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 | ‘Kim Chung-up Meets Le Corbusier: Memories of 35 Rue de Sèvres, Paris’
김중업건축박물관 | Kimchungup Architecture Museum
Mar. 31 – June 17, 2018
올해는 김중업 작고 30주기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이를 기념하는 <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을 열었다. <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전은 ‘건축가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건축가가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김중업건축박물관이 내놓은 나름의 답이다. 이 전시는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와의 만남을 통해 김중업 건축의 시작점과 더 나아가 이들의 만남이 한국 현대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명한다. 전시의 여정을 따라가며 김중업이 공명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그리고 김중업 건축의 현재성을 자문해본다.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
김중업의 작품은 ‘주한프랑스대사관’, ‘서산부인과 병원’ 등 잘 알려진 굵직굵직한 작품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생각 외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이런 족적은 건축을 대하는 그의 집념과 열정에 바탕을 둔다. 김중업 건축사사무소에서 김중업과 함께 일했던 곽재환(건축그룹 칸 대표이사)은 “김중업 선생은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구조라고 하는 것이 부차적으로 따라와야 하는 것이지, 구조의 합리성을 위해서 공간이 구현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라고 회고한다. 김중업의 이런 예술가적인 태도와 자부심은 그의 스승이었던 르 코르뷔지에의 그것과 닮아 있다. 이 둘의 관계는 김중업을 아는 이들에게 그렇게 낯선 사실은 아니다. 그의 건축에 발견할 수 있는 낭만적 조형성, 사무실 운영 방식, 건축을 대하는 태도 등 김중업에게 미친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사실 김중업의 건축 생애를 이야기할 때 그를 빼놓고 얘기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전시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정인하(한양대학교 교수)는 “모듈러 등 르 코르뷔지에의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을 건축의 기준으로 삼는 태도는 건축가 김중업의 삶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이 만남은 그전까지 근대건축을 제대로 파악할 기회가 없었던 한국이 처음으로 서구 건축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김중업은 이를 바탕으로 한국 건축의 정체성이라는 1960년대 중요한 건축적 화두를 해결해나가며 지금까지도 근대건축과 한국 건축을 결합하려는 많은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준다”며,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의 관계가 갖는 중요성과 의의를 강조했다. 따라서 30년의 시차를 둔 지금, 김중업의 건축과 르 코르뷔지에의 만남을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것은 한국 근대건축의 한 단면을 살펴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전시는 그가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서 근무하던 1952년부터 1955년까지 3년 2개월여의 시기와 그가 한국에 온 이후 건축작품전을 개최하는 시기로 전시의 대상을 좁혔다. 특히 이번 전시는 김중업이 참여했던 프로젝트에서 직접 그린 123개의 도면을 관람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크다. 김중업 건축의 맥락을 결정짓는 하나의 큰 터닝 포인트였던 르 코르뷔지에와의 만남과 그들의 건축적 대화를 전시가 어떻게 담아내고 이 만남의 의의는 무엇일까?

행정청사 배면 입면도(김중업 작성) FLC2687, 145x55cm, 1953. 05. 11 (Image courtesy of the Foundation Le Corbusier)
김중업을 따라 걷다
전시는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5개의 섹션에 걸쳐 전쟁의 발발과 피난,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는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 그리고 김중업이 그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이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전시는 청년 김중업의 여정을 따라 걷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아카이브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평면적인 구조를 취하는 듯 보이지만 이 여정을 효과적으로 재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여러 장치들을 섬세히 사용하고 배치하고 있다.
첫 번째 프롤로그 ‘전쟁과 피난, 꿈과 모험’에서는 전쟁 발발 당시 건축학과 강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김중업이 국제예술가대회에 참석하기까지의 과정을 사진, 엽서, 수첩 등을 통해 간략하게 소개한다. 이는 전시장 입구에 텍스트로 소개된 르 코르뷔지에의 생애 중 ‘오귀스트 페레의 사무실에서 20세기 초 새로운 시대 흐름을 파악했던’ 대가의 모습과 겹쳐지며 김중업 여정의 의미를 암시하는 단초가 된다. 섹션 1은 간략했던 프롤로그와 이어지며 다시 한 번 공간의 변화를 보인다. ‘섹션 1. 아뜰리에 르 코르뷔지에’에서는 공간이 좁아지고 색상의 변화를 통해 르 코르뷔지에 개인 사무실 그리고 김중업이 일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아뜰리에 공간을 재현한다. 김중업의 삶이 새로운 경계로 들어섰음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효과적인 장치다.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에서의 만남을 계기로 르 코르뷔지에의 아뜰리에에 도착한 김중업은 여러 건축가들을 만나고 르 코르뷔지에의 명작들을 가까이서 접하게 된다. ‘섹션 1’에서는 그가 당시 관심 깊게 보았을 롱샹성당, 자울주택과 위니테 다비타시옹의 층별 배치계획 및 입면도, 평면도, 종단면도 등을 통해 당시 르 코르뷔지에 아뜰리에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김중업 작성 도면을 한자리에서 모두 열람할 수 있어, 전시의 방향과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개괄하고 있기도 하다.
김중업이 아뜰리에에 도착했을 시기에 르 코르뷔지에는 인도 펀잡 주의 샹디갈 도시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아메다바드에 있는 몇 개의 건물 설계를 진행한다. ‘섹션 2. 아메다바드, 세 개의 건축’에서는 그가 이 시기 진행했던 건물인 쇼단 저택, 방직자협회 회관의 도면이 전시되고 있다. 이 중 전시에서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방직자협회 회관 램프 진입로 및 난간 상세도, 쇼단 저택 단면도와 남서측 입면도와 같이 김중업이 참여한 도면도 전시된다. 두 번째 섹션은 샹디갈 프로젝트로 넘어가기 전 단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김중업이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큰 비중으로 참여하기 이전, 그가 어떻게 준비를 해나가는지 상상하게 하며, 아뜰리에에 갓 도착한 김중업을 다루는 ‘섹션 1’과 ‘섹션 3’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고 있다.

고등법원 의회 회의실 남서측 벽면 태피스트리 FLC5922, 102 x 49cm, 1961. 11. 24 (Image courtesy of the Foundation Le Corbusier)

Image courtesy of the Foundation Le Corbusier
‘섹션 3. 새로운 도시, 샹디갈’은 “샹디갈의 엄청난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 제작의 세계에 몰입한 체험이 건축에 참 눈을 뜨게 해주었다”라고 했던 김중업의 회고처럼 그가 보다 큰 비중으로 참여했던 샹디갈 프로젝트를 다룬다. 전시는 샹디갈 의사당 도면부터 시작해 행정청사 도면, 고등법원 태피스트리 도면, 주지사 관저 도면에 남은 김중업의 서명을 통해서 순차적으로 한층 더 확대된 그의 역할을 확인하게끔 한다. 특히 2층 전시장 한켠에 전시된 태피스트리 작업과 이에 상응해 영상을 바닥에 상영하며 도면 위주의 전시장에 일종의 회화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가 태피스트리의 모티브로 주로 사용했던 열린 손, 태양과 같은 상징물을 도면화했다. 건물에 프레스코화와 같은 벽화를 그려 다양한 예술을 통합하려고 했던 르 코르뷔지에는 샹디갈 프로젝트에서 이를 ‘태피스트리’로 재현하고자 한다. 회화적 요소를 지니면서도 칸막이 벽의 역할을 할 수 있고 흡음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김중업이 그린 고등법원 태피스트리 상세도에서는 여러 색깔의 다양한 문양들이 확대되어 있어, 다양한 색과 느낌을 입히려고 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감각과 김중업의 역할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전시는 르 코르뷔지에가 김중업에게 쓴 편지와 경력 증명서를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섹션 4: 1957, 김중업건축작품전’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전시되어 있는 편지에서 설명하듯 르 코르뷔지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아뜰리에의 규모를 정리해야 했다. 1956년 2월 말 김중업은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사무실을 열고 그다음 해 ‘김중업건축작품전’을 열었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실제 그의 건축작품전에 사용된 철제 구조물을 재현해 그의 작품 사진을 전시하고 있어 김중업건축작품전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를 나타냈다.
전시의 자문위원인 김현섭(고려대학교 교수)은 “르 코르뷔지에 재단에서 대여한 여러 도면이나 도형 등을 통해 김중업이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그렸던 도면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실제로 김중업이 무엇을 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라고 전시의 의미를 평했다. 그의 평가와 같이 전시의 가치는 후반부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앞 섹션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을 보아온 관람객들은 섹션 4에서 김중업의 초기 작품을 보며 그 영향 관계를 유추하게 된다. 부산대학교 본관, 유유제약 안양공장, 주한프랑스대사관의 모형과 사진은 이제 더 이상 개별적인 건물이 아닌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고 성장해가는 김중업의 성장의 맥락 속에서 읽힌다.


김중업 읽기
고은미(김중업건축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관람객들에게 해석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지양하고 자료를 통한 객관적 접근을 꾀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이러한 의도에 성공적으로 부합하는 듯 보인다. 3차에 걸친 자료 조사와 연구, 대여 과정 중 김중업이 르 코르뷔지에에게 건넨 명함, 르 코르뷔지에가 김중업에게 쓴 편지와 같이 새롭게 발견한 자료들을 전시한 것이 전시의 전체적 맥락과 흐름을 정교하게 한다. 기본적인 아카이브와 간결한 제시에 충실하되 영상과 이미지, 공간 크기, 통로 공간을 적절히 활용하며 의미 전달의 효과성을 높였다.
사진과 작은 모형에 의지해 도면의 차이를 읽어가며 작품의 맥락을 읽어가야 하는 도면 위주의 전시 구성은 건축적 맥락을 읽어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일반인에게는 조금 어려운 전시다. 또한 ‘섹션 2’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언급되었던 이경호 주택 등 영향 관계와 교차점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적어 아쉽다.
그러나 청년 김중업의 삶을 따라 걸으며 건축가로서의 그의 성장과 순수한 열정에 공감하기엔 모자람이 없다. 전시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을 설명하는 김중업의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그의 설명이 단순한 회고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가 공명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이상, 즉 모든 모순을 넘어선 인간을 위한 건축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작업이 그의 작품에도 그만의 방식으로 묻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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