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철안은 나무와 금속을 구부리고 매듭지어 유기적 형태의 가구와 조형물을 제작한다. 형태에 대한 실험을 중심에 두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가구 디자이너가 아닌 조형 작가라 칭한다.
인터뷰 곽철안 × 최은화 기자
최은화(최): 최근에 ‘커시브스트럭쳐’, ‘입방획’이라는 이름으로 연작을 선보이고 있다. 붓글씨의 조형 원리를 재해석한 의자, 테이블 등의 가구 연작인데, 어떻게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나?
곽철안(곽): 붓글씨를 출발점이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다.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대학교 때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를 다녔는데 그 당시 수업은 주로 나무를 적층해 덩어리를 만든 다음 형태를 깎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작업 효율도 좋지 않고, 나무에 가하는 태도도 폭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있다가 라운드 합판의 존재를 알게 됐다. 오징어 합판, 요꼬 합판, 아루 합판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인테리어용 합판이다. 곡면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손으로 쉽게 구부려 유연한 표면을 얻을 수 있다. 동시에 그 당시 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잘 다루는 축에 속했는데, 가상의 볼륨을 3D모델링 프로그램을 이용해 만들고 전개도로 분해해서 출력한 다음 종이나 평면 재료를 이용해 실제로 조립하곤 했다. 이번 연작에서는 이 모든 게 한번에 맞물렸다. 발상은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최: 그렇다면 붓글씨와 본인의 작업은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곽: 일종의 비유랄까. (웃음) 작업을 설명할 때 유용하다. 붓글씨를 쓰는 행위는 공간이라는 3차원에서 일어나는데 붓이 종이에 닿으며 남는 건 평면이라는 2차원이다. 붓글씨를 쓰다 보면 시각적으로 입체가 평면으로 바뀌는 지점들이 있다. 내 작업과 맞닿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요즘은 붓글씨에서 힌트를 얻기도 한다. 붓글씨를 공부하고 또 해석하며 내 작업에 응용하곤 한다.
최: 유연하게 흐르는 형태가 인상적이다.
곽: 주로 눈감고 상상하는 편이다. 머릿속에서 희미한 잔상이 잡히면 그때 스케치를 하거나 바로 컴퓨터로 모델링을 한다. 그 뒤로 2D와 3D를 오가며 수정을 거듭한다. 종이에 붓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보고 컴퓨터로 옮겨와 입체로 구현해보고 다시 평면으로 살펴보고 다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식이다. 나는 생각을 형태로 만드는 걸 좋아한다. 조형으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최: 형태,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런데 워낙 조형이 강렬해서 누군가는 이 작업이 가구인 줄도 모를 것 같다. 평소 가구의 기능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곽: 가구는 사실 별 기능이 없다고 생각한다. 높이를 제공하는 정도다. 하지만 그렇기에 누군가는 예술적 실험을 더할 수 있고 누군가는 기술을 가미할 수도 있다. 마치 도화지처럼 여러 시도를 포용할 수 있다. 다만 가구로서 최소한의 조건들은 지킨다. 세 지점 이상이 바닥에 지지되는 구조를 만들고, 하중이 가해졌을 때 안정적인지를 확인하고, 사람이 앉았을 때와 만졌을 때를 고려해 되도록이면 나무로 마감한다.
최: 형태를 실물로 구현하는 과정도 궁금하다.
곽: 컴퓨터 수치 제어(CNC) 기계로 라운드 합판을 자르고, 부재를 조립하면 끝이다. 단순노동에 가까운 작업이다. 실질적으로 형태를 만드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합판이라는 재료는 한 방향으로만 휘는데 내 작업은 획이 여러 방향으로 구부러지고 또 어떤 건 꼬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선 합판이 휘는 방향을 고려해 하나의 큰 볼륨을 여러 개로 나눈다. 이 과정은 컴퓨터로 다 진행한다. 그다음으로는 작은 볼륨마다 전개도를 펼치고 실제 재료를 자르고 조립한다. 볼륨의 단면끼리 연결하면 컴퓨터에서 가상으로 만들었던 형태가 실물이 된다. 예전에는 오차가 종종 발생해서 수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요즘은 정확도가 높아졌다. 내가 만들어놓고 스스로 놀랄 때도 있다. 이게 왜 한번에 되냐면서. (웃음)
최: 전통 목공 방식과는 아주 달라 보인다.
곽: 부재를 켜켜이 쌓고 구부려서 만든다고 생각하면. 아, 정말 힘든 작업이 될 거다. 나무를 구부리면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어서 그 탄성을 이기기 위해 부재를 두껍게 쌓아야 한다. 정확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형틀도 필요할 거다. 하지만 내 작업에는 형틀이 필요 없다. 각각의 부재가 서로의 형틀이 된다. 모서리가 맞물리면서 정확한 입체 형태를 얻을 수 있다. 이 작업을 철, 스테인리스 스틸 등 금속으로도 제작한다. 사실 금속공예에서는 새로운 기법은 아니다. 그 분야는 용접이 가능하다. 게다가 내 작업은 일정한 너비의 부재가 처음부터 끝까지 간다. 가다가 얇아지고 두꺼워지는, 그런 기술의 실험이 없다.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인상을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최: 이전 인터뷰에서 이 연작에 대해 “확장성이 크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확장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궁금하다.
곽: 내 작업에는 가구도 있지만 조형물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큰 사건이자 도전이다. 조형물을 한다는 건 순수예술 작업을 한다는 의미인데, 그런 분야에 내가 기능을 가진 어떠한 오브제를 가지고 들어간 거다. 요즘은 가구보다도 조형물 작업이 더 많아지고 있다.
최: 현재 상명대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이기도 하다. 스스로 본인의 작업을 대할 때와 학생들의 작업을 대할 때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곽: 확연한 차이가 있다. 내 작업은 오로지 조형만을 다루는데, 학생들 작업에서는 조형을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조형은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교수가 학생에게 취향을 강요해선 안 된다. 그건 권력 남용이다. 학생들에게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건 비전과 콘셉트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묻는다. 개념이 시대감각과 동떨어져 있거나, 논리가 부족하다거나, 궤변일 경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예를 들어 ‘앉지 못하는 의자’를 만들어서 의자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학생들을 매료시키는 개념이고 철학인 건 알겠는데, 의자의 사전적 정의와는 맞지 않는 궤변이기에 이런 부분은 바로잡는다. 이런 식으로 수업에서는 이야기와 논리 구조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 조형은 마지막 단계에서 다듬으면 된다.
최: 실무자이자 교육자이며 연구자인 곽철안이 바라보는 현재 한국의 가구디자인의 모습이 궁금하다. 최근 한국은 어떤 흐름 혹은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가?
곽: 기하학적 형태나 색깔에 중점을 두는 작업이 많다. 원, 삼각형, 사각형 등 기초적인 조형 언어의 유행은 작품 활동의 진입 장벽을 낮추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다양성이 결여되어가는 것 같은 부정적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사람들이 입체보다 평면적 시각효과를 선호하게 되면서 생기는 당연한 변화이기는 하다. 변화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평면적 구성, 이미지 중심, 그래픽 등의 경향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본다. 아이폰에서 아이콘의 그림자가 사라졌다고 우리 모두 같은 길을 가야 할까?
곽철안, ‘와이드체어(커시브스트럭쳐)’, 스테인리스 스틸에 분체도장, 1300×1100×800mm, 2018 (Image courtesy of Kwak Chulan)
곽철안, ‘드래곤체어(커시브스트럭쳐)’, 나무에 먹마감, 스테인리스 스틸, 1100×900×850mm, 2018
곽철안, ‘벤치(입방획)’, 철에 분체도장, 3500×1900×1800mm, 2019 (©WGNB)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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