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와 부산 갈 일이 생겼다. 요즘 ktx 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반밖에 안 걸려. 친구가 어이없어 했다. 비행기 타면 40분밖에 안 걸려. 비행기? 응. 심지어 더 싸.
제주도에 갈 때를 제외하면 국내선을 이용한 적이 없다. 반면 친구는 국내선 이용이 친숙했다. 유럽에 오래 살아서 그런가? 대륙이 바뀌지 않는 한 비행기를 타지 않는 나와 전혀 달랐다. 친구의 제안에 따라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김포 공항에서 김해 공항으로.
사실 비행기가 달갑지 않은 건 공항의 여러 절차 때문이다. 입출국 수속, 보안 검색, 긴 대기줄… 친구는 국내선은 간단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체크인도 셀프고 게이트 통과도 간소화됐다나. 친구 말처럼 체크인은 간단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뒤부터였다. 빠른 탑승 수속을 위해서 바이오 정보 등록을 해야했다. 1) 신분증을 스캔하고 2) 얼굴 사진을 찍고 3) 손바닥 정맥을 스캔했다. 손바닥 정맥 스캔이 한번에 되지 않아서 여러 번을 반복해야 했고 결국은 안내 요원이 도와줬다. 어쨌든 이제 바이오 정보를 등록했으니 등록 고객 전용 게이트로 가자! 친구와 나는 줄이 거의 없는 전용 게이트로 달려가서 비행기 티켓과 손바닥을 스캔했다. 그러나 게이트는 열리지 않았다. 문제가 있는 듯 붉은 엑스 표시가 계속 떴고 우리는 범죄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공항에서 걸리면 뼈도 못 추리는 거 아니야? 알고 보니 비행기 티켓과 정보 등록한 신분증의 이름이 달라서 생긴 일이었다. 비행기 티켓은 영문인데 신분증은 한글이라서 그렇다고 안내 요원이 설명했다. 결국 우리는 긴 대기줄로 돌아가 일반적인 탑승 수속을 밟았다. 물론 다음에는 보안 검색과 비행기 탑승 대기 줄이 이어졌고…
2.
사실 나는 공항이나 기차역이라면 모두 질색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반면 철학자 로지 브라이도티는 그 반대다.
나는 여행과 관련된 경유 공간에 특별한 애정이 있다. 기차역, 공항 대기실, 트램, 셔틀버스, 체크인 구역. 모든 연결 고리가 차단되는 중간 영역에서 시간은 일종의 연속적인 현재로 연장된다. 무소속의 오아시스, 분리의 공간. 임자 없는 땅.▼1
여행을 좋아하거나 출장이 잦은 지인들 중에도 경유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공항과 기차역, 버스 터미널 같은 곳에는 묘한 낭만이 있다. 다양한 인종과 젠더의 사람이 오가는 곳. 움직임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 기대와 설렘, 포기와 낙담, 수많은 감정과 신체, 경험이 교차하는 곳.
그러나 나는 방금 열거한 이유들 때문에 경유 공간이 싫고 경유 공간이 너무 싫은 나머지 여행도 싫을 정도다. 특히 공항에서의 경험은 늘 나를 불쾌하게 만든다.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신분증 사진과 대조하고 틈만 나면 신발을 벗기고 가방을 뒤지고 좁은 공간에 신체를 쑤셔 넣는다. 공항의 모든 절차가 내가 누구인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도록 종용한다. 공항은 가장 노골적인 계급 사회의 공간이다. 다른 곳에서는 격차가 적거나 은밀하게 작동하는 계급이 공항에서는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얼굴을 드러낸다. 물론 당신이 퍼스트 클래스나 미국 국적의 백인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당신은 세계 모든 곳을 앞마당처럼 거닐며 먹고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다(여담이지만 2007년 출간되어 지금까지 1,0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자아 찾기에 대한 에세이가 아니라 모빌리티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지배자들은 그들이 특정한 세계 안에 위치지어져 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한다.”▼2
해외여행이 대중화된 21세기에도 국가 간의 이동은 여전히 계급 문제다. 전 세계 인구의 5퍼센트만이 비행기를 이용하며 대부분의 승객은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해외를 오가는 사업가나 관료, 교수들이다. 또한 공항은 공공연한 인종차별이 허락된 공간이다. 당신이 소수 인종이라면 공항이나 비행기뿐만 아니라 기차역이나 기차도 위협적인 곳이 될 수 있다. 2005년 7월, 브라질 국적의 장 샤를 드 메네즈는 런던 지하철에서 7발의 총격을 맞고 사망했다. 그는 단지 다음 칸으로 ’이동’하려 했을 뿐이었다.
영국의 지리학자인 팀 크래스웰은 말한다. “오직 경유 공간에서만 안전이 이익과 상업화 담론과 연결됩니다. 내가 재정적으로 안정된 믿을 만한 여행자로 간주되면 감시를 덜 받게 됩니다. 내 조건들이 내가 받아야 할 검사들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지요.”▼3
3.
<선을 넘지 마시오>는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과 파리북역을 중심으로 모빌리티의 이동 통제와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스히폴 공항을 분석한 팀 크래스웰에 의하면 공항은 보안감시, 시뮬레이션 코드가 인력 및 물리적 구조로 구성된 하이브리드 공간이다. “항공권 구매 후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며 탑승에 이르는 여행자의 행로는 코드(컴퓨터)와 공간(물리)의 조합으로 구성된 하이브리드에 의해 조직된다. …. 우리는 컴퓨터로 처리된 채 실제 공간과 컴퓨터 코딩된 공간에서 동시에 이동한다.”▼4 가장 대표적인 예가 CAPPS에서 시작해 Secure Flight가 된 TSA(미국 교통안전청)의 시스템일 것이다. 승객들, 이른바 PAX는 철저히 모델링되어 추적되고 관리된다.
흠….. 부산에 비행기 타고 가는 게 그렇게 싫어? 친구가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물론 나는 다음 부산 출장 때는 기차를 탔다…..)
내가 궁금한 건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2025년 에어택시가 상용화된다는데 그러면 어떻게 될까? 국가 간의 이동도 에어택시로 가능할까? 국가 간의 이동에서 기존의 절차가 사라지거나 간소화되면 경유 공간도 사라질까. 경유 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국경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고 그 말은 곧 국민국가에 대한 인식도 희박해진다는 뜻일까. 이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이까. 코로나 시대에 전지구적인 네트워크에 대한 생각은 망상일까. 그러나 공간의 경계는 장벽과 같은 물리적 실제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비물질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존재한다. 계급, 국적, 인종, 남녀, 보안, 역사…
파리북역의 유로스타에는 열차 멸균이라는 특이한 개념이 있다. 물건과 사람에 대한 통제와 검색만으로 완전한 멸균이 힘들기 때문에 기차가 출발하고 지나가는 모든 역을 멸균상태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열차는 비멸균 구역에는 정차하지 않으며 이동 중에는 멸균성이 보장된다. 의심스러운 사태가 생기면 ’플랫폼 멸균을 위해 군견팀이 출동한다.’
멸균은 일종의 은유지만 코로나 시대인 요즘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균이 뜻하는 건 단순히 바이러스가 아니다. 바이러스에겐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숙주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인간 또는 다른 종의 신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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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팀 크래스웰·미카엘 르마르샹, 『선을 넘지 마시오!』, 박재연 옮김, 앨피, 2021, 61쪽.
2. 디디에 에리봉, 『랭스로 되돌아가다』,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1, 112쪽.
3. 팀 크래스웰·미카엘 르마르샹, 위의 책, 190쪽.
4. 앞의 책,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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