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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경계 위의 거주 | 운생동건축사사무소

글
장윤규, 신창훈 운생동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사진
남궁선 (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진행
김보경 기자

「SPACE(공간)」 2026년 2월호 (통권 699호) 

 

 

우리는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거주한다는 행위와 도시와 자연의 관계, 인간의 공동체 너머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를 설정한다. 

 

 

 

크로노토프 월 하우스(2015) ©Sergio Pirrone 

 

크로노토프 월 하우스(2015) ©Sergio Pirrone 

 

 

내면의 실험

운생동의 건축에서 ‘집’은 고정된 사적 공간이 아니다. 개인의 내면과 가족 관계, 공동체 윤리, 기술 환경, 도시 구조가 교차하는 복합적 장이다. 때문에 집은 물리적 경계로 정의되는 공간, 닫힌 보호막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 선택적으로 호흡하는 반투명한 장치이며, 삶의 리듬을 조직하는 하나의 생태적 시스템이다. 초기 실험에서는 건축적 요소를 재정의함으로써 거주의 방식을 재구성했다.

크로노토프 월 하우스(2015)에서는 구조적 한계로 폐쇄적일 수밖에 없던 전통적 의미의 벽을 가족 그리고 도시와의 소통의 구조로 치환하여 새로운 삶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활용한다. 자동차가 등장함으로써 도로의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을 바꾸어놓았듯이, 크로노토프 월 하우스의 벽은 매개 공간을 만들어 마당, 거실, 서재, 각자의 방에서 대각선으로 시야를 관통하게 하고, 공간을 확장한다.

큐브하우스(2023)는 내부적 중정을 탐구한다. 3×3 모듈 구조의 중심에 위치한 중정은 물리적 중심이자 감정의 축으로서, 공간적 깊이를 더하고 동선을 중첩시켜 사적 공간과 공용 공간을 통합한다. 입체적인 가족 간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중정은 가족 관계를 재구성하며, 통합된 삶이라는 거주의 본질을 드러낸다. 

 

 

 

부암동 주택(2014) ©Unsangdong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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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주택(2014) ©Unsangdong Architects

 

미래의 집(2022, 연구 프로젝트) Image courtesy of Unsangdong Architects

 

 

​공유의 리듬

운생동의 ‘하우스 10’ 시리즈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사적 공간과 공용 공간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특히 친족들이 꾸린 공동 주거 유형에서는 특수하게도 각 가족을 위한 사적 독립과 가족 공동체의 교류라는 두 가지 상반된 요구가 강하게 충돌한다. 개인의 삶은 존중되면서도, 자연·도시·이웃·가족과의 관계가 느슨히 연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성과 공동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입체적 삶의 구조를 탐구해야 한다. 운생동에게 주거란 고립된 단위가 아니라,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서 끊임없이 조정되는 살아 있는 조직이다. 

부암동 주택(2014)은 각각 거주하는 중년의 자매가 함께 사는 집이다. 친밀한 가족 간의 교류를 유지하면서도 분리된 삶이 필요했다. 박공 형식의 세 개의 볼륨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구조는 겹쳐지는 계단실, 슬래브 틈새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틈을 통해 시각, 소리, 공기 등이 전해지며 두 자매는 직간접적으로 한집에 거주하는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콰르테르 연립주택(2025)은 네 형제의 가족이 함께 사는 거대 가족 공동 주거 유형이다. 각 가족의 사생활을 지키는 동시에 가족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새로운 커뮤니티 개념이 필요했다. 각 세대는 개별 마당과 데크를 갖추고 있으며 이 전이 공간들은 1층에 위치한 공유 마당과 라운지로 확장되어 가족 간 소통이 이어진다. 사적 영역과 공유 영역 사이의 균형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험한 이중적 공간 구조를 통해 ‘함께 사는 삶’의 새로운 질서를 제시한다.





무교다동 스카이라이프(진행중) Image courtesy of Unsangdong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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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창의혁신 공공주택(공모안) Image courtesy of Unsangdong Architects 

 

 

도시적 확장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현대에는 공동 주거의 대안이 필요하다. 어쩌면 단독주택과 집합주택, 아파트의 본질은 동일할지도 모른다. 단독주택을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아파트가 절로 형성될 것이다. 거대 블록으로 구성된 공동 주거가 아닌, 작은 단위의 블록과 길로 이루어진 작은 동네와 같은 커뮤니티로 구성된 공동체 네트워크적 주거를 만들자. 작은 동네의 공동체가 모이는 외부 마당과 다양한 모습의 개인 거주 공간은 여러 가지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공동주택은 물리적인 환경의 쾌적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살아가는 동안 누적되는 기억이 핵심이다.

고덕 풍경채 어바니티(2024)는 작은 마을 다섯 개로 나뉜다. 저층부에는 모두에게 열린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고층부에서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브리지, 공유 데크, 옥상정원 등을 통해 개인의 삶이 확장되며 단지의 내부를 도시와 연결시켜 공공적 삶의 흐름을 내부로 끌어들인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은 명확히 분리되기보다 중첩되며 다양한 관계의 깊이를 허용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낸다. 이 공동 주거는 도시 속에서 공공성과 친밀성이 공존하는 ‘차이의 공동체’이자 ‘열린 도시적 거주 모델’을 제시한다.

 

 

 

코오롱 E+ 그린홈(2011) ©Sergio Pir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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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 E+ 그린홈(2011) ©Sergio Pirrone 

 

코오롱 E+ 그린홈(2011) ©Sergio Pirrone 

 

 

환경적 감응

오늘날 기술과 결합된 주거는 자연스러운 주거 형식이 됐다. 운생동은 기술을 효율과 친환경을 위한 도구로만이 아닌 감성적 공동체를 위한 매개체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데이터, 시스템, 네트워크는 삶을 통제하기보다는 삶을 이루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기술이 차가운 인프라가 아닌, 또 하나의 생태적 층위가 되는 것이다. 

코오롱 E+ 그린홈(2011)에서는 주거의 셸터 역할을 하는 지붕을 재정의했다. 대지의 형상을 차용해 추상적으로 변형된 지붕에 에너지 생산을 가능케 하는 기술을 결합해 ‘루프텍처’를 고안했다. 친환경 건축 기술과 최적의 시스템을 적용해 단순한 에너지 절약을 넘어 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속 가능한 주거 그리고 자연과 가깝게 생활할 수 있는 자연 친화형 주거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부산 에코델타시티 스마트 빌리지(2021)는 ‘기술과 함께 사는 도시’로 기획된 미래형 주거 단지다. 기술이 감성을 대체하지 않고, 오히려 확장시키는 감응적 주거 방식을 실현하고자 했다. 스마트 빌리지의 중심에는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가 있다.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는 각 주거 블록과 커뮤니티 라운지, 스마트 블록을 연결할 뿐 아니라 디지털 네트워크와 주민들의 삶이 하나의 생태적 구조를 이루도록 고안됐다. 사적 영역인 개별 세대에서 사적인 삶과 기술을 연결하고, 공용 공간에서는 기술을 매개로 감성을 확장하는 구조인 것이다.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는 단순한 기술적 인프라가 아니다. 옛 마을의 골목길처럼 이웃과 교류하며 정신적 교감과 위안을 만들어내는, 더 나아가 인접 단지, 도시 인프라로 확장되어 도시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공간이다. 스마트 커뮤니티 코리도어와 연결된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은 거주민들만의 개인화된 특별한 장소가 되는 등 주거 공간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콰르테르 연립주택(2025)​ ©Jang Mi

 

 

​자발적인 공동체, 함께 만들어나가는 공동체

커뮤니티는 “지연(地緣)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 공동사회”를 뜻한다. SNS를 통해 더욱더 열린 사회가 될수록 커뮤니티의 개념은 무한히 확장되는 동시에 이제는 지역적이고 물리적인 커뮤니티는 사라진 듯하다. 단순히 지역적인 연결을 넘어 스스로 인연을 만들어내는 자발적인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 때문에 커뮤니티의 회복을 위해서는 단순한 관료적 개입을 넘어 마을 주민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살아 있는 커뮤니티는 공동체 스스로가 만들어내야 한다. 주어진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주민이 공동체의 중심이 되어 프로그램을 생성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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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PACE(공간)」 699호(2026년 0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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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규
장윤규는 건축 관련 현상을 탐구하고 건축의 개념에서 물리적 실체가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진보적 건축가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장윤규건축실험아뜰리에를 세웠다. 이후 운생동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해 변화하고 움직이는 새로운 시대의 건축에 주력했다. 한국건축문화대상, 서울시건축상, 한국건축가협회상 등을 수상했고, 해외 유수 건축 매체와 어워드에 이름을 올리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현재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신창훈
신창훈은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장윤규와 함께 실험적, 개념적 건축을 실현하기 위해 운생동건축사사무소를 결성했다. ‘스페이스 코디네이터’와 ‘건축공감’을 기획·운영하며 한국 건축 아카이브와 소개에 힘쓰고 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를 역임했고 수성구 총괄건축가로서 수성국제비엔날레 부위원장을 맡았다. 이외에도 한국건축가협회 젊은건축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대중 건축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