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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의 스페이스 (논)픽션] 3. 불멸의 면세 구역

글
정지돈
진행
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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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이미지) ⓒMemi Ketie Kokovich

 

 

1.

망했는지 성공했는지 알 수 없는 영화 ‘테넷’에는 흥미로운 공간이 두 곳 나온다. 첫 번째는 프리포트로 영화는 이곳을 일종의 조세 피난처, 예술품을 비롯한 고가의 물품을 보관하는 새로운 개념의 창고로 설명한다. 구입한 그림을 국내로 반입하는 게 아니라 보세구역의 창고에 묶어두고 있다가 팔리면 다시 해외로 보내는 것. 그러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니 좋은 일!  근데 그럴 거면 그림을 왜 사? 보는 사람도 없고 전시도 하지 않는데. 나 같은 일반인도 직구로 쇼핑을 하고 관세를 내지 않으면 관세 창고에 물건이 묶인다. 사흘이 지나면 창고 비용도 내야 되고. 그러니까 내 말은 왜 쓰지도 않을 물건을 굳이 사서 보관료까지 내냐는 말이다. 일반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프리포트의 창고는 일반인이 드나들 수 없는 관세청의 창고와 달리 방문할 수 있다. 국제적인 허가를 받은 회사들은 제네바나 싱가포르, 홍콩과 같은 지역의 보세구역에 유명 건축가, 디자이너와 협업한 창고를 만들고 부자들의 물건을 보관한다. 부자들은 1년에 서너 번 그곳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고 돌아온다…. 음… 내 상식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 그림을 소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이 그림을 사고 되파는 데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탈세 목적일 수도 있고 미술 투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합리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부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건 세금을 내는 것이다.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너무나 원하는 물건이라도 세금만 내지 않을 수 있으면 곁에 두지 않아도 된다! 뭔가 앞뒤가 바뀐 거 같고 목적과 방법이 전도된 것 같지만 생각할수록 이것 말곤 이유가 없다. 세금을 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중간한 부자가 아닌 진정한 부자라는 걸 증명하는 요소 아닌가. 국가와 영토로부터 자유롭다는 증거,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의미. 두 번째 흥미로운 공간은 영화의 빌런인 사토르가 미래의 물건을 얻게 되는 장소다. ‘테넷’은 이곳을 핵실험 후 버려진 구소련의 지역으로 묘사한다.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건 체르노빌과 같은 공간이다. 사고 또는 실험으로 폐허가 되어 출입이 금지된 공간. 다크 플레이스. 구소련의 SF소설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전설적인 소설 『노변의 피크닉』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역’에 물건을 가지러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구역은 외계인이 왔다 간 것으로 여겨지는 불가사의한 공간이다. 구역에서 발견되는 물건은 인류의 과학적 상식, 일반적인 논리에는 어긋나는 기이한 것들이다. 사람들은 이 물건들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무기를 만들려고 하고 물건들은 거래하는 암시장에 생긴다. ‘테넷’과 거의 유사한 설정으로 아마 크리스토퍼 놀란은 스트루가츠키 형제에게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을 것이다. 재밌는 건 놀란이 구역의 특성을 시간과 결합했다는 사실이다. 이곳에서 시간은 멈추거나 거꾸로 흘러간다. 

 

2.

히토 슈타이얼은 ‘면세 미술’이라는 글에서 신자유주의와 결합된 동시대 미술의 특징을 시공간의 결핍이라고 얘기한다. 이러한 결핍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프리포트의 미술품 수장고다. 그에 따르면 미술품 수장고는 이미 동시대 미술의 주요 공간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쓴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2010년 문을 연 자유항은 이미 포화에 가까운 상태다. 모나코에도 자유항이 있다. 베이징에 계획 중인 ‘문화자유항’은 세계 최대의 미술품 수장시설이 될 것이다.” 히토 슈타이얼은 이러한 미술품과 공간을 “투자 상품들처럼 최소한의 추적이나 등록으로 상자 안에 머물면서 국토 밖을 여행하는” “인터넷 시대의 미술관”이자 “이동이 은폐되고 데이터 공간이 클라우드화된 다크넷의 미술관”이라고 표현한다.▼1​

 

이곳에 있는 미술품들은 모든 의무에서 자유롭다. 이른바 면세 미술은 가치를 수행하거나 재현하고 교육할 의무도 없고 명분도 필요 없으며 주인에게 봉사하거나 무언가의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과거의 민족국가가 박물관을 만들면서 국가의 역사를 재현하고 교육했다면 탈국가적인 자본의 프리포트는 역사도 없고 역사를 만들 생각도 없다. 프리포트는 시간의 속박을 받지 않는다. ‘테넷’에서 프리포트가 시간이 인버전 되는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다시 말해, 세금에서 자유로운 공간은 시간에서도 자유롭다. ‘Duty free’는 시간의 제약을 포함한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하며 결국 부자들이 원하는 건 돈도 명예도 미술품도 아닌 시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이 노화 극복을 목표로 하는 생물공학 자회사 칼리코를 설립한 사실을 기억할 것).  

 

3.

나로 말할 거 같으면 20대 중반에 처음 해외여행을 했다. 모스크바로 여행을 갈 거라고 했을 때 어머니가 처음 한 말은 면세점에서 향수를 사달라는 거였다. 아버지는 담배나 위스키를 사달라고 하셨다. 두 분 다 돈은 주지 않았다…. 면세점의 존재의의를 알아차리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탑승장 내의 공간은 한국 영토지만 출국심사 없이 다시 국내로 들어올 수 없고 세금이 면제되며 가끔 난민들이 수용되고 관세를 내지 않은 물건도 보관하고 국가의 허락을 받은 공장이 운영되기도 하며 대기업들은 명품을 판다…. 응?(대체 여기서 뭘 하고 싶은 건지…) 내가 묻고자 하는 건 다음과 같다. 만약 우리가 시간과 공간에서(다시 말해 세금에서) 자유롭고자 한다면 그것을 모두에게, 모든 장소에서 허락하지 않을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물론 시공간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동시대의 현상들이 사실상 기만에 불과하며 신자유주의 국가와 금융, 초국적 기업의 농간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비판이론의 나이브한 반복에 불과하다. 시공간의 무게를 더하려 할수록 중력은 힘없는 다수에게만 작용한다. 오히려 시공간의 결핍을 가속화해 모두에게 적용하는 건 어떨까. 결핍을 자유로 전환하기.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국가 간의 모든 이동과 거주의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우리는 시간에서 자유로운 미래를 러시아 코스미즘의 관점에서 상상할 수도 있다. 코스미즘은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철학사상으로 매우 특이한 과학기술 프로그램과 철학사상을 전개했다. 그들의 구호를 간단히 하면 다음과 같다. 소수의 해방이 아닌, 모두의 해방, ‘모두를 위한 불멸’.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시도를 코스미니스트들은 이미 백 년 전에 ‘전 인류’를 위해 상상했던 셈이다.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그러나 이러한 상상이야말로 시간과 공간의 틀을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세금에서도 해방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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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토 슈타이얼, 『면세 미술』, 문혜진·김홍기 옮김, 서울: 워크룸프레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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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
정지돈은 소설가다. 2013년 등단하여 2015년 젊은작가상 대상과 2016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다. 펴낸 책으로는 『내가 싸우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문학의 기쁨』(공저),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야간 경비원의 일기』, 『영화와 시』, 『모든 것은 영원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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