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6월호 (통권 691호)
시차 없는 열대 고산도시: 동티모르 아일레우
한국(북위 36도, 동경 127.7도)에서 남쪽으로 지도를 따라 내려가면 적도 부근에 위치한 동티모르(남위 9도, 동경 126도)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비슷한 경도 때문에, 아시아 유일의 남반구 국가인 동티모르와 우리나라는 시차 없이 같은 시간대를 공유한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동티모르 수도에서 남서쪽으로한 시간 떨어진 산간 도시 아일레우에서 2017년부터 지역 어린이를 돌보고, 청소년 교육을 이어왔다. 이곳에 파견된 수녀님들에게 성당을 포함한 수녀원과 여학생 기숙사의 설계를 의뢰받아,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빛과 바람과 나무 사이 수녀원: 습할 때나 더울 때나 쾌적한 공간
북반구의 도시환경에 익숙한 우리에게 가장 낯설었던 것은 그곳의 기후였다. 열대기후대에 속한 동티모르는, 12월부터 4월까지의 우기와 5월부터 11월까지의 건기가 이어지는 고온다습한 기후를 보인다. 이에 더해, 아일레우는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로 동티모르의 해안도시보다 평균기온이 낮다. 따라서, 우기에는 더위보다 높은 습도가 가장 주요한 고려사항이며 건기에는 열대의 강한 햇빛에 대처해야 한다. 아직 전기나 수도 인프라가 안정적이지 않은 그곳에서는 기계설비에 의존하기보다 자연 채광과 환기를 고려하는 것이 꼭 필요했다. 따라서 우리는 건축의 아주 기본으로 돌아가 빛과 바람과 공간의 관계에 집중했다. 연중 달라지는 태양의 궤적은 빛을 다루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 북반구인 한국에서는 계절별로 태양고도가 바뀔지언정 해는 항상 남쪽 하늘을 경로로 움직인다. 적도 부근에 있는 동티모르는 건기에는 해가 북동쪽에서 떠서 북서쪽으로 지고, 우기에는 남동쪽에서 떠서 남서쪽으로 진다. 시뮬레이션으로 연중 태양의 방향을 분석한 후, 성당이 위치한 수녀원의 정면을 남동향으로 계획하고 고측창을 두었다. 그 결과, 12월부터 시작되는 우기에는 아침 햇살이 성당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실내 공기를 데워 굴뚝효과를 일으키고, 고측창을 비롯해 서로 마주 보는 성당 양측의 창문을 통해 자연 환기가 극대화된다. 건기에는 중정의 깊은 처마와 회랑으로 직사광선의 유입을 최소화했다. 수녀원 부지는 울창한 숲이 있는 야트막한 산을 배경으로 하고, 부지 내부에도 망고나무를 비롯해 오래된 나무들이 여럿 있었다. 수형이 멋들어진 나무들을 베지 않고 그 사이에 수녀원과 기숙사를 배치했다. 입구에 자리한 아름드리나무 덕분에 수녀원과 기숙사는 완공되자마자 금세 주변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Kim Namjoo
단순하면서도 적절한 만듦새
지역의 자원과 기술을 이해하는 과정 또한 새로웠다. 동티모르는 종종 현장 노동자들이 슬리퍼를 신고 시공을 할 정도로 체계화된 시스템이나 숙련된 시공 기술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오히려 자원과 기술이 충분한 상황에서는 생각하지 않았을 부분을 인지하게 됐다. 안전하고 경제적이어야 하며, 자재 운송은 최소화하고, 누구나 손쉽게 도면을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단순한 구조를 선택하고, 지역의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고, 디테일을 간소화해 직관적인 시공을 유도했다. 때로는 이러한 단순함이 수녀원만의 공간 연출을 만들어내는 기회가 되었다. 수녀원은 시공이 간단한 단층의 철근콘크리트구조로 계획했는데, 철근콘크리트 기둥과 보를 그대로 드러내고 기둥 사이로 긴 창을 두어, 마치 연속된 십자가처럼 보이는 구조 사이로 빛이 스며들도록 했다. 생활공간을 방문자들의 시선에서 차단하기 위해 계획된 중정의 가림벽은 현지에서 생산된 시멘트 블록을 활용했다. 적절한 크기와 모양을 고르기 위해, 수녀님들이 직접 마을을 다니며 블록 공장에서 사진을 찍어오시고 회의를 통해 적절한 블록을 고르는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순한 건축에 계절마다 달라지는 적도의 햇살이 걸러지고, 일 년 내내 내부 공간에 드리우는 다채로운 빛의 질감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수녀님들의 생활공간(사적 영역)과 성당·라운지(공적 영역) 사이에는 단차를 두어 같은 중정을 공유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동선을 분리했다. 생활공간의 낮은 박공지붕은 박공지붕이 많은 아일레우와 잘 어우러지는 한편, 성당·라운지의 높은 경사 지붕은 이웃 건물들보다 수녀원의 정면을 높여 그 존재감을 은은히 드러낸다. 중정에 서서, 성당이 있는 경사 지붕 쪽을 바라보면 지붕의 수평선 위로 아일레우의 하늘이 말갛게 보인다. 현재 수녀원에는 한국인 수녀님 세 명과 견습 수녀님 두 명, 그리고 강아지 세 마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함께 모여 앉는 여학생 기숙사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21세기 첫 신생 독립국인 동티모르는 아직 교육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최빈국 중 하나다. 지방에서 학교까지의 통학 거리가 길고 위험해서 특히 여학생들이 공부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동티모르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원은 외딴 지역 출신의 여학생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여학생 기숙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기숙사는 기다란 두 개 동을 평행하게 배치했다. 동 하나에는 공부방, 주방과 같은 공용 공간을, 다른 동에는 기숙사 방을 여럿 두었다. 한정된 예산 때문에 꼭 필요한 공간만 구성하고 추가적인 실내 공간을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청소년기 여학생들이라면 친구들과 모여 앉아 수다도 떨고 간식도 먹는 ‘기능 없는’ 여유 공간이 꼭 필요할 것같았다. 이에, 건물 두 동 사이에 있는 틈새 외부 공간에 앉을 수 있는 계단식 작은 중정을 곳곳에 두고, 가벼운 지붕으로 이 틈새 공간을 덮었다. 이로써, 건물 배치 자체가 공동체를 위한 장치가 되었다. 아침과 저녁이면 학생들은 작은 중정에 둘러앉아 함께 기도를 하고, 오후가 되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떤다. 때로는 모두 모여 수녀님께 배운 노래를 합창하기도 한다. 현재 여학생 기숙사에는 학생들 20여 명이 생활 중이다. 아일레우에 위치한 동티모르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원은 낯선 지리·기후 조건과 더불어 재료·기술의 한계를 적극 수용해야 했던 프로젝트다. 자연환경을 해석하며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진행 과정에서 점차 지역의 문화와 사람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해갔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수녀원이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지역사회 공동체를 위한 배움과 나눔이 일어나는 곳이길 바란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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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서울시립대학교)+ 김은비(구가도시건축 디렉터)
동티모르 아일레우 시
종교시설, 기숙사
10,417.4m²
수녀원 – 851.2m² / 기숙사 – 521.8m²
1,373m²
지상 1층
6.45m
13.17%
13.17%
철근콘크리트조
수성페인트, 컬러강판
수성페인트
여득현
스트루투라, 루스, 콘스트루송이스
2021. 1. ~ 2022. 7.
2022. 7. ~ 2024. 5.
한국순교복자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