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집요하게 연구한 김성홍의 새 책 『서울 해법』이 2020년 11월 출간되었다. 땅, 법, 제도, 행정, 시간, 비용, 공간, 형태 구조 등 도시건축이 생성되는 과정 전반에 걸친 다양한 주제들을 깊이 있는 통찰로 아우른다. 이 방대한 연구를 통해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김성홍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 방유경 기자

(왼쪽) 66쪽에 수록된 맨해튼의 아이소메트릭, 파크 에비뉴를 따라 남북 방향으로 39~55 스트리트, 동서로 3~5 에비뉴 구간 (학생 작업)
(오른쪽) 67쪽에 수록된 테헤란로의 아이소메트릭, 역삼역-선릉역 구간 (학생 작업)
방유경(방): 『도시건축의 새로운 상상력』(2009), 『길모퉁이 건축』(2012)에 이어 9년 만에 세 번째 책이 나왔다. 어떤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나?
김성홍(김): 2000년 무렵부터 서울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동서양의 도시, 건축 원론을 짚은 것이 첫 책이고, 기존 틀을 유지한 채 서울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쓴 것이 두 번째 책이다. 그래서 두 책은 내용상 골격이 거의 유사하다. 이후 서양 이론과 원론들은 다 솎아내고 서울에 대해서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명한 국내 건축가들의 작품집은 해외에도 많이 있다. 하지만 해외 건축가나 연구자들이 서울을 이해하려고 할 때 어떤 역사적, 도시적 맥락에서 도시가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 제대로 된 학술연구가 없다는 것이 책을 집필한 가장 큰 동기였다. 그래서 2012년부터 꾸준히 학술저널에 서울에 관한 영문 논문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해외 강연을 다니게 되었고, 그들의 반응을 통해 내가 가진 시각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방: 책을 집필했던 9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연구, 교육, 전시기획, 정책자문 등 다양한 경험들이 책에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특히 예술감독을 맡았던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의 <용적률 게임: 창의성을 촉발하는 제약>(이하 용적률 게임)(2016)은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 <용적률 게임>을 하면서 비로소 서울에 대해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잘 만들어진 한국의 건축물을 밖으로 들고 나가 보여주는 단계는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그건 학예회 수준이지 않나. 결국은 동시대 건축가로서 직면한 공통의 문제들, 환경, 기후, 도시불평등, 양극화, 지속가능성, 젠트리피케이션 등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날카롭고 창조적인지를 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자본이 집결된 대도시 서울을 ‘용적률’이라는 관점으로 본 시각이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 같다. 물론 건축을 정량적 수치로만 본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에서 수치를 대동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방: 『서울 해법』은 그러한 시각의 확장판이다. 도시에 작용하는 외적 논리와 그 속에서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내적 논리 사이의 충돌 및 대립을 깊이 있게 다룬다. 특히 법과 제도, 자본주의의 관계를 지역과 시대에 따라 추적한 분석은 서울을 독해하는 여느 책들과 차별된다.
김: 2013~2014년과 2017~2019년 서울시 도시건축 관련 위원회에서 공부한 경험이 책의 상당 부분에 녹아있다. 여러 심의와 심사에 참여하면서 나에게 법과 제도를 알려준 스승은 이광환(해안건축 기획본부 소장)이었다. 도시는 사실 법과 제도의 문제인데, 건축인들이 도시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실 현장에서 이런 것들을 체득한 전문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들의 지식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지 못할 뿐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시정비법)」 이 건축 현장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몸으로는 아는데 언어로는 설명이 안 되는 식이다. 이를 적절히 통역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법과 제도에 의해 도시건축이 어떻게 형성되고 달라졌는지 그 관계를 이 책을 통해 설명하려 했다.
방: 법과 제도, 행정 안에서 서울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건축계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김: 서울의 평균 필지 면적은 250㎡다. 이와 비교해 대부분의 재개발, 재건축 등 대규모 사업은 필지 면적이 1만~10만㎡ 이상이다. 이는 건축법이 아닌 주택법, 도시정비법, 수많은 지구단위계획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 사이 중간 규모의 건축이 없다. 결국 건축가가 다루는 것은 도시와 건축이 만나는 경계(interface)가 아닐까? 이런 접점에서 만들어지는 공간들이 우리가 말하는 공공성이지 않나? 최근 가로주택 정비사업이나 자율주택 정비사업 등 중간 규모의 사업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여전히 도시 엔지니어들이 만든 틀 안에서 건축가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구조다. 건축가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도시가 급격히 바뀌고 있어 안타깝다.
방: 공공건축가, 마을건축가 제도나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그런 역할을 기대하며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김: 물론 그것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서울시나 자치구 등의 행정 안에서 건축가들의 영역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필지 단위의 공공시설 등의 설계공모에 참여하는 정도일 뿐 도시의 골격을 좌우하는 도시관리계획, 도시기본계획(지구단위계획), 각종 정비계획에 대해서는 총괄건축가(MA)가 들어갈 수 없게 철저히 막혀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안에 들어가도 소통이 안된다는 거다. 건축이 도시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공부하면 도시문제의 뇌관이 어디인지 알 수 있고, 그들과 대립하지 않고 소통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건축가가 시공에 참여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건설사와 비교해 공사 과정에서 디테일을 장악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방: 이 책의 4부 ‘명제’는 교육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학생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이런 법과 제도에 대한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김: 아이러니한 말인데 대학에서 더 세세한 법을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건축이 외적 조건이 없어도 자기만의 규율을 가지고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사회에 나가 작업을 할 때 이런 외적 힘과 압력 속에서 자기 건축을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 학교에서는 이런 내적 논리를 구축할 수 있도록 디자인 교육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특정 대지나 구체적인 형태, 조건을 주고 밖에서 안으로 풀어가는 방식의 설계교육을 거부하는 입장이다. 현장과 대학은 달라야 한다. 같다면 직업학교일 뿐이다.

70~71쪽에 수록된 2016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용적률 게임> 전시 작품, 서울의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에 있는 24개 건축물
방: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과 건축교육은 어떤 식으로 연결될 수 있나?
김: 이 내용을 건축교육에 모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세세한 법규는 몰라도 건축이 이런 내적 원리를 에워싸고 있는 외적 힘들과의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졸업하면 좋겠다. 학생들이 졸업 설계를 할 때, 도심에 용적률 600~800%짜리 대지에 200%짜리 미술관을 설계한다. 땅의 소유가 누구인지, 개인(민간)인지 공공인지, 어떻게 땅을 매입할지, 비용은 얼마가 드는지, 이 비용을 상쇄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의 볼륨이 필요한지 이런 메커니즘을 대략적으로라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5학년 2학기에 이 책을 읽으면 가장 좋지 않을까?
방: 동시대 건축가에 대해 ‘낀 건축가’라고 한 표현이 와닿는다. 현실적인 제약을 넘어 건축가의 자리를 만들고 넓히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김: 굳이 비교하면 도시계획은 사회적인 합의와 절차를 만들고 그걸 제도와 지침이라는 틀로 바꾸는 중요한 작업이다. 반면 건축가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물리적인 실체를 계획하는 사람이다. 허구나 허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답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는 창의력은 건축가만이 지닌 엄청난 장점이다. 우리는 도시를 볼 때 법과 제도가 아닌 즉물적 대상으로 본다. 재료와 공간을 보는 것이다. 건축가가 도시계획가나 엔지니어가 될 수는 있어도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건축가가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게 아닐까?
방: 세 권의 책을 통해 도시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업이 있나?
김: 만일 우리말로 다시 글을 쓴다면 건축이 독자적인 자율성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쓸 것 같다. 사실 건축가들의 근본적인 고민이 그것 아닌가? 이 책에서 한국 건축가의 작품을 자세히 다루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예외다. 서재원(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과 이동준(스토커리 아키텍티 공동대표)이다. 나는 이들의 건축에서 순수한 기하학적 공간 규범을 발견했다. 기하학적으로 정제된 평면과 함께 도시 제약에 대응하는 단면을 조율하는 능력이다. 완결된 정형성의 대표적인 예가 파리나 로마의 역사건축의 평면이다. 건물 주변부는 비정형의 도시 맥락에 순응하지만 중심부는 완벽한 기하학을 유지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 다 자기 작업을 철학과 원칙 등 거대담론이 아닌, 굉장히 현실적인 조건(용적률, 법규)으로 설명한다. 개념과 집 짓기가 일체화된, 체화된 자기 문법이 있기 때문에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지의 맥락을 핑계로 쓸데없는 곡선, 사선을 만드는 절충주의적인 건축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이유다. 이런 건축에 주목하고 있다.
방: 젊은 건축가들을 포함하여 한국 건축의 변화를 예상한다면 어떤 부분이 중요해지리라 생각하나?
김: 건축가가 진짜 전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4세대 건축가들(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한 젊은 건축가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한 해에도 수백 명의 해외 유학파 건축가들이 유입되고 있고, 이들은 해외 건축가들과 동일한 무대에서 경쟁하고 있다. 결국 거대담론식의 개념이 아닌 최종 제품의 질, 시공(final product)으로 승부가 날 것이다. 건축가가 현장에서 어느 단계까지 장악할 수 있는지, 디테일을 어디까지 제어할 수 있는지가 자신을 차별화하는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208~209쪽에 수록된 ‘도시 문신: 미주상가의 간판’ ⓒ 한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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