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10월호 (통권 695호)


운동성에서
과거, 나의 작업은 건축의 역사 속에, 건축의 언어 속에 자리해야 했다. 그것은 나의 뿌리를 밝히는 일이었다. 다만, 그 뿌리 위에 개인적 추억이나 성향이 섞여 오염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며 창조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내 작업의 중심에는 운동성이 있었다. AA 스쿨에서 공부한 영화적 건축에서는 시간과 물질 운동, 실존 등이 거의 동의어로 다가왔다. 영화라는 매체를 떠나 건축에 운동성을 부여하는 것은 초기 작업의 주요 과제였다. 젊은 시절 내게 현대의 공간은 왕가위의 ‘화양연화’(2000)처럼 도덕과 예의, 모든 가치가 무너지며 비공간화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정착이나 거주 없이 운동성으로 역동하는 것이었다. 차갑고 어둡지만, 중첩된 가치와 순간들로 온기가 남아 떠도는…. 집은 도시의 한복판과 같았고 끊임없는 순환과 운동의 일부였다. 운동성은 내게 곧 자유이자 여행이고, 고정된 인식의 굴레를 뛰어넘는 차원의 확장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정된 벽과 기둥으로 운동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첫째, 고딕 성당의 네이브와 차펠처럼 벽과 기둥을 반복적으로 배치해 리듬과 깊이감을 만들어내고 둘째, 벽과 기둥을 하나의 축이 아니라 여러 개의 축으로 중첩시켜 경계를 모호하게 흐리며 셋째, 정방형보다는 직방형을, 단순한 직방형보다는 중첩된 직방형을 만들고 넷째, 공간의 스케일감을 주는 벽의 코너는 가능하면 투명한 유리로 처리하고, 마지막으로 빛은 언제나 멀리서 간접광으로 맞이한다. 정리하면 확정적인 내외부의 경계를 동서남북의 방향성과 위아래의 위계로 흐린다. 그곳에는 전통적 의미의 둘러싸인 방은 없었다. 단지 벽의 모퉁이, 기둥 주변이 잠깐의 쉴 곳이 되었다. 끊임없는 구조물의 나열. 내부도 외부도 아닌, 방이 없는 방. 이러한 공간은 피라네시의 ‘상상의 감옥’에서 영감을 얻었고, 초기작인 곧은 마음 집(「SPACE(공간)」 675호 참고)은 그러한 고민 속에서 설계됐다. 나는 집을 도시의 뒷골목처럼 설계했고, 거주자는 도시를 배회하는 산책자였다.



성채로
강사유(江思留)를 설계한 2022년은 스스로 설계하고 지은 집에서 산 지 5년이 되는 해였고, 다른 건축주들의 피드백이 쌓였으며 나의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작가 이종건은 디스 헛(This Hut)을, 나인혜(공이림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몸-집(「SPACE」 658호 참고)을 스스로 짓고 거주를 시작했다. 이 세 가지 사건은 내가 설계자로서 아카데미의 맥락에서 벗어나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갖게 했다. 직접 지어 살았고,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인근에는 뿌리가 다른 건축이 심어졌다. 뭔가 달라져야 했다. 그런데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아카데미아의 이론이나 물리적 합리성에서 벗어난 인간의 감성과 이유 없는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졌다. 이때쯤, 집은 최후의 은신처라는 이종건의 글을 읽었다. 성채의 이미지, 어떤 세상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이미지, 그 속의 상상할 수 없는 내밀함이 깊은 곳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신체가 약해지고 주어진 시간이 줄어드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나는 오십을 지나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를 가둬 누워 있고만 싶다. 그래서 이종건의 성채에 관한 글을 읽었을 때 감화가 된 것 같다. 성채는 운동성의 반대 극점에 있다. 또한 성채는 불변의 영원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였다. 나에게 성채란 언젠가 허물어지고 무너질 것을 인정하면서도 허물어지지 않으려는 ‘애씀’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두려운 바깥세상에 무심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지속하려는 노력, 영원불변의 철학을 설파하기보다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만 스스로의 존재가 망각되지 않기 위해 그 속도를 조금 조율하며, 마치 태초의 공간처럼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일. 돌아가야 할 곳. 영원히 돌아가고 싶은 곳. 채워질 수 없는 애씀의 연속. 성채는 내게 그런 이미지였다.



그 사이 어딘가의, 방 속의 방
대지는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었고, 건물 역시 남북으로 긴 형태를 띠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문제는 남쪽 강을 향한 뷰와 채광이었다. 설계 기간 동안 대부분 남측 입면 전체를 창으로 처리했었다. 남북으로 긴 매스 안으로 깊게 빛을 끌어들이려는 목적이었고, 강이 보이는 뷰가 대지의 정체성을 모두 설명하는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건축적 제스처는 너무 평이하고 진부해 보였고 결과 또한 기대되지 않았다. 강으로 향한 뷰는 충분히 좋았다. 넘치도록 좋았다. 그러나 넘치는 것을 넘치는 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천창을 도입했다. 넘치는 것을 다소 줄여 모자람을 만들고, 그 모자람을 통해 오히려 더 극적으로 연출하고자 했다. 이러한 공간적 터치가 피라네시의 공간을 만드는 움직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건축은 외부와 내부의 제스처를 완전히 다르게 취했다. 이제는 내외부가 명확히 달라도 된다. 그것이 나에게 휴식을 줄 수 있다면. 이것은 내가 5년째 나무 집을 짓고, 나무로 외장을 마감한 집에서 살고 있는 경험에서 흘러나왔다. 관리적으로 유용하다면 재료뿐만 아니라 공간도 연극의 무대처럼 모든 장면이 철저하게 분리되어도 상관없다. 업무 공간과 거주 공간을 나누고 거주 공간을 다시 침실과 거실로 구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는 모두 수직적 레벨로 해결했다. 당시 건축주는 집을 수직으로 풀어도 괜찮다는 지침을 주었고, 땅이 앉은 모양 역시 수직으로 푸는 것이 적합해 보였다. 피라네시의 ‘상상의 감옥’처럼 경계 없이 강도만 존재하고 그 속에서 한시적 휴식만 가능한 운동성의 역동 공간이 아니라, 방 속의 방처럼 켜켜이 둘러싸여 멈추고 머무는 단절된 장면을 만들고자 했다. 글을 정리하며 보니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전히 피라네시의 상상 속에서 역동하고자 하는 안간힘이 남아 있기도 한 듯하다. 건축가로서 무엇을 꿈꾸었고 결론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한편, 이 집은 목수이자 유튜버로 활동하는 ‘양반장’의 집이다. 목수에게 설계 의뢰를 받아 건축가로서 매우 영광이었다. 이 집을 실질적으로 완성시킨 사람은 양반장으로, 과정 내내 즐겁게 협업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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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건축건축사사무소(박진택)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단독주택
489m²
108.48m²
199.63m²
지상 3층
2대
9.75m
22.18%
40.82%
철근콘크리트조(1층), 목구조(2~3층)
노출콘크리트, 세라믹 사이딩
편백합판, 포세린 타일
구조인디자인연구소
(주)대광엔지니어링
건축주 직영
2022. 4. ~ 2023. 3.
2023. 4. ~ 2024. 10.
7억 원
양동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