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2월호 (통권 699호)
DIALOGUE 장윤규, 신창훈 운생동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 이은경 이엠에이건축사사무소 대표, 이재원 도시건축정류소 건축사사무소 대표
왜 주거인가?
이은경: 운생동건축사사무소(이하 운생동)의 작업을 떠올리면, 공공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재해석해 대담한 제안을 한 공공 프로젝트들이 먼저 떠오른다. 이번 프레임에서 운생동의 주거 근작을 모아 이야기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주거는 운생동의 작업 세계에서 주변적 실험일까? 아니면 공공 건축 작업과 연속된 실험의 또 다른 국면일까?
장윤규: 많이 알려진 운생동의 작업이 대부분 주거 프로젝트가 아니다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모든 건축은, 심지어는 상업 건축도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건축의 시발점이자 사회나 도시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주거를 빼고 사회나 도시, 공공성을 논할 수는 없다. 때문에 공공 건축과 주거 건축 작업을 구분해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우스 10’이라고 이름 붙인 프로젝트가 있다. 주거에서의 공공성과 공유 방식을 고민하고 주거 건축의 요소를 다시 점검하기 위한 실험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취한다. 하나는 주거에 대한 가장 근본을 고민하고 탐구하는 태도, 다른 하나는 관습적인 주거 건축에 반하는 다른 형식의 주거를 찾아내려는 태도다. 이를테면 존 헤이덕의 ‘언캐니(uncanny)’를 주거에서 만들어내고자 한다.
신창훈: 운생동은 주거 건축이든 공공 건축이든 특별히 다른 방식으로 설계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주거의 본질은 유지하면서도 우리가 새롭게 실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지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실험하고자 한다. 프로젝트를 선택할 때도 보편적인 주거 의뢰는 받지 않는 편이다.

크로노토프 월 하우스(2015) ©Sergio Pirrone
익숙함의 재구성
이재원: 언캐니를 만들고자 함은 운생동의 다른 프로젝트들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운생동은 두 가지 태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어느 방향을 더 추구할지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나?
장윤규: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언캐니를 극단으로 추구할 수는 없다. 두 태도가 만나는 접점을 선택해야 하는데, 구체적인 방향성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거주자의 삶에 대한 태도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크로노토프 월 하우스(2016, 이하 월 하우스)에서는 언캐니를 좀 더 적극적으로 실험할 수 있었다.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건축주는 단독주택에서의 삶을 잘 상상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더 진보적인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큐브하우스(2023)에서는 좀 더 주거의 고유한 본질에 대해 고민했다. 큐브하우스의 건축주는 본인이 원하는 삶의 방향성이 분명했다.
이은경: 오히려 큐브하우스의 공간이 더 언캐니하게 읽혔다. 특히 공공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그렇다. 판교와 같은 신도시에서 발견되는 주택의 보편적 형식, 즉 이웃에게 등을 돌린 성채 같은 집은 제3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큐브하우스는 건축주의 욕구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닫힌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수직적 절개를 통해 외부와의 연결을 남김으로써 보편적인 폐쇄성과는 다른 공공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장윤규: 완벽하게 단절된 성처럼 설계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서 외부와 접점을 만들었다. 이는 월 하우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외부와의 접점을 가져간다.
이재원: 물론 월 하우스에서 건축가로서의 자율성은 더 컸을 수 있다. 하지만 삶을 바꾸는 구조로서의 언캐니한 측면은 큐브하우스에서 더 잘 드러나는 듯하다. 이미 작은 규모의 작업이었기 때문에 방 하나가 3×3m보다 작았다. 그런데도 중정을 통해 시선이 여러 방향으로 잘 통하다 보니 실제보다 공간이 크게 느껴졌다.
장윤규: 월 하우스에 가보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 거다. (웃음)
이재원: 그럴 수도 있겠다. 어쨌든 네 작업 중 원래 의도했던 바가 가장 잘 작동하는 사례는 큐브하우스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실제로 그 집에 살 사람과 작업을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창훈: 맞다. 확실히 큐브하우스나 월 하우스처럼 거주자와 밀착된 관계를 맺으며 풀어나갈 수 있는 작업에서는 섬세하게 거주자의 삶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건축적으로 강력해질 수 있었다. 고덕강일 풍경채 어바니티(2024, 이하 풍경채 어바니티)나 부산 에코델타시티 스마트 빌리지(2021, 이하 스마트 빌리지) 같은 스케일이 큰 공동주택의 경우 의도가 잘 작동하지 않는 지점들이 있었다.
장윤규: 개인적으로 스케일이라는 단어를 선호하지 않는다. 정량적으로 건축을 읽으려고 하는 태도지 않나. 작업이 크든 작든 정성적인 지점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스케일에 관계 없이 실험성이든 언캐니든, 공공성이든 그 작업이 가진 가능성을 찾고 어떻게든 실현하려고 한다. 우리가 하는 작업을 크기만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큐브하우스(2023)
요소들을 조합하는 실험
이은경: 중정, 마당, 회랑, 브리지, 코리도어와 같은 요소들이 단독주택부터 공동주택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공간을 작동시키기 위한 의식적인 장치인가, 아니면 주거를 다루다 보면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전략인가?
장윤규: 물리적인 요소가 아닌 개념으로 설계를 시작한다.
신창훈: 우선 개념을 잡고, 그 개념이 건축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설계를 추구한다. 이전 프로젝트에서 실험한 요소를 이후 프로젝트에서 다르게 넣어보는 시도도 많이 하고.
장윤규: 주거뿐 아니라 상업, 오피스 등 전형적인 유형을 다른 방식으로 재정의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데, 그럴 때 하나의 건축적 요소에 집중한다. 월 하우스에서 벽을 가져와 실험한 것처럼 프로토타입에 가까운 디자인을 하려는 거다. 그러다 보니 유사한 물리적인 요소가 자주 등장한다. 부암동 주택(2014)에서의 박공지붕 형태의 매스가 엮이는 형식은 콰르테르 연립주택(2025, 이하 콰르테르)에서 나타나고, 월 하우스에서의 벽에 대한 실험이 풍경채 어바니티에서 가벽을 만드는 데 쓰였다.
이은경: 공간적인 요소뿐 아니라 형태적인 측면에서도 운생동만의 독특한 요소가 읽힌다. 매스나 블록을 매우 잘게 나누거나 작은 단위로 모은다. 네 개 주거뿐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반복된다.
장윤규: 거대 블록이나, 큰 규모의 건물이 도시를 구성하기보다 잘게 나누어진 블록, 건물이 모여 도시를 이룰 때에 더 바람직한 도시가 된다는 입장이 드러난 것이다.

콰르테르 연립주택(2025) ©Jang Mi
이재원: 운생동이 요소 중심의 ‘실험’을 하기 때문에 나오는 경향성이라고 생각한다. 실험의 방식은 다양하다. 타이폴로지를 다양하게 변주할 수도 있고, 아키타입을 연구해 콜라주를 할 수도 있고, 작은 구조적인 요소를 만들어가는 실험을 할 수도 있다. 운생동의 실험은 요소와 부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다.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회랑을 가지고,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벽을 가지고 실험한다. 프로젝트를 거듭하며 프로토타입(부분)을 만들고, 그것을 조합해 전체를 만든다는 과정이 흥미롭다. 어떤 요소와 부분을 가지고 어떻게 실험하는지가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체계적으로 정리된다면 더 의미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연관해 답사에서 ‘운생동은 디테일을 버렸다’고 언급한 것도 흥미로웠다.
장윤규: 맞다. 운생동에는 디테일이 없다. 특히 공공 건축에서는 디테일을 만들 수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개념만을 남기고 디테일을 버리자고 생각했다.
이은경: 한국 건축계가 디테일과 물성을 중요시하는 상황에서, 운생동의 그러한 판단은 굉장히 독특하다. 그것은 ‘건축가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최후의 대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시에 건축가의 업역이 매우 축소된 현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생동이 디테일을 버린다는 태도는 “우리가 그것밖에 못하느냐!”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읽힌다.
이재원: 현실을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작업을 개념적으로 계속 실험해나가는 태도가 핵심이다. 이러한 운생동의 실험적 태도가 건축가의 업역 또는 한국 건축계의 다양성을 넓히기 위한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현실적으로 운생동 규모의 사무실에 계속해서 실험을 지속하라는 것은 과도한 요청일 수 있겠다 싶다. R&D에 예산을 계속 투입해야 하니까 말이다.
이은경: 50인이라는 운생동의 사무실 규모는 ‘아키텍트’ 사무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대 규모에 가까운 것 같다. 사무실의 규모와 운생동의 작업 방식 사이에는 분명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 같다.
장윤규: 또 정량적인 이야기다. (웃음) 나는 사실 50명이 아니라 12명이어도 지금처럼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사무실의 규모가 다소 커진 이유는 연구를 위한 인원을 두기 때문이다. 연구 인원은 돌아가면서 지정한다. 이상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고 실험성의 정신이 현실에도 녹아들게 하기 위해서이다.
신창훈: 지금 운생동의 구조는 소장이 6명 있고, 각 소장마다의 특성이 다르다. 주거, 설계공모, 실험, 실무 등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다르다. 그렇다고 소장이 각자 잘하는 것만 하지는 않지만 이런 구조가 시너지를 주는 것 같기는 하다.
장윤규: 대신 소장 아래의 인원은 돌아가면서 구성된다. 하나만 하면 안 된다. 주거를 하다가 갑자기 갤러리도 하고 해야 시너지가 생긴다.
이은경: 그게 아키텍트 사무소와 대형 사무소의 차이점인 것 같다.

큐브 하우스 다이어그램
새로운 공유 방식과 공공성
이은경: 앞서 정성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주택에서의 정성적인 지점은 그 안에 사는 구성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스케일, 즉 규모에 따른 경향성이 있다. 구성원의 수나 관계에 따라 공간의 해석이 굉장히 달라질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스케일에 따라 운생동이 주거에서 공공성과 공유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 공간에 담아내는지 궁금하다. 특히 연립주택을 설명하면서는 공유를, 지금 대담에서는 전반적으로 공공성을 많이 언급했다.
장윤규: 설계 과정에서는 공유다 공공성이다,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흥미로워하는 부분은 좀 더 관습을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신창훈: 특히 콰르테르는 아주 특별한 상황이었다. 요즘 다섯 가족이 함께 사는 경우가 어디 있겠나.
장윤규: 지금의 현대사회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다. 다 흩어지려고 하는 사회에서 장남의 의지로 가족들을 모아둔 거다. 과연 모든 구성원이 원했을까? (웃음) 우스갯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건축가들이 공유라는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모아둔다고 공동체를 만들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선택적인 공유가 가능한 방식을 제안했다. 가족이 함께 산다고, 언제나 함께하고 매번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은경: 일반적으로 선택적 공유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공유 공간을 설계할 때 주로 적용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서로 잘 아는 관계의 구성원을 위한 주거인 콰르테르에서 선택적 공유를 의도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더구나 지금의 콰르테르 설계를 보면 선택적 공유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든다. 커뮤니티 시설인 라운지를 반드시 지나야만 개별 세대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콰르테르 연립주택 다이어그램

고덕 풍경채 어바니티 마을 유형별 유닛 다이어그램
건축가는 거주자의 삶을 어디까지 예측할 수 있는가?
이재원: 가족들의 세컨드 하우스의 집합 혹은 게스트 하우스가 될 수도 있다고 예상한 것 같아흥미롭다. 건축가가 얼마나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디자인하고, 어느 정도까지 열어두어야 하는가? 나도 항상 그런 고민을 한다. 한 앵커시설을 설계한 적이 있다. 모든 운영 계획을 세워두고, 주민들과의 간담회까지 잘 진행해서 설계를 끝냈다. 그런데 1년 후에 운영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야 했고 참여자들도 계속 바뀌었다. 꼼꼼하게 예측하고 설계를 해도 결국 건물과 건물의 사용이 유리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규모 공동주택은 단독주택보다 예측이 더 어려울 거다. 운생동은 주거 설계를 할 때 얼마나 예측하고, 어느 정도의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나?
장윤규: 주택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확실히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열린 틀을 만들어주고, 그곳에서 다양한 미래를 수용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창훈: 풍경채 어바니티 설계에서는 정말 예측이 어려웠다.
장윤규: 아파트를 설계할 때, 물리적인 건물만 설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가 프로그램에 개입할 수 없을까? 예를 들어, 유럽의 사회주택에는 마을 전체를 코디네이팅 하는 건축가가 있지 않나. 그런 건축가야말로 진정한 공공 건축가이지 않을까? 공공 건축의 설계뿐 아니라 운영 주체로서 소프트웨어에 개입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단순히 설계로만 끝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커뮤니티를 실현해야 하는 단계다.
이은경: 풍경채 어바니티의 경우는 그런 접근 방식을 활용하기에는 상당히 애매해 보인다.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는 순간 소유권이 개인에게 넘어가는 구조에서, 건축가가 어떻게 프로그램을 조율하고 운영까지 관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고덕 풍경채 어바니티 다섯 가지 마을 유형 다이어그램
열린 분양 아파트라는 새로운 가능성
이은경: 풍경채 어바니티는 분양 아파트에서도 열린 형식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민간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에 비해 시장의 압박을 더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에,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일이 훨씬 어렵다. 그럼에도 풍경채 어바니티에서는 저층부와 고층부의 나눔, 저층을 연결하는 브리지, 그리고 도시에 완전히 개방된 1층의 가로를 통해 열린 형식을 구현하고 있다.
신창훈: 고덕강일지구의 주제가 ‘차이와 연결의 공동체’다. 그래서 단지 내에 공공 보행 통로가 지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는 민간에서 절대 반대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대개 자신들만의 안뜰을 꿈꾸지 않나. 그래서 우리는 3층 브리지가 그들만 향유할 수 있는 정원으로서의 복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게 제대로 작동한다면 가장 접근이 빠른 녹지로 3층 브리지에 커뮤니티가 형성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브리지가 민간 아파트 1층 산책로 정도의 퀄리티만 되어도 성공적으로 작동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사비 문제로 조경이나 기구, 프로그램이 실현되지 못했다. 그래도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었던 공동주택 설계에서 민간 분양 아파트의 또 다른 태도를 제안할 수 있었다. 그중 몇 가지라도 작동하고, 주민들의 호응이 있다면 더 큰 전환이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장윤규: 그래도 중요한 것은 작동이 되느냐다. 그래야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그래서 3층 브리지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정말 아쉽다.
이은경: 시공성, 커뮤니티 시설의 운영 여부, 프로그램의 작동 여부보다도 지금 이 프로젝트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문주가 없는 민간 아파트라는 것이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결코 달성하기 쉬운 조건이 아니다. 특히 브랜드 아파트 건설사와 주민들은 대부분 문주를 원한다. 계획적 측면에서 연다는 것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강요된 열림은 오히려 주민들의 닫고자 하는 욕구를 더욱 자극할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열려 있으면서도 다른 선택지를 함께 제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풍경채 어바니티는 민간 분양 아파트에 개방을 요구할 때 적용해볼 수 있는 하나의 유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다섯 개의 마을은 오히려 더 닫혀 있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고덕강일 풍경채 어바니티(2024)
장윤규: 메인 도로는 온전히 열려 있고, 다섯 개의 마을은 그보다는 조금 닫혀 있고, 3층 브리지는 완전히 공공에 닫히는 열림의 밀도 차이가 있는 방식을 의도하긴 했다.
이은경: 브리지를 위해 3층 곳곳에 커뮤니티 시설을 배치한 점이 인상적이다. 동시에 브리지가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특정 프로그램이 함께 설정되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최근 아파트를 보면, 운영의 효율성을 이유로 커뮤니티 시설을 점점 더 집약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커뮤니티 시설 없이도 브리지가 작동하는 방법을 고민해보았을 것 같은데, 브리지를 활성화할 수 있는 다른 요소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신창훈: 다섯 개의 마을이 작동하기 위한 앵커시설로서 커뮤니티 시설을 분산 배치했다. 동시에 다섯 개의 커뮤니티를 집중시켜 서로 시너지를 낼 방안을 고민했다. 지상부터 지하까지 피트니스를 비롯한 여러 시설을 랜드마크 타워에 모아 그 역할을 하도록 했다. 공사비 부족으로 몇몇 시설이 빠지면서 모아주는 힘이 약해졌다.
이재원: 브리지에서 위요감이나 분산감을 주기 위해 복도의 폭, 시선의 분리 등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런 부분이야말로 운영에 의존하지 않고 건축이 자율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모이고 흩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풍경채 어바니티를 실제로 돌아보면서는 그런 부분을 짚어내기 힘들었지만, 설계 단계에서는 어떤 의도가 있었나?
장윤규: 브리지에서도 마을마다의 특색이 있기를 원했다. 예를 들어, 한 마을의 브리지는 텃밭을 가질 수 있는 형식이고 랜드마크 타워의 브리지는 타워를 트랙처럼 둘러싸도록 의도했다. 역시나 시공 단계에서 많이 사라졌다.

부산 에코델타시티 스마트 빌리지 네트워크 다이어그램
스마트 기술이 만드는 커뮤니티
이은경: 스마트 빌리지는 에너지, 운영, 이동, 건강, 생활 전반에 걸친 아주 많은 기술이 집약된 5년간의 테스트베드다. 주거에 기술이 적용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집은 거주자가 돌보고 조율하는 환경이라기보다 스스로 작동하는 시스템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운생동은 기술을 집을 관리하기 위한 도구로 보았나, 아니면 환경 자체로 전제했나? 또한 그 과정에서 건축가를 이 변화에 동조하는설계자로 보았는지, 혹은 기술과 물리적 환경 사이의 속도를 조율하는 또 다른 행위자라고 보았는지도 궁금하다.
장윤규: 기술은 삶을 바꾸며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만들어내는 환경이어야 한다. 에너지 플러스 하우스, 즉 에너지를 생산하는 집을 만드는 이유로 개별 세대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식도 바꿀 수 있다. 이러한 집이 많아지면 발전소의 수가 줄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런 것처럼 기술을 사용해 사회에 기여하는 틀을 만들어주는 것이 건축가로서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이은경: 스마트 기술을 전제한다면 보행과 도로의 체계, 배치와 커뮤니티 공간 조직이 기존 일반 주거 단지와는 달라질 가능성이 생긴다. 이 프로젝트에서 기술이 가장 분명하게 공간 구조를 바꾸었다고 느끼는 지점은 어디였나?
이재원: 나도 이 지점이 궁금했다. 기술과 건축 경계에서의 실험은 어떤 부분이었나?
장윤규: 기술이 커뮤니티가 된다. 이게 핵심이었다.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라는 기술의 집약체가 마을의 골목과 같은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으면 했다.

부산 에코델타시티 스마트 빌리지 스마트 코리도어 다이어그램(위)과 스마트 커뮤니티 다이어그램(아래)
신창훈: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사람의 주거 환경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탐구하는 것이 운생동의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 그런데 기술을 접목해 공간을 바꾸기가 쉽지 않더라. 지금의 기술은 물리적으로 보이거나 잡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때문에 우리는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와 커뮤니티 빌딩에 집중했다. 초기 마스터플랜에서는 정말 ‘스마트한’ 빌리지를 생각했다. 자동차는 단지 입구에 주차하고, 마을 안에는 자율 주행 로봇만이 돌아다닌다. 택배 등을 위한 서비스 차량은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까지만 들어오고, 그곳에서 각 세대까지 분산된다. 다양한 시스템이 결합된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는 자연스러운 만남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공간이다. 또, 스마트 빌리지는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를 축으로 앞으로는 근린 공원과, 뒤로는 청년 문화 광장과 만나기 때문에 도시적으로도 가장 퍼블릭한 곳이다. 주민 간의, 단지 내외부를 연결하는 기술 집약적인 공유의 장소인 것이다. 그런데 수자원공사 측에서 추후 분양을 고려해야 한다며, 개인의 자동차는 개별 주거 앞으로 들어왔고, 공사비 문제로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의 시스템들이 하나둘씩 빠지게 됐다.
이재원: 완벽히 실현되지 못했다고 했지만, 운생동이 상상했던 기술 기반 커뮤니티의 모습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를 통해 기존의 골목길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고자 했을 거다. 또 커뮤니티와 기술이 접목한다면 기술을 통해 집중되는 분산형 커뮤니티가 가능하다고 본다. 집중형 커뮤니티를 택한 의도가 무엇인가?
장윤규: 원래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는 온실과 같은 실내 커뮤니티로 계획됐다. 우리나라는 특히 봄에는 미세먼지가 기승이고,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추우니 365일 내내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해주는 거다. 날씨와 관계없이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또 커뮤니티 빌딩에는 개별 주거에서 수집한 바이오 데이터나 에너지 데이터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담고자 했다.
이재원: 여섯 가구를 하나의 블록으로 구성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신창훈: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에 개별 주거를 하나하나 연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여섯 가구로 구성된 클러스터를 만들어 연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가 전체 마을을 묶어주는 동시에, 여섯 가구는 이들만의 작은 커뮤니티를 이룬다. 또한 클러스터는 자연스럽게 패시브 기술로도 유용하게 작동한다. 여섯 가구의 지붕이 연결돼 있어 태양광 패널 수를 더 확보할 수 있었고, 2층은 서로 연결되어 효율적인 단열이 가능하다.

부산 에코델타시티 스마트 빌리지(2021)
건축가의 자율성을 담은 패시브 하우스
이재원: 실제로 많은 패시브 하우스가 지어지고 있지만 건축가가 형태적인 측면에서 개입해서 설계한 사례는 많지 않은 듯하다.
신창훈: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위해 창의 면적이나, 개별 유닛의 면적 등을 건축 설비, 전기 업체 등과 논의하며 설계해야 했다. 확실히 건축적인 측면만 고려해서 계획하기가 어렵더라.
이은경: 에너지 효율성, 패시브 기술을 고려하면 건축가의 자율성은 분명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 빌리지는 건축 외적인 기술적 개입이 크게 요구되는 프로젝트에서 건축가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담보할 수 있는지를 실험한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 빌리지 주거 유닛은 외피의 면적이 상당히 넓다.
장윤규: 맞다. 패시브 하우스에는 확실히 전형이 있다. 박공지붕에 두꺼운 벽, 남쪽에 작은 창을 낸 집. 이것은 기술로만 만들어진 집이다. 우리는 좀 더 건축적인 설계로도 에너지 플러스 하우스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건축적인 개입이 있어야 거주자의 삶이 풍부해질 수 있다.
이재원: 코오롱 E+ 그린홈(2011)에서는 지형을 연결한 새로운 타입의 지붕을 만들면서 새로운 구조의 패시브 하우스를 만들고자 했다. 스마트 빌리지에서는 그런 시도까지 가지 못한 것 같다. 특히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를 일반적인 온실 구조로 제안했다. 다른 구조나 배치의 온실도 가능했을 텐데, 왜 하필 일자의 전형적인 온실 구조를 택했는지 궁금하다.
장윤규: 초기에 스트리트 커뮤니티의 전형을 한번 제안해보자고 정한 후 그 방향을 고수했다. 그 과정에서 온실형의 스트리트를 디자인 모티브로 가져왔다.
신창훈: 온실형 스트리트라는 개념마저도 날아갈 뻔했다. 사업이 진행될수록 ‘실험 스마트 빌리지’라는 주제가 자꾸 흐려지더라.

코오롱 E+ 그린홈(2011) ©Sergio Pirrone
현실적 한계 속에서 건축가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이재원: 부산 에코델타시티는 한국수자원공사가 낙동강 하구언에 택지 개발을 한 신도시 계획 프로젝트라고 했다. 도시 개발과 계획 측면에서 SH 사업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새로운 것을 제안할 수는 있지만 시간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현실적인 한계가 많은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와 별개로 운생동이 자체적으로 친환경 건축, 기술과 감응하는 건축 등에 대한 연구나 개발 등을 이어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장윤규: 코오롱 E+ 그린홈 설계도 그런 실천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친환경 상상력으로 집짓기』(2014)라는 책도 집필한 적이 있고, 미래의 집(2022)과 같은 건축주 없는 자체적 프로젝트도 해오고 있다. 기술에 대한 연구만이 아닌 다양한 영역을 탐구한다.
이재원: 에코델타시티와 스마트 빌리지는 낙동강 하구의 삼각주에 신도시를 만드는 특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택지 개발로 신도시를 만드는 똑같은 방법으로 진행됐다. 이 부분은 건축가가 관여하고 조절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가 이 영역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
신창훈: 사실 신도시 개발과 다른 특별한 지점은 없다. 정말로 비어 있는 땅이었고, 우리의 설계는 이 블록에 한정됐다. 다만,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를 중심으로 커뮤니티의 축을 설정해, 여섯 가구로 구성된 블록들이 서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자연스럽게 하나의 스마트 빌리지를 이룰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우리의 역할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재원: 우리나라에서는 건축가가 도시를 만드는 데 개입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운생동은 스마트 빌리지, 풍경채 어바니티 등 건축 시장에 잘 열리지 않는 작업을 다수 해왔다. 건축가 집단이 도시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 것이 있나?
신창훈: 풍경채 어바니티나 스마트 빌리지 그리고 이번 프레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신내 컴팩트 시티 같은 프로젝트에서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또 건축가가 도시적인 맥락과 도시의 이상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프로젝트의 마스터로서 조율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의미 있었다.
장윤규: 나는 개인적으로 ‘도시로서의 건축’을 통해 이를 실천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도시와 건축을 각각 다르게 바라보기보다는 도시적인 구조를 건축 안에 담아보려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풍경채 어바니티 저층부에 기존의 도시와 유사한 도시 구조를 깔았다.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기존의 구조와는 완전히 다른 도시 구조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건축가가 도시에 관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아주 먼 일이기 때문에 아주 순수하게 건축적인 입장에서 도시적인, 사회적인 것을 탐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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