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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그리다: <지평선: 모술의 혼 부활>

글
김선우
자료제공
유네스코
진행
방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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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Laurian Ghinitoiu​​

 

 

유네스코는 이라크 정부와 아랍 에미리트의 문화청소년부와 함께 2021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지평선: 모술의 혼 부활>을 선보였다. 티그리스 강이 두 갈래로 나뉘는 교점에 위치한 도시 모술은 아랍어 뜻 그대로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를 잇는 ‘연결고리’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이어진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 이하 IS)의 점령으로 모술은 수많은 실향민을 낳았고 중요한 문화재들을 잃었다. 이에 유네스코는 지난 2018년 2월,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한 ‘모술의 혼 부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본 전시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인 알 누리 모스크와 알 하드바 첨탑을 중심으로 모술의 역사와 재건 프로젝트 이후의 미래를 그린다. 전시를 취재한 김선우는 유네스코관의 기획과 디자인을 맡은 2050플러스의 이폴리토 페스텔리니 라파렐리, 프란체스카 란티에리와 함께 변화하는 재건의 패러다임과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평선 읽기

전시장을 들어서면 하늘색에서 흰색, 흰색에서 갈색으로 그러데이션을 이룬 커튼이 하나의 지평선처럼 일렁인다. 이 커튼은 모술의 역사를 순차적으로 그린 ‘파괴’, ‘해방’, ‘회복’, ‘미래’ 네 개의 공간을 아우른다. 지평선은 변함이 없다. 미래를 내다보듯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을 바라보면, 폐허가 된 오늘날의 모술도 이전과 다름없는 지평선으로 보일 것이다. 지평선은 모술의 과거이자 현재이고 또 미래이다. 커튼은 때로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때로는 급하게 굽이치며 단절된 모술의 역사를 하나의 무한한 면으로 엮어낸다. 전시의 디자인을 맡은 2050플러스의 이폴리토 페스텔리니 라파렐리, 프란체스카 란티에리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모술의 지평선을 읽는 방법을 따라가보자.

 

김선우: 전시의 제목으로 ‘지평선’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전시의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2050플러스: 지평선은 모술의 스카이라인을 추상화한 것으로 커튼의 그러데이션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되었다. 커튼은 전시의 배경으로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본 전시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핵심이기도 하다. 또 전시의 시작부터 끝까지 연결되어 있지만 다양한 모술의 역사적 순간마다 커튼의 구현을 달리하여 그 자체가 하나의 인포그래픽이 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예를 들어 ‘파괴’에서는 커튼에 하늘과 땅 비중을 달리하여 IS에 의해 모술이 훼손된 정도를 나타냈다. ‘파괴’에서는 사진과 글을 지평선 아래에 둔 반면 ‘회복’에서는 지평선 위에 배치하여 방문객의 시선이 모술의 역사와 함께 하나의 여정을 거칠 수 있도록 했다. 전체적인 인상도 공간과 시간의 흐름에 상응하게 만들고 싶었다. ‘파괴’에서 ‘미래’에 이르는 동안 흙빛에서 시작한 커튼은 하늘을 닮아가며 점점 파랗게 물든다.

 

김선우: 본 전시는 모술의 역사를 파괴, 해방, 회복, 미래 네 개의 공간으로 구분하여 구성했다. 공간을 순차적으로 전개한 이유와 각 공간이 그려내는 모술에 대해 듣고 싶다. 

2050플러스: 전시의 의도가 가까운 과거부터 미래에 이르는 모술의 역사를 담아내려고 했기에 순차적으로 공간을 전개하는 방식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판단했다. 네 개의 공간은 각각 다른 역사적 단계를 그려낸다. ‘파괴’는 IS의 침공 이후 자행된 문화재 훼손을 그려냈고, ‘해방’은 모술 사람들이 바라본 해방 이후 모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회복’은 해방된 모술에서 유네스코의 복원 사업의 근황을 전하고, 끝으로 ‘미래’에서는 알 누리 단지 재건 설계공모 입상작들을 선보이며 새로운 모술의 시작을 알렸다.

 

김선우: 본 전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그래픽 요소는 배경이 된 커튼이다. 모술의 역사가 굴곡진 만큼 전시 내용 중에는 참혹한 이미지들이 많았다. 폐허가 된 모술의 질감과 대비되는 재료를 전시의 배경으로 고른 이유가 궁금하다. 

2050플러스: 우리는 커튼이 팔라초 조르지의 분절된 공간들을 풀어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각기 다른 모술의 역사적 단계를 하나의 통일된 인터페이스로 묶어내고 싶었다. 또 앞서 이야기했듯이, 커튼은 배경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정보를 전달하는 인포그래픽이기도 하다. 벽과 달리 커튼은 유연하기 때문에 원경과 근경을 넘나들며 배경이 되기도 하고 방문객의 시선을 이끌어 전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예시로 우리는 커튼을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생각하고 때때로 주름을 잡아 모술의 역사 속 격동기나 단절을 표시하였다. 무엇보다 우리는 커튼을 이용해 팔라초 조르지의 기존 공간을 선택적으로 드러내거나 숨기려고 했다.

 



전시 전경 ©Laurian Ghinitoiu​

 

김선우: 본 전시가 이루어진 팔라초 조르지 역시 오랜 복원 사업의 결과이다. 팔라초 조르지에서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는가? 기존 공간이 전시의 시각적 언어에 영향을 주었나? 2050플러스: 팔라초 조르지는 오래된 건물인 만큼 공간 분리가 많고 다소 딱딱한 인상을 준다. 커튼을 사용하게 된 것은 모술의 역사를 순차적으로 그려내기 위한 것도 있지만 팔라초 조르지가 갖는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구조적인 한계도 있었다. 팔라초 조르지의 인테리어에 그 어떤 변형도 가하지 말라는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벽과 완전히 분리된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했다. 우리는 커튼을 천장이나 벽에 설치하는 대신, 독립적으로 커튼을 지탱하는 구조물을 설치하여 기존의 공간과 거리를 두었다. 부드러운 커튼의 곡선은 팔라초 조르지의 직선적인 구분을 가리기도 하지만 때때로 이를 강조하여 팔라초 조르지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다. 

 

김선우: 밀라노에 기반을 둔 건축 에이전시 2050플러스는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러시아 국가관의 큐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유네스코와 협력하는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2050플러스: 유네스코는 공모전을 통해 본 전시의 큐레이션을 맡을 팀을 선발했다. 우리는 전에도 함께 일했던 적이 있는 설치팀 알토프라질레와 계획안을 제안했다. 당선된 이후의 협력 과정은 굉장히 단순했다. 유네스코는 기획을 우리에게 전적으로 일임했고 전시에 필요한 자료를 넘겨주었다. 우리는 그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기존 기획에 살을 붙여갔다. 준비 과정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가장 큰 어려움은 짧은 준비 기간과 철저한 보호와 관리 대상인 전시장(팔라초 조르지)이었다.

 

김선우: 알 누리 단지의 재건 사업과 설계공모는 본 전시의 직접적인 계기이자 핵심이다. 재건이라는 단어는 프로젝트마다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본 전시는 재건을 어떻게 정의하고 표현했는가?

2050플러스: 재건이라는 단어가 프로젝트마다 다르게 정의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본 전시에서도 재건에 대한 관점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 ‘미래’에서 공개된 알 누리 단지 재건 설계공모의 입상작들을 보면 재건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과 대안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모술의 미래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지만 모술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함으로써 재건 프로젝트에 몫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방’에서 우리는 IS의 점령과 파괴의 궤적을 지도 위에서 쫓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엮어냈다. 우리는 모술의 진정한 재건이 모술 사람들의 시선과 바람을 읽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김선우: 알 누리 단지의 재건 사업에서 유네스코는 적극적으로 최첨단 3D스캐닝을 사용해 파괴 현장을 기록하고 디지털화된 알 누리 단지의 모델을 공개했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현장에 직접 오지 못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공간이 아닌 이미지에 의존해야 했다. 발전하는 기술과 팬데믹이 만들어낸 언콘택트 환경에 본 전시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2050플러스: 전쟁이나 테러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모술과 같은 세계 곳곳의 도시들과 팬데믹이 만들어낸 언콘택트 환경은 비슷한 한계를 가지고 새로운 대안을 요구한다. 이번 전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있던 모술의 풍경을 다시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드론으로 찍은 항공사진이나 3D로 구현한 모습은 파괴된 모술을 보다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무엇보다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모술의 문화적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관람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람들의 소통이 단절된 곳에서 인류의 문화재들은 소실의 위험을 겪는다. 알 누리 모스크의 파괴는 그런 위기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김선우: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 하심 사르키스는 주제를 선정하면서 건축적 용어에 기대는 대신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How Will We Live Together?)”라는 질문을 던졌다. 유네스코관은 이 질문을 어떻게 해석했나?

2050플러스: 이번 전시는 문화재의 재건이 다양한 문화들의 교점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모술의 사례를 통해 슬픔과 파괴의 역사가 희망과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베니스를 뒤로 하고 들어선 팔라초 조르지의 안마당에는 파괴된 알 누리 모스크의 사진이 설치되어 전시의 첫인상을 만든다. 그러나 전시에서 그려낸 모술의 재건 과정을 따라온 방문객은 전시장을 나설 때에는 보다 희망찬 모술과 인류의 미래를 곱씹게 될 것이다. 

 


전시장 입구 ©Laurian Ghinito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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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과 혼 

본 전시가 열린 팔라초 조르지는 유네스코의 유럽지역 사무소가 위치한 건물이다. 팔라초 조르지는 기존에 있던 고딕 건물에 건축가 마우로 코두시가 르네상스식 디자인을 증축하면서 16세기 초에 완성되었다. 소유자가 여러 번 바뀌면서 심각하게 방치된 팔라초 조르지는 1980년대에 이르러 20여 년에 걸쳐 보수 작업을 했고, 1995년 유네스코가 그 소유권을 건네받았다. 베니스에서, 그리고 복원된 팔라초 조르지에서 전시하는 모술의 재건은 다양한 층위를 함축할 수밖에 없다. 시간과 무관심이 만들어낸 균열을 되잡기 위한 재건과 폭력에 의한 상처를 보듬기 위한 재건은 어떻게 다를까?

팔라초 조르지의 안뜰에 들어서면 두 가지의 모술이 관람객을 반긴다. 설치물 왼쪽에 서면 초록색 돔만 남은 채 파괴된 알 누리 모스크가, 오른쪽에 서면 알 누리 모스크의 견고하고 웅장한 옛모습이 보인다. 아코디언 같이 접힌 패널 위에 두 사진을 교차시켜 붙인 렌티큘러(lenticular) 설치물은 간단하지만 명료한 모술의 초상이다. 설치물의 철제 다리를 지탱하는 주황색 샌드백이 암시하듯 모술은 미래가 유보된 채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커다란 공사판처럼 남아있다. 2020년 10월 16일 유네스코는 알 누리 단지의 재건을 위한 대규모 국제설계공모를 진행했다. 올해 4월 유네스코는 살라 엘 딘 사미르 하리디가 이끄는 이집트 팀의 ‘뜰의 대화들(Courtyard Dialogues)’을 당선작으로 발표했다. 이르면 올해 말 재건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사실 알 누리 모스크는 유네스코의 재건 사업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재건을 경험했다. 1942년 이라크 정부의 복원 프로젝트의 일부로 완전히 해체되었다가 다시 재건축되기도 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알 누리 단지는 다시 고초를 겪었다. 이어진 폭격으로 알 하드바 첨탑 지하의 수도관이 파괴됐고, 수도관에서 흘러나온 물이 첨탑의 지반을 약화시키면서 이미 휘기 시작했던 첨탑은 전쟁을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이 기울어졌다. 모술 사람들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알 누리 모스크와 알 하드바 첨탑은 이미 파괴와 재건의 역사가 적층된 총체이다. 본 전시의 ‘미래’에서 제시하는 알 누리 단지의 재건은 모술의 깊은 역사가 만들어낸 다양한​ 지층을 보존해낼 수 있을까? 전시를 기획한 유네스코는 보존을 넘어서 성공적으로 모술의 혼을 부활시킬 수 있을까? 유네스코는 이전과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1964년 베니스 헌장은 재건축을 배제하며 문화재의 보존을 위해 미래에 대한 추측을 삼가해야 한다고 선언했고 유네스코는 베니스 헌장의 정신을 수호해왔다. 그러나 2012년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말리의 팀북투 세계문화유산 파괴를 기점으로 유네스코는 강경한 태도로 보존의 개념을 넘어서는 재건 프로젝트들을 잇따라 개시했다. 2021 베니스비엔날레 유네스코관은 팬데믹이 만들어낸 유례없는 단절 속에서도 IS 침공의 폐허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모술의 혼을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부활시키고자 했다. IS의 모술 점령은 2017년 끝이 났지만, 2021년에도 테러리즘과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유네스코가 본 전시를 통해 드러낸 새로운 재건의 패러다임과 방법론이 역사와 기억의 보존을 넘어, 공동체의 회복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팔라초 조르지의 시간과 모술의 시간을 유연한 그래픽 언어로 엮어내며 재건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내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지평선을 그린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본 전시는 유네스코 유럽지역 사무소가 위치한 팔라초 조르지에서 5월 22일부터 11월 21일까지 열렸다. 전시의 총괄 디자인은 2050플러스가, 제작은 알토프라질레가 맡았다.​

 


설계공모 당선작 모습 / 자료제공 UNESCO ©Salah Hareedy + Khaled El-Deeb + Sherif Ebrahim & Tarek Ali Moha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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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김선우는 연세대학교 비교문학과문화전공을 졸업한 뒤 영국 AA스쿨에서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 중이다. 런던에 거주하며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해외의 건축 전시와 기획을 취재하고 있다.
2050플러스
2050플러스는 2021 베니스비엔날레 유네스코관 <지평선: 모술의 혼 부활>을 기획하고 디자인했다. OMA에서 파트너로 있었던 이폴리토 페스텔리니 라파렐리는 2020년 독립하여 건축 에이전시인 2050플러스를 설립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2050플러스는 디자인, 기술, 환경과 정치의 교집합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형태로 연구와 디자인을 접목시켜왔다. 대표작으로 밀라노 음식 배달원들의 노동환경을 고발한 다큐멘터리인 ‘배달원은 영웅이 아니다’(2020)를 제작했고, 로마의 첫 리나센테 백화점을 리노베이션했으며, 2021 베니스비엔날레 러시아관과 유네스코관의 기획과 디자인을 총괄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프란체스카 란티에리는 2050플러스의 프로젝트 아키텍트로 유네스코관의 기획과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밖에 2050플러스의 카밀라 모란디, 구글리엘모 캄페지, 지아코모 아르데시오도 유네스코관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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