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미현×김금영 기자
샤워를 하는 남자가 찍힌 사진, 은밀한 부위가 살짝 가려진 사진이 한 사람의 사적인 생활을 들여다보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몰래 훔쳐보듯 불편하지 않았다. 사진 속 인물의 모습이 그저 무심히 자신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이어가듯 매우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강렬하면서도 정도를 지나치지 않은 편안함이 공존하는 사진, 그것이 처음 접한 김미현 작가의 신작 욕실 시리즈에 대한 인상이었다. 이 작가의 또 다른 사진들은 어떤 풍경을 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김금영: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서 전시를 여는 것 같다.
김미현: 파리에서는 꾸준히 전시를 가졌는데 한국에서 하는 개인전은 정말 오랜만이다. 1990년대 초 강남 쪽 포토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17년에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30주년 전시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에 참여했다. 한국에서 개인전은 한 20여 년 만에 여는 셈이다. 이번 전시에 정물 사진을 비롯해 밤의 파리, 포장마차, 키스 그리고 신작 욕실 시리즈까지 선보인다.
김금영: 지금은 사진작가로 활동하지만, 현재 거주하는 파리에 가게 된 계기는 ‘영화’ 라고 들었다.
김미현: 내 작업의 시작은 영화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 초 삼청동에 있었던 프랑스 문화원 건물 지하에서 항상 프랑스 영화를 상영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서클을 만들어 매주 프랑스 영화를 공부했다. 본래는 이화여자대학교 보건교육과를 나왔는데, 영화를 더 공부하고 싶어 사범대학 시청각교육과 대학원을 다시 시험 봐서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너무 재미없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현장에서의 실습인데 이론 위주로 책상 앞에서 용어를 분석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한 학기 마치고 ‘어쩌나?’ 고민했는데 마침 프랑스에 어학연수를 갈 기회가 생겼다. 처음엔 1년만 있다 오려 했는데 같이 어학연수를 간 친구들이 다 프랑스 대학에 지원했다. 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원서를 냈는데 덜컥 소르본 대학에 합격했다. 그렇게 1985년 파리로 건너가 영화 공부를 시작했고 현재 33년째 파리에 눌러앉아 있다.
김금영: 프랑스 영화의 어떤 점에 매료됐는가?
김미현: 프랑스 영화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다. 뭔가 정석이지 않은 기발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랄까? 프랑스 문화원에서 영화를 볼 때 한글이 아닌 영어 자막이 나와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봤는데 그럼에도 빠져들었다. 불어도 듣기 좋았다. 특히 프랑수아 트뤼포의 작품들이 인상 깊었다. ‘새로운 물결’을 뜻하는 영화 운동 누벨바그가 무너져가는 프랑스 영화산업에 대한 반동으로 1950년대 후반 시작되었다. 이 시기 새로움과 혁신을 추구한 실험적인 영화들이 많이 나왔는데, 트뤼포가 누벨바그 운동의 대표 영화인이었다. 그의 작품은 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김금영: 그렇게 영화 공부를 하다가 진로를 바꿔 돌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김미현: 프랑스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할 때 사진 강의도 하나 있었다. 한 번도 못 본 사진들을 이 강의에서 봤는데 여기서 또 재미를 느꼈다. 사진으로도 내 생각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또 내 성격상 사진이 잘 맞았다. 영화는 협업이 중요한데 나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 속을 끓일 것 같았다. 사진과 영화 모두 좋았지만 내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는 데는 사진이 더 잘 맞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사진 학교로 편입해 파리 8대학 석사과정에 들어가 사진과를 다녔다. 이때 선생님 중 한 분이 유명 에이전시 메티스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그렇게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금영: 대표작인 밤의 파리 시리즈를 안 짚고는 넘어갈 수 없다. 파리의 수많은 곳들 중 카페에 집중해 사진을 찍었다. 왜 카페였는가?
김미현: 파리의 카페는 특별했다. 새벽부터 노동자들이 드나들면서 신문을 읽고, 밥도 먹고, 친구들을 만나고, 술도 마시면서 마치 자기 집 거실처럼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1990년대 초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공간이 한국에 흔하지 않았다. 그러다 파리의 개방적이고 편안한 카페를 보니 참 매력적이었다. 또 밤에 보는 카페는 유독 특별했다. 밤의 어둠이 사람들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었다.
김금영: 이번 전시명 <나이트콜>도 그렇고 대표작인 밤의 파리 시리즈까지 밤이 유독 작가에게 특별한 시간인 것 같다.
김미현: 밤을 좋아하긴 하지만 밤에만 사진 찍는 것을 고집하진 않는다. 신작 욕실 시리즈는 아침과 낮에도 사진을 찍었다. 밤의 파리 시리즈는 사진전 참여를 계기로 시작했다. 메티스 에이전시 멤버들과 1994년 11월 파리 카르나발레 박물관에서 사진전을 가졌다. 이때 전시 주제가 파리의 밤이었다.
이 주제를 받기 전까진 주로 정물을 찍었었는데,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밖으로 나가서 카페를 가고 그곳의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다. 에이전시가 밤의 파리 시리즈를 할 수 있도록 나의 작업 세계를 열어준 셈이다.
김금영: 파리에서는 카페, 한국에서는 포장마차를 찍었다. 카페에서 포장마차로의 장소 전환이 눈길을 끈다. 두 장소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는가?
김미현: 파리에서 카페를 찍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에서도 여러 공간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면 뭘 찍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당시에는 내 눈이 안 뜨였던 탓인지 한국의 풍경이 촌스러워 보였다. 그러다 2000년 초 무렵 한국에 왔는데, 예전엔 촌스럽고 지저분하게 보였던 포장마차가 정말 아름답게 보였다. 파리에서는 사람들이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하루를 나누는데 한국에서는 그 공간이 바로 포장마차였다. 한잔 술에 그날의 고됨을 털어버리고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면서 한국인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때부터 한국에 올 때면 친구들을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옆 테이블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고 사람들이 나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때쯤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김금영: 영화를 공부한 경험이 화면에 녹아든 것일까? 촬영 과정을 듣지 않고 사진을 보면 꼭 영화의 한 장면을 캡처한 것 같다. 사진 속 사람들에게 뭔가 숨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고, 그 이야기가 흘러가는 과정 중 한 장면을 마주한 느낌이다. 그래서 연출한 장면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김미현: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닌데 영화 스틸 컷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절대 연출한 장면이 아니다. 사진 찍을 때 내 존재가 희미해지는 순간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카메라를 의식한다. 그러면 표정과 행동이 어색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진기를 든 내 존재를 잊고 다시 자연스럽게 행동할 때까지 기다린다. 길게는 하루 종일 기다린 적도 있다.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나만의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카메라 플래시를 쓰지 않는 것, 연출하지 않는 것, 그리고 신뢰의 거리다. 플래시를 쓸 때 일순간 인위적으로 변하는 표정을 바라지 않는다. 연출하지 않고 분위기에 나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신뢰의 거리도 중요하다. 너무 가깝거나 멀지 않은, 상대방이 나를 의식하지 않고 편안해질 수 있는 거리다. 이를 위해서 망원렌즈를 쓰지 않고 표준렌즈를 사용했다.

김금영: 밤의 파리와 포장마차 시리즈 이후의 키스 시리즈는 사람들의 사적인 영역에 한 발 더 들여놓은 느낌이다. 특히 동성 간 키스 장면에 집중한 이유가 궁금하다.
김미현: 2013년 프랑스에서 동성결혼법에 대한 반대시위가 크게 열렸다. 동성 커플들이 많이 위축된 시기였다. 동성 커플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는 데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키스 시리즈를 찍었다. 키스 시리즈에 담은 건 사랑이다. 또 이왕 찍으려면 흔한 것보다 새로운 것을 찍어서 보여주고 싶었다. 이성 커플의 키스를 찍은 사진은 정말 많은데 동성 커플의 키스 사진은 흔하지 않았다. 키스 시리즈는 앞선 밤의 파리와 포장마차 시리즈 때보다 섭외가 굉장히 중요했다. 친구 중 동성 커플이 있었고, 이 커플을 통해 다른 동성 커플들을 소개받았다. 이때도 절대 연출하지 않고 이들이 자연스럽게 키스하는 모습을 찍었다.
김금영: 키스 시리즈도 굉장히 강렬했는데 이번 전시에 선보인 신작 욕실 시리즈는 더욱 강렬해졌다. 이번엔 장소가 욕실이다.
김미현: 아주 먼 옛날부터 욕실은 매우 은밀하고도 개인적인 공간이다. 몇 십 년을 같이 산 가족이라도 욕실에 들어갈 때는 서로 문을 닫아 안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개인적인 공간을 찍어보고 싶었다. 카페에서 포장마차, 동성 커플의 공간, 그리고 욕실까지 소재는 바뀌었지만 내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찍고 있는 주제는 동일하다. 바로 아름다움이다. 카페와 포장마차에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웠고, 사랑을 표현하는 동성 커플의 키스도 아름다웠다. 이번엔 자신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가꾸는 남자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다뤄졌지만 남자들이 자신을 가꾸는 모습은 과거엔 터부시돼 잘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남자들도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추구한다. 섭외한 사람에게 “옷을 벗을 필요 없다. 이를 닦든, 면도를 하든, 아름다움을 위해 하는 행동을 찍고 싶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내 존재를 잊고 샤워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더라. 사진을 찍는 나도, 찍히는 대상들에게도 하나의 도전과 같은 작업이었는데 만족스럽게 진행됐다.
김금영: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김미현: 사람마다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우리를 순화하고 기분을 좋게 하는 것 또는 봤을 때 편안해지는 것이다. 그 형태는 화려하고, 소박할 수도, 촌스러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좋은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이 진짜 아름다움이 아닐까? 앞으로도 그런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셔터를 누르고 싶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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