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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건축가와의 대화]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건축: 방콕 프로젝트 스튜디오

사진
스페이스시프트 스튜디오
자료제공
방콕 프로젝트 스튜디오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건축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건축이 놓이는 장소는 늘 자연이었다. 우리는 인간 중심의 건축에 익숙해졌지만, 건축은 결국 자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주어진 환경을 개선하고 주변과 화합하는 건축이야말로 앞으로 절실하게 필요한 건축의 방향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확장해나가는 태국 건축가 분섬 프렘타다(방콕 프로젝트 스튜디오 대표)와 그의 대표작 ‘엘리펀트 월드’(2020)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분섬 프렘타다 방콕 프로젝트 스튜디오 대표 × 박창현 에이라운드건축 대표

 

 

박창현(박): 태국 북동부 수린 주(州) 반타클랑에 위치한 엘리펀트 월드는 코끼리와 코끼리를 사육하는 쿠이(Kui)족의 삶의 터전을 10년에 걸쳐 조성한 프로젝트다. 코끼리와 사람이 공존하는 건축이라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배경과 진행 과정이 궁금하다.

분섬 프렘타다(프렘타다): 수린 지방행정부에서 담당 건축가로 초청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태국에서 코끼리는 일반적인 동물과 위상이 다르다. 성스러운 대상으로 왕실 의식에 참여하기도 하며 장거리 이동, 건설 현장, 전쟁 등에 다양한 형태로 동원되기도 했다. 태국 사람들은 코끼리를 반려동물이나 노동력이 아닌 사람과 동등한 ‘가족’으로 여긴다. 쿠이 마을은 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코끼리 주요 서식지이다. 수세기 동안 이 지역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생을 코끼리와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산업화가 가속되고 코끼리의 자리를 기계가 대체하면서 코끼리와 코끼리 사육사들은 돈을 구걸하거나 숲에서 일거리를 얻기 위해 방콕, 치앙마이, 푸켓 등 타지로 떠나야 했다. 정부 예산을 받아 이 지역을 되살리고 재건하기 위해 코끼리와 코끼리 사육사를 이 마을에 정착시켜 동물 학대 문제를 논의하고, 숲을 복원해 코끼리들의 먹이와 수원을 되살리는 것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였다.

 

박: 프로젝트가 쿠이 마을, 코끼리 병원, 사람과 코끼리 모두를 위한 사찰과 묘지까지 포괄하여, ‘사람과 코끼리가 함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프렘타다: 쿠이 마을은 400년 이상 된 코끼리 사육사들의 마을이다. 마을에는 사람과 코끼리 모두를 위한 종교 의식을 행하는 파아지앙 사원이 있다. 코끼리 묘지는 이 사원의 일부로 코끼리들이 죽으면 이곳에 묻힌다. 코끼리 병원에서는 코끼리만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젊은 수의사들이 있다. 일련의 시설들은 엘리펀트 월드를 시작하기 전부터 원래 있던 것들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첫째로 지역 문화 보존, 둘째로 코끼리들의 먹이와 약초 재배를 위한 숲의 복원, 마지막으로 코끼리와 쿠이족의 생활양식을 존중하는 관광사업을 꾸준히 유치해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여러 도시에서 떠돌고 있는 태국 전역의 코끼리들이 이곳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박: 공간의 초점을 코끼리, 코끼리 사육사, 관광객 중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서 이곳에서 느끼게 될 경험은 매우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일반적인 동물원이나 코끼리 체험 관광시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프렘타다: 나는 지금껏 인간 중심의 건축을 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코끼리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동물원은 인간과 동물을 분리하고 동물들의 삶을 진열하기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나는 ‘코끼리를 위한 건축’을 통해 인간이 자연 속에서 큰 동물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의 가치를 인지하고 공감하는 법을 알리고자 했다. 쿠이족은 코끼리를 위해 살고, 코끼리들은 쿠이족을 위해 산다. 따라서 엘리펀트 월드는 코끼리와 유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가짐인 ‘사랑’을 반영한다. 정부는 쿠이족이 돌보고 있는 코끼리에게 봉급을 주는데, 코끼리가 죽으면 그 주인은 봉급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쿠이족 사람들은 코끼리에게 각각 이름을 붙여주고 제 자식처럼 아끼고 돌본다. 심지어 먹을 것이 없을 때에도 자신들은 굶을지언정 코끼리의 먹이를 먼저 챙길 정도다. 이곳의 건축은 인간과 코끼리 사이의 배려를 강조하며 이들의 관계를 강화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박: 과거에 무성했던 숲을 복원해 거주환경에 도움을 주겠다는 발상은 자연 친화적인 동시에 인본주의적이어서 공감된다. 매우 건조한 지역으로 보이는데 이곳 기후의 특징은 무엇인가?

프렘타다: 과거에 투자자들은 이곳의 국유림에 환금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숲을 훼손하고 땅을 잠식했다. 그 결과 수린 지역 일대는 물부족으로 태국에서도 가장 극심한 가뭄을 겪었고 1년 내내 무더위에 시달려야 했다. 숲을 복원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건물을 지으면서 기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빗물 집수용 연못을 파고, 여기에서 나온 흙을 이용해 벽돌을 만들어 원형극장을 비롯한 주요 건물들의 자재로 사용했다. 연못은 숲과 코끼리, 사람들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수원이 되었다. 벽돌전망대는 그 위에 올라 지역 식생의 씨앗을 바람을 타고 주변으로 퍼뜨리는 역할을 함으로써 숲의 복원에도 힘을 보탤 것이다.

 

박: 문화마당, 코끼리박물관, 벽돌전망대를 설계하면서 지형이나 기존 건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도록 고려했나?

프렘타다: 내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에 수린 지방행정부에서 이미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몇몇 건물의 설계와 시공을 완료한 상태였다. 나는 마을에서 출발해 세 건물로 이어지는 코끼리 ‘산책로’를 배치의 핵심 개념으로 생각했다. 대지 레벨이 가장 높은 곳에 벽돌전망대를, 가장 낮은 곳에 코끼리박물관을 두고 이 둘을 문화마당으로 구분했다. 세 건물 모두 주변의 숲과 연못으로 이어지며, 점차 낮아지는 건물의 높이와 개방성, 외형은 주변과 어우러져 풍경의 일부가 된다. 

 

 

박: 문화마당은 ㅁ자 형태의 지붕으로 덮여 있다. 수평적으로 뻗은 구조는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준다. 언덕으로 둘러싸인 넓은 마당 안에서는 어떤 행위가 일어나는가?

프렘타다: 문화마당은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행해온 마을 고유의 신앙과 문화와 관련된 행사를 위한 공간이다. 쿠이족의 전통 의례와 행사들은 원래 친척과 이웃, 코끼리들이 다같이 모여 집에서 치러졌다. 이런 행사들이 열리는 문화마당은 관람객들이 여기에 동참하고 쿠이족의 일상을 목격할 수 있는 거대한 코끼리 집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박: 코끼리와 사람 모두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건물의 스케일에 대해 고민이 컸을 것 같다. 코끼리와 사람, 이 둘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균형을 찾았나? 또한 안전을 위한 영역 분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프렘타다: 숲 한가운데 넓은 공터를 가진 사람들의 집에서 200마리가 넘는 코끼리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이곳의 장소, 사람, 코끼리의 스케일을 통합하여 건물이 익숙한 풍경의 일부가 되게 함으로써 둘 사이의 균형을 찾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의 비중을 낮추고자 했다. 이를 위해 내가 생각한 방식은 구축 행위를 최소화하고 열린 공간을 가급적 그대로 남기는 것이다. 문화마당은 사람들이 코끼리의 일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계획됐다. 흙으로 덮인 곳은 코끼리를 위한 영역이고 현무암으로 만든 원형극장은 사람을 위한 영역이다. 둘 다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다. 코끼리는 본능적으로 바위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재료로 경계를 구분하고 환경과도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벽이 없이 지붕만 있는 열린 공간, 흙 더미와 같이 친숙한 형태와 재료로 ‘차갑지 않은 공간’을 조성해 코끼리에게 안락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생각했다.

 

박: 문화마당의 바깥쪽은 평평하지 않고 굴곡진 흙 더미로 이루어져 코끼리들이 뒹굴 수 있다. 강이 4km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코끼리들이 물장난을 할 영역이 필요했을 텐데, 흙을 파서 언덕을 만들고 빗물을 모아 연못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제안하게 되었나?

프렘타다: 문화마당은 코끼리가 먹고 마신 뒤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산책하고 운동하는 공간이자, 오래 집에 머무르며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공간이다. 나는 원형극장과 수공간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최대한 기존 자원을 활용해 이 둘을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총 8,600m3의 흙을 파내고 그 자리에 연못을 조성하면, 207마리의 코끼리들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물을 확보하게 된다. 실상 나는 건물의 절반만 설계했을 뿐이다. 나머지 반은 자연, 코끼리, 쿠이 마을 사람들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 

 




 

 

박: 코끼리박물관의 디자인은 구성적이며 사색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방금 살펴본 문화마당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디자인인데, 특정 부족의 역사를 담은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특히 고려한 것은 무엇이었나?

프렘타다: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예상하지 못한 공간을 맞닥뜨리게 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쿠이족의 집 안으로 들어가 코끼리를 발견하거나, 숲속을 걷다 우연히 코끼리를 마주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나는 이곳을 쿠이족과 코끼리들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구전(口傳) 형태의 박물관이 되도록 설계하고자 했다. 쿠이족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실향민이 된 처지,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 외지인들의 비난, 귀향, 삶의 방식에 대한 자부심과 힘에 대한 외침 등 행복과 고통, 고난이 깃든 400년 역사에 대해 스스로 말하기를 바랐다. 박물관 안의 ‘소리’는 높낮이가 다른 벽을 타고 울림이 증폭된다. 여기서 시적인 요소는 인간의 기능적 언어가 아닌, 감각의 언어인 코끼리들의 소리이다. 코끼리도 우리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고, 부모와 친척도 있다. 코끼리 소리와 쿠이족의 음성은 다른 쪽에서 들려오는 ‘진실’의 소리로 듣는 이들의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길 것이다.

 

박: 당신의 설명에 따라 실제 공간을 상상해보니 코끼리와 인간, 건축이 만들어내는 공감각적 증폭이 와닿는 듯하다. 기하학적 구성을 가진 박물관은 그 자체로 완결된 독립적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주변과의 관계에서 다소 폐쇄적일 수 있는 구조로 보이는데 대지의 맥락에 어떻게 대응하나?

프렘타다: 박물관 설계는 내부와 외부가 공존하는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었다. 중앙 통로는 박물관 내부의 실로 연결되며 건물 바깥으로 연결된 네 개의 출입구로 이어진다. 이 출입구들은 각각 마을, 연못, 숲과 건물을 둘러싼 다른 통로로 이어진다. 관람객이 머무는 내부 전시실은 박물관 실내 전시 영역의 두 배에 이르는 안뜰로 둘러싸여 있다. 안뜰은 이 지역의 햇빛, 비, 그림자, 바람, 소리가 자아내는 독특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으며, 이 모든 공간을 벽돌벽이 층층이 감싸고 있다. 물론 건물을 에워싸고 풍경과 연결시켜 통일성을 만들어내는 단단한 붉은 벽돌벽 때문에 다른 쪽의 시야가 줄어들 수도 있지만, 나의 디자인을 통해 쿠이족과 코끼리의 이야기에 대해 인간의 모든 감각을 깨우고자 노력했다. 박물관 안을 거니는 코끼리들은 외부에 있는 듯한 공간감을 선사할 것이다. 

 

박: 벽돌전망대는 형태와 벽돌의 특징 등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꼭대기층으로 올라가는 여정에서 층마다 다른 느낌을 줄 것 같은데 어떤 변화를 의도했나?

프렘타다: 나는 사람들이 이 작은 구조물 안에서 가능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시간대나 높이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경험하길 바랐다. 사람들은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갈수록 전망대가 층별로 모두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다른 전망대처럼 꼭대기로 달려갈 필요가 없음을 느낄 것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작고 섬세한 것들을 발견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박: 벽돌전망대는 엘리펀트 월드 전체 배치에서 연결성을 지닌 특징적인 위치에 세워졌다. 이는 어떤 의도인가?

프렘타다: 전망대는 잘 보존된 숲과 훼손된 숲의 경계에 있다. 높이 솟은 전망대는 숲을 복원하는 데에도 일조한다. 전망대 꼭대기 부분에는 시속 29~38km의 바람이 부는데, 전망대 반경 20m 안에 여러 식물의 씨앗을 운반해 흩뿌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망대는 한때 파괴되었던 지역에서 다른 나무들의 생명을 낳는 ‘첫 번째 나무’라고도 할 수 있다. 원래 전망대는 코끼리들의 발정기 때 사람들이 몸을 피할 용도로 디자인된 구조물이었다. 엘리펀트 월드 안에서 유일하게 코끼리가 들어갈 수 없는 건물로, 그 자체로 실내 공간, 통풍 및 조경 기능을 갖춘 공학적 구조물로 설계됐다.​ 

 



 

박: 정부의 예산으로 이러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무엇이었나?

프렘타다: 쿠이족은 가난하지만 돈으로 그들을 유혹할 수는 없다.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그러했듯 그들은 부를 위해 코끼리를 팔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름을 내세워 기부하려는 기업이나 단체와 손잡고 코끼리와의 형제애를 저버리는 일 역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쿠이족은 가난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론의 기회조차 없이 코끼리를 학대했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이런 이유로 마을 사람들은 나를 수린 지방행정부와 정부에서 고용된 사람으로 오해하고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초기에는 작업이 쉽지 않았는데, 나의 건축이 그들을 위한 것이며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데 5년이 넘게 걸렸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확산을 계기로 이 지역은 관광 명소가 되었다. 태국 내 주요 관광지에 문을 닫으라는 지시가 내려지고 이곳에 코끼리들의 보금자리가 생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광업에 종사하던 천 마리 이상의 코끼리들이 전국 각지에서 반타클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쿠이 마을로 자본이 유입되자 수린 지방행정부는 입장료 수익으로 코끼리에게 봉급을 지급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지방행정부는 지역 인근에 호텔이나 대형 건물 신축을 불허하는 대신 주민들의 집을 홈스테이나 작은 식당으로 개조하거나 기념품, 공예품, 커뮤니티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자연환경과 문화, 쿠이족의 신앙을 보존하는 것을 장려했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나는 ‘사람과 코끼리로부터 인류애를 배운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가장 큰 감동은 이 코끼리들이 나를 기억한다는 점이다.

 

박: 건축가로서 이러한 태도와 교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태국에서 코끼리와 관련된 건축 프로젝트가 많아지리라 예상되는데, 앞으로 지어질 동물 관련 건축에 대한 관점을 이야기해 달라.

프렘타다: 엘리펀트 월드는 동물이 도시의 변화를 이끈 중요한 사례다. 이 프로젝트에서 건축은 사람들이 코끼리를 소중히 대하도록 돕는 한편 마을 경제의 부흥을 위해 만들어졌다. 인간의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는 만큼 코끼리의 삶의 질 또한 높아져야 한다. 이와 같이 사람과 코끼리(자연)가 공존하는 건축이 계속될수록 코끼리의 생존에도 청신호가 켜질 것이다.

 

박: 엘리펀트 월드를 비롯해 와인 아유타야(2017)나 더 워크(2020) 등 일련의 작업을 보면 예술이 건축으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프렘타다: 나에게 건축이란 트렌드에 구속받지 않는 예술이다. 모든 것은 이유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들보다 “기준치가 낮고 규제가 적은 나라에서 일해 운이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굉장히 많은 제약에 맞서야 한다. 숙련도가 낮은 노동자들, 제한된 예산과 시간, 지역성에 대한 지각과 열정, 권력자들의 태도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러한 불리한 요소들은 내가 모든 면에 더 깊은 주의를 요하게 만든다. 복싱에 비유하면 어떤 규칙도 링도 없는 상태에서 싸우는 복서와 같다고 할까. 따라서 스스로 강해지려고 하며 내 생각에 진심으로 다가가려 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강인함은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다.

 

박: 당신은 국내외 세미나와 포럼에서 자신의 작업을 통해 태국 건축을 알리고 있다. 개인의 작업에 국한되지 않고, 자국 건축의 정체성을 찾아 그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데 있어서 이러한 논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렘타다: 나는 줄곧 태국에서 건축을 공부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덕분에 내 생각이 해외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상과 섞이지 않고 그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는 두 명의 직원과 함께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내게 생각의 자유를 주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동력이 된다. 큰 회사에서 일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 같다. 스스로 평하자면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야생화라고 부르고 싶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주한슬(고려대학교 건축학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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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섬 프렘타다
분섬 프렘타다는 태국 방콕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태국의 출라롱콘 대학교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1988)하고 건축학 석사학위(2002)를 받은 뒤 2003년에 방콕 프로젝트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그는 건축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높이는 물리적 환경을 창조하는 일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빛, 그림자, 바람, 소리, 냄새의 감각적 경험이 살아있는 ‘건축 시학’을 추구한다.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선보인 그의 작업은 이론과 실천을 아우르며 사회, 경제, 문화적 의제들을 다룬다.
박창현
박창현은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에이라운드건축의 대표이다. SKMS 연구소로 제32회 건축가협회상, 조은사랑채로 서울시건축상, 제주무진도원으로 김수근 프리뷰상, 제주서호동주택으로 2019년 독일 아이코닉 어워드를 수상했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경기대학교, 홍익대학교,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한국, 일본, 포르투갈 등 세계의 건축가 60여 명과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 건축계의 지도를 독자적으로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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