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5월호 (통권 702호)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서버동 내부 공사 모습 ©Jang Mi
DIALOGUE 이명진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정림건축) 첨단설계부문 대표이사, 기현철 정림건축 설계부문 디자인 기술 통합지원센터 SU(Strategy Unit) 디자인파트 파트장, 박재완 정림건축 설계부문 JDI(Junglim Design Innovation) BU(Business Unit) 리더, 안정택 정림건축 첨단설계부문 빅테크 BU 리더, 이호 정림건축 첨단설계부문 모빌리티 BU 소장 × 김정은 「SPACE(공간)」 편집장, 방유경 「SPACE」 기자
SPACE: 이번 대담은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설계사무소인 정림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정림건축)가 최근 10여 년간 진행한 프로젝트를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톺아보는 자리다. 앞서 전시와 강연을 통해 ‘내일의 지구를 위한 정림의 건축’이란 제목으로 정림건축의 작업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주제에 주목하게 된 배경부터 이야기해 보자.
이명진: 2025년 21차 인천아시아건축사대회와 2024년 한국건축산업대전(KAFF)에서 ‘내일의 지구를 위한 정림의 건축’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진행했다. 이 시대의 건축적 이슈와 정림건축의 디자인 철학을 작품과 담론, 재단과 출판 활동 등을 통해 꾸준히 제시해왔으며, 위 전시를 통해 사회의 보다 넓은 소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1967년 정림건축이 설립된 이후 60여 년 동안 4,000명이 넘는 설계 인력이 회사를 거쳐갔다.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힘을 합쳐 ‘조직설계’를 통해 사회의 요구와 필요에 대응해온 것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우리가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성과 지향점을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응답하는 맨 처음 주제가 바로 ‘지속가능성’이었다. 친환경 건축에 대한 사회적 요청의 확대, 국내외 업계의 흐름 변화에 대응해 집단지성과 조직설계를 통해 우리의 메시지를 알리고자 했다.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전경 ©Jang Mi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운영동(왼쪽), 서버동과 운영동 사이 연결도로와 브리지(오른쪽) ©Jang Mi
에너지 소비 최소화: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SPACE: 정림건축에서 제시했던 ‘지속가능성을 위한 9개 전략’에 따라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좋을 듯하다. 먼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데이터센터는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건축이다.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이하 각 세종)이 ‘에너지 소비 최소화’의 사례로 언급됐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공법과 기술이 도입됐는가?
안정택: 각 세종은 정림에서 2023년 1단계(서버동, 운영동)를 완성한 뒤, 같은 해 12월 「SPACE(공간)」에 소개된 바 있다. 당시 전체 마스터플랜과 배치를 통해 기존 자연 생태계를 어떻게 보존할지, 파사드 디자인과 공조 설비 등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어떻게 절감할지, 인간과 로봇을 위한 공간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특히 에너지 소모가 집중된 서버실의 경우, 네이버에서 개발한 ‘NAMU’라는 시스템을 적용하여 에어컨 대신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서버실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혔다. 이때 서버실에서 배출된 따뜻한 공기는 온수 및 난방에 재사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SPACE: 현재 2단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나?
안정택: 데이터센터는 준공 시점에 모든 서버실이 동시에 가동되는 경우가 드물다. 내부 주요 기계, 전기, 통신 설비 구축 이후 서버는 단계적으로 설치되기 때문에 가동 초기에는 보통 전체 용량의 일부만 운영된다. 각 세종 역시 준공 당시 전체 서버실의 약 3분의 1 정도에만 서버가 배치된 상태였다. 하지만 챗GPT의 등장 이후, 인공지능(AI)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핵심 기술로 급격히 부상하면서 데이터센터 산업은 예상보다 빠르게 확장 국면에 들어섰다. 이러한 변화로 네이버에서 남은 3분의 2 서버 공간을 AI 인프라에 맞춰 재구성해 달라는 2단계 설계를 요청했다. 2단계 사업에서 느낀 큰 차이는 ‘급속하게 발전하는 기술의 속도에 건축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완성된 건축물 내부에서 진행되는 핏아웃(FIT-OUT) 공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 기술 환경이 크게 변화했다. 데이터센터의 성능은 서버 랙 밀도로 판가름되는데, 불과 몇 년 사이 서버의 전력 밀도는 기존보다 두세 배가량 증가했고, 고밀도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부하를 처리하기 위해 기존의 공랭식 냉각에서 액체냉각으로 바꾸는 큰 변화가 따랐다. 기술의 발전이 단순한 장비 교체가 아니라 건축과 설비 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최근 진행 중인 다른 데이터센터와 비교하면, 서버실 층고도 불과 몇 년 사이 6m에서 8m 이상으로 기준이 변경되었고 복도 폭, 장비 반입구 크기 등의 표준 규격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데이터센터 설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기술과 설계 사이의 시간차다. ICT 기술의 발전 속도는 건축의 물리적 구축 속도를 훨씬 앞선다. 그래서 데이터센터 초기 기획을 할 때마다 ‘어떤 시점의 기술을 기준으로 서버 밀도와 냉각 방식을 설정해야 하는지’ 고민을 반복하게 된다. 특정 기술에 맞춘 완결된 설계보다 기술 변화의 압력을 흡수할 수 있는 유연성과 가변성 확보가 데이터센터 건축의 중요한 화두다.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서버동 공사 모습 ©Jang Mi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서버동 옥사 공사 모습 ©Jang Mi
SPACE: 최근의 흐름을 보면 데이터센터 자체의 개념도 변화하고 유형도 다양화되는 것 같다. 에너지 소비와 규모, 입지 측면에서 어떤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안정택: 에너지 소비의 핵심인 전력망은 프라임 그리드와 마이크로 그리드로 구분된다. 프라임 그리드란 한국전력공사처럼 발전소에서 도시 단위로 전력을 공급하는 중앙집중형 전력망이다. 마이크로 그리드는 특정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전략을 생산, 저장, 소비하는 소규모 전력망으로, 독립적인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프라임 그리드로 공급이 끊기는 비상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전기를 많이 쓴다’는 인식이 강해 님비(NIMBY) 시설로 여겨지면서 도심에서 밀려나 외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최근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약칭 「분산에너지법」)과도 맞물려 있다. 현재는 프라임 그리드에만 의존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마이크로 그리드를 병행하기 위해, 데이터센터가 들어선 지역 일대나 대지 내 건물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상시 사용하는 것이다. 올해 2월 시행된 「신재생에너지법」에 힘입어 신재생에너지도 도입하고 있는데, 데이터센터나 산업시설에서 요하는 수요 대비 전력량이 미비해 도시가스를 이용한 가스 터빈 발전기나 퓨얼 셀(연료전지) 등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기존 데이터센터에서는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데 얼마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소모하는지를 가리키는 전력 효율 지수(PUE, Power Usage Effectiveness)가 중요했다. 하지만 데이터센터의 역할이 AI 데이터센터로 진화하면서 단순 저장과 정보 처리에서 ‘데이터 생성’으로 개념이 바뀌고 있다. 이제는 얼마나 효율적(전력, 시간 등)으로 많은 토큰(AI 모델이 처리하는 언어의 최소 단위)을 생성하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최근 AI 데이터센터를 ‘토큰 팩토리’로 규정하는 시각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AI 데이터센터는 학습과 추론이라는 두 가지 기능에 따라 유형이 구분된다. 학습형은 쉽게 말해 로봇을 학습(반복 연산)시키는 것이고, 추론형은 예약할 때 나오는 AI 자동 응답 음성처럼 이미 학습된 모델을 기반으로 서비스(반복 호출)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전력 공급이 중단되더라도 학습 서비스는 지연될 뿐 기능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응급 출동이나 차량 자율주행 등에 사용되는 추론 기능은 서비스가 지연되거나 멈추는 순간 큰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비상 발전기나 배터리 시스템 같은 이중화 설비가 학습형보다 훨씬 중요하다. 학습이나 추론 서비스의 반복 연산을 위해 대규모 GPU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농사할 때처럼 들판에서 GPU가 돌아간다는 뜻으로 ‘GPU 파밍(farming)’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여기에서 나아가 단위 모듈화된 서버 랙들이 바닥에 깔려 있고 건물은 동떨어져 있는 모듈러 데이터센터 유형도 생성되는 중이다. 일종의 플랜트 시설처럼 확장되다 보니, 데이터센터에서 건축가가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 그 경계조차 모호해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서버동 내부 공사 모습 ©Jang Mi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서버동의 옥상 파사드 공사 모습 ©Jang Mi
SPACE: 용산의 KT 데이터센터처럼 도심 한복판에 세워지는 경우도 있는데 위치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나?
안정택: 각 세종과 같은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필두로, 최근 도심과 교외에 다양한 규모의 데이터센터들이 개발되고 있는데 몇 가지 양상이 감지된다. 앞서 언급한 「분산에너지법」에서는 무분별한 데이터센터 개발을 방지하고 전력망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전력계통 영향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데이터센터 건축 인허가가 과거에 비해 까다로워지다 보니 전력계통 영향평가 적용 기준을 피하기 위해 최근 몇 년 사이 수전량 10MW 미만(각 세종 수전량 270MW)의 소규모 데이터센터를 전략적으로 개발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또 다른 흐름은 폐공장이나 기존 산업시설의 잉여 전력을 활용한 엣지 데이터센터 개발이다. 기존 산업구조의 변화로 활용도가 낮아진 산업시설을 데이터 인프라로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일례로 영등포 일대에서는 여의도 금융권을 주요 사용자(임차인)로 하는 소규모 엣지 데이터센터 개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SPACE: 향후 데이터센터 건축은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 예측하나? 이때 건축가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안정택: 오늘날 데이터센터는 단일한 유형의 건축물이라기보다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엣지 데이터센터,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AI 데이터센터, 모듈러 데이터센터, GPU 파밍 인프라, 토큰 팩토리 등 다양한 개념과 명칭이 등장하고 있다. 용어는 다양하지만 결국 수렴하는 본질은 똑같다. 데이터센터는 에너지, IT 인프라, 건축, 설비, 도시 인프라가 결합된 복합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데이터센터 설계는 단순한 건축 프로젝트가 아니라 전력, 냉각, ICT 인프라, 도시계획, 정책 환경까지 포괄하는 다학제적 접근을 요구하는 영역이 되었다. 건축가의 역할 또한 건물의 범주를 넘어 기술 변화와 도시 인프라 사이의 균형을 설계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현철: 얼마 전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면서 싱가포르와 최인접 지역인 조호르바루를 찾았다. 싱가포르 정부가 2019년부터 에너지 및 물 소비 문제를 이유로 데이터센터 건설을 제한하면서,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가 그 대안으로 부상했다. 싱가포르 내부의 수요뿐 아니라 구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면서, 조호르바루는 이제 아시아 최대 데이터센터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도시를 지나면서 나는 무인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수히 많은 건물이 있지만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노동력을 필요로 해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과거의 도시였다면, 지금은 에너지와 데이터가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랄까. 그 모습이 금세 와닿지 않고, 한편으로 휴먼 스케일이 이 도시에 맞는 개념인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인간 중심으로 구축된 종래의 도시 개념과 새로운 도시 개념이 어떻게 공존할지 응답해야 하는 문턱에 다다른 것 같다. 데이터센터를 설계할 때 건축가들이 이러한 맥락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서버동의 저층부 파사드 공사 모습 ©Jang Mi

공조시스템 NAMU ©NAVER Corporation
저탄소 재료: LG ThinQ Home
SPACE: 다음 주제로 넘어가보자. 지속가능성을 말할 때 항상 따라오는 주제가 ‘재료와 기술’이다. 설계공모를 통해 진행된 에너지 절감형 주거시설인 LG ThinQ Home(이하 씽큐홈)은 국내 최초의 제로에너지 하우스라고 들었다. 설계하면서 어떤 지점에 중점을 두었는지 궁금하다.
기현철: 발주처인 LG전자에서 자사의 제품들을 접목할 수 있는 미래 주택을 제안하는 설계공모를 진행했다. 씽큐홈에서는 저탄소 재료도 중요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미래의 집’이 더 중요한 주제였다.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가 당시 최신 기술의 산물이었던 자동차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필로티 형태로 설계되었다면, 고도로 발전한 가전제품과 AI 같은 스마트 기술이 집에 도입될 때 공간이 어떻게 바뀔지 탐구하고 싶었다. 코르뷔지에의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다음은 무엇일지 상상하는 것이다.
SPACE: 구체적으로 미래의 집은 어떻게 변화하리라 상상했나? 이는 실제 어떻게 실현되었나?
기현철: 공간적으로 제일 크게 달라질 부분은 현관이라고 생각했다. 설계공모를 진행할 당시 팬데믹 기간이었기 때문에 현관은 클린룸처럼 성격이 달라질 것이라고 보았다. 이를 반영해 중문 상부에는 오염물질 제거를 위한 에어샤워를 설치하고, 스타일러와 손 세정용 세면대를 함께 배치했다. 집 내부에 실현된 것 중에서는 두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먼저 코르뷔지에의 ‘자유로운 평면’은 키네틱 평면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움직이는 벽들을 계획했는데 그 벽들 중 하나가 지어졌다. 코르뷔지에는 자유로운 입면을 제시하면서 가로로 긴 창을 선보였는데, 그다음 단계를 고민하면서 ‘상황에 따라 변하는 외장’을 상상했다. 건물의 스킨이 투명/불투명으로 유연하게 바뀌는 제안은 스마트 글래스로 구현됐다.

LG ThinQ Home의 북측 정면

LG ThinQ Home의 남측 입면
SPACE: 건물의 주요 에너지원인 태양광 패널(BIPV)은 기존의 패널들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에너지 자립률 121.66%를 어떻게 달성했는지 알려 달라.
기현철: 기존 태양광 패널을 건축가들이 많이 사용하지 않운 데에는 미적인 이유가 크다. 특유의 푸른 색감 때문에 활용(디자인)에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성능은 유지하면서도 푸른 색감을 없애기 위해 상의한 끝에 회색 특수 코팅 방법을 LG전자에서 개발했다. 현재 태양광 패널의 기술 발전은 색상을 다양화하고, 두께를 얇게 하는 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대개는 효율이 조금 떨어지는 걸 감수하지만, LG전자에서 여러 목업을 만들면서 성능 저하가 거의 없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여기에 더해 마이크로 인버터도 에너지 자립률을 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반적으로 태양광 패널은 여러 개를 설치하더라도 모두 하나의 인버터로 연결돼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패널 중 하나라도 그늘이 지면 인버터 전체 효율에 영향을 주어 수치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하고자 패널 1~3개당 마이크로 인버터를 조밀하게 설치해 그늘이 지더라도 해당 패널만 영향을 받도록 성능을 개선했다. 그 밖에도 집에 배터리실을 두어 낮에 과잉 생산된 태양광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저녁에도 쓸 수 있는 에너지 세이빙 시스템(ESS)을 적용한 것이 에너지 자립률 달성의 주된 요인이었다.
SPACE: 친환경 건축 재료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씽큐홈에서 설계자로 재료 개발에 참여하면서 어떤 지점을 고민했는가.
기현철: 처음 개발된 재료를 시도할 때는 아무래도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기 마련이다. 안 쓰던 것을 사용하려면 검증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건축가가 재료 제조사의 매뉴얼을 파악하고,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 기술을 숙지하고, 원하는 디테일을 커스터마이징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관성적으로 기존 재료를 계속 쓰게 되는 거다. 제조사 입장에서 보면, 특허를 내고 고기능성 자재를 개발하더라도 성능 검증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오롯이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구조라 건축자재가 쉽게 다양해지지 못하는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발주처와 태양광 패널을 개발할 때도 부득이하게 패널을 다른 재료로 교체할 경우 호환될 수 있도록 국내에서 많이 쓰이는 건식 재료 규격을 조사한 뒤 300×900mm 크기로 제작했다. 덕분에 태양광 패널이 부착되지 않은 입면의 외장재와도 규격이 동일해 시각적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친환경 건축자재 개발을 장려하려면 근본적으로 친환경 건축 인증 제도, 자재 성능을 검증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할 수도 있다. 벽돌, 철근, 콘크리트와 같은 기성 재료를 친환경적으로 활용하거나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LG ThinQ Home 2층의 움직이는 벽 가동 모습

LG ThinQ Home 3층의 스마트 글래스가 투명에서 불투명으로 바뀌는 모습
SPACE: 한편 씽큐홈과 같은 친환경 건축이 목적과 달리 과도한 설비와 시설을 요하며, 태양광 패널 생산에도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가 소모되는 등 고에너지 건축이라는 비판도 있다. 전자제품과 통합된 모듈시스템의 오작동 위험을 우려하는 입장도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기현철: 짐작해보건대, 씽큐홈은 집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지만 그에 앞서 집을 짓는 데 훨씬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을 것이다. 또한 인간이 건물 환경을 직접 제어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볼 때 모든 것이 자동제어되는 씽큐홈을 비인간적 건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짚자면, 급격하게 발전하는 동시대 기술을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시하는 실험적 프로젝트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선구적 작업에는 항상 그만큼 대가가 따르지 않나. 이런 맥락에서 친환경 건축의 대안으로 목구조가 각광받는 것도 환영할 일이다. 최근 유럽에서는 공공 건축을 의무적으로 목구조로 짓도록 유도하는데,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모든 건축물을 목구조로 설계할 수는 없다. 정림건축과 같은 대형 설계사무소에서 감당해야 하는 몫을 생각하면 대형 건축물을 짓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적게 짓는 것이고, 그다음은 건물의 중량을 줄이는 일이다. 한국은 철근콘크리트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다. 정림건축은 1~2층짜리 건물이 아니라 대규모 건물을 설계하는 집단이지 않나. 충진강관(CFT, Concrete-filled Tube) 방식이나 합성보 등 새로운 기술과 방법을 탐구해 대형 건축물의 중량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하고, 철근콘크리트를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연구하는 것, 정림건축이 이러한 방향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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