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8월호 (통권 705호)


모든 프로젝트에는 저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에게 그 이야기는 항상 짧지 않다. 지금은 올드반야드라는 서양식 이름이 붙은 이 작은 브런치 카페도 그렇다. 우리 사무소에 클라이언트가 처음 찾아왔을 때만 해도, 이 건물은 ‘산사 가는 길’이란 이름의 찻집이었다. 청계사가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커피도 팔지만 쌍화차도 팔 것 같은 낡은 찻집. 휴양림에 있을 법한 둥근 나무를 켜켜이 쌓아 올린 울퉁불퉁한 통나무 외벽에, 시퍼런 유리로 된 통창이 뜬금없이 끼워진 그런 건물이었다.
그런데 소개팅하러 나갔다가 소개해주는 사람이 더 마음에 드는 것처럼, 우리는 이 건물 자리보다 그 바로 옆에 있는 건물에 훨씬 더 마음이 갔다. 거친 돌을 투박하게 붙여 올린 외벽에 큼직한 창들이 듬성듬성 뚫린 오래된 축사가 무심한 듯 시크하게 우뚝 서 있었으니까. 창 아래 동물의 분뇨를 빼내던 구멍 자리까지 아직 남겨진 채로. 등나무가 얽히고설킨 테라스에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를 내어놓고 손님을 받는 산만한 모습이었지만,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 건물의 될 성부른 모습을.

하긴, 우리가 설계한 건물을 짓느라 곧 부숴버릴 건물보다 그 옆에 자리한 남겨질 건물이 더 마음에 드는 건 어쩌면 다행이었다. 게다가 신축 설계가 더 주요한 일이긴 해도, 우리의 설계 범위 안에는 옛 건물의 리노베이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일을 진행하려고 보니 대수선에 대한 우리나라의 과한 제도가 발목을 잡았다. 오래된 경량 목재 트러스 지붕을 고치자니 블록벽 구조를 내진설계 보강부터 다시 해야 했다. 아말감 씌울 돈 겨우 마련한 형편에 임플란트 아니면 하지 말라는 제도 앞에, 제대로 고치려는 꿈은 접어야 했다. 그럼에도 옛 건물은 내내 이 프로젝트의 중심점이었다. 아이디어의 시작을 이끌어주고, 디자인의 방향을 잡아주고, 경관에 마침표를 찍어준 것 모두 옆의 옛 건물이었다.

Frame configuration diagram
이 프로젝트는 개발제한구역 안에 있다. 신축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땅이다. 올드반야드가 앉아야 할 필지는 건물이 겨우 들어가는 크기였고, 옛 건물의 관리사로 허가받았던 기존 건물의 규모(건축면적, 연면적, 층수, 높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시 지어야 했다. 말로만 듣던 개축의 형식이었다. 우리는 옛 건물과 나란하던 기존 건물의 방향을 확 돌려서 옛 건물과 직각을 이루며 ‘옛 건물을 바라보도록’ 배치했다. 방향을 바꾸자 분명 같은 규모임에도 새 건물은 이전의 건물과 완연히 달라 보였다. 대지경계가 허용하는 안에서 최대한 뒤로 물러나 앉히면서 생긴 두 건물 사이의 공간은 조경이 있는 작은 마당이 되었다. 마당은 옛 건물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동시에, 그 너머의 산자락을 볼 수 있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올드반야드는 그 마당을 통해 들어가도록 설계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커피바는 2층 슬래브 아래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조금 더 안쪽으로 발을 옮기면 천장이 훌쩍 높아지는 홀이 펼쳐진다. 루버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그리고 창 너머로 올려다 보이는 녹음, 그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순간이, 나는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좋다.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설계 방향은 오래된 농장 건물의 느낌, 그야말로 올드반야드였다. 그래서 외장은 물론이고 새로 만든 옹벽, 건물 내벽에도 옛 건물에 사용한 것과 유사한 거친 자연석을 썼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옛 건물은 건축물대장에 준공 날짜조차 기록되지 않은 오래된 건물이다. 그런 건물에 쓰였던, 규격이 정해져 있지 않은 자연 재료를 지금 시점에서 비슷하게 재현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여러 석재상의 시공 사례 사진들과 눈싸움을 하고서야 겨우 비슷한 재료를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이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던 기존 2층의 층고를 확보하기 위해 1층 바닥 높이를 낮추느라, 건물은 땅에 반쯤 묻힌 형상이 되었다. 마당에서 그 땅을 받아주는 옹벽은 자연석 마감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며, 마당과 실내 공간의 경계를 부드럽게 이어준다. 땅과 닿는 부분은 이처럼 콘크리트 옹벽으로 되어 있지만, 가볍고 얇은 지붕을 만들기 위해 그 위에 철골 기둥을 세우고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패턴의 철골 지붕을 얹었다. 지붕과 내벽의 일부를 합판으로 마감하고 업라이트 조명을 은은히 비춰, 오래됐지만 따스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조명으로서 정점을 찍은 건 층고 높은 홀에 점점이 떠 있는 코램프의 ‘올드스쿨 팬던트’였다.

그렇게 완성된 올드반야드는 새 건물이지만 옆의 옛 건물과의 관계를 통해 완성되는 건물이다. 옛 건물의 마침표를 올드반야드가 찍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올드반야드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옛 건물이 숨을 고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석으로 마감한 옛 건물은 낡았음에도 요즘 건물이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오라를 풍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간에서 조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고, 모던이 아닌 빈티지한 디자인에도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런던에 살 때 참 좋아했던, 오래된 건물을 세련되게 고쳐낸 그런 건물의 모습에.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건 축사의 리노베이션이 과도한 법의 규제로 인해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개발제한구역이라는 이유로 용도는 창고 정도로만 변경할 수 있게 묶어놓고, 구조에 조금이라도 손을 대려면 안전진단에 내진설계까지 요구하니, 웬만한 의지와 예산으로는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이런 법 때문에 쓰러져 가는 건물마저 손대지 못한 채 방치하게 되고, 난개발을 막는다고 멀쩡히 살릴 수 있는 건물까지 쓸모를 찾지 못하게 놔두고 있다. 이러니 과연 우리의 법이 안전과 환경을 지키려는 목표를 향해 간다고 할 수 있을까. 법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건물은 최소한으로라도 고쳐서 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현실에 맞고, 오히려 안전을 도모하는 길이기도 하다. 탁상 위에서 결론 낸 제도가 현장에서 어떤 풍경을 만들어내는지, 이 옛 건물 앞에 설 때마다 새삼 떠오른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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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전보림, 이승환)
최성민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근린생활시설
330m²
123m²
157.27m²
지상 2층
1대
4.9m
37.27%
47.65%
철골조, 철근콘크리트조
자연석
자연석, 뿜칠마감
윤구조기술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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