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7월호 (통권 704호)

위버하우스(2025) 스케치
마우리시오 페소,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 페소 본 에릭사우센 공동대표 × 김정은 「SPACE(공간)」 편집장, 박지윤 「SPACE」 기자
파빌리온들의 집합체
SPACE: 메덩골정원은 한국 양평의 산자락에 자리한다. 칠레의 자연과 비교해, 이곳의 특징은 무엇인가?
소피아 폰 에릭사우센(에릭사우센): 칠레는 사막부터 숲, 그리고 파타고니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가진 매우 긴 나라다. 두 나라에 대한 비교는 지나친 단순화가 되거나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굳이 일반화하자면,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부는 광대한 규모의 영토와 원초적 기념비성을 지닌 풍경을 갖고 있다. 반면에 우리가 경험한 한국의 풍경은 보다 친밀한 스케일을 지닌다.
마우리시오 페소(페소): 메덩골을 둘러싼 풍경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단순하고, 부드러우며, 고요하다.
SPACE: 메덩골정원 내 현대정원은 꽤 밀도가 높은 편이다. 파빌리온 몇 개를 제외하거나, 대지를 확장하는 등의 방안은 논의하지 않았나?
에릭사우센: 이 질문에도 답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프로젝트에 초대됐을 때는 이미 조경팀이 마스터플랜을 결정한 뒤였다.
페소: 마스터플랜은 우리에게 일종의 ‘기정사실’이었다. 이미 내려진 결정이 사실로 굳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콜라주와 패치워크, 그리고 군도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것, 즉 각각의 개별적 요소들이 모여 이루어진 집합체로 이해했다.
SPACE: 당초 파빌리온 이데아(2026)와 레스토랑인 위버하우스(2025)로 메덩골정원에 초청됐다가 점차 로고, 길, 회화 작업 등을 포함해 여러 영역과 파빌리온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초기에 작업한 두 건축에는 관계성이 있는가?
에릭사우센: 처음에는 이데아 설계를 의뢰받았다. 그리고 일년 뒤 레스토랑도 고민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따라서 이데아는 정원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상징적 랜드마크로서 그 자체로 독립적인 생애를 가진 프로젝트였다. 자연 지형의 경사를 따라 흐르는 물이 핵심 요소다. 물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며, 이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하는 방식에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데아에서 물과 관련된 부분은 여전히 작업 중이다. 물의 흐름과 물안개가 더해져야 비로소 완성된다.
페소: 위버하우스는 나중에 설계되었기 때문에 정원의 다른 요소들과 맺게 될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주변의 정원들 역시 설계 과정에서 계속 변화했다. 나는 이러한 ‘유기적 성장’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정원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두 건축은 각각의 방식으로 고유하다. 다만 두 건축 모두 어느 정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선이라는 수평적인 형식을 공유하는데, 이는 불규칙하게 굴곡진 지형에 대응하는 기준선 혹은 측정 장치처럼 기능한다.

미로(2026) 스케치
SPACE: 이후 파빌리온 여덟 개는 어떠한 순서로 계획됐으며, 각 파빌리온의 관계성에서 주요하게 고려된 사항은 무엇이었나?
에릭사우센: 각각이 다른 시기에, 다른 강도로 진행됐다. 때로는 일정이 겹쳐 두 작업을 동시에 하기도 했다.
페소: 우리는 각 작업을 독립적인 단위로 받아들인다. 각각은 자신이 지닌 특성뿐 아니라 지니지 않은 특성을 통해서도 다른 모든 요소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우리는 각 파빌리온 사이의 조경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파빌리온들은 각자의 내적 논리에 따라 형성됐다.
SPACE: 선비의 갓(2025), 거북선(2025)은 진입을 지연시키는 시퀀스, 대지의 레벨 조정이 더욱 인위적이다. 조경가 기욤 고스 드 고르와 가장 밀접하게 협업한 프로젝트이기도 한데, 협업 프로세스가 궁금하다.
에릭사우센: 이는 우리의 태도인 ‘자기-참조적’▼1 접근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선비의 갓과 거북선을 둘러싼 조경은 100% 조경팀의 작업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특정한 위치에 들어설 건축적 오브제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의 전이 공간, 보행 동선, 식재의 구성은 기욤 고스 드 고르의 팀이 아름답고 정교하게 조직해냈다.

미로(2026) 스케치
형상화
SPACE: 선비의 갓과 거북선은 각각 갓과 거북선을 형상화한 작업이다. 형태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직관적 차용을 피하기 위해 고려한 지점은 없었나?
페소: 한 매스는 배, 다른 하나는 모자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두 파빌리온은 여전히 상당히 직설적이다. 이러한 비유는 정원 내 특정 구역의 내러티브 안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한다. 마치 펼쳐진 4차원의 책 속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건축적 완결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서사는 부차적이다. 공간적, 물질적 속성에 종속되는 것인데, 우리의 관점에서 건축의 형태는 무엇보다 건축적이어야 한다. 출발점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꽃과 모자가 건물이 아니듯 건물 역시 배가 아니라는 점은 자명하다. 물론 이 작업의 경우에는 그 연관성이 훨씬 밀접하다고 볼 수 있지만 말이다.
SPACE: 선비의 갓은 외부를 향해 열려 있고, 거북선은 닫혀 있어 공간감이 상반되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에릭사우센: 하늘 또한 건축을 둘러싼 ‘주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반대로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도 있다. 선비의 갓은 하늘을 덮어 작은 언덕을 깊은 그림자로 감싸며 태양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반면, 거북선은 하늘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어서 훨씬 집중된 경험 혹은 더 해방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어찌 되었든, 두 파빌리온은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관심사에 응답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SPACE: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여정(2025)처럼 텍스트 혹은 사고를 형태로 완성한 파빌리온이 주를 이룬다. 추상을 건축으로 구체화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하는가?
페소: 프로젝트에서 선례나 다이어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건축을 개념의 은유로 설명하지 않는다. 결코 ‘이 건물은 무엇이다’고 말하지 않는데 여기서 무엇이란 하나의 단어나 이미지다. 우리는 건축 언어의 고유성을 강하게 믿으며, 그것은 본질적으로 공간과 시간의 관계에 기반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건축은 관계적 시스템이다. 우리가 건축 주위를 걷거나 내부에서 이동하는 만큼 건축도 움직인다. 건축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동시에 안정감과 영속성의 감각을 제공한다. 건축은 개념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주변의 모든 건축에 대해 개념을 갖고 있지만, 건축은 또한 물질성, 불투명성, 그리고 침묵과 관련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지 않는다. 인용하지도 않고 어떠한 참조도 사용하지 않는다. 여정과 같은 프로젝트들은 우리에게 오히려 더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문자에서 명목으로, 명시에서 암묵지로 이어지는 여러 지적 층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에릭사우센: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회화나 조각 작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건축물을 그린 드로잉, 사진, 혹은 글로 된 설명은 현실과 허구 사이에 놓인 하나의 매개물일 뿐이다. 이러한 매체들이 건축에 한 단계 더 가까운 것도 아니고, 한 단계 더 먼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객체다.

미로(2026) 스케치
그림과 건축
SPACE: 회화, 스케치 등의 그림 작업은 프로젝트 전 과정에서 행해진다고 말했다. 시작 전, 설계 과정, 완공 후 그림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예를 들어 물감 그림의 경우에는 건축 재료의 유닛이 표현되지 않은 반면, 펜 드로잉에서는 유닛이 드러난다. 이것은 그리는 시점의 차이 때문인가 혹은 도구의 차이 때문인가?
에릭사우센: 둘 다이다. 우리는 강연이나 기사에서 보여주는 그림보다 훨씬 더 많은 손 드로잉과 회화를 그린다. 그것들은 사고를 위한 기본적인 도구다.
페소: 사고의 도구이자 프로젝트의 작업 시간을 좌우한다. 때로는 일종의 지름길처럼 작동해 시간을 압축한다. 반대로 여러 우연적 조건들에 의한 우회로처럼 작동해 시간을 확장하기도 한다. 이 과정은 결코 선형적이지도, 예측 가능하지도 않다.
SPACE: 분위기, 인상, 공간감, 디테일, 스케일 등 그림에서 주요하게 탐구되는 것은 무엇이며 이것은 건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에릭사우센: 각각의 기법은 무엇을 탐구하느냐에 따라 더 적합하게 작동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림 작업이 우리가 발전시키려는 탐구를 위한 도구로 기능하는가이다. 이러한 지적 차원이야말로 우리가 보기에 회화와 건축이 겹치는 지점이다. 여기서 이미지는 건축적 경험만큼이나 시적일 수 있다.
페소: 회화와 건축은 모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 둘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도구이며, 여기서 이미지는 시각적인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정신적 이미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보는 것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혹은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이다.

미로(2026) 스케치
기하학
SPACE: 두 사람의 작업은 기하학에서 출발해 스케일과 유닛, 재료와 마감을 조율하면서 고유한 경험, 이를 테면 성스러운 경험을 전달한다. 당신의 건축에서 기하학은 건축 질서를 위한 것인가, 경험 혹은 분위기를 위한 것인가?
에릭사우센: 우리 건축이 기하학에서 출발한다는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다소 수수께끼 같은 표현으로 들린다. 세상의 모든 건물은 심지어 유기적이고 비정형적으로 보이는 형태조차도, 잠재적으로 기하학적 언어로 설명될 수 있다. 물론 기하학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건축을 깊이 경험하거나, 하나의 건축 작품이 지닌 다양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그것이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분명 관계와 비례를 조직하는 데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해석기하학이나 기술기하학 관점의 접근은 아니다.
페소: 관계를 구조화한 결과로 나타나는 효과는 분명 하나의 질서다. 우리의 관점에서 이것이야말로 건축의 가장 원초적인 기능이다. 건물은 무한한 세계 속에 일정한 질서, 즉 인위적인 질서를 부여한다. 건축은 세계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것이 건축의 우주론적 차원이다. 코스모스(kósmos)는 ‘세계’를 의미하며, 이는 ‘카오스(kháos)’, 즉 공허, 무질서, 혼돈의 반대 개념이다. 가능한 하나의 질서 있는 세계를 구축하는 것, 그것은 여전히 건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SPACE: 원형, 삼각형, 사각형이 중첩, 대치, 반복, 나열, 접합되거나 축소 혹은 과장됐을 때 어떠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페소: 재미있는 구성 게임처럼 들리는데 우리는 그런 게임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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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우리시오 페소는 “우리는 새로운 건물을 만드는 일을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즉 새로운 인공물을 발명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에 새로운 어떤 것을 가져오려는 순진한 시도로 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작업에 어떠한 참조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아론 패터슨, ‘인터뷰: 페소 본 에릭사우센’, 「아키텍처 나우」, 2016년 4월 1일, https://architecturenow.co.nz/articles/pezo-von-ellrichshausen/, 2026년 6월 11일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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