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영화와 삶 그리고 건축의 세계: 아파트 생태계

글
배윤호(중앙대학교 교수)
자료제공
정재은
background

영화는 삶의 연속체 또는 ‘삶의 흐름’이다. 이 ‘삶의 흐름’ 개념은 모든 물질적 환경들과 해프닝들의 연속을 다루며, 그것들이 정서와 가치, 사유의 측면에서 시사하는 모든 것도 다룬다.

-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크라카우어는 『영화이론』에서 영화의 등장으로 파편적인 도시 공간의 삶에 대한 총체적 사유가 가능해졌다고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파편적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 영화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능력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서술할 때도 유효한 점이 있다. 특히 다큐멘터리가 독특한 직업 세계, 갈등 과정, 우리를 둘러싼 생활 세계를 이해하고 깊은 성찰을 유도하는 이유는 우리가 다큐멘터리의 작품 시간에 자신의 인생 시간을 중첩하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단순한 이미지의 소비나 기록의 차원을 넘어 내면의 문제를 가시화하고 삶의 방향을 물어보는 방법을 선택할 때 그 질문과 다큐멘터리의 능력은 극대화된다. 이러한 일상적 삶의 단순 기록 능력에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까지 다큐멘터리의 소재는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지만 그것이 발견되고 작품으로 완성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이러한 존재론적 질문 시간을 만든 정재은 감독의 세 건축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 ‘말하는 건축 시티: 홀’, ‘아파트 생태계’에서 보여준 카메라의 현실성은 주체가 자신을 둘러싼 현대 세계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정재은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에게 건축 세계에 대한 생생한 경험의 통로를 제시한다. 건축가란 누구인가? 공공건축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리들의 일상 풍경인 아파트 생태계는 지속가능한 생태계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아파트 생태계’를 비롯한 그의 다큐멘터리를 리뷰해보고자 한다.

이 3편이 처음부터 계획되었다기보다 한 편씩 선택과 결정에서 만들어진 과정이 우리 인생과 유사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라카우어의 “영화는 삶의 흐름이다”라는 주장은 다큐멘터리가 우리 인생에 대한 기록과 성찰의 도구이지만 그 과정에서 관찰자인 카메라 주체도 함께 바뀌어간다는 점도 의미한다. 그러기에 3편이 하나의 주제인 건축을 다루지만 건축 세계를 접근하는 방식과 이야기 구조는 각각 다른 형식적 차이를 보여준다.

 

정재은, ‘말하는 건축가’, 다큐멘터리, 95분, 2011

 

말하는 건축가 - 건축가란 누구인가?

영화사에 등장하는 건축가는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나? 초기 영화사에서 건축가는 정치권력과 함께 등장하는 히틀러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나 자본권력을 보여주는 빌딩건축가와 같은 이미지를 갖는다. 건축가가 권력과 함께한다는 인식은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1927)’에서 볼 수 있는데, 건축가를 항상 높고, 크며, 중요한 중심에서 변하지 않는 건축설계 이미지를 제시하는 사람으로 그려낸다. 이런 견해와는 다르게 ‘말하는 건축가’는 낮은 자세로 사용자의 눈높이를 맞추며 건축에서 중심이 아닌 주변에 대한 가치를 말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건축가의 얼굴과 목소리에서 ‘말하는 건축가’는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은 무주 안성면 주민센터에서 지역 노인들이 목욕탕을 설계한 건축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목욕비가 1000원이라 좋다는 대화로, 건축가는 사라지고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며 건축가에 대한 기존의 영화사가 구축한 이미지를 부정한다. 죽음 앞에 있는 인간을,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죽음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을 건축가 스스로 실천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건축가의 메시지를 살아남은 자에게 전달한다. 동시에 물질적, 조형적 관점에서 바라봤던 건축을 거주자와 함께하는 소통의 행위로써 문화를 생산하는 행위로 드러내고 있다.

 

말하는 건축 시티: 홀 - 공공건축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두 번째 작품 ‘말하는 건축 시티: 홀’은 이러한 공공건축의 소통 문제를 다룬다. 영화는 서울의 새로운 상징, 공공건축이 어떠한 의사결정 구조에서 만들어지는지 그 공공건축의 결정 방식과 갈등을 따라간다. ‘말하는 건축가’가 건축가의 말에서 발견한 소통은 ‘말하는 건축 시티: 홀’에서는 오히려 혼란스러운 주체가 되었다. 참여자들의 소통 수단인 말이 많아지고 첨가될수록 의미 과잉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러운 소통 중에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는 중간 실무자가​ 있다. 공공건축을 만들고, 행정 결정의 주체와 그 변화 과정에서 좀 더 나은 결과를 만들려는 중간관리자들을 카메라는 지켜본다. ‘말하는 건축 시티: 홀’은 공공 공간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영화는 우리에게 공공건축은 무엇인지, 의사결정이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질문한다. 그리고 어떻게 건축 생태계에서 공공성을 고민하고, 반대로 지속가능한 공공건축의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지 질문하며 끝을 맺는다.

 

​

정재은, ‘아파트 생태계’, 다큐멘터리, 80분, 2017​

 

아파트 생태계 - 지속가능한 생태계인가 ?

이번 ‘아파트 생태계’에서 감독은 공공건축 중 가장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공동 생활공간 아파트에 주목한다. 아파트공화국은 언제 이 땅에 태어났는가? 서울시 도시계획가였던 고 손정목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서울 아파트의 역사를 구술하며, ‘아파트 생태계’에서는 앞선 두 작품과 다른 접근 방식을 시도한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여배우는 세운상가아파트에서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을 읽고, 서소문아파트 창가에서 아파트계약서를 찢어버리거나, 남산 제2회현아파트 위쪽 계단과 아래 마당 사이에서 같은 여배우가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은 리얼리티보다 관객 해석의 다양성을 유도한다. 이는 손정목 인터뷰 모습과는 대조를 이룬다. ‘아파트 생태계’에 등장하는 아파트는, 재건축을 준비하거나 기다리는 낡은 아파트이다. 재건축을 기다리는 아파트 구성원들 각각의 접근 방법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재건축조합원 회의에서는 아파트를 다른 욕망의 대상인 자본수식(1+1)으로 본다. 재건축아파트는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재건축을 기다리는 아파트를 고향이라 생각할 수 있는 건가? 철거 또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가 해체될 때 우리 공간의 기억도 함께 버려지는 것일까? 그 다음에 오는 아파트 생태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의 성장이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아파트 생태계인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어가는 인생의 순환 생태계를 보여주며 재건축 아파트의 장소성 상실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말을 하는 인간의 이야기에서 말 못하는 나무, 고양이까지 아파트 생태계의 일원으로 상상공동체를 확장하며 전면에 등장시킨다. 영화는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동식물과 이웃이 내는 소음까지 포함한다. 그러면서 재건축을 기다리는 아파트가 사라지면 그곳에서 살아가던 길고양이들은 어디에서 생을 이어갈지 질문을 이어나간다. 영화는 아파트 생태계에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구성원은 없는지 관객들이 공동체 구성원을 떠올려보도록 생각을 확장시킨다. 

 

아직 실현되지 않음 - 상상의 공동체 공간과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파트 생태계가 단순한 자본의 욕망이 아니며 철거 해체를 기다리는 재건축 아파트 생태계에서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관계 맺기를 통해 상상공동체로 나아지길 희망한다. 이러한 상상공동체는 희망의 공간이다. ‘아파트 생태계’에서 우리가 잊은 것은 없는지 질문하고, 재건축 아파트에도 역사, 공간의 기억이 있고, 고향으로서 도시의 역사와 함께 형성된 다양한 아파트 생태계가 있다고 본다. ‘말하는 건축가’의 건축가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도 이 땅에 있고 해법도 이 땅에 있다. 건축 다큐멘터리 3편은 우리에게 소통이라는 합리적 의사결정의 구조는 구성원의 자유 속에서 상상의 공동체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감독은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해법으로 ‘아파트 생태계’를 통해 상상의 공동체를 고민하는 것이다. 영화는 삶의 흐름이며, 생이 지속하는 한 우리는 좀 더 나아진다는 희망과 생존의 기술이다.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았으므로 다큐멘터리 3편은 또 다른 삶의 흐름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으며 외부 현실의 구원이라는 실천적 방법이 된다.​ <진행 박성진 편집장>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