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9월호 (통권 706호)

쌈지길(2004) ©Kim Yongkwan
DIALOGUE 최문규 연세대학교 교수 × 배형민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단면과 스케일
배형민(배): 이번 프레임을 계기로 최문규와 가아건축사사무소의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2025, 이하 서울대 도서관), 대구간송미술관(2024, 이하 대구간송), 박서보미술관(2026)을 살폈다. 세 근작을 보며 떠오른 몇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먼저 세 작업의 공통된 속성으로 간명함을 읽을 수 있다. 이는 현대건축의 오랜 규범이기도 하고, 그에 대한 건축가마다의 해석, 구현 방식도 다를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사용자를 압도하지 않는 간명함이다. 외부 환경에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미술관에서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차분히 알리는 간명함이 엿보인다. 반면 단순함 자체를 강조하는 현대건축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스케일, 재료로 강렬한 경험을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대표적이다.
최문규(최): 간명함은 내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다. 생각의 명쾌함 위에 지어지는 간명한 건축. 나는 ‘세상의 익숙함에 대한 의심과 대안’이라는 생각에서 설계를 시작하여, 그 생각을 다듬어 그것이 명확하게 읽히도록 발전시킨다. 건물의 형태보다 어떻게 생각을 전달할지 고민하다 보면 처음에 복잡했던 설계가 점점 간결해지고 창문의 형태나 크기, 비례에 대한 관심도 점차 사라지게 된다. 자의적인 비례나 형태보다는 ‘생각을 전달’하는 데 집중해서, 큐브를 쓴다면 정육면체를 쓰고 창문은 거의 정사각형으로 내는 식이다. 쌈지길(2004)은 인사동길에서 건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데 천착해 두드러지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고 디테일은 숨겼다. 유리를 사용해 1층은 투명하게 2층은 풍경을 반사하도록 처리한 정한숙 기념관(2003), 사각형 건물의 네 입면을 다른 재료로 마감한 한국독서지도회(2003)와 같은 맥락이다. 대구간송은 땅과 건축 그리고 풍경을 통합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고, 서울대 도서관은 숲과 보행로가 면한 남쪽과 경모궁지를 향한 서측면의 차이를 명료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아수라 백작처럼 각기 다른 ‘두 얼굴’ 을 가진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집중한 결과가 간명함으로 나타난 것 같다.

쌈지길(2004) ©Kim Yongkwan

쌈지길(2004) ©Kim Yongkwan
배: 간명함을 가능하게 하는 평면과 단면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세 프로젝트 모두 단면이 중요한데 단면을 자르는 방향, 단면을 이해하는 방식도 각기 다르다.
최: 나에게 평면과 단면은 다른 세계다. 크기와 위치를 통해 권력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 평면이라면 단면은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한다. 단면을 통해 평면에 내재하는 위계를 시각적으로 느슨하게 만들 수도 있다. 현대건축이 만들어낸 투명함과 깊이 있는 단면이 사람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르 코르뷔지에의 자유로운 평면과 아돌프 로스의 라움플랜에서 영향을 받았다. 라움플랜은 (로스의 주택들에서만 실현됐지만) 공간이 사방으로 깊어지고 타인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사람들은 투명하고 깊은 공간에서 서로 움직임을 바라보며 타인의 존재를 인식함으로써 연결될 수 있다. 쌈지길, 숭실대학교 학생회관(2013), 서울시립대학교 100주년 기념 시민문화교육관(2018, 이하 시립대 100주년관) 모두 건물의 내외부에서 우연히 타인을 만나고 인식할 수 있는 건축이다. 지난 경험은 이러한 건축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웃음) 그래서 대구간송이나 서울대 도서관에서도 단면의 관계를 통해 공간적 즐거움을 넘어 공간적 민주주의를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배: 단면이 지닌 속성 가운데 하나가 타인에 대한 인식, 즉 상호연결이 민주주의로 발전되는 이야기라면, 그다음으로 공간의 크기를 생각할 수 있다. 파주와 헤이리에 지어진 초기작에서부터 그런 관심이 표출되지 않았나.
최: 공간의 크기는 내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다. 나와 내 딸은 키도 체중도 다른데 똑같은 두께의 식빵을 먹는 게 항상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건축도 마찬가지다. 주변 건물들을 보면 1층과 꼭대기층을 제외한 모든 층이 식빵을 썰듯 균일한 높이로 나뉘어 있다. 유리, 돌, 콘크리트 등 외부 재료만 다를 뿐 단면적으로는 같은 건물이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을 오래전부터 고민했는데, 대신문화사(2003)와 같이 예산이 한정된 초기 작업에서 그 개념을 실험적으로 공간에 대입해 볼 수 있었다. 서울대 도서관과 대구간송은 이러한 내부 공간의 존재를 드러내면서도 그것들이 서로 투명하게 연결되어 있어 완결성을 가지도록 조율하는 데 무척 까다로웠다. 단순함이 강조되면 지루하거나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고, 이유 없이 단면만 복잡하게 만들면 사람들을 빙빙 돌리는 공간적 장난처럼 끝나버리게 되니 말이다.

정한숙 기념관(2003)
배: 나의 책 『건축 너머 비평 너머』(2025)에서는 쌈지길과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2015)를 ‘보이지 않는 건축’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배경에는 이들의 뚜렷한 도시적 맥락과 스케일이 있다. 스케일이 보다 확장된 ‘보이지 않는 건축’으로 숭실대학교 학생회관과 시립대 100주년관을 들 수 있다. 캠퍼스의 지형을 따라 뻗어나가는 큰 시설이라 건물 전체가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구간송도 이런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높은 목재 기둥이 받치고 있는 출입구에 시각적, 물질적, 공간적 존재감을 부여했지만, 이를 제외하면 지형을 타고 흐르는 대부분의 공간에서 건축을 시각적 대상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반면 박서보미술관은 ‘직사각형 박스 위에 큐브 두 개’라는 구성이 직관적으로 인지된다. 여기서는 ‘보이는’ 간명함이다. 이 지점에서 파주와 헤이리의 정한숙 기념관, 서해문집(2005), 한국독서지도회 같은 초기 작업이 떠오르기도 한다. 근작과 비교하면 스케일이 작은 초기 작업들은 클라이언트와 사용자의 특성상 한 덩어리의 건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내부 공간의 분화 양상도 박서보미술관이나 서울대 도서관과 확연히 다르다. 서울대 도서관은 사방으로 인접한 이질적인 도시 맥락에 대응하는 세 개의 덩어리가 내부에서 연결되어 있고, 대구간송은 전시장, 로비, 아트리움, 수장고, 사무실 등 여러 공간들이 지형과 경관에 따라 연결된다. 고밀한 저층 주거지에 위치한 박서보미술관은 쓰임을 포용할 수 있는 단면 구성을 갖고 있고. 저마다 다른 종류의 단면 분화 방식으로 독특한 공공성과 복합성을 지니고 있다.

정한숙 기념관(2003)

정한숙 기념관(2003)
최: 도시적 상황에 완전히 녹아들어 건물이 주변 전체로 인식되는 걸 ‘보이지 않는 건축’의 개념으로 설명한 것 같다. 방금 한 해석이 나의 처음 목표는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건축’으로 ‘읽혔다’는 뜻이라면, 지금 같은 ‘스펙터클 사회’의 건축가에겐 칭찬이 아닐 수 있다. (웃음) 대구간송과 서울대 도서관은 건물의 규모가 워낙 커서 숨기기엔 존재감이 강한 상태라, 건물을 일부 분절하고 땅의 모양에 따라 단면을 만들더라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건물의 스케일이 커지면 프로그램이 복잡해지고 단위 공간도 같이 커진다. 시립대 100주년관 안의 체육관처럼, 예전에는 이 문제를 바깥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대신 단면 안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프로그램을 존중하면서 큰 공간의 존재를 바깥으로 정확히 표출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이러한 변화의 기점이 서울대 도서관이었다. 의과대학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진행했는데 ‘공간이 높고, 투명하고, 밝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상징적인 공간의 열람실을 제안했는데, 예산이 빠듯해 도서관 전체를 바꿀 수 없으니 일부 공간(대열람실)에 이를 적용했고 건물보다는 공간이 보이도록 했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대열람실 층고만이 아니라 전체 열람실이 다른 단면을 가지는 방향으로 안을 발전시켰다. 그즈음 박서보미술관 설계도 시작됐다. 미술을 좋아해 전시장에 자주 가는데, 대규모 국공립 미술관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갤러리들은 공간도 협소하고 층고가 낮은 게 아쉬웠다. 테이트 모던의 터빈홀이 등장한 이후 현대미술에서도 루이스 부르주아, 아니쉬 카푸어, 레이첼 화이트리드, 올라퍼 엘리아슨처럼 대형 설치작업, 장소특정적 작업들이 급속도로 확산되지 않았나. 공간의 가능성이 새롭게 정의되면서, 천창 아래 비어 있던 구겐하임미술관의 중앙홀도 이제는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박서보미술관이 새로운 예술을 수용할 수 있게 층별로 전시장의 폭과 층고를 다르게 만들고, 3층에는 8m 높이의 독립된 큐브 전시장을 배치했다. 입구 근처의 높은 공간을 단순히 홀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미술관 공간과는 정반대의 문법이다. 대구간송도 중간에 위치한 큰 홀을 현재 기념품숍과 휴게 공간으로 사용 중인데 퍼포먼스나 공연, 대규모 설치 작업 등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어느 예술가가 찾아와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웃음)
배: “평면과 단면은 다른 세계”라는 입장에 동감한다. 동시에 최문규의 작업을 보면 평면, 단면, 매스가 함께 조율되는 일관된 원칙, 즉 현대건축의 원리가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박서보의 작업이 회화라는 점을 고려해 대부분의 전시 공간을 보수적으로 접근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대신 전시장마다 층고와 비례가 다르고 외부 공간과의 관계도 미세하게 다르도록 처리했다. 도시적 대응으로 도로에서 4m 후퇴해 만들어진 선큰 가든이 갤러리의 환경으로 포섭됐다. 이처럼 다양하면서도 절제된 공간들이 간명한 종단면을 통해 드러난다. 박서보미술관은 외부에서 볼 때 세 개의 단순한 매스가 있지만 내부 공간은 층별로 단면과 평면이 정교하게 연결되고 분화되어 있다. 대지의 경사에 따라 3단으로 구성된 대구간송은 아트리움 레벨이 시설 전체를 엮어준다. 서울대 도서관도 중앙계단이 여러 레벨을 연결한다. 이런 지점들에서 적층, 분절, 통합의 원리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후략)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