결하는 접점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장소는 부지 초입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상상과는 달리 좁고 경사진 위치였지만 경사를 활용한다면 대지의 한계를 가능성으로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보였다. 부족한 내부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도서관 고유의 기능 이외에도 수업, 공연, 외부 연계 행사 등 세상을품은아이들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아이들의 아지트이자 선생님들의 휴식 공간으로도 사용될 수 있어야 했다.
이곳에 오게 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문제 대부분이 아이들 주변의 환경과 관계들에 의한 것이었다. 주중 내내 이곳에 머물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헌신하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공간이 주는 환대를, 이를 통해 존중받는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대지의 형상을 따라 삼각형의 매스를 배치하고 두 개로 갈라진 캠퍼스의 길을 외부 공간으로 연결했다. 대지의 경사를 활용해 건물의 하부를 띄워 기존과 같이 캠퍼스 입구의 주차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들려진 도서관은 내부의 다양한 활용을 위해 하나의 공간으로 계획했다. 24시간 아이들과 함께하는 선생님들의 어려움을 고려해 교사연구실은 도서관과 분리해 독립된 공간을 마련했고, 담장으로 외부 공간의 방향성을 만들어 분산된 주변 건물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위요된 정원을 만들었다.
지면에 면한 저층부와 교사연구실은 콘크리트 구조로 단단하게 잡아주고 상부의 도서관은 중목구조로 계획했다. 삼각형의 형태와 노출된 중목구조는 아이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특별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삼각형의 형태에는 이곳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세상으로 뻗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딱딱하고 거친 외관과는 다르게 따뜻하고 보드라운 내면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외부는 차가운 돌과 콘크리트로, 내부는 목재로 디자인했다. 삼각형 형태를 따라 커다란 보 세 개와 기둥 다섯 개로 전체 공간을 만들고, 구조와 도서관의 책장을 일체화했다. 외벽을 따라 도서관의 서가를 배치하고 중앙을 비워 내부에 다양한 이야기를 채울 수 있도록 했다. 도서관은 단층의 단조로운 공간에 공간감을 주기 위해 삼각형의 중앙을 들어 올려 내부의 공간을 입체적으로 사용하도록 했으며, 주차장의 높이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단차는 내부 공간을 자연스럽게 구획한다. 북측 전경이 보이는 곳과 동측 정원이 마주하는 곳에 넓게 둔 창은 아이들의 시선을 멀리 밖으로 향하도록 한다.
목구조 접합부 철물보강 시공 사진 ©ODDs&ENDs architects
함께 만들어가는 도서관
청소년을 위한 도서관 운영에 많은 경험이 있었던 도서문화재단씨앗의 도움으로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 내부를 채웠다. 아이들이 관심 있는 주제들을 직접 선정해 서가를 구성하고 원하는 활동들로 꾸린 공간을 만들었다. 입구 바로 앞에는 이곳을 거쳐간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시하는 명예의 전당과 학생 사서들이 직접 구성하는 추천 서가가 배치된다. 들어서면 보이는 넓은 창 앞에는 빈백과 만화책을 두어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삼각형의 양 모서리에는 조용한 필사 공간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영상 콘텐츠 제작을 위한 스튜디오와 영화 감상 공간, 선생님 눈을 피해 뒹굴 수 있는 다락 공간 등 워크숍을 통해 나온 요구 사항들을 반영해 공간을 조정했다. 가장 높은 층고를 가진 삼각형의 중앙은 비우고 큰 테이블과 그 주변으로 미술 활동, 도서 제작 등에 필요한 장비들을 배치했다.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발표나 공연을 할 때는 중앙을 비우고 기존의 단차를 활용해 무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워크숍을 시작으로 콘텐츠를 준비하고 채우는 시간이 공사 기간 내내 이어졌다. 건축이라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준비하는 것 역시 중요했고 그 전 과정에 사용자가 함께한 점이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 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도움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아이들의 새로운 다짐과 노력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그 기록이 다른 아이들에게 책이 되는, 세상을품은아이들의 기억과 역사를 담을 수 있는 도서관이 되기를 바란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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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앤엔즈 건축사사무소(최혜진)
박여진, 송지호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화대리
교육연구시설(도서관)
1,891m²
327.85m²
371.75m²
지상 2층
7대
8.1m
28.75%
36.7%
철근콘크리트조, 중목구조
노출콘크리트, 천연슬레이트
자작나무합판, 석고보드 위 도장
터구조, (주)수피아건축
(주)청림설비
(주)다우티이씨
주식회사 티피에이종합건설
2022. 1. ~ 9.
2022. 10. ~ 2023. 10.
13억 원
(재)도서문화재단씨앗, (사)세상을품은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