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끝에 문을 연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멀지 않은 돈의문박물관마을에 서울도시건축센터도 이미 존재하긴 하지만, 아무튼 서울에 도시와 건축을 본격적으로 내세우며 생긴 전시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화문에서 뻗어 나온 세종대로 일대의 입지를 생각하면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전시관을 가능케 한 2015년의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라는 공모전 명칭도 그렇고, 공모요강은 이 일대가 500년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한 대한제국의 출발점이자 지난 100년 격동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지였음을 명확히 한다. 국세청별관(옛 조선체신사업회관, 1937)을 철거하고 마련한 대지는 삼면이 덕수궁, 성공회성당(1926 & 1996), 서울시의회(옛 경성부민관, 1935)로 둘러싸인 곳 아닌가. 그리고 동측의 세종대로를 건너 마주하는 서울도서관(옛 경성부청사, 1926)과 서울시청 신청사(2012), 또 서울광장 너머 저만치서 아른거리는 소공동의 조망은 이 땅의 기운을 한껏 북돋고 있다. 현대 메트로폴리스의 한복판에 지난 세기 켜켜이 쌓여온 역사와 문화의 지층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단 말이다.
결론부터 말해보자.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가장 큰 의의는 이와 같은 주변의 역사적 건축물과 공간을 부각시키며 자신은 겸손히 몸을 낮춘 것, 바로 여기에 있다. 지상으로 드러낸 건물 몸체라봐야 대지 전체를 덮는 직사각형 판이 전부다. 그것도 딱 인접한 덕수궁 담장의 높이만큼만 들어 올려졌다. 아, 레스 이스 모어(less is more)! 결국 완만한 경사의 옥상광장만이 여기서 두드러지는데, 현재 ‘서울마루’라 명명된 이 비움의 공간은 주변의 다채로운 역사문화경관을 조망하는 플랫폼으로 가장 잘 작동할 것이다. 그리고 거꾸로 시청 쪽에서 보면, 건물 지붕의 기다란 수평선은 성공회성당을 위한 일종의 시각적 기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절제된 단순미야말로 터미널7아키텍츠(조경찬)의 공모전당선작 ‘서울 연대기(Seoul Chronicle)’를 다른 수상작과 차별화한 요인일 테다. 차순위로 입상한 운생동의 ‘역사문화 연결체(Time Connector)’든 디자인그룹오즈의 ‘Seoul Living Room’이든, 제각각 매력적인 랜드스케이프를 자랑하는 만큼 주변의 역사적 건물들 못지않게 스스로가 보행자의 시선을 끌 것이기 때문이다.
납작 웅크려 존재를 간소화한 배경으로서의 건축. 이리 볼 때 우리 생각은 개관 직전까지도 통용되던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이라는 건물 명칭에 대한 의구심으로까지 옮겨간다. ‘서울 연대기’의 첫 디자인이 지하 3층에서 지상 1층에 이르는 실내 공간에 여러 전시실과 일정 규모의 수장고를 계획했다고 하지만, 거창히 ‘박물관’이라 하기에는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고 이러저러한 사정도 여간 녹록지 않았던 까닭이다. (공모전 당시 박물관으로의 자리매김이 없었던 데서 알 수 있듯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이라는 아이디어는 수상작이 결정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제기된 바다.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게 아니니 결국 실현될 수 없었는데, 의사결정 주체들 사이의 혼선에 대해서는 논외로 해두자. 돈의문의 서울도시건축센터와의 관계는 또 어떤가?)우리가 아무리 박물관을 열망한다 하더라도, 이 건물의 지하 공간은 이름에 걸맞는 도시건축의 방대한 콘텐츠를 담고 전시하기에 물리적 한계가 클 수밖에 없다. 고로 지금처럼 훨씬 힘을 뺀 ‘전시관’ 정도로 기능하는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일 게다. 물론 방점이 건물 외부에 있다는 전제하에서다. 다시 말하면 건물 자체가 수장품을 쌓는 박물관이기보다, 주변의 유서 깊은 건축물과 공간을 박물(博物)로 차경(借景)하고 즐기는 장으로서의 플랫폼이야말로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뚜렷한 정체성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관으로서의 내부 공간에도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실내에서 제일 인상적인 곳은 남측의 덕수궁 쪽을 면하는 ‘비움홀’로서 지하 3층에서 지붕 천장까지의 네 개 층을 관통하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여기에는 지상 1층의 주 출입구로부터 각 층의 주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이르게 되는데, 커다란 실내 볼륨 덕에 상대적으로 큰 전시나 행사가 가능하다. 지하의 각 레벨은 이 공간과 다양한 방식으로 조우하는 가운데 저마다의 전시실이나 아카이브, 또는 교육 공간 등을 둔다. 건축가는 실내 공간을 구획하는 벽이나 난간을 유리면으로 함으로써 공간 사이의 시각적 관입과 투명성을 높였다. 외기에 면한 지상층의 벽면도 그러한데, 이는 비움홀에 자연광을 유입시키는 고측창의 역할도 한다. 한편 외부에서 실내로 진입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세종대로 쪽 인도에 면한 주 출입구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그 좌우에 놓인 두 개소의 계단실을 통해서도 실내에 이르게 되며, 서울시청 및 지하철과 연계된 세종대로 아래 지하보도에서도 전시관의 지하 1층으로 진입할 수 있다. 또한 옥상광장에서 실내의 모든 층에 이르는 엘리베이터도 추가적 동선을 제공한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주변의 역사적 경관을 조망하는 플랫폼이자 지하 전시관으로 긍정적 성취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지만, 아쉬움 역시 없지 않다. 가장 손쉽게 발견되는 바는 디테일에 완성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다. 1:20 구배의 옥상광장과 서울시의회 쪽 계단이 자연스레 만나지 못하는 부분이라든가 실내의 마감재에 종종 발견되는 흠이 그렇다. 이 문제의 원인은 건축가에게보다 시공자에게, 더 근본적으로는 프로젝트의 지체 및 의사결정의 혼선을 가져온 관료적 시스템에서 찾는 게 낫겠다. 또 다른 아쉬움은 공모안의 여러 아이디어가 실제의 설계 과정 중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사라졌다는 점이다. 옥상광장에 천창을 두고 비움홀로 빛이 떨어지게 했던 것이나 비움홀의 ‘그린 월’ 및 ‘아카이브 벽’을 두겠다는 생각이 그 예다. 공모안 이후 발전됐던 아이디어 가운데서는 옥상광장이 성공회성당의 주차장 공간과 통합되지 못하고 1m의 단차로끊어졌다는 사실이 꽤나 애석하다. 나중에라도 둘 사이가 물리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면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질 것이다.
허나 이와 같은 현실적 제약으로 인한 아쉬움과는 별개로 숙고해야 할 사안이 있다. 그것은 이 프로젝트가 중시했던 다층적 역사의 흔적을 건물 자체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보듬거나 표상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비움홀 한쪽 바닥에 발굴 유구를 보존해 전시했지만 원래의 위치와 다를뿐더러 제시된 설명 역시 실제 유구에 적확하지 않으니, 그 역사의 지층과 건축 공간의 유기적 통합은 불가해 보인다. 그래도 이는 건축가의 역량 밖의 문제라 치자. 그렇다면 예컨대, 국세청 별관 철거 당시 남겨진 23개 기둥의 활용 문제는 어떠한가? 공모안에서 남겼던 기둥이 사라진 것도 현실적인 이유에서라지만, 그리고한 개의 기둥 몸체와 여러 기둥들의 흔적이 옥상광장에 보존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라지만, 이 기둥들이 실제의 내부 공간으로 연계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기둥 기초의 깊이 차로 인해 비움홀에서 불가했다면 그 반대편 전시 공간에서라도 기둥과 기존의 골조를어떤 식으로든 활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를 통해 역사의 숨결을 실내 공간으로도 끌어올 수 있고, 폐허의 흔적으로 인한 강렬함이 모종의 전율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현대적 세련미의 공간으로 일단은 성취를 보았다 하더라도 여기에 시간의 깊이를 더했더라면 그 공간 경험의 강렬함도 한층 더했으리라. 배경으로서의 건축도 내적으로는 스스로가 주인공이렷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덕수궁 담장 높이만큼만 들어 올려졌다.
지하 3층부터 지상 1층까지 이르는 비움홀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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