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기획에 의해 운영 방식이 결정되고 그 결과에 맞춰 구조물이 지어질 것이며 그 제안자에게 운영을 맡길 것이다.” 2015년 6월 발표된 노들꿈섬 공모▼1의 비전이었다. 2017년 1월, 서울시는 노들섬 특화공간조성위원회에서 노들꿈섬 공모의 취지가 실현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노들섬 운영자를 민간위탁 입찰로 다시 선정할 것임을 알렸다. 그 결과 노들꿈섬 공모 당선자는 운영과 관련해 우선협상 대상자의 지위를 포기하게 되었다. 노들꿈섬의 꿈은 이렇게 실패로 끝나는 듯하였다. 2019년 9월, 노들섬이 4년여의 준비를 마치고 개장했을 때 노들섬 운영자는 2015년 노들꿈섬 운영 공모의 당선자였다. ‘선 기획ㆍ운영, 후 설계ㆍ공간조성’이라는 개발 방식의 변화, 공모 방식의 전향적 변화를 시도한 노들섬에 지난 4년간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지난한 과정이 남긴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들섬 조성 과정을 기획과 운영 측면에서 되짚고자 한다.
섬의 기획이 시작되다 ‐ ‘무엇을 만들 것인가’ 이전에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공간의 물리적 구축 이전에 공간이 어떤 것을 담고 누구에 의해 가꾸어져야 할지를 고민한 노들섬 프로젝트. 이 작업에 나설 사람들을 공개 모집하며 기존에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던 방식으로 공공공간 조성이 시작되었다. ‘공간’이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기획’이 필요하다. 장소가 되기 위한 기획은 찾아오는 이에게 어떤 의미와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공간기획은 물리적 공간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작업이기에 보다 구체적이며 비물리적 영역을 포함한다. 그래서 기획은 공간에 콘텐츠를 불어넣는 일이라고도 쉽게 설명된다.
기획을 통해 시작된 장소는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활동해야 하는 ‘유기적 공간’이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건축이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지만, 아무도 찾지 않거나 이야기가 없는 공간은 근사한 공간일지언정 장소로 불리지는 못한다. 계속 꿈틀대는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가꿈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활동을 ‘운영’이라 부른다. 기획과 운영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노들섬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팀이 머리를 맞댔다. 공모에 최종 당선된 팀은 공간기획을 책임지는 ‘어반트랜스포머’를 중심으로 여덟 분야의 작은 힘들이 모인 ‘밴드오브노들’이었다. 밴드오브노들은 음악을 매개로 하는 복합문화 기지라는 비전과 함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촉매로서의 역할을 제시하며 운영계획을 제출했다. 이들은 노들섬이, 한강개발 사업으로 인해 공공공간이 점차 사라진 한강에서 유일하게 남은 문화의 향유 공간임을 강조했으며,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가 엮이는 콘텐츠를 기획 · 제안하였다.
섬을 지키다 ‐ 노들꿈섬 공모의 제도적 장벽
노들꿈섬 운영 공모의 당선자는 민간위탁 제도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노들꿈섬이라는 공모가 운영자의 공식적 지위를 확보하는 방법으로서 택한 제도적 툴이었다. 물론 노들꿈섬 공모가 기획된 시점에서는 운영 당선자를 수의계약을 통해 민간위탁 수탁자로 계약 가능하다는 점을 검토하고 진행했었다. 그런데 운영 공모 이후 이를 가능하게 한 제도적 근거인 공유재산법 시행령의 개정으로 민간위탁 지침이 변경되면서 서울시는 공모 당선 팀인 밴드오브노들과 이 방법으로 계약할 수 없었다.
밴드오브노들은 민간위탁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고, 조례신설을 요구하였으며, 자체적 법률 검토를 통해 대안을 찾아 헤맸다. 서울시도 공유재산법 시행령 개정안을 수정하는 방안을 찾고 수의계약이 가능하도록 시의회 위원들의 이해를 구하는 데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결국 서울시는 노들꿈섬 공모의 취지가 실현될 수 없음을 공식 발표하고 민간위탁 입찰을 통해 운영자를 재선정할 것임을 결정했다. 공모 당선 팀도 이를 받아들였다. 현실적 제도의 벽이 너무나 높고 견고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밴드오브노들은 미래의 운영권 보장에 대한 불확실성과 재정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해체되어갔다. 팀의 중심에 있던 어반트랜스포머와 한국레이블음반산업협회만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 팀은 노들섬 활성화를 위한 파일럿 사업에 ‘운영 공모 당선자’가 아닌 ‘용역사’로서 참여하였다. 노들섬을 기획했으나, 노들섬을 알리기 위한 모든 활동을 용역입찰로 따내야 했으며 미래의 운영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추후 운영을 고려한 홍보와 관련 계획수립을 이어갔다. 노들섬의 기획부터 운영계획 수립까지 참여하며 만들어나간 섬을 그 시작도 전에 떠날 수는 없었다.
2018년 3월, 노들섬 민간위탁 입찰 공고가 발표된다. 밴드오브노들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어반트랜스포머는 팀을 정비하여 마지막으로 이 입찰에 도전한다. 그리고 2018년 6월, 노들꿈섬 운영 공모 당선 후 만 3년 만에 노들섬 민간위탁 수탁자, 다시 말해 운영자로서 서울시와 계약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입찰에서 노들꿈섬 운영 공모의 당선 이력도, 지난 2년간 노들섬의 모든 기획을 한 과업도 평가에 반영되거나 유리하게 작용하지 못했다. 공정성을 위해 오히려 더욱더 조심스럽고도 철저하게 검증되고 평가를 받았다.
골조 공사가 마무리된 이후 운영자가 확정되면서 작은 유닛들의 조합이라는 틀에서 큰 시설들의 배치로 계획안이 일부 변경됐다.
섬을 채우다 ‐ 공간은 비워내고, 이야기는 채워지다
섬, 자연, 모듈화된 공간, 무엇이든 담길 수 있는 비어 있는 공간. 이 공간을 이야기와 사람으로 채우는 일이 운영자의 미션이다. 또한 공간적 특성을 이해하며 공간이 가지는 가치를 최대화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운영자가 공간을 장소로 변화시켜 나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와 사람으로 채워진 공간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경험을 제공한다. 장소로써의 경험을 설계한다는 것은 공간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 맞는 콘텐츠의 발굴, 콘텐츠가 공간에 녹아드는 장면의 구성, 공간과 콘텐츠와 사람이 연결되는 장치의 고안, 더 나아가 이 경험이 현실에서 작동하게끔 하는 제도적 문제해결, 그리고 이 경험이 지속되기 위한 경영의 고민 등,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것이 운영이며 따라서 장소의 운영자는 시설의 관리자와 다르다. 물리적 공간 구축이 중심이 되던 개발의 시대에 우리는 운영자보다 시설 관리자에 더 익숙해 있었다. 물론 시설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도 운영의 한 축을 차지하지만, 이 너머에는 공간을 더욱 잘 활용하고 가꿈으로써 그 공간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서서히 운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공간이 공공공간이라면 운영은 더욱 중요해진다.
공공공간인 노들섬의 가치를 살리고 창의적인 운영의 묘미를 발휘하는 일은 민간 소유의 공간에서와는 다른 과정과 절차로 진행되었다. 노들섬은 공유재산으로 ‘공유재산법’ 에 따라 함께할 입주자를 모집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기존의 제도적 틀은 최고가 입찰이며, 이 최고가 입찰은 창의적이지만 자본이 부족한 지원자에게 큰 벽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노들섬의 운영자는 공식적으로 민간위탁 수탁자로, 그에게 허용된 운영 기간은 서울시 민간위탁조례에 따라 3년으로 제한적이다. 그나마도 노들섬 프로젝트의 경우 민간위탁 수탁 기간에 운영 준비 기간 1년 3개월이 포함되었다. 이 때문에 노들섬 개장 이후 운영할 수 있는 기간이 절대적으로 짧다. 이는 노들섬을 채울 구성원을 모집하는 데에도 장벽이 된다.
이미 정해진 제도와 법을 바꾸기 어렵다면 기존 제도를 최대한으로 잘 활용해야만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노들섬은 현재 민간위탁 수탁자인 어반트랜스포머 컨소시움을 중심으로 서른 네 개의 회사 및 단체들이 구성한 협업체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최고가 입찰 제도를 준수하면서도 노들섬의 가치를 함께할 구성원을 찾아나서는 것, 노들섬 내 중요한 공간을 수탁자가 직접 구성하고 운영하는 면적을 최대화하면서 자본이 부족하지만 창의적인 사람들을 창작자 지원 공모 방법으로 유입시키는 것, 그리고 사회적 가치를 함께 만들어나갈 사회적 기업을 찾아 나서며, 공유재산법 내에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임대료 감면, 절차들을 활용하여 이들과 함께 할 판을 구성하는 것 등이 현재 노들섬을 만드는 사람들을 구성한 운영자로서의 역할이고, 이를 통해 노들섬을 채워나갔다.
장소로 다가선 노들섬 ‐ 그 과정이 남긴 것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선례는 무척 중요하다. 노들꿈섬 공모의 시작과 그 꿈은 원대했으나 현실에는 무수한 장벽이 있었다. 단 하나의 선례만 있었더라도 장벽들을 뛰어넘기가 조금은 수월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선례가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앞으로 탄생할 공간을 만들 주체들이 노들섬이라는 선례를 통해 기존의 사고와 틀을 극복해나가는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노들섬이 지켜나가야 할 의미와 역할을 찾고 싶다. 노들섬의 사례는 우리에게 공간 조성 시 물리적 구축 과정의 틀을 너머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행정의 틀 그리고 사회적 구조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도 제공한다. 혁신적 공간의 조성은 공간 거버넌스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들꿈섬 공모의 시작에서 기존의 민간위탁 제도가 아닌 새로운 방식의 거버넌스도 함께 시도되었다면? 창의적 운영을 위해 노들섬을 채우는 과정에서 공유재산법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틀도 함께 고민되었다면? 이 두 지점에서 노들꿈섬 공모는 미비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장소’들을 위해 노들섬이 보다 적극적 고민과 논의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노들섬 동쪽 부분에는 다목적 시설이 배치됐고, 비오톱은 부분 정비를 거쳐 노들숲으로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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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들섬 공모의 공식 명칭은 노들꿈섬 공모다. 공모 주최 측에 따르면, ‘노들꿈섬’은 한강과 노들섬이 갖는 장소적 의미와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미래의 가치를 꿈으로 설정하고 그 꿈을 노들섬에 실현하고자 명명된 이름이다. 노들꿈섬 공모는 단계별 공모 목적에 따라 각각 ‘노들꿈섬 운영구상(1차) 공모’, ‘노들꿈섬 운영계획 · 시설구상(2차) 공모’, ‘노들꿈섬 공간 · 시설조성(3차) 국제설계공모’로 명명됐다. 이 글에 등장하는 ‘노들꿈섬 운영 공모’는 1 · 2차 공모를 가리킨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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