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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조건을 건축으로 만들어가다 | 온건축사사무소

사진
윤준환
자료제공
온건축사사무소
진행
박지윤 기자

「SPACE(공간)」 2026년 6월호 (통권 703호) 

 

 

 

인터뷰 정웅식 온건축사사무소 대표 × 김정은 「SPACE(공간)」 편집장, 박지윤 「SPACE」 기자

 

 

​지나온 환경과 관심사

SPACE: 울산에서 나고 학업과 실무를 하고, 독립했다. 서울이 일자리나 문화적 기회 등 인프라가 풍부한 편인데, 학업 후 울산에 머무른 것은 의지적 선택이었나 혹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나? 

 

정웅식(정): 의지적 선택에 가깝다. 서울의 좋은 인프라 속에서 수련한 후 독립하는 게 수월하리라고 감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길이나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각 지역별로 건축 인프라가 다양하게 유지되는 데 반해 왜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한지 의문을 가졌다. 이후 지방 학생들이 서울의 좋은 사무소를 다닌 후 고향에 내려와 자신의 사무소를 여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는데, 자신의 색을 뚜렷이 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 싶은 건축을 하기에 서울과는 다른, 지방의 현실적인 어려움들에 부딪혀서 그랬을 것이다. 서울과 지방 사이에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어떤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직접 확인하고 경험하고 싶었다.  

 

SPACE: 유년 시절에는 자연과 한옥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이것은 본인의 건축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정: 솔직하게 말하자면, 과거에는 자연, 한옥과 내 작업의 연관 관계를 찾거나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백그라운드 없이 건축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이나 좋아하는 건축가 등 내 건축의 기틀이 될 만한 것들을 물어보면서 연결될 만한 지점을 만들어내주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모두 자연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에 자연은 나에게 상상의 자유를 준 것 같다. 구름을 보며 여러 모양을 그려보고, 나무 껍질 패턴을 관찰하는 등의 시간들이 설계를 할 때 대지를 해석하고 사물을 바라보는 나름의 관점을 형성하게 해준 것 같다. 또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애정이 있는데, 한옥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감성 때문에 좋아한 것 같다. 외갓댁의 대청과 툇마루에서 보낸 다양한 기억들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외부의 중첩된 겹의 공간을 좋아하는 것은 이때부터 무의식 속에 각인된 것 같다. 

 

​SPACE: 언급한 ‘겹’과 자연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자연과 공간의 관계를 조율하기 위한 겹은 내부 공간에서 작동한다. 그런데 외부에서는 자연에 대한 태도가 사뭇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호리굴(2025)과 뜬곡(2026)은 각각 동굴과 협곡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고, 논스페이스(2021, 「SPACE(공간)」 661호 참고)는 기존에 있었던 논의 질서 체계를 따온 것이다. 여기서 자연은 외부 조형으로 은유되며, 건축은 자연 지형에 스며들기보다 두드러진다.

 

정: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인데, 조형은 나의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조형을 먼저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고 건축적 관계와 공간들을 조직한 결과가 형상으로 드러난 것이다. 동굴, 협곡, 논은 모두 그 사물이 갖고 있는 생태 시스템을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건축적 체계로 전환했다. 동굴은 어두운 비정형의 원시 공간에서 빛이 모든 세상을 연결하는 것이라 여겼고, 협곡은 배의 이동을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하면서 효율적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라 간주했다. 논은 벼를 재배하는 공간, 논두렁의 관계를 형성한 그리드 경작지, 벼가 경작되는 가로와 세로 질서 체계의 무한 확장성을 가진 효율적 시스템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관점은 프로젝트에서 대지가 가진 환경과 만나고 프로그램의 공간을 조직하는 건축의 주요 주제로 작동한다. 내부 공간에서 작동하는 자연은 의도적으로 잘 조율된 자연이고, 자연 그 자체는 건축에 영감을 주는 은유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SPACE: 학창 시절 루이스 칸과 프랭크 게리와 같이 사뭇 다른 특징을 보이는 건축가를 동시에 좋아했다는 게 흥미롭다.

 

정: 건축의 본질인 공간, 구조, 빛을 하나로 통합한 부분을 좋아한다. 이것을 칸은 형식적 질서 속에서 조직하고 게리는 비형식적 질서 속에서 조직한다. 또 칸은 ‘방’으로, 게리는 ‘파편’으로 접근하는데 개별 공간들을 뜯어서 재해석하고 재배치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내가 좋아하는 건축 방식이자, 여전히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축이다. 

 

 

 

 

 


​건축주와 시공

SPACE: 울산의 사무소에서 실무를 할 때 지역에서 건축을 하겠다는 의지는 여전히 견고했나?

 

​정: 솔직히 힘들긴 했다. 내가 직접 맡았다면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하며 집에서 혼자 진행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울산에서의 실무는 울산이라는 도시의 건축적 환경이나 시스템을 이해하는 토대가 됐다. 예를 들어 울산의 잠재적 건축주들이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들을 설득하거나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어떻게 좋은 건축을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그렇다면 서울과 울산의 환경적 차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묻기도 하는데 나는 서울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차이는 모른다. 

 

SPACE: 현재 기획, 브랜딩, 가구, 시공, 조경이라는 넓은 영역을 직접 맡고 있는데, 이는 울산의 산업적 조건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정: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으라는 말이 있지 않나. 건축주들의 예산이 일반적으로 빠듯해 전문가를 데리고 올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건축가로서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각 프로젝트마다 생기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게 됐다. 스테이 이름도 짓게 되고, 브랜딩 스토리와 가구도 만들게 되고, 식물도 심게 됐다. 담당하는 영역이 넓어지고 스테이나 카페를 다루게 되면서 기획자나 인테리어가 만든 상업 공간과 건축가가 만든 상업 공간이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 건축이 기획을 아우를 때 가능한 것 같다.  

 

SPACE: 기획이 건축을 아우르는 것과 건축이 기획을 아우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정: 내가 알기로 기획자들은 상업 분석을 통해 타깃팅을 하고, 건축은 그 타깃에 의해 만들어진다. 나도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하게 설명은 못하겠지만, 후자는 건축을 중심으로 일관성을 갖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건축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름이 탄생하고, 그것에 맞춰 공간을 꾸미고, 소품과 같은 연출까지 준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호리굴은 호리한 동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곧 공간의 형상이며, 이야기로써 브랜딩이 되고, 로고도 된다.  

 

 

 

 

 

 

SPACE: 뜬곡 같은 경우에는 운영과 수익의 측면을 분석해서 객실을 세 개가 아닌 두 개로 제안하기도 했다. 운영 전략까지 함께 고민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한편, 값싼 재료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손수 다루고 있다. 재료의 단가와 시공의 난이도를 동시에 낮추면서 창의력을 발휘해 경제성을 조율하고 건축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정웅식의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정: 아마 기획자라면 객실을 세 개로 계획했겠지만, 좋은 공간을 가진 건축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두 개의 객실을 제안한 것이기도 하다. 재료와 관련해서는 사용하고 싶은 재료가 고가이다 보니 현실에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호리굴의 경우 스터코와 비슷한 끈적끈적하고 입자가 굵은 제품을 사용했는데 재료의 특성을 활용해 투박한 물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목장갑을 끼고 여러 번 터치를 하면서 원하는 물성을 구현했다. 벽·선·들(2024)의 내부에서 했던 실험이 확장돼 외부에 구현하게 된 경우다. 닫힌집,열린집(2019, 「SPACE」 623호 참고)에서는 종석미장을 구현하고 싶었는데 이는 1980년대 유행했던 마감 방식 중 하나로 지방에는 만들 수 있는 기술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도권에서 작업자를 구해오자니 공사비가 과하게 올라갔다. 그래서 분갈이용 돌을 갖고 현장에서 새롭게 배합해 일용직 작업자도 작업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호리굴에서는 이러한 마감 방식에 더해 어두운 톤을 만들고 싶어서 재료에 먹물을 섞었다. 그런데 배합 과정에서 먹물을 넣으니 원하는 색으로 구현되지 않아서 검은 안료와 먹을 혼합하고 스펀지에 먹여 다시 손수 터치를 해 원하는 농도의 색을 구현했다. 뜬곡에서는 일반적인 살수 치핑과 다르게 구현해보고 싶었다. 요즘 프로젝트를 보면 살수 치핑은 균질한 면을 만드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조금 더 투박한 물성을 좋아한다. 면을 더 거칠고 깊이 있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살수의 압력을 조절하고, 한번이 아니라 두세 차례 치핑을 해 자갈이 표피로 나오도록 만들었다. 또 일부 벽을 공사하던 중 소음으로 민원이 생겨 살수 치핑을 못하게 됐는데 이것이 오히려 기회가 됐다. 다른 방식으로 빛에 반응하는 질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치핑이 콘크리트를 안으로 파서 음영으로 빛에 반응하는 것이라면 이번에는 무언가를 부착해서 양각으로 반응하는 벽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렴하고, 작업이 단순한 방법으로 찾다 보니 작은 자갈을 벽에다 직접 던지게 됐다.

 

SPACE: 시공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은 흔히 디테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과도 연결되는 일인데, 정웅식은 디테일 대신 공간의 힘으로 건축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 같기도 하다. 

 

정: 내 건축에는 디테일이 없고, 디테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비용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재료를 레이저 커팅하고 절곡을 한다고 하면, 지방에는 이를 위한 공장이 없어 단가가 높아진다. 아마 서울 건축가들이 좋은 디테일을 설계해도 지역에서 구현하기 어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디테일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기도 하고, 이곳의 작업자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계하려고 한다. 그래서 구축적 방식이나, 건축 프로그램 간의 역전이나, 공간의 재배치에 관심도가 높은 것 같다. 또 시공의 퀄리티는 단순히 디테일과 연관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골조가 특정 치수로 설계된 의미를 이해하느냐, 이해하지 못하느냐도 중요하다. 

 

SPACE: 사무소의 환경도 특별하다. 온건축사사무소는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울산의 한 농촌마을에 자리한다. 해당 부지가 곧 주택개발이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만약 상황이 변해 일반적인 사무실에서 설계하게 된다면 본인의 건축이 달라질 것 같은가?

 

정: 아마 일반적인 건물에 사무소를 차리지는 않을 것 같다. 도심 안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싫어서 자연으로 왔기 때문이다. 또 서비스 산업이 농촌에 흡수돼 자리 잡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 대안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실험하고자 직접 조그마한 실천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작동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음에도 비슷한 실험을 이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AI가 발달하고 워케이션 문화도 등장했기 때문에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뜬곡(2026)

 

 

지역 건축가라는 말

SPACE: ‘지역성’이 건축물의 미학적 차원에서 드러난다고 한다면, 정웅식은 지역성 있는 건축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지역의 산업적 토대 위에서 작업하는 ‘지역 건축가’라는 표현이 적합해 보인다. 그러나 정웅식을 지역 건축가라고 정의하기는 조심스럽다. 차별화를 통해 화제성을 갖기 쉽고 다수의 응원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정웅식의 작업을 지역에만 치중해 해석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역 건축가에 대한 논의가 지역 건축가가 아닌 사람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 또한 의식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인은 자신을 지역 건축가로 프레이밍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 지역 건축가임을 의식하고 작업한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에 솔직히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다. 다만, 지역 건축가로서만 자주 소개되다 보니 이제는 다르게 프레임되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 

SPACE: 작품을 투고했을 때, 한동안 많이 보이다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스테이 작업이 포함되어 있어 이 용도의 건축이 지역에서는 여전히 유효한지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지역의 산업적 환경과 연관 짓는 것도 선호하지 않는 편인가?

 

정: 우선 작업 자체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나의 경우 건축계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고 작업을 애지중지 모아서 「SPACE」와 같은 매체에 내면 그때 한번 크리틱을 받는다. 건축적인 조언을 받아야 어떤 방식으로 다음 작업을 할지 생각을 이어갈 수 있다. 

 

​SPACE: 마지막 질문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에게는 주로 어려움을 묻기 마련이니 반대로 울산을 기반으로 건축을 할 때 장점을 묻고 싶다. 

 

정: 지역 건축가뿐 아니라 모든 건축가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장점에 대해서 말하자면, 건축을 백지와 같이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을 만들어나가야 할 이론, 풀어야 할 시스템, 접근하는 태도와 같은 것을 학습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울산에서 내가 고민하고 생각한 대로 시도할 수 있는 것 같다. 울산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선 하나를 긋는다고 해도 그 선이 새로운 가능성이 될 여지가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월간 「SPACE(공간)」 703호(2026년 06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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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식
정웅식은 울산대학교를 졸업한 (주)온건축사사무소의 대표 건축가로 울산대학교 스마트·도시융합대학 건축·도시환경부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김남수, 김혁기와 함께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건축의 소소한 관계들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작은 것들에서 시작되는 사회적 변화와 새롭고 의미 있는 가치관 생성을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 한국건축가협회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울산건축상, 아키텍처 마스터프라이즈, 아키타이저 A+, iF 디자인 어워드, 독일 디자인 어워드, BLT 디자인 어워드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