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1년 준공된 김중업의 주한 프랑스대사관(이하 프랑스대사관)은 한국 현대건축의 신화이다. 프랑스대사관이 신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건물의 탁월한 조형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 건물이 신화의 반열에 오른 데는 디자인 자체의 우수성만큼이나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외국 공관이라는 건물의 특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김중업의 대표작이자 한국 건축의 걸작으로 추앙받는 프랑스대사관은 많은 이들이 보고 싶어 하지만 오랫동안 아무나 볼 수 없는 건물이었고, 이 건물을 실견하는 일은 실로 대단한 특권이었다. 대신, 우리는 미디어의 재현을 통해서만 프랑스대사관을 접할 수 있었다. 「SPACE(공간)」의 지면은 이 건물을 둘러싼 영향력 있는 말(글)과 이미지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SPACE」가 프랑스대사관을 자세히 다룬 권호를 보면, 우선 김중업 특집이 실린 「SPACE」 5호(1967년 3월호)와 224호(1986년 3월호), 김중업 서거 직후 유고 기사가 실린 227호(1986년 6월호), 그리고 이 건물의 건축상 수상을 다룬 302호(1992년 11월호)와 552호(2013년 11월호) 등을 들 수 있다. 이번 649호 프레임에도 프랑스대사관 신축과 리노베이션을 다룬 내용이 수록되었다. 이 중에서 프랑스대사관에 대한 본격적인 역사적 비평이 시도된 것은 1992년 11월, ‘건축25년상’ 선정 기념으로 기획된 302호 기사이다. 지령 300호를 맞아 「SPACE」는 준공된 지 사반세기(四半世紀)가 지난 건물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상을 제정했다. 드디어 일천한 한국 근대건축사에도 시간의 테스트를 거친 진정한 작품이 생겼다고 자축하는 ‘건축25년상’의 첫 번째 수상작이 바로 프랑스대사관이다.▼1 심사를 맡았던 김광현, 김봉렬, 박길룡, 임창복 4인의 위원이 심사평을 겸해 각각 프랑스대사관에 대한 글 네 편을 발표했다. 물론 김중업 작품 세계 전반을 다룬 작가론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특정 건물에 대한 본격적인 작품론이, 그것도 이처럼 화려한 필진의 진검승부를 통해 개진되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SPACE」 302호 ‘건축25년상’(84쪽)에 실린 주한 프랑스대사관
프랑스대사관을 길지 않은 한국 근대건축의 원점으로 위치시킨 이 네 편의 글은 이후 이 건물을 둘러싼 논의의 중요한 얼개를 마련하게 된다. 먼저 박길룡의 글은 프랑스대사관의 형태와 공간에 대한 치밀하고 구체적인 분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작품론이라는 취지에 가장 부합한다. 특히 대사관저와 대사업무동의 서로 다른 지붕의 조형을 극적으로 대조하고, 서로 어긋난 축을 갖고 배치된 건물들이 자아내는 공명을 포착한다. 임창복은 프랑스대사관과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을 비교 분석한다. 그의 목표는 김중업이 단순히 르 코르뷔지에 건축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스승과는 차별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음을 증명함으로써 한국 현대건축의 원점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데 있다. 김중업 건축과 르 코르뷔지에와의 영향 관계에 관한 논의는 이후 정인하를 비롯한 후속 연구자들에 의해 더욱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개진된다. 김봉렬은 고건축 연구자답게 프랑스대사관을 통해 한국 현대건축에서의 전통논의를 재점검한다. 그는 김중업이 시도한 한국성의 표현이 1960년대 중반의 ‘전통시비’와 달리, 전통건축의 모사나 변용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이고 서정적이며 정신적인 차원에서 시도되었다며 전통논쟁의 기점과 방향을 재설정한다. 앞의 세 편의 글과 달리, 김광현의 글은 프랑스대사관이 지닌 역사적 의의뿐 아니라, 그 한계를 비판적으로 직시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그는 프랑스대사관이 척박한 조건 속에서 이뤄낸 성취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프랑스의 엘레강스와 한국적 정서”가 융합된 건축이라는 찬사가 실상은 “근대건축이 그리던 기술의 신화와 고뇌”의 부재를 한국적 표현이라는 수사로 은폐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근대 초기의 건축이론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프랑스대사관이 한국 현대건축의 기점이라는 데서 한국 건축이 당면한 모순과 왜곡을 찾는다. 이러한 비판은 당시 김광현이 4.3그룹의 건축가들과 함께 근대건축의 시대정신을 재발견하는 데 몰두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각자의 관점과 관심사에 따라 프랑스대사관을 보는 4인의 해석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증축과 변형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순수한 원형으로서의 김중업 건축을 강조한다. ‘건축25년상’ 선정을 위해 대사관 부지를 방문하게 된 이들은 대사관이 사진으로 접해오던 원래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입을 모아 탄식했다. 김광현은 건축가의 손을 떠나 반복된 중축과 변형으로 “정교한 건물이 매스와 지붕의 균형”을 잃게 했다고 개탄했고, 김봉렬 역시 대사관의 변모를 “비극”이라고 규정했다. 가장 격앙된 반응을 보여준 박길룡의 글 후반부를 길게 인용해보자.
“건축이 30년의 수령을 겪어 오며 변질되고, 상처입고, 노쇄하여 가는 樣態(양태)를 보며, 마치 하나의 생태가 지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건축들을 단순히 불명확한 쓸모의 이유로 다치게 하였는가. 생명에 대한 몰이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건축에게 견디기 어려운 혹은 지우거나, 상처를 내거나, 심성을 왜곡시킨다. 이 건물이 하루 빨리 膿痕(농흔)을 제거하고 보다 쉬이 숨 쉴 수 있게 하며, 상처를 회복시켜 안식케 함이 歷史(역사)에 대한 論理(논리)이기도 한 것이다.”▼2

「SPACE」 302호 ‘건축25년상’에 실린 김광현의 글(80쪽)과 주한 프랑스대사관 사진(85~87쪽)

「SPACE」 302호 ‘건축25년상’에 실린 주한 프랑스대사관 사진(88~90쪽)과 도면(91쪽)
그렇다면 1992년을 기준으로 프랑스대사관은 최초의 모습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가? 대사관저와 대사업무동, 직원업무동으로 이루어진 프랑스대사관에서 그나마 큰 변화를 겪지 않은 건물은 대사관저 정도에 해당한다. 1988년 대사관의 공간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증축이 있었는데, 이때 대사업무동의 필로티 하부를 막아 사무실을 추가했고 직원업무동을 대대적으로 증축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이 시기에 1970년대 말 시공상의 문제로 내려앉았던 대사업무동을 보수하면서 한국적 곡선의 대명사로 숭배되던 원래의 지붕을 납작하고 각진 형태로 대체한 것이다. 정확한 시점은 분명하지 않지만, 대사관저를 둘러싼 연못이 메워지는 등 김중업이 섬세하게 배치한 정원의 모습도 바뀌었고, 경비 숙소 건물이 새로 들어섰으며, 기존 건물의 내부 공간도 필요에 맞게 변화되었다. 비교적 외관의 변화가 심하지 않았던 대사관저 역시 도심을 내려다보며 수영을 즐길 수 있었던 옥상 정원이 폐쇄되는 등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3 이렇듯 프랑스대사관은 준공 직후의 모습에서 멀어졌지만, 적어도 「SPACE」에 수록된 사진들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완벽한 대사관을 온전하게 되살려낸다. 사진 속에서 대사관저와 대사업무동은 서로 다른 지붕선을 겹쳐 보이며 하늘을 조각하고 있다. 필로티 위에 사뿐히 올라선 대사업무동의 위풍당당한 전경과 함께, 예의 그 한국적인 지붕선이 클로즈업으로 포착된다. 1961년 프랑스대사관 준공 직후 촬영된 이 흑백사진들은 시기를 망라해 프랑스대사관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널리 유통되었다. 「SPACE」 302호에는 이 흑백사진들과 함께, 대사관 측의 특별한 배려로 1992년 사진가 김철현에 의해 새로 촬영된 대사관의 컬러사진 6장이 수록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사관의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촬영된 컬러사진들이 비교적 변형이 적은 대사관저만 잡아낼 뿐, 대사업무동과 직원업무동을 의도적으로 프레임에서 배제했다는 점이다.▼4 이러한 선택적 재현은 이후에도 반복되는데, 2013년 프랑스대사관이 ‘한국 현대건축 명작 30선’으로 선정된 것을 다룬 「SPACE」 552호의 지면을 보자. 이 호는 사진가 신경섭이 촬영한 컬러사진만으로 지면을 구성하여, 프랑스대사관의 달라진 현재 모습을 독자에게 실어 나른다. 총 8장의 컬러사진 중 7장이 비교적 변형이 적은 대사관저의 내외부를 보여준 반면, 대사업무동과 직원업무동의 단독 사진은 단 한 장도 실리지 않았다. 다만 변화한 도시 맥락을 강조하기 위해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대사관 전경을 부감한 한 장의 사진에서만, 대사업무동의 바뀐 지붕이 보일 듯 말 듯 등장할 뿐이다.
프랑스대사관의 순수한 원형에 대한 오랜 희구는 최근의 신축 및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서 결실을 맺는 듯 보인다. 당초 프랑스 측은 대사관저만의 보존을 요구했지만, 한국 건축계와 문화체육부의 지속적인 요청이 받아들여지며, 당초 김중업이 설계했던 방식으로 대사업무동을 복원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한국의 매스스터디스와 프랑스의 SATHY가 공동 설계한 디자인은 서울 전역에 흩어진 대사관의 다양한 기능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오피스 타워 ‘라 투르 드 프랑스(La Tour de France, 이하 라 투르)’와 진입로이자 갤러리에 해당하는 ‘라 주테(La Jetée)’로 구성된다. 라 투르와 라 주테는 각각 대사관저와 대사업무동에 축을 맞춰 기존의 건물과 공명하는 한편, 색과 질감의 대조를 이용해 과거와 현재, 김중업과 매스스터디스·SATHY 디자인 사이의 차이를 부각한다는 구상이다. 2022년, 신축이 마무리되면 프랑스대사관은 과거에 비해 개방성과 접근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외국 공관이라는 특성 때문에 여전히 대중의 접근은 제한되지만, 적어도 라 주테를 지나 라 투르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중업의 건물을 비교적 근거리에서 실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미디어의 선택적인 재현이 과거처럼 배타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프랑스대사관의 신화로서의 지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프랑스대사관은 이제 김중업만의 건물이 아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매스스터디스와 SATHY의 안은 김중업이 설계한 역사적 건축을 보존하는 데 진지하지만, 원형에 집착하기보다는 오히려 대사관을 둘러싼 변화한 도시 맥락과 새로운 필요에 대해 유연하고 열린 태도를 보여준다. (글 조현정 / 진행 방유경 기자)
다음 호에는 김현섭이 「SPACE」 창간호(1966년 11월호)를 다룬다.

「SPACE」 552호 ‘한국 현대건축 명작 30선,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의 ‘리뷰’에 소개된 주한 프랑스대사관 사진(58~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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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PACE」 는 1999년까지 총 4회에 걸쳐 건축25년상을 선정했다. 1회 김중업 프랑스대사관(1992), 2회 이희태 절두산 순교기념관(1994), 3회 김수근 자유센터(1996), 4회 김수근 공간사옥(1999).
2 박길룡,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의 전통, 공간, 수사’, 「SPACE」 302호(1992년 11월호), 82쪽.
3 건물의 파손과 보수, 증축의 정확한 시기 및 담당자 등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프랑스대사관의 역사적인 변천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4 「SPACE」 302호에 게재된 프랑스대사관 소개 지면은 세 개의 부속 건물을 ‘대사 사무동, 대사 업무동, 대사관저’로 지칭하고 있다. 하지만 85쪽 하단의 사진 설명에서 나타나듯, 해당 기사에서는 ‘대사관저’와 ‘직원업무동’을 각각 ‘대사 사무동’과 ‘대사관저’로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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