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12월호 (통권 697호)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2024)
DIALOGUE 조윤희 구보건축 대표 × 홍지학 충남대학교 교수 × 이소진 건축사사무소 리옹 대표 × 이중원 성균관대학교 교수 × 김정은 편집장 × 방유경 기자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
김정은: 민간에서 진행한 다른 작업들도 살펴보자.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2024)는 이태원에서 남산3호터널로 이어지는 대로변 모퉁이 상가주택을 공유 도예공방으로 리모델링한 프로젝트다. 불법증축, 대지분쟁, 토지측량 불가 등 골치 아픈 땅이라고 들었다. 설계자로서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갔나?
조윤희: 외관이 독특해 평소 눈여겨보던 건물인데, 건축주가 우리를 찾아와 필연처럼 다가왔던 프로젝트다. 처음 현장을 찾았을 때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모습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골목길처럼 계단들이 건물 안팎으로 연결되어 공간적으로도 재미있었고. 하지만 맞닥뜨린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40년 된 건물인데 기존 도면도 없고, 계단과 차고지가 불법증축된 상황이었다. 인도에서 3층으로 진입하는 계단은 인접한 아파트 외벽에 계단 난간을 덧붙인 채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런 복잡한 부분들을 어떻게 정리해나갈지 고심이 많았다.
홍지학: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변수가 굉장히 많지 않나. 건축대장에 157평이었던 건물은 실측을 해보니 247평으로 나왔고, 물이 찬 흔적이 있던 지하 2층 PIT 공간은 방수 처리가 전혀 안 돼 있었다. 내부 마감을 걷어내자 화재 흔적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덧붙이고 수선된 흔적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철근 노출 상태도 심각해서 구조 보강하는 데 비용도 꽤 들었다. 결과적으로 지하 1층은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딸린 창고로, 카페가 있던 1층과 가정집이었던 2층은 밖에서도 작업하는 모습이 보이는 도예공방으로, 3층은 건축주의 아지트로 탈바꿈했다.
조윤희: 정면과 측면이 완전히 다른 두 얼굴을 가진 것도 특별하게 다가왔는데, 정면에 타일을 붙여 입면을 개선한 것이 외적으로 가장 큰 변화였다. 그다음 분쟁이 없도록 불법증축된 부분을 철거하고 대지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노출콘크리트 옹벽을 세웠다. 벽을 세우면서 만들어진 작은 선큰 공간에는 1~2층을 오가는 외부 계단을 새로 추가했다.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2024)
이중원: 리모델링을 하며 추가하거나 제거하는 부분에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대로와 면한 서측 입면에는 타일을 붙인 반면 인도와 면한 북측 입면은 기존 모습을 그대로 살렸고, 실내에도 백색으로 깔끔하게 덧댄 면과 기존의 거친 벽돌 벽, 콘크리트 벽이 시야에 한꺼번에 들어오는 것이 흥미로웠다.
홍지학: 리모델링이 의미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기존 건물이 지닌 시간성을 설계에 녹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원형의 변화를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원형이 가진 텍스처를 살리는 방향으로 제안했다. 그럼에도 군데군데 추가하거나 다르게 접근한 부분은 리모델링의 예측 불가한 특성에서 기인한 결과다. 디자이너가 포용력을 가지고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만들어진 콜라주와 같달까. 단순하게 말하면 실내 공간도 가급적 기존 벽면을 노출하고 싶었는데, 내단열이 필요한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마감을 해야 해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리하게 됐다. 건물 정면에는 새 타일을 붙이고 측면은 원래 벽돌 입면을 남긴 것, 러프한 텍스처를 그대로 둔 것과 매끈하게 새로 다듬은 것이 혼재하는 건 건물 전체가 완벽한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식이 덜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형태 언어로 컨트롤하겠다는 태도는 리모델링에서 맞지 않는 것 같다.
이소진: 이런 시도가 어려운 게 기존 건물의 마감을 그대로 살리려면 질감이나 물성에 예민하고 스스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스케치업과 같은 3D 프로그램으로 스터디할 때는 질감을 정확하게 예측하거나 테스트할 수 없는데 어떤 식으로 의사결정을 했나? 상상으로 가능한 건지, 완전히 감각에 의존하는 건지?
조윤희: 그동안은 대부분 상상으로 해왔는데, 경험상 화면에서보다 현실에서 구현됐을 때 느낌이 훨씬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건축주가 화면 이미지를 보고 너무 밋밋하지 않냐고 걱정할 때면 실제로 완성되면 빛도 다르고 훨씬 다채로울 거라고, 화면에 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설득하는 편이다.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2024)
이소진: 리모델링의 경우 현장에서 직접 결정하는 사안들도 결과에 영향을 미칠 텐데 어떻게 제어하는지 궁금하다.
조윤희: 개인적으로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리모델링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좀 있었다. 건축가가 어느 지점에서 힘을 주고 빼야 하는지 강약 조절을 처음으로 시도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난 프레임에서 썼던 에세이 ‘느슨한 정교함’(「SPACE」 677호 참고)의 메시지가 잘 드러난 사례이기도 했다.
김정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어떤 부분인가?
조윤희: 가정집이었던 2층을 공방으로 쓰려면 공간들이 자유롭게 통해야 하는데 벽돌조라 벽을 헐기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문짝만 떼어낸 뒤 문틀에 프레임을 따로 두르지 않고 그대로 노출했다. 실내에는 대로변 입면의 외장 타일을 내장재로도 활용했는데 타일 규격에 맞춰 벽, 마감의 크기를 정밀하게 조율했다. 거친 상태를 그대로 존중할 때는 기존의 디테일로도 충분하다고 봤다면, 섬세한 재료가 새로 들어올 때는 마감에서도 이를 받쳐줄 수 있는 디테일을 구사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방유경: 현장의 오류나 돌발 상황을 수용했다고 했는데, 정면에서는 작은 타일을 균질하게 붙이기 위해 CRC 보드로 형태를 잡은 뒤 시공했다고 들었다. 어떤 의도였나?
조윤희: 작은 타일을 붙일 때 핵심은 쪽이 나지 않는 거다. 오래된 집이다 보니 외형이 반듯하지 않아 대로변 입면에 타일을 붙일 때 타일 개수를 일정하게 시공하는 게 불가능했다. 결국 CRC 보드를 덧대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서 볼 때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단정한 첫인상은 이렇게 만들어진 거다. 보이지 않는 밑바탕 작업의 수준에 따라 즉각적으로 인지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3층에 있는 문 한 짝은 시공사에서 잘못 발주하는 바람에 옆에 있는 문보다 10cm 낮게 제작됐다. 현장에서 이를 확인하고 시공사에서 재발주하겠다고 했는데, 그 순간 차이 난 부분을 미장으로 채워 라인을 맞추면 그런 대로 느낌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문의 높이를 동일하게 맞춰 도면을 그렸지만, 그게 구현되지 않는 현실도 수용한 것이다. 이런 부분들 또한 나름의 이야기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2024)
아우리움
김정은: 삼성동 뒷골목에 들어선 아우리움(2025)은 신축 근린생활시설(이하 근생)이라 접근이 달랐을 것 같다. 특히 건물 앞에 들어선 파사드가 인상적이다.
조윤희: 트래버틴 파사드는 소란한 가로로부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다. 장방형 대지의 장점을 활용해 소음을 걸러주는 큰 벽을 세우고, 그 뒤로 채광·환기·동선을 해결하는 기능적 외피를 배치한 것이다. 벽과 내부 공간 사이에는 식물이 자라는 파티오, 테라스를 두어 도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관계를 제안했다.
이중원: 사실 이 건물을 보자마자 1990년대 4.3그룹이 이면도로의 연속성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여 계단이나 테라스 같은 공용 공간을 만들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이를 의식한 바가 있었나?
홍지학: 그런 관계성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다만 4.3그룹 세대에 건축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외부 계단을 배치하고 중간중간 마당을 두는 방식이 은연중에 내재화됐을 수 있을 것 같다. 건물 안으로 길을 끌어들이면 소박하게나마 공공성에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고.
이중원: 도시와 경계를 형성하는 트래버틴 벽의 상징성을 중요하게 보았다. 이런 벽 뒤로 완충 공간을 두는 수법도 자주 눈에 띄는데 이를 고수하는 이유가 있는지?
조윤희: 이중 외피 전략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했다. 트래버틴 파사드 뒤로 건물의 실제 입면이 있는데, 진짜 입면과 가짜 입면, 즉 기능적 요구를 해결하는 입면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입면을 세우고 그 사이에 완충 공간을 두는 것이 도시적으로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전작인 원불교 역삼교당(2022, 「SPACE」 677호 참고)에서도 도심형 사찰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도시 풍경을 필터링할 수 있는 반투명한 재질의 막을 건물 전면에 배치했다. 그 뒤로는 테라스를 두어 공간의 풍요로움을 느끼도록 했고. 단일한 입면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비슷한 전략으로 풀어나간 것이다.

슬로우 클레이 스튜디오(2024)
방유경: 트래버틴 파사드가 기하학적으로 완결성을 가지도록 600mm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절단한 뒤 3×3 모듈에 맞춰 정렬하고 오픈 조인트의 폭에도 변화를 주었다. 기하학적 특성이 드러나는 장면이 프로젝트마다 한 번씩은 등장하는 것 같다.
조윤희: 이번에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원불교 역삼교당의 입면도 정사각형 그리드로 만들었더라. 우리 작업들 사이에 공통점을 발견한 것 같아 신기했다.
이중원: 일반적으로 건축주들이 1층 상업시설에 단차를 두는 것을 선호하지 않은데 아우리움에서 이렇게 푼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홍지학: 원래 우리가 대부분 의사결정에 뜻이 잘 통하고 합이 맞는데 이 단차에 대해서만큼은 서로 의견이 갈렸다. 내가 한 발 물러나면서 단차가 있는 안으로 지어진 것이다.
조윤희: 1층의 층고를 높이면 높이 제한에 걸려 5층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내가 면적에 욕심이 있다 보니 근생에서 5층 면적을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유니버설한 공간도 중요하지만 단차를 잘 활용하는 임차인이 들어온다면 그리 나쁜 결정이 아닐 거라 판단했다.
아우리움(2025) ©Roh Kyung
홍지학: 이게 되게 중요한 차이인데, 조윤희는 최대 면적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는 반면, 나는 면적을 만들어주는 게 건축가의 리스크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치수가 안 나와서 수습을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캐드상에서 면적이 가능하다고 나왔는데 현장에서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설계할 때도 보면 이런 차이가 드러나는데, 조윤희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콤팩트하게 꽉 차는 평면 구성을 좋아하고, 나는 약간의 허용 오차(tolerance)를 수용하는 평면을 좋아한다.
이중원: 흥미로운 차이다. 답사할 때 조윤희는 사무 공간에 위요감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유리 커튼월로 마감된 오피스 건축의 문법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다.
조윤희: 일상의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낸 탓인지 스스로 사무 공간이 반 주거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입면 면적에서도 창이 전체 면적의 50%를 넘지 않도록 설계한다. 사무실에서 대부분 모니터를 보며 근무하기 때문에 조도도 조금 어두운 게 좋고, 필요하면 인공조명을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창이 많은 것보다는 테라스가 있는 사무 공간이 사용자들에게 쾌적하다.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을 지나치게 수직적으로 높이는 것도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휴먼스케일에 맞추기 위해 문이나 창 같은 개구부의 높이도 제한했다. 신트리 놀이터에서는 외기에 면한 창의 높이가 최대 2.4m를 넘지 않게 맞추기도 했다.
홍지학: 노원책상(2021)에서도 비슷한 스케일의 공간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외부 입면에 개구부를 낼 때도 창의 끝선이 2~2.4m 이상 올라가지 않게 조정했다. 창을 낮게 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우리움(2025) ©Roh Kyung
기하학과 비례
이중원: 여러 작업을 살펴보면서 구보에게 기하학은 어떤 의미인가 질문이 생겼다. 신트리 놀이터의 경우 원이라는 형태는 기존 조경 마스터플랜에서 기인한 것인데, 해당 계획이 무산된 이후에도 원형을 유지했다. 그만큼 강력하고 중요한 도구가 아닌가 싶다.
조윤희: 순수한 기하학과 비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트리 놀이터에서 원을 끝까지 고집했다면, 아우리움에서는 정사각형의 비례를 지키는 데 공을 들였다. 적당한 비례를 잡고 나면, 이를 지키기 위해 구조를 희생하기도 한다. 기하학이 흐트러지면 건물에 질서가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기하학이 형태로 발현되는 외적인 비례를 끝까지 지키는 게 의사결정의 최우선 순위였다. 그래서 설계 초반에 잡힌 기하학이 실시와 감리 과정에서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게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의식하고 있다.
이중원: 강남 도심의 세장형 필지에 지어진 아우리움은 정사각형 입면으로, 공원에 지어진 신트리 놀이터는 원 평면으로 질서를 잡았다. 지오메트리를 취사 선택하는 데 기준이 있는 건가?
홍지학: 두 프로젝트의 경우 당연한 결과였던 것도 같다. 신트리 놀이터는 공원 한가운데 들어서는 건물로서 순수한 기하학으로 드러나길 바랐다. 원불교 역삼교당을 대수선할 때 정면에 정사각형의 모듈을 애써 지키려고 했는데 둘 다 비슷한 태도다. 정리되지 않고 질서가 없는 주변 풍경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작용해서 오히려 아주 강력한 기하학적 형태를 떠올리게 된 것 같다.
조윤희: 연의생태학습관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입면의 비례였다. 설계 단계에서도 수평 띠처럼 보이는 콘크리트 패널과 개구부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수평적 비례를 조율하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우리가 이토록 비례에 집착하는 이유를 고민했는데 결론은 ‘민폐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 건물이 시각적 공해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건물 하나가 세상에 태어날 때 재료, 디테일만이 아니라 잘 정돈된 비례를 갖춘 모습으로 나와야 도시 안에서 수십 년 동안 호흡할 수 있지 않겠나. 시각적으로 안정돼서 거슬리지 않는 기본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아우리움(2025) ©Roh Kyung
이중원: 비례라는 수치적 관계 안에서 줄눈, 타일 간격, 개구부 크기 등 모든 것들을 조율한다는 의미인가?
조윤희: 아직은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중요한 요소들만이라도 챙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소진: 방금 비례를 수치적 관계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비례야말로 감각인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가르치기도 설명하기도 힘들더라.
홍지학: 공감한다. 직원들과 소통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소진: 감각은 타고나는 영역이라 좋고 나쁜 이유나 근거를 설명하기 어렵다. 좋은 비례라고 하는 게 건축가들마다 다 다르지 않나. 그럼에도 비례를 조율하는 구보의 감각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긴 하다.
이중원: 아마도 두 사람이 처음 실무를 경험했던 사무소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홍지학: 서울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서울건축)에 있을 때 김종성 선생이 직접 지휘했던 프로젝트에 스태프로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데, 오피스 건물 하나를 설계하면서 디자인 회의를 할 때 보니 입면의 치수를 거의 밀리미터 단위로 섬세하게 조절하더라. 예를 들어 1,200mm를 1,230mm로 바꾸면 불과 3cm 차이인데, 그런 수준으로 논의를 해서 놀랐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비례에 대한 확고한 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아우리움(2025) ©Roh Kyung
김정은: 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이하 이로재)의 비례나 감각은 서울건축의 그것과는 또 다를 것 같다.
조윤희: 승효상 선생은 수치보다는 감각적인 면에서 남달랐던 것 같다. 우리가 작업해서 가져가면 항상 적절한 비례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직접 스케치를 그려 피드백을 해주셨다. 입사 초기에는 엇비슷해 보이는데 왜 자꾸 수정하라고 하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나름대로 트레이닝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매주 월요일 진행된 회의 때마다 건축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만 하면 누구든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웃음) 동기부여 차원에서 한 이야기였지만 사실 타고나는 게 더 중요한 것도 같고.
김정은: 두 사람이 실무를 했던 이로재와 서울건축 이야기가 나왔는데, 디자인적 유전자든 아니면 사무실 운영이든 이어받은 유산이 있다면 무엇인가?
홍지학: 사실 그 부분에 항상 아쉬움을 느낀다. 서울건축에서 쭉 실무를 하면서 그 연속성을 가지고 개소까지 이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유학을 떠나면서 단절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최근에 와서 ‘그때 내가 배운 게 이런 거였구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렸던 장면들이 사실은 이래서 되게 중요한 거였구나’ 뒤늦게 깨닫는 것들이 있더라. 서울건축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디테일에 집요한데 그것의 의미를 요즘 다시 생각하게 된다.
조윤희: 학부 시절 나는 설계를 잘 못하는 낙제생이었다. 기본기가 전무한 상태에서 운 좋게 이로재에 입사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건축가로서 성장하기 위한 기본을 다 배웠다. 일요일도 없이 한 달에 하루이틀 정도 쉬면서 3년을 다녔는데,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건축가로 활동할 수 있는 것 같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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