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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풍경과 시퀀스가 만드는 관계의 미학 | 유현준 + 에이치와이피건축사사무소

글
장용순
사진
노경(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에이치와이피건축사사무소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 2026년 8월호 (통권 705호) 

 

 

방송과 저술을 통해서 사회, 문화, 지리, 도시, 건축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는 건축가 유현준(홍익대학교 교수)은 그의 개념과 주장을 설계를 통해 하나씩 실현하고 있다. 초기 작품이 테라스나 매개 공간을 중심으로 한 경계에 집중했다면, 이번에 소개되는 근작은 작업의 풍경과 시퀀스에 더욱 집중한다. 그가 여러 차례 강조하듯 작품 전체를 가로지르는 핵심 키워드는 ‘관계’다. 경계, 풍경, 시퀀스, 기준선, 포디움 등 다양한 개념은 결국 사람, 자연, 공간의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로 볼 수 있다. 

 

 

 

심산문화테마파크​ ©HYP Architects

 

 

고창황윤석도서관 

고창황윤석도서관(이하 고창도서관)의 형태는 길이가 100m에 가까운 종묘와 박공지붕에서 출발한다. 중목구조로 이루어진 기본 형태에서 한쪽 지붕을 들어올리고, 그 반대쪽을 낮춰 기울어진 형태를 만든 뒤, 용마루의 축을 기울여 비틀어진 형태로 완성됐다. 내부에는 서고의 긴 벽을 대각선으로 배치해 다양한 단면의 공간을 구성하고 예각으로 공간에 긴장감을 부여했다. 긴 직사각형 평면 안의 대각선을 삽입해 공간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하는 방식은 알바로 시자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미술관, 안도 다다오의 명화의 정원이나 앙트완 스탱코가 리노베이션한 죄드폼 미술관을 떠올리게 한다. 

 

예각과 단면 변화가 주는 다채로운 공간감은 하나의 장면보다는 연속적 시퀀스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유현준은 ‘스튜디오에서 투시도를 가장 많이 그리는 학생이었다’고 말하며 공간을 시퀀스로 설계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고창도서관 역시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돌자마자 대공간이 펼쳐진다. 중목구조는 리듬감을 만들고 서고의 대각선 벽은 강한 흡입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서고 벽을 따라 끝까지 이동하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는데, 이 부분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두지 않은 것은 대공간에서 올라가는 계단이 직접 보이지 않도록 해, 벽 안쪽으로 흐름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짐작된다.  

 

 

 

고창황윤석도서관 ©Bang Yukyung 

 

 

서고 벽 안쪽에는 좌식 테이블이 있는 어린이 도서관, 화장실과 휴게 공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계단식 열람 공간이 순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공간과 대조적으로 벽 안쪽을 따라 조밀하게 이어지는 예각의 공간들은 마치 골목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어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방금 지나온 대각선 벽의 개구부를 통해 처음 들어왔던 입구와 대공간을 다시 내려다볼 수 있다. 어느 위치와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도서관은 전혀 다른 스케일과 공간감으로 경험된다. 

 

고창도서관은 주변 지역의 다양한 스케일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주변은 산지, 구도심, 신도심이 만나는 결절점에 위치한다. 대지는 남북으로 3.5m의 레벨 차가 나는데, 주차장에 면한 남쪽 입면은 거대해 보이지만, 구도심에 면한 북측 입면은 나지막한 건물들과 잘 어울리게 낮고 수평적인 입면을 갖는다. 높은 레벨에서 보면 남동쪽 경사지붕이 깊게 내려가기 때문에 마치 지붕이 지면과 연속된 랜드스케이프 건축 같은 느낌을 준다. 

 

건물 외관이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와 긴 수평성으로 랜드마크적 성격을 드러낸다면, 내부는 주민 모두를 위한 거실의 성격이 강하다. 센다이 미디어테크나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의 저층부가 늦은 시간까지 개방되듯이, 고창도서관은 밤 늦게까지 열린 도서관을 지향한다. 정보의 의미가 다양해진 현대에 폐쇄적이고 엄숙한 책의 창고가 아니라 도시의 거실을 지향하는 모습이다. 다양한 시퀀스와 스케일의 공간은 풍경, 도시, 책, 사람 사이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담아내는 틀이 된다. 

 

 

 

오아르미술관 

 

 

오아르미술관 

오아르미술관은 벽면과 지붕을 아노다이징 패널 단일 재료로 구성해 현대적 느낌의 금속 덩어리로 인지된다. 건축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려는 태도는 헤르조그&드 뫼롱이나 렘 콜하스에게도 나타나는 현대건축의 한 경향으로, 자크 뤼캉은 이것을 단일체 또는 단석체(monolithic)로 명명했다. 유현준과 에이치와이피건축사사무소(이하 HYP)의 전작인 텀즈업이나 툇마루 하우스, 하우스 D 역시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 반면 건물에 들어서서 왼편으로 보이는 신라시대 대릉원 풍경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거대한 창을 통해 실견하는 대릉원은 마치 수족관에서 거대한 고래를 마주하는 것 같은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대릉원을 건축적 풍경으로 가져와 역사적 풍경과 관계 맺고자 하는 시도는 당연한 해법처럼 보이지만, 주변의 어떤 건축물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아르미술관은 대릉원을 보는 방식을 세공하는 데 주력한다. 1층 카페 의자는 마당을 바라보는 거실처럼 대릉원을 향한다. 좁은 틈처럼 보이는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른 뒤 시선을 왼쪽으로 틀면, 유리 통창 너머로 대릉원과 마주하게 된다. 거대한 창 앞에는 낮은 원형 소파를 두어, 시야의 막힘 없이 대릉원과 전시 작품을 360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알바 알토 같은 건축가들이 시선을 조절하기 위해 가구를 고르고 배치했던 전통을 따르는 모습이다.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이 음의 계단이었다면 옥상으로 올라가는 통로는 양의 계단으로 오브제와 같은 형상을 취한다. 좁고 긴 계단을 지나 옥상에 오르면 시선이 개방되면서 대릉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법규에 따라 옥상의 1/8 면적만 야외 계단으로 처리됐는데, 지붕 전체가 계단식 광장이 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후략) 





월간 「SPACE(공간)」 705호(2026년 08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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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순
장용순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파리 베르사유 건축대학교를 졸업한 뒤 자크 리포 설계 사무실에서 건축 실무를 익히고 프랑스 국가 공인건축사(DPLG) 자격을 취득했다. 파리8대학 생드니 철학과에서 알랭 바디우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사사무소 기오헌에서 실무를 쌓았고 현재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현대건축의 철학적 모험』 1~4권, 『라캉, 바디우, 들뢰즈의 세계관』, 『도시의 정신분석』 1~3권이 있다. 주요 작업으로 세운상가 공공 공간 활성화 프로젝트와 KB청춘마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