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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울긋불긋 하얗고 울퉁불퉁 평평한 건축을 향하여 | 정이삭 +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정이삭
사진
노경 (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진행
박지윤 기자

「SPACE(공간)」 2024년 10월호 (통권 683호) 

 

‘회현천년 이웃나무’ 기념석(2020)​ Image courtesy of a.co.lab architects

 

‘회현천년 이웃나무’ 기념석(2020) Image courtesy of a.co.lab architects 

 

형상을 찾지 못한 돌덩어리의 고백

「SPACE(공간)」 662호(2023년 1월호) 한 대담에서 김장언(전 아트선재센터 관장)은 공공 미술을 ‘하나의 일’로 접근하는 한 건축가팀의 공공 미술 심의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비중 있게 언급했다. 글을 읽는 순간 그 젊은 건축가팀이 우리고, 그 사업은 ‘서울은 미술관’의 ‘회현천년 이웃나무’(2020) 프로젝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최초 계획과는 달리, 주민과 운영 대행사와 서울시와 중구의 각기 다른 욕망 가운데 누더기가 된 계획안에 만족하는 우리를 보며 의문이 섞인 감상을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당시 그의 피드백을 위로로 여겼다. 우리는 공공 미술이나 파빌리온 사업 등에 초청될 때, 대부분의 건축가팀들과 꽤나 다른 의지로 작업한다. 이 사회가 건축가에게 기대하는 공공 미술 또는 설치 작업은 대개 큰 규모의 형태적인 퍼포먼스가 강조되는 것들이고,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그것에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건축 밖에서 일반 작가로 순수 미술 전시에 초대되는 경우가 있다. ‘하나의 일로 접근한다’는 김장언의 비판은 작가병을 피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생각하면 반갑고, 작업 의지를 생각하면 섣부른 판단이다. 

우리는 좋은 생각을 펼쳐 보이는 데 있어, 많은 생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갈아엎고 짓는 것에 열중하는 건축업의 속성을 감안하면 모순된 말이지만, 이러한 기준은 우리의 모든 작업에 적용된다. ‘회현천년 이웃나무’는 관계자를 향한 연민과 함께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 뜻깊은 작업으로 남아 있다. 서울 한가운데 영구 설치되는 조형물을 만들 기회는 누구에게든 의미가 크겠지만, 우리는 사업 시작부터 그곳에 새로운 것이 적을수록 좋다고 믿었다. 제안서를 글로만 제출했고, 작가 선정 이후에 그 말의 형상을 찾는 노력과 능력이 부족했다. 무엇이든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히려 사업이 진행될수록 다양한 관계 주체들의 이기심 가운데서 우리는 그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그 난장의 상황이 진정 멋진 퍼포먼스적 결과였다. 기념석을 만드는 것은 사업 운영 대행사의 필수 이행 과제였다. 무엇인가 적혀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기념석의 소외된 상부 면에 작업 제안 시의 글 일부를 남겼다.

 

무의식의 공동체 

나는 이곳이 자연과 초자연 모두를 존중하는 원시적 인간의 태도와 감각을 환기하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최고의 조형이나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치밀한 법식과 엄격한 의례를 가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감각은 짚으로 새끼를 꼬는 손의 기술 같은 것이고, 그 태도는 평상에 고추를 말리며 기다리는 모습 같은 것이다. 우리가 자주 의식하지 못하고 중요하다고 믿지 않는 나머지의 기술과 모습들. 난 그런 사소한 것들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공동의 무의식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 정이삭이 ‘회현천년 이웃나무’ 기념석에 남긴 글​ 

 

‘레릿비’(2023) Image courtesy of a.co.lab architects 

 

‘피쉬 카트’(2023) 

 

©Hong Cheolki 

 

생산과 돌아봄, 지속과 순리의 아름▼​1 너머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왜 건축을 하느냐고 묻는다. 생산을 주저하면서도 수행하는 이유는 사적 생산이 타자와 관계의 파장을 일으키는 경험 때문이다. 사회적으론 생산의 진동과 그로 인한 관계 모두가 재앙이며 동시에 기적이다. 만일 우리의 세상이 그 어느 방향이든 진화의 노상에 닿아 있다면, 그러한 재앙의 비극과 기적의 희극도 자연의 일부다. 그 희비극의 과정이 끝나는 때, 비극적 불평도 희극적 감동도 사라지고 그곳에 또 다른 주저함과 사적 진동이 존재할 것이다.

생산과 동시에 뒤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두고 온 것들이 많다. 두고 온 것들을 주워야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헤집어 놓은 땅과 빨아먹은 물의 자리가 남긴 싱크홀에 그 버리고 온 것들을 채워 담고 싶다. 땅 위에 세워진 것들의 새로움과 진부함을, 그리고 좋고 나쁨을 따지기 이전에 무엇이건 바로 설 수 있는 단단하게 채워진 땅이 필요하다. 우리의 작업은 그 땅 속의 구멍을 메우고 다지는 일과 유사하다. 성장과 발전이 쓰고 버린 곳의 뒷정리고, 시급하고 어설펐던 산물에 대한 공감이다. 이러한 뒷정리와 공감은 지속과 순리에 대한 희망이다. 

2020년 겨울 인천 북성포구의 한 횟집을 방문했다. 한때 수도권 최대 포구 중 하나였다던 곳은 버려졌고, 생선 가판대의 찢어진 노란 장판은 녹슨 못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작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전시 기회가 생겨 그 북성포구의 생선 가판대를 새로 만드는 ‘피쉬 카트’(2023)를 작업했다. 전시장에 새로 만든 가판대 위에 남한의 최대 염전이었던 소래염전 평면도와 그곳의 일본 기술자들이 떠나며 버린 전문서적을 물고기 모형 소품과 함께 펼쳐두었다. 새롭게 고안된 생선 가판대는 전시가 끝나고 북성포구의 기존 가판대들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작년 가을 우리는 성남 구시가지의 한 공공예술 전시에 참여했다. ‘레릿비’(2023)라는 작업은 1993년 10월 광주서중학교(현 성남서중학교)에 다녔던 박성남(당시 14세)의 방을 경험하는 일이다. 1960년대 후반 서울시는 도시재개발로 인한 철거민 12만 명을 경기도 광주군(현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 일대)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성남은 그렇듯 시급하고 어설프게 이름 모를 민둥산 위에 만들어졌다. 14세의 박성남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비틀즈의 ‘Let It Be’를 녹음하고 뜻도 모른 채 들리는 대로 받아 적고 따라 부른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 노래의 뜻은 알게 되었지만, 성남의 순리는 여전히 요원하다. 현재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일대는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이 추진 중이다. 

나머지(「SPACE」 634호 참고) 건축은 지속과 순리의 힘이 있으나 부족하다. 나머지를 향한 매력도 그 자체의 동력도 적다. 그렇기에 관심도 변화도 없이 오래된 가치를 품고 있는 경우가 있다. 동시에 그 무동력 탓에 때론 무모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 힘없음이 희망이자 절망인 셈이다. 이끄는 자들은 그런 나머지를 무시하고, 수면 위로 돌출된 섬 같은 특이성의 관계를 엮어 그럴듯한 한줄기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는 수장된 나머지의 이야기를 들춰 다양한 줄기의 이야기를 상상해야 한다. 울퉁불퉁 기울어진 역사책을 평평하게도 읽어야 한다. 파르테논은 본래 한국의 오방색처럼 화려하게 채색된 것이었다. 하얗게 바랜 파르테논을 찬양하며 울긋불긋한 본질을 모른 체할 순 없다. 우리는 ‘아름 너머’를 제안한다. 울퉁불퉁한 책과 백색의 믿음을 가진 무리를 끌어안고, 울긋불긋 평평한 건축을 향하여. 

 

N작가 주택(2024) 

 

N작가 주택(2024) 

 

4년, 세 개의 실천

연희동 N작가 주택(2024)은 화가인 의뢰인 부부가 10년 동안 살던 주거와 작업실의 리모델링이다. 기존에 살던 방식의 새로운 형상을 찾는 작업이다. 실내 계단 없이 기존처럼 골목 계단으로 1층과 2층을 오가고, 안방의 기존 자개장과 이케아 천장 직부등의 사소하지만 익숙한 풍경을 유지했다. 무성의하게 덧댄 외단열을 벗겨 본래의 치장 벽돌을 드러내고, 부족한 벽돌은 산 넘어 재개발 현장에서 동일한 것을 찾아 철거 및 수거해 사용했다. 오랜 시간 여러 거주자에 의해 무리한 구조적 변형이 있었던 집이다. 기존 주택의 비정형 바닥과 벽체 안에서 정형의 3차원 그리드를 찾아 기존 구조체의 성능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했다. 몸에 닿는 기둥은 목재로, 보는 금속으로 구조를 보강하고, 기존 건물 마감 안쪽에서 솟아오른 볼륨은 옆집의 난간 높이까지 올렸다. 물받이는 노출해 지붕의 끝을 정리하고, 선홈통은 구조 축에 놓거나, 실외 구조보강을 겸하도록 했다. 가구적 요소나 사소한 장치 등이 구조의 일부이자 전체 시스템의 부분으로 정리되어 작동되길 희망했다.

시흥 있기에, 앞서(2024)는 시화공단 하수 종말처리장의 유휴 영역 일부를 재생하는 사업이다. 프로그램은 제안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곳에 무언가가 있기에 앞서, 벌어지는 다양한 행위를 위한 배경이 되길 희망했다. 하수 처리시설의 작동 원리와 기존 대지의 희미한 맥락을 찾아 최소의 경험 장치를 만들었다. 분배조와 농축조의 중심, 점검시설 데크와 설비배관 등의 축을 가이드 삼아 기존에 개별적으로 묻혀 있던 토목 구조물을 엮어 열린 시퀀스를 의도했다. 삽입되는 것은 시설이기보단 빛과 물을(로) 안내하는 최소한의 도구이길 바랐다. 폐산업 공간과 인류의 원시적 공간은 정반대의 태도와 매우 유사한 형상적 감각을 가진다. 기존의 형상을 최대로 유지하면서, 값싼 동시대의 재료와 최소의 건축적 제스처를 통해 우리 모두 안에 내재하는 무의식의 공동체를 건축적 형상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갈현동 하나에 하나를 더한 띠(2022)는 젊은 화가 부부의 주거와 작업실을 위한 신축 작업이다. 가각전제나 도로확폭 등으로 가용면적이 절대적으로 줄어든 대지 안에서 필요로 하는 실내면적과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마당을 확보해야 했다. 우리에게는 불규칙한 듯 보이는 세계 안에서 질서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두 개의 계산 가능한 선이 주어진 대지 안에서 최대의 점유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고안된 두 개의 띠는 건폐를 최대화하면서 도시와 주거 사이에 얇은 켜를 제공한다. 이러한 도시적 리미널 스페이스는 2층 주거의 진입부와 1층 작업 공간의 마당을 확보한다. 도로와의 접근성을 중요시하는 일상 건축의 언어(반지하)를 일부 적용했다. 2층 진입계단 높이를 최소로 하고, 1층 실내 층고를 최대화하기 위해 1층 실내 바닥을 지면에서 1m 낮췄다. 1층 내부는 그리드 시스템 안에서 공간의 구획과 창호, 조명, 가구의 위치 및 크기를 결정했다. ​ 

 

있기에, 앞서(2024) 

 

하나에 하나를 더한 띠(2022) 

 

하나에 하나를 더한 띠(2022)

 

1  두 팔을 둥글게 모아서 만든 둘레​

 

 

월간 「SPACE(공간)」 683호(2024년 10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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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삭
정이삭은 2013년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으며, 동양대학교 교수다. 폭넓은 건축 작업을 하며, 건축 및 현대 미술 전시에 작가나 기획자로 참여해왔다. 2016 베니스비엔날레(한국관 큐레이터 및 작가), 2016 베이징디자인위크(한국관 큐레이터), <캠프 2020>(예술감독)에 더해 ‘서울은 미술관’, ‘한강예술공원’ 등 여러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의 작업은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 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등에 전시된 바 있다. 저서로는 『더 서울, 예술이 말하는 도시미시사』(공저, 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