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8월호 (통권 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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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이후 서울의 도심 재개발 과정과 함께 본격적으로 등장한 고층 오피스 건축은 현재 고층 고밀한 서울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시기 한국 건축에 관한 논의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고층 오피스 건축의 실현이 대부분 건축적 의도보다는 구조, 설비, 시공 분야와 같이 당시 사회가 가용한 기술 및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력 등 현실적인 부분에 좌우된다는 점에 있다. 여기에 덧붙여 김중업과 김종성과 같은 소위 건축가의 설계로 이루어진 소수의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많은 경우의 고층 오피스 건축이 기업형 설계사무소의 참여로 수행되었다는 점이다. 1987년 미국의 대표적 기업형 설계사무소 SOM(스키드모어, 오윙스 & 메릴)의 설계로 완공된 럭키금성 트윈타워(현 LG트윈타워)의 경우도 위와 같은 이유로 그 건축적 가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럭키금성 트윈타워는 여의도의 초기 개발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고려된 자동차와 보행자를 위한 이상도시의 미래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동시대에 국제적으로 유행했던 고층 건축의 생산방식이 대한민국이라는 지역적 상황 속에서 실현된 초기의 건축 모델로서 의미가 있다.

1972년 서울시 자료에 수록된 여의도 미래 모습과 뉴욕 맨해튼 비교 모형 사진. 출처: 서울시, 「여의도 아파트 단지 사업계획서 1973‐1978」(1972). Images courtesy of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서울 맨해튼의 현실
서울이 한강 이남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미래지향적 계획도시로 시작된 여의도는 한국 아방가르드 건축 및 도시계획가들의 이상과 동시대의 사회, 문화, 그리고 정치적 현실이 혼재된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김수근의 실험적인 여의도 마스터플랜이 현실적인 제약으로 실현되지 못하면서 여의도의 미래는 홍익대학교 교수였던 박병주의 손에 의해 슈퍼블록으로 이루어진 마스터플랜에 기반한 다양한 밀도의 도시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자동차 도시로 급속하게 전환된다.▼1 그리고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근대화와 국제화의 영향으로 도심지 내 거주 가능한 섬으로서 지형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뉴욕 맨해튼이 여의도가 따라가야 할 도시 모델로서 각종 보고서와 신문 기사에 등장하게 된다.▼2
박병주는 조닝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사람이 살지 않던 허허벌판 여의도에 주거, 상업, 업무 지구 및 거주자를 위한 보행로, 녹지 그리고 오픈스페이스를 지정하여 미래 여의도의 밀도와 높이를 조율한다. 하지만 박병주로부터 시작된 맨해튼의 이상은 산업화 시대 개발 초기 한국이라는 지역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시민들과 민간 투자자들은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도시 기반시설조차 형성되지 않았던 미개발지 여의도에 들어오기를 꺼려했다. 이에 대한 방편으로 정부는 상업 및 업무 지구에 당시 주택난으로 인해 확실한 수요가 보장되는 아파트 및 상업시설을 과도하게 허용하게 된다. 이러한 조치는 지구별 유사한 밀도와 용도의 프로그램으로 정돈된 기존의 마스터플랜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이상적 여의도의 모습과는 다르게 주거, 상업, 업무 시설이 혼재된 결과를 만들어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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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병주의 여의도 마스터플랜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을 참고. Yoonchun Jung, ‘Internationalising the local: an architectural scenario for the first metropolitan apartments in Seoul’s Manhattan’, Architectural Theory Review , 26.2 (2022), pp. 273~290.
2 1972년에 서울시가 발간한 「여의도 아파트 단지 사업계획서 1973‐1978」에는 고층 고밀화된 여의도의 미래 모습을 뉴욕 맨해튼과 비교해 보여주는 모형 사진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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