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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참조의 색동: 색동집

정이삭 +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글
정이삭
사진
노경(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진행
박지윤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6년 8월호 (통권 705호) 

 

 

 

 

새로운 참조의 색동 

 

 

파묻힌 집

색동집은 서울 연희동, 100평 안팎의 필지들이 늘어선 블록 한가운데 자리한다. 1968년 준공된 50평대 필지 위 낡은 주택을 리모델링하고 증축한 작업이다. 집은 좁고 긴 대지 내 진입로를 지나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기존 주택은 단층이지만 1층 바닥이 높게 떠 있었고 천장고도 일반 주택보다 높았다. 블록 한가운데라는 불리한 조건에서 조금이라도 햇볕과 조망을 확보하려 한 결과였을 것이다. 여기에 누수를 막으려 평지붕 위로 두터운 경사지붕을 덧씌운 상태였다. 까치발을 들고 목을 길게 뺀 채, 자다 일어난 머리처럼 붕 떠 있는 모습이었다.

기존 주택은 볕을 확보하려 건물을 북측에 붙이고 남측에 마당을 두었지만, 남측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며 마당에는 더 이상 햇살이 닿지 않았다. 일자형 건물의 남측면 일부와 지붕에만 제한적으로 볕이 들었고, 마당은 내부와 교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1970년 전후 연희동 일대에 흔한 방공호도 남아 있었다. 허리를 숙여야 다닐 수 있을 만큼 낮고 어두웠고, 지하수위가 높아 비가 오면 바닥 틈으로 물이 차올라서 방치돼 있었다.

 

 

 

 

 

 

나를 보는 집

계획은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여기서 ‘나’란 집이자, 그 집을 대하는 건축가다. 파묻힌 형상, 좁고 긴 진입로, 들뜬 바닥과 높은 천장, 그늘진 마당 같은 조건과, 그것을 불리하다고 판단하는 통념을 함께 다시 보는 일이다. 우열과 편견 없이 바라보면 결함은 고유함이 된다. 파묻힌 형상은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계기가 되고, 좁고 긴 진입로는 집으로 들어가는 근사한 과정이 된다. 들뜬 바닥과 높은 천장은 햇볕을 들이고, 그늘진 마당은 새로 더해진 목재 외장을 보호한다. ‘불리함’은 ‘아직 이롭게 되지 못한 상태’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기존 거실 자리를 비워내어 본채를 ㄷ자형으로 바꾸었다. 비워낸 자리는 중정이 되어 집 깊숙이 빛과 바람을 들이고, 높게 떠 있던 기존 바닥은 중정으로 햇살을 들이는 장점이 되었다. 남은 건폐율을 더해 그늘진 남측 마당에 별채를 지었다. 별채는 중정을 감싸며 작은 마당들을 새롭게 조직하고, 본채로 들어오는 햇빛을 막지 않도록 높이를 최대한 낮추었다. 본채와 별채, 별채와 진입로, 별채와 남측 담장 사이에 생긴 작은 외부 공간들은 내부 같은 외부처럼 작동하며 실내외 경험을 풍요롭게 한다.

비워낸 거실과 기존 건물이 만나는 경계에는 목조로 얇은 켜의 공간을 더했다. 이 켜는 회랑이자 드러난 건물의 단부를 보강하는 구조적 장치다. 낮은 회랑과 옥색 반투명 FRP 처마는 시선을 사람의 몸 높이로 끌어내리고, 그 아래로 확산되는 빛은 중정을 실내처럼, 실내를 외부처럼 느끼게 한다. 별채 안에서는 배롱나무를 닮은 인공의 처마가 시선을 낮추고, 그 시선은 작은 마당과 배롱나무, 진입로의 대숲이 겹쳐 만드는 깊은 풍경으로 이어진다. 전라남도 담양의 소쇄원에서 대숲길을 지나 광풍각과 제월당을 마주하듯, 이 집에서는 좁은 오죽 숲길을 지나 별채와 본채를 마주하고 그 사이를 통과해 현관에 닿는다. 이 집의 경험은 멀리 열린 조망보다 가까운 것들의 관계를 체감하는 방식에 가깝다.

기존 평지붕 위에 덧씌워졌던 경사지붕의 방식도 참고했다. 파라펫과 돌출 처마를 잘라내고 비대했던 지붕을 가볍게 조정했으며, 끝단에는 물받이를 둘러 목조 외벽을 보호했다. 방공호는 없애지 않고 바닥을 낮춰 층고를 확보한 뒤, 중정과 별채 사이에 선큰을 두어 빛과 동선을 끌어들였다. 지하는 더 이상 숨겨진 방공호가 아니라 지상에 가까운 공간이다.

 

 

 

Construction diagram 

​

Reinforced structural system 

 

 

색동의 질서

서로 다른 색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옷이 되듯, 색동집에서는 서로 다른 조건과 재료, 시간과 감각들이 차이를 유지한 채 하나의 질서 안에 함께 놓인다. 가구와 건축, 구조와 마감, 내부와 외부, 본채와 별채, 자연과 인공은 서로의 경계를 흐리지만 완전히 하나로 합쳐지지는 않는다. 각각의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지지하고 나누고 이어주며 집 전체의 질서를 만든다. 비균질한 파편들이 하나의 외장을 이루듯, 이 집은 같은 것을 반복하기보다 서로 다른 것들이 관계 맺으며 풍경이 되는 방식을 따른다.

중정에 면한 목조 벽체와 기둥은 콘크리트를 지지하는 구조이면서 창틀이고, 마감이자 가구가 되며, 내외부를 느슨하게 구분한다. 외부로 돌출된 신발장은 가구이면서 동시에 벽체가 되고, 회랑의 보강 기둥은 안방의 문틀이 되며, 별채의 금속 지붕 구조는 주방 가구 마감 합판으로 보강된다. 이 집에서 가구는 건축 안에 놓인 오브제가 아니라 경계를 만들고 중력을 견디는 건축의 일부다.

본채와 별채는 진입부에서 별개의 건물처럼 보이지만, 함께 중정을 감싸며 느슨한 ㅁ자 배치를 이룬다. 녹색 싱글이 덮인 별채 처마의 기둥은 중정 목조 켜의 기둥 열과 같은 선상에 놓여 두 건물의 관계를 만든다. 이 기둥이 받치는 처마와 부챗살 보는 나뭇가지처럼 건물에 닿아 있으면서도 독립된 구조로 서 있고, 전면 마당의 배롱나무와 닮아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흐린다. 별채 외장에 쓰인 혼합 하드우드는 여러 수종이 섞인 재료로 두께와 질감이 조금씩 다르다. 색동집은 이 불규칙한 부재들을 숨기지 않고 비례와 간격을 조정해 하나의 질서 안에서 읽히도록 했다. 별채의 원형 색동창을 닮은 사각 등은 대문에서 거주자를 맞이하고, 오죽 숲길 바닥과 잎맥 모양의 지붕 형상은 각각 방 등과 펜던트 등으로 다시 반복된다. 건축의 형상이 빛의 형상으로 바뀌어 집 안에 다시 놓이는 것이다.

 

 

 

 

 

 

그 안에 이미 있던

색동집은 새것으로 대체한 집도, 기존을 그대로 보존한 집도 아니다. 새 지붕과 지하는 완전히 새로운 표정이 아니라, 오래된 집이 살아남아온 방식의 새로운 형상이다. 이 리모델링이 다룬 것은 기존의 형태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집이 처음부터 가질 수 있었던 가능성의 형상이다. 파묻힌 자리, 높은 바닥, 그늘진 마당, 긴 진입로, 덧댄 지붕. 이 조건들은 결함이 아니라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채 쌓여온 판단의 축적이다. 작업은 이 조건들을 지우지 않고, ‘그 안에 이미 있던’ 관계를 읽어 더 나은 질서를 제안하는 일이었다. 

건축의 참조적 성질은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 참조가 특정한 역사, 특정한 양식, 특정한 중심에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별채의 눈과 몸을 낮추는 녹색 싱글 처마와 그것의 디테일은 우리의 순수한 창작이 아니다. 거리에 널린 수많은 사례, 서툴지만 간절한 반복, 물이 새지 않도록, 처마 끝이 들뜨지 않도록 오래 씨름해온 몸의 지식들을 종합해 조금 더 나은 질서로 옮긴 것이다. 색동집은 건축가 혼자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 설계 및 시공 과정 속 여러 판단들과 거리와 현장에 축적된 익명의 지혜가 만나 조율된 집이다. 

건축은 오랫동안 하나의 중심을 세우고 그것을 기준으로 다수의 장소에 같은 답을 제안해왔다. 그러나 연희동의 작은 필지에 살아남은 낡은 집의 조건은 처음부터 그러한 보편적 해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색동집이 다룬 것은 건축 역사의 보편적 기준에서 벗어난, 방치되거나 지워질 뻔했던 나머지▼1다. 이 나머지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그 안에 이미 있던’ 서툴지만 절박했던 판단을 읽어 아름답게 드러내는 일, 그것이 이 리모델링이 택한 방법이었다. 

색동집은 주변과 경쟁하며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가까운 것들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충분해지는 집이다. 높아지기보다 낮아지고, 멀리 보기보다 가까운 것을 다시 보며, 차이를 제거하기보다 공존의 질서를 찾는다. 이 작업에서 우리가 한 일은 이 세상의 다양한 나머지와 이 장소에 남겨진 나머지를 함께 관찰하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아름다움을 읽어내어 드러내는 일이었다. 동시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요소들이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조율해 하나의 질서로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이것은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하는 보편의 해법이 아니라, 이 자리가 오랫동안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펼치는 일이다. ​ 

 

 

 

©Choi Yong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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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머지는 건축의 역사와 제도가 세워온 기준에 충분히 포착되거나 선별되지 못했지만, 실제로는 도시와 생활의 대부분을 이루며 전체를 떠받치는 것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도시의 주변부, 건축가 없는 건축, 값싼 재료와 즉흥적 구성, 생활의 반복 속에 축적된 절실하고 솔직한 판단들을 포함한다. 「SPACE(공간)」 634호 참고.

 

 

 

 

월간 「SPACE(공간)」 705호(2026년 08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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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정이삭(동양대학교)+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홍진표)

설계담당

이주연, 이지형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191.4m²

건축면적

82.76m²

연면적

125.24m²

규모

지상 2층, 지하 1층

높이

5.7m

건폐율

43.24%

용적률

49.51%

구조

경골목구조, 연와조+철골보강

외부마감

목재, 컬러강판, 화강석, 벽돌

내부마감

강마루, 시트, 목재, 수성페인트

시공

건축주 직영

설계기간

2025. 3. ~ 10.

시공기간

2025. 10. ~ 2026. 5.

건축주

이성환

색동창

김영민

조명

이완, 김영민

가구

팀 오더메이드


정이삭
정이삭은 2013년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으며, 동양대학교 교수다. 폭넓은 건축 작업을 하며, 건축 및 현대 미술 전시에 작가나 기획자로 참여해왔다. 2016 베니스비엔날레(한국관 큐레이터 및 작가), 2016 베이징디자인위크(한국관 큐레이터), 〈캠프 2020〉(예술감독)에 더해 ‘서울은 미술관’, ‘한강예술공원’ 등 여러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의 작업은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 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등에 전시된 바 있다. 저서로는 『더 서울, 예술이 말하는 도시미시사』(공저, 2016) 등이 있다.
홍진표
홍진표는 2018년 도트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으며, 2021년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에 합류했다.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아뜰리에17과 황두진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했다. 아뜰리에17에서는 단독주택부터 공연장,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과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황두진건축사사무소에서는 한식 목구조 및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축소된 스케일의 도상적 설계 작업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보다 나은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