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5월호 (통권 702호)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Jang Mi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정림건축)는 지난 60여 년 동안 집단지성과 조직설계를 바탕으로, 시대가 요구해온 국가, 도시, 시장, 문화, 사회의 과제에 대해 건축적 해법을 제시해왔다. 정림건축의 역사는 개별 건축의 성과를 집적한 결과가 아니라, 시대의 구조적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해온 태도이자 그 과정이었다. 1967년 창립 이후 전후 복구를 넘어 경제개발과 산업화, 기술 근대화, 도심 재개발 정책이 추진되던 시기에, 우리는 국가 주도의 성장 전략과 도시의 발전을 공간적으로 구현하는 실행자였다. 1980년대 후반 냉전의 종식과 한국의 민주화 이후에는 국가 상징의 재구성과 함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공공 인프라와 나라의 얼굴을 설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사회는 신자유주의와 민간 중심 경제로 재편되었고, 도시의 질적 성장을 위한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건축설계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정림건축은 국가 주도에서 시장과 산업 중심의 건축으로 전환하며 업무, IT 정보, 전시, 관람, 여가, 상업, 의료 인프라를 설계하는 전문적인 공간 플랫폼 설계자로 진화했다.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소비, 여가, 체험 중심으로 도시가 재편되었고, 건축은 상품이자 동시에 도시의 공공무대로 확장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형 복합개발과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업무, 상업, 주거, 여가 시설을 도시의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전환시키며 경험의 도시를 설계해왔다. 2010년대 후반, 2015년 파리협정과 2016년 4차 산업혁명 담론 이후, 우리는 환경, 기술, 산업, 사회, 도시,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구조적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기후 위기 대응과 탄소 저감,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 첨단 산업 생태계의 재편, 고령화와 지역소멸, 그리고 다변화된 삶의 방식은 건축이 더 이상 단일 기능의 해결을 넘어 복합적 시스템으로 작동할 것을 요구한다. 정림건축은 이러한 변화에 귀를 기울이며, 건축을 통해 미래를 선제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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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
2027년은 정림건축이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기도, 새로운 시작을 내다보기도 좋은 시점이다. 이를 계기로 삼아 지난 활동과 작품에 대한 단순한 회고를 넘어, 그 시대적 의미와 가치를 재정의하고,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좌표를 설정하며, 향후 100년을 향한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래를 위한 첫 번째 주제로 ‘지속 가능한 건축’을 설정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접근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대한 집단지성과 조직설계의 통합적 응답으로, 그 주제 설정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후 위기와 글로벌 의제의 변화다. 파리협정 COP21과 글래스고 COP26은 이 위기를 타개할 목표 설정을 넘어 실행과 이행의 단계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건축은 이제 탄소중립 사회를 실현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둘째, 고객과 사회의 요구 변화다. RE100, 넷제로(Net Zero)와 같은 글로벌 이니셔티브는 기관과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친환경 건축의 의무적 기준을 넘어 기업의 생존 전략과 가치 체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셋째, 글로벌 설계 시장의 변화다. 유럽과 미국의 건축협회와 글로벌 설계사무소들은 전과정평가(LCA) 기반 설계, 내재탄소 관리, 넷제로 전략을 조직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수립하고 이를 위한 설계기술을 개발하고 실현하고 있다. 이는 지속가능성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설계 경쟁력의 핵심 요소임을 보여준다.
넷째, 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 그리고 정림건축의 정체성이다. 정림의 미션인 ‘건강한 공간 환경을 만들어 더불어 사는 세상과 함께 한다’는 선언은, 지속가능성을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자 윤리적 과제로 인식하는 출발점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지속해온 지속 가능 디자인 R&D와 사회공헌, 비영리 문화재단, 정림학생건축상에 더해 최근의 친환경·디지털 건축 교육 프로그램(JADU)과 ESG 경영의 선포에 이르기까지, 작품과 기술의 축적을 넘어 기업 활동 전반을 하나의 가치 체계로 통합해온 과정은 우리의 신념을 실천한 증거이자, 우리가 지향하는 지속가능성의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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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건축을 위한 9가지 전략
우리는 지속 가능한 건축을 하나의 개념이 아닌, 실천 가능한 설계 전략의 체계로 구체화하고자 한다. 이는 각 프로젝트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를 달리하나, 본 전략의 근거 수립과 실행을 위한 연구, 개발, 담론 형성은 상시 진행하고, 전 프로젝트의 목적 설정과 함께 디자인, 관리 체계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1. 에너지 소비 최소화
건축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패시브 디자인, 고효율 설비, 재생에너지 적용을 통해 넷제로를 구현한다. 이를 위해 친환경 디자인 프로세스를 기존 설계 과정과 통합하여 재정립하고, 의사결정과 디자인 발전의 근거로 삼는다.
2. 저탄소 재료
자재의 생산, 운송, 시공, 폐기까지 전 과정의 탄소를 줄이고, 재활용·바이오 기반 재료를 적극 활용한다. 각 자재의 내재 탄소를 정량화하여 라이브러리화하고, 설계 단계부터 탄소량을 확인하며 디자인을 진행한다.
3. 적응적 재사용
기존 건축의 보존과 수선을 넘어 새로운 기능으로 재해석함으로써, 경제적 효율과 자원 절감, 장소성 회복을 동시에 달성한다. 기능적 전환과 창조적 변형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요구에 적합한 공간으로 적응하는 것이 핵심이다.
4. 자원의 재활용과 순환
건축의 선형적인 소비 구조에서 벗어나 전 생애주기(설계-시공-운영-해체)를 고려해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고 순환 구조를 만든다. 자원 흐름을 장기적 관점에서 재구성해 재사용, 재활용이 가능하고, 해체와 전환이 용이한 구조로 설계하여 건축물 자체가 자원의 일부가 되도록 한다.
5. 지역성 살리기
지역의 기후, 재료, 문화에 기반한 설계를 통해 자연과의 조화와 에너지 절감을 동시에 달성한다. 현지 재료와 전통적 기술을 활용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지역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줄인다. 또한 공동체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반영하여 사회적 지속가능성도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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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소성과 공동체 강화
장소의 기억과 맥락을 기반으로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건축을 통해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강화한다. 장소의 의미와 기억, 맥락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관계 형성을 통해 현대적 기능과 경관을 부여하고, 도시 내 사회, 문화, 생태의 회복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7. 지하 도시 개발
지하 공간을 활용하여 도시의 밀도와 효율을 높이고, 지상에는 열린 공공 공간을 확보한다. 도시 성장과 관련된 토지이용, 밀도, 지가, 교통, 인프라, 안전, 보행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과 관련된 외부 위험으로부터의 보호, 환경 보전, 기후 대응, 에너지 사용 최적화에 대응한다.
8. 생태적 관계성
비인간에 대한 관심과 존중에서 출발한다. 인간과 자연, 건축물과 주변 환경, 생태계 구성 요소 간의 상호연결성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건축은 주변 생물과 조화되고, 지역의 기후, 지형, 생태, 문화적 맥락을 반영하며, 자원의 흐름과 순환을 돕는 등 인간과 비인간이 지속하며 공존하는 환경으로 존재한다.
9. 회복탄력성
기후변화, 자연재해 같은 외부 충격에 대응하고 빠르게 회복하며, 지속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건축과 도시의 능력을 설계에 통합한다. 피해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예방-대응-회복-적응의 전 과정을 고려한 설계 전략이다. 구조적 안정성과 함께 에너지 자립, 유연한 공간 운영, 커뮤니티 회복력 등을 종합적으로 포함한다.
이제 지속 가능한 건축은 선택적 가치가 아니라 건축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되었다. 정림건축은 앞으로도 집단지성과 조직설계를 통해 시대와 사회의 요구를 읽고, 이를 건축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지속할 것이다. “내일의 지구를 위한 오늘의 건축”은 선언이 아니라, 다가오는 60주년을 넘어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실천적 약속이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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