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정지돈의 스페이스 (논)픽션] 7. 공간은 상호작용의 범위

글
정지돈
진행
박세미 기자

1984년 연결선 없이 우주 유영을 하는 매캔들리스. NASA 제공

 

1.

 고전물리학은 공간을 상자로 가정한다. 경계가 뚜렷한 공간적 실체가 있고 그 안에 우주가 있으며 우주 안에 은하계, 은하계 안에 태양계, 태양계 안에 행성, 행성 안에… 철학이나 예술은 오래전부터 이 점을 의문시했다. 그렇다면 공간 밖에는 뭐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시간의 탄생 전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공간이 없는 곳이 ‘무’라면 ‘무’는 어디에 있는가. 무가 있으려면 무가 있을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 무가 있다면 무는 무=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므로 무는 없다... 추상적인 말장난 같지만 사실 과학도 이 문제를 오래 탐구해왔다. 결론적으로 – 아마 영원히 완벽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겠지만 – 과학은 잠정적 해답을 얻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상대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가장 최신의 물리학 이론들, 이를테면 고리양자중력이론은 공간을 실체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공간은 존재하는 것들을 제외하면 아무 의미도 없다.” 공간은 입자들의 관계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란 없으며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경계 역시 없다. 물리학자 리 스몰린은 공간을 문장에 비유한다. 문장은 단어들의 조합에서 비롯된다. 단어가 없는 문장을 만들어보자.          

(                                                                  )  <- 이 안이 문장?

단어가 없는 문장은 존재할 수 없다. 여백은 언제나 맥락 안에 있다(위의 경우에는 기호 안에). 공간이란 단어-사물들의 관계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좀 더 직접적이고 명쾌한 정의가 필요해서 물리학자를 아버지로 둔 친구에게 공간의 정의에 대해 문의했다. 친구는 마침 신체를 공간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세미나 발표문을 작성 중이었다. 아래는 친구와 물리학자 아버지의 카톡 전문이다. 

 

친구: 저 넘 뜬금없고 터무니없는 질문이긴한데…. 

물리학에서 정의하는 공간이란 무엇일까요…..?

아빠: 으흠…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만.. 공간이란 ‘상호작용의 범위’를 뜻함 

       즉 ‘느끼는’ 범위임

친구: 오호 그럼 신체도 공간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아빠: 자네가 느끼고 있지 않나? 몸이 차지하는 공간을?

친구: 몸이 공간을 차지한다고 하지만 몸 자체가 공간이라는 말은 거의 못 들어본 것 같아서요. 

아빠: 이 세상에 ‘자체’로 공간인 것은 원래 없음

친구: 소름 

아빠: 모두 그런 ‘범위’만 갖고 있을 뿐. 실체는 모두 점임. 

 

2.

 리나 보 바르디는 1976년 브라질 북부 폼페이의 버려진 공장에 처음 방문했다. SESC의 청탁으로 이곳에 문화센터를 지을 예정이었다. 프랑수아 헤네비크의 철근콘크리트 시스템이 적용된 19세기 영국풍의 공장은 우아하지만 낡았고 지붕은 비가 줄줄 샜으며 문은 너덜너덜하고 벽과 바닥은 갈라지고 질척했다. 처음에는 예전 공장들을 싹 다 밀어버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방문 후 리나 보 바르디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첫 번째와 달리 주말에 방문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곳을 활용하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 아이들, 엄마들, 할머니들, 연금수령자들이 이 창고에서 다른 창고로 가고 있다. 애들은 달리고, 청소년들은 부서진 지붕 사이로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축구를 했다. 엄마들은 클레시아 거리 입구에서 바비큐를 굽고 샌드위치를 만들었다.▼1  

  그녀는 애초의 계획과 달리 폼페이의 공장을 유지하면서 공간을 개방했다. 표지판을 새로 만들고 가구를 들여놓고 담을 허물고 등등의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목표는 하나였다. 사람들이 이곳을 자율적으로 활용하게 만들자. 단순하지만 모험적인 시도였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몽상이나 서투른 이상에 불과한 시도일지도 몰랐다. 그게 생각한 대로 되겠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고? 그러니까 리나 보 바르디의 방식은 무엇보다 사람들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둔 시도였다.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였던 리나 보 바르디는 이렇게 썼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SESC 폼페이 레저 센터는 다른 현실을 건설하려는 욕구에서 디자인되었다. 우리는 그저 작은 물건 몇 개를 뒀을 뿐이다. 물 조금. 난로 하나.”▼2

 반면 I.M.페이가 지은 MIT 미디어랩은 모든 것이 정해진 공간이었다고 영국의 건축평론가 로완 무어는 말한다. 1986년에 지어진 미디어랩은 당시 유행하던 아트리움을 내부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아트리움은 사람들이 대화하고 교류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여러 개의 출입구와 계단으로 이루어진 개방적인 공간에서 MIT의 연구진들은 마주치고 소통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건축가의 생각일 뿐이었다. “대화의 시작이라는 말만큼 대화를 죽이는 것도 없다.”▼3 홀 어스 카탈로그를 창간한 스튜어트 브랜드는 미디어랩이 크기만 크고 사람들을 모으지는 못하며 유연성이 부족한 허세 덩어리라고 혹평했다. 대단한 건축가의 작품인만큼 사람들은 건물에 못 하나 마음대로 박을 수 없었고 건축가가 정해놓은 대로 움직여야 했다. 결국 아트리움은 보기에만 삐까번쩍한 텅 빈 공간이 되었다.  

 이 두 사례가 실제로 어떠했고 이후에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선 보다 면밀한 관찰이나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공간에 대한 정의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측면이 있다. 공간은 원래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계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교과서는 소설 구성의 필수적인 삼요소로 인물, 사건, 배경을 든다. 학생들과 습작생들은 소설을 쓸 때 배경을 어떻게 설정할지부터 고민한다(심지어 작가들도!). 정해진 박스에 이야기를 채워 넣는 걸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모든 대화나 이야기가 그렇듯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고 어떻게 연결될지 모른다. 이야기의 공간은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물론 그럼에도 최소한의 바운더리는 필요한 법이다. 사람들은 투덜거린다. 다 좋은 말인데 그러다 무질서한 혼돈 그 자체가 되면 어떡합니까. 소설이 완성되지 않거나 두서없고 산만해지면 어떡해요. 그럴 때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배경이나 인물, 사건이 없어도 어차피 필연적인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그건 바로 이야기를 쓰는 사람, 작가의 존재다. 작가의 한계가 소설의 한계를 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의 공간이 된다(동시에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에 거주하고 공간을 재구성한다). 리나 보 바르디가 믿었던 것처럼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은 상호작용의 범위”다. 

 

1 로완 무어, 『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 이재영 옮김, 계단, 2014, 432쪽.

2  Lina Bo Bardi, The stones against diamonds, Architectural Association London, 2013, 98쪽.

3  앞의 책, 436쪽.​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지돈
정지돈은 소설가다. 2013년 등단하여 2015년 젊은작가상 대상과 2016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다. 펴낸 책으로는 『내가 싸우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문학의 기쁨』(공저),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야간 경비원의 일기』, 『영화와 시』, 『모든 것은 영원했다』가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