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이미지) 건축가 이혜인의 홈 오피스ⓒ고인수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인터뷰 이혜인 이혜인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 김예람 기자
자연이 늘 가까이 있었네요
김예람(김): 집으로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이혜인(이): 시공 현장이 어수선해서 집으로 모셨는데, 괜찮으신가요?
김: 그럼요. 지내시는 공간이 무척 근사한데요?
이: 창밖 풍경이 다 했죠. (웃음) 이사하려고 서른 곳 정도를 돌아다녔는데 그중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 바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어요.
김: 실내에도 식물이 많아서 분위기가 더 사는 것 같아요.
이: 어릴 때 스리랑카에 살아서 그런지 자연환경이 워낙 익숙한데요. 서울에서도 자연의 초록색을 보고 싶어서 하나둘 식물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개수가 점점 늘어나서 지금은 스무 그루의 식물과 함께 지내고 있어요.
김: 스리랑카에는 몇 년 정도 계셨어요?
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스리랑카에서 살다가 잠깐 뉴질랜드로 갔었어요. 한국은 대학교 입학 때문에 오게 됐죠.
제 작업의 바탕에는 스리랑카가 있어요
김: 스리랑카 대사관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셨어요. 그곳에서 무슨 일을 맡으셨나요?
이: 외교부 산하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제 첫 직장이었어요. 과분하게도 건축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며 개발도상국인 스리랑카에 학교와 병원을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그런 일을 계속 해오다가 스리랑카 대사님께 퇴사 소식을 알렸는데, 대뜸 대사관을 한번 리모델링 해보지 않겠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 마음대로 진행해도 괜찮다고 하시길래 우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직함부터 달라고 했어요. (웃음)
김: 첫 개인 프로젝트도 스리랑카에서 진행하셨죠?
이: 스리랑카에 사는 친구가 오래된 집을 하나 사서 가구 쇼룸을 만들고 싶은데 좀 도와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80평 정도 되는 공간을 디자인하게 됐어요. 공사 현장이 바다 가까이에 있어서 작업하다가 더우면 수영하러 가고, 감리하다가 힘들면 옆에 있는 호텔에서 낮잠 자고 그랬어요.
김: 이상적인 근무 환경이네요. (웃음) 그때 가구에 대한 관심도 늘었을 것 같아요.
이: 맞아요. 좋은 가구를 만들기 위한 디자이너의 오랜 고민과 그 가구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김: 얼마 전에 펜던트 조명도 사셨잖아요.
이: 제 인스타그램 계정을 지켜보고 계셨군요. (웃음) 이탈리아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가 1969년에 디자인한 펜던트 조명 1863S를 구매했어요. 그분의 작업을 예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때마침 빈티지 가구숍에서 이 조명을 판매하길래 얼른 샀죠.


구분이 명확한 게 좋아요
김: 이전에 작업한 프로젝트에서 흰색과 검은색이 자주 보이는데, 이 색조합이 스리랑카에서 흔히 쓰이나요?
이: 제 존재를 공간에서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무채색을 썼어요. (웃음)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기도 해요. 자연이 아닌 곳에서 굳이 화려한 색을 찾는 편은 아니에요.
김: 얼마 전, 유튜버 수사샤님의 집을 리모델링 하셨잖아요. 룸 투어 영상을 보니 소장님이 만드신 희고 검은 문을 ‘스리랑카 문’이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웃음)
이: 수사샤가 제게 인테리어를 의뢰한 가장 큰 이유가 그 문 때문이에요. 제가 인스타그램 계정에 레퍼런스 삼아 올려놓은 스리랑카 사진을 보고 그 문을 꼭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끼리 스리랑카 문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웃음) 이게 스리랑카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디자인인데, 자연환경과 명확하게 대비돼서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해요.
김: 기다란 복도의 전형적인 아파트에 원형 창을 내고 11자형 주방을 만드셨어요. 이러한 주거 공간을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포인트가 있었나요?
이: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니까 실내가 너무 어두웠어요. 그런데 신발을 벗고 옆으로 틀어서 복도를 통과하니까 거실에 빛이 엄청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걸 보고 자연광을 복도로 끌어들여서 집의 첫 공간부터 밝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방 같은 경우에는 틀에 박힌 ㄷ자형 조리대가 너무 답답해 보여서 손을 좀 봤어요. 가구 일부를 잘라내고 오래된 목재를 세로로 붙여 바 테이블을 만들었죠. 개인적으로 고목 고유의 텍스처를 좋아하거든요. 시공하시는 분이 이게 왠 거냐고 하셨는데, 검게 칠하고 나니 그제야 디자인 의도를 이해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이제는 제약이 익숙해요
김: 며칠 전까지 작업하신 식음료 공간 스몰글라스 3호점이 오픈했어요. 오늘 아침에 다녀왔는데 거기에도 나무 오브제가 있더라고요. 그게 공간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정 요소를 통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건축언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려 하시나요?
이: 스스로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제가 설계하는 공간에서 연계성이 느껴진다는 거예요. 시각적으로 중심을 잡는 것을 의도했기 보다는 제 몸에 누적된 공간경험이 계속 표출되는 것 같아요. 스몰글라스는 이미 지어진 업무빌딩 1층에 생길 상업 공간이기 때문에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펼치기에는 제약이 많았어요. 다행히 저는 공간이 원래 가진 컨디션을 활용하는 걸 즐기는 편이고요. (웃음) 현장을 가서 보니 계단이 평면 한 가운데 놓여져 있는데, 계단 테두리에 수직적으로 긴 오브제를 설치하면 공간 전체에 중심이 잡히겠더라고요.
김: 계단 하부를 반사되는 재질로 처리하신 것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덕분에 그 아래에 있는 집기가 전시 작품처럼 보였어요.
이: 감사하게도 제 의견의 많은 부분을 수용해준 클라이언트를 만나서 그런 디자인이 가능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계단 경사에 맞춰 설치한 미러는 바로 아래에 놓인 사물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죠. 스몰글라스는 기본적인 공사 외에 마감 공사 기간이 5일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많은 공정이 빠르게 이뤄져야 했어요. 대부분 조립식 가구로 제작한 다음, 현장에서 신속히 설치할 수 있도록 계획했죠.
김: 우와, 5일 만에 설치가 가능한 작업이었나요?
이: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꼼꼼하게 챙겨주신 시공사 소장님과 지금까지 만났던 협업자분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일을 잘하는 금속 전문가 덕분이었죠. 급박한 일정 때문에 늦게까지 작업을 요청하는 날이 많아서 매번 죄송했어요. 제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음번에 작업 요청하면 안 해주실 거죠?” 라고 물어봤더니, “그때는 더 잘할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셨어요. 정말 감동했죠.
김: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계시는데, 힘에 부치진 않으시나요?
이: 독립하고 나서 프로젝트 다섯 개를 한꺼번에 진행하다 보니 6kg이 빠졌어요.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루를 쪼개고 쪼개면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리였나봐요. 앞으로 누군가가 제게 디자인의 정의를 묻는다면 체력이라고 대답하려고요. (웃음) 그래도 제 이야기를 찰떡같이 이해해주시는 시공자분들이 곁에 계셔서 큰 무리 없이 작업하고 있어요.
김: 잘 맞는 협업자가 계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이: 수사샤의 집과 스몰글라스 3호점을 함께 작업한 소장님과 특히 합이 잘 맞아요. 저는 일정에 쫓기면 마음이 예민해지고 급해지는데 그분은 힘든 일이 있어도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세요. 그런 반대의 성격이 작업을 진행할 때 완급조절 역할을 한다고 봐요. 이제는 역경을 같이 헤쳐나가는 동료죠. (웃음)

유튜버 '수사샤'의 집ⓒ권혜민

유튜버 '수사샤'의 집ⓒ권혜민

스몰글라스 3호점ⓒ최은화

스몰글라스 3호점ⓒ최은화
저를 설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죠
김: 젠틀몬스터에 계실 때 작은 공간을 설계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고 들었어요. 크리에이티브 조직을 벗어난 지금, 그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셨나요?
이: 당시에는 공간 규모가 굉장히 크고 빠르게 소비되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요. 트렌드를 선도하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도태되고 있다는 기분이 자주 들었어요. 그래서 얼른 독립한 다음, 작업의 크기가 작든 크든 상관 없이 이것저것 경험하고 싶었어요. 콘센트 하나도 더 신중하게 고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그런 갈증이 많이 해소된 상태예요. 요즘 들어서는 주거 프로젝트를 여럿 하고 있는데, 역시 그동안 해오던 게 있다 보니 리테일이 제일 쉽더라고요. (웃음)
김: 요즘 작업 스케줄이 정말 꽉 차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사무소 홈페이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프로젝트가 이어지는 게 신기해요.
이: 아마 젠틀몬스터 후광이지 않을까요? (웃음) 안 그래도 최근에 계속 일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보려고 했는데요. 예전에 어느 교수님이 학교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랑 어울려 다니라고 하셨는데, 제가 그 말을 되게 잘 따랐던 것 같아요. (웃음) 그때 만난 친구들이 지금 저에게 엄청난 벗이고 좋은 영향을 주는 클라이언트더라고요.
김: 혹시 한 번쯤은 만들어보고 싶은 공간이 있나요?
이: 호텔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콘셉트는 스리랑카고요.
김: 이미 어느 정도 구상하신 것 같은데요? (웃음)
이: 얼마 전에 스리랑카에서 만난 친구랑 밥 한 끼를 같이 하다가 한국에 스리랑카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꺼냈어요. 그런데 그 말을 듣던 친구가 자기한테 놀고 있는 땅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만약 그곳이 제가 상상하는 그림과 잘 어울린다면 좋은 조건으로 빌려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전 두말할 것도 없이 하고 싶다고 했죠. (웃음) 어렸을 때 스리랑카에서 경험한 호텔의 구석구석과 그곳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녹여서 한번 디자인해보려고요.
김: 정말 좋은 친구를 두셨네요. (웃음) 상상하고 있는 호텔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요?
이: 큰 객실과 작은 객실이 각각 두 개인 부티크 호텔을 계획하고 있어요. 명상을 위한 공간과 서재, 투숙하지 않는 사람도 다녀갈 수 있는 카페와 편집매장까지 운영할 생각이에요. 제가 스리랑카에 있을 때 되게 좋아한 곳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고 있는데, 다시 한 번 눈에 담아오고 싶어서 12월에 잠깐 스리랑카로 떠날 예정이에요.
김: 일도 하고 머리도 식힐 수 있겠네요. (웃음) 12월호 인터뷰를 즉흥적인 대화로 채우고 싶었는데 다행히 잘 마무리된 것 같아요. 틀에 박힌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아 질문지를 미리 보내지 않고서는 내심 걱정했거든요.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경계, 젊은 건축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고충을 묻는, 요지가 분명하지 않은 넙데데한 질문을 소장님께 정말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이: 그러셨군요. 저 역시도 그런 평이한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곤 하는데요. 제대로 디자인한 공간을 한번 보여주면 똑같은 질문에 매번 대답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인터뷰를 자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주로 클라이언트에게 받는데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제 색깔을 클라이언트한테 전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차라리 제 공간을 만들어놓고 저에 대한 이해가 높은 상태에서 찾아오게끔 만드는 게 낫겠다 싶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멋진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게 저의 주요한 목표이자 제 능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될 것 같아요. 만약 오픈하게 된다면 초대할게요. (웃음)
이혜인은 2022년 1월호에서 백인화·백명화(IWMW 공동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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