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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유산] 우리가 지켜야 할 남은 유산 목록

진행
한가람 기자

앞서 우리는 국내외 철거에 직면한 건축유산이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쳤는지 살펴보았다. 이외에도 우리 주변 곳곳에는 철거 위기에서 구해야 하거나 혹은 가치를 재조명해야 하는 건물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더불어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또는 현대건축물이더라도 건축의 중요성이 인정된다면 유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SPACE(공간)」는 건축유산의 범위를 넓혀보고자 건축 전문가 14인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건축유산이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Jeong Daeun

한강맨션아파트

대한주택공사, 1970년, 서울시 용산구 이촌로 248
 

한강맨션아파트는 중산층을 겨냥한 최초의 내국인 분양용 ‘맨션’ 아파트 단지이면서 최초의 중앙난방 단지이다. 그중 가치가 재조명되어야 하는 공간은 노선상가를 이루고 있는 11, 21, 31동의 아케이드다. 노선상가는 1970년대 지어진 아파트 단지를 구성하는 대표적 공간 요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강맨션의 경우 상가가 동네의 중심 가로이기도 하면서, 상가 2층 발코니 복도도 중심 가로를 향해 열린 아케이드로 구성된 흔치 않은 특징을 가졌다. 입체적으로 펼쳐진 중심 가로라고 할까. 한 층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동네의 모습은 색다르기도 하다. 최근 한강맨션의 사업시행자가 정해졌다. 이제는 용적률 100%의 한강맨션을 기록에서만 볼 수 있는 날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오늘날 건축물 전체를 원형으로 유지하면서 보존하는 일은 쉽지 않다. 건축물 전체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잘 쓰이고 있는 공간이 있다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 정다은(서울도시건축센터 실무관)

 

 

©Chung Hyuna

로욜라도서관

송민구건축사사무소, 1974년,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 35

서강대학교는 노후한 로욜라도서관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는 장기계획을 세우고 기금을 모으는 ‘로욜라 원 프로젝트(1oyola project)’를 진행 중이다. 공개된 계획안에 따르면, 건물의 전면 철거는 아니지만 기존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예정이다. 캔틸레버 구조체계가 투명하게 드러난 입면 표현과 완전 개가식 도서관의 특징적 공간구조, 높은 층고를 이용한 복층형 서가 등 건물이 오랜 세월 지녀온 고유한 특별함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학교의 설립과 함께 세워진 건물이라 다행히도 학교가 건물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 비록 철거는 면하였으나 건물이 가지는 건축적, 공간적 가치 또한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지속될 필요가 있다. / 정현아(디아건축사사무소 대표)

 

 

©Park Wan-soon (covered in SPACE No. 497)

오양빌딩

김수근, 1964년, 서울시 중구 명동9길 39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어 있는 오양빌딩의 강렬함은 입면의 도조 장식에 있다. 이 세라믹 벽화는 정규(1923~1971) 작가의 작업으로 노출콘크리트의 장식적 조형성을 강화한다. 정규 작가는 오양빌딩뿐만 아니라 해운대 극동호텔, 남산 자유센터, 대학로 우석병원 정문빌딩 등에서 건축가 김수근과 협업했다. 당시 건축물과 공예의 협업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중업은 주한 프랑스대사관(1961)에서 윤명로, 김종학과 협업해 입면을 세라믹으로 장식하고, 김영주는 세운상가(1967)에서 세라믹 벽화를 제작했다. 비평가들은 이를 두고 당시 종합예술로서 건축의 국제적인 흐름에 영향을 받은 작업으로 평가한다. 예술의 협업을 이룬 조형적인 장면이야말로 1960년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 임진영(오픈하우스서울 대표) 

 

 

©Yang Gun

동양극장

김한섭, 1965년, 제주도 제주시 동문로 16

제주의 근대건축은 한반도의 여타 지역보다 조금 늦은 시기인 1960년대 중반에 도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제주를 근거지로 활동한 건축가는 아니지만 김한섭, 김태식, 박진후 등이 제주 건축의 근대를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김한섭은 동양극장, 제주 교대 본관, 구 남제주군청사(멸실) 등의 작품을 통해 근대건축의 언어를 직접적으로 제주에 실현했다. 동양극장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가소성과 셸 구조를 적용한 구조 방식 등 1960년대 중반 무렵의 건축양식과 건축기술 측면에서 시대정신을 선도한 건축이다. 이러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동양극장은 제주 최대 전통시장인 동문시장에 속한 건축으로서 개발압력에 의해 언제든지 멸실될 수 있는 위기의 건축이기도 하다. 따라서 제주 근대건축의 한 단면으로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건축이라 할 수 있다. / 양건(가우건축사사무소 대표)

 

 

Image courtesy of Seoul Museum of History

여의도 시범아파트 

서울합동기술개발공단, 1971년, 서울시 영등포구 63로 45

지켜야 할 건물을 지금의 기준으로 선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래되거나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당시 새로운 건축과 삶의 지평을 열었는가와 아직도 건축적 가치가 남아있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1971년 지어진 고층 아파트로 오늘날 아파트의 모습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실제로 보여주었고 아직도 원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다. 배치, 동간의 공간, 입면의 비례, 상업시설과의 관계는 당시 지어진 다른 아파트보다 뛰어나고 아직도 나에겐 공동주택의 원형이다. 곧 재건축되어 지킬 수 없는 건축을 보며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 버릴 때, 죽은 사람(건축)은 다시 죽을 것이다. 그의 사진을 보고도… 기억해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때, 무서워라”라고 했던 문학 평론가 김현의 말을 기억하자. / 최문규(연세대학교 교수)

 

 

©Kyungsub Shin (covered in SPACE No. 552)


주한 프랑스대사관

김중업, 1961년, 서울시 서대문구 서소문로 43-12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건축가 김중업의 대표작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당시 시대 상황에서 보면 문화 충격을 준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특히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외국 공관이지만 이 땅의 장소성과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표현하려 하였고, 그 결과 우리 문화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자신만의 건축 언어로 걸출하게 표출하였다. 비록 한국 전쟁 상흔이 치유되지 않았고 물질적으로 빈곤하였지만, 한국 건축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언덕 위에 절묘하게 사뿐히 앉았다. 당시 건축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부족함에도 건축은 예술이고 중요한 문화예술 행위임을 실천하여 보여준 의미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 배병길(배병길 도시건축연구소 대표) 

 

 

Images courtesy of Duksung Women’s University

덕성여자대학교 캠퍼스

제임스 패덕(마스터플랜), 1973~1981년, 서울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쌍문동 캠퍼스를 이루는 건물 중 보존 가치가 높은 건물을 꼽자면 김수근이 설계하고 1971년 완공된 붉은 벽돌의 ‘가정관 및 약학관’(당시 명칭)을 비롯한 몇 개의 개별 건물들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캠퍼스의 마스터플랜을 보존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미국 건축가 제임스 패덕이 참여한 마스터플랜은 캠퍼스를 둘러싼 도봉산 풍경을 고려하여 건물을 낮게 짓고, 건물의 하부를 통해 크고 작은 중정을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계절감을 드러내는 조경과 정직하게 생긴 건물을 직조하듯 엮어서 산책의 즐거움을 주는 캠퍼스로 완성했다. 단일 건축물은 역사적, 미학적 가치가 있다면 보존되어야 마땅하다. 그럼 골목, 광장, 캠퍼스의 배치 같은 외부 공간은 어떤 보존가치가 있을까? 답은 아마도 공간이 주는 장소감, 분위기, 사람들의 움직임 같은 무형의 자산도 소중히 전달되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 있을 것이다. / 조성익(홍익대학교 교수)

 

 

©Chung Isak


서울풍물시장

건축가 및 준공 연도 미상,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 천호대로4길 21

풍물(風物)은 우리의 풍속[俗]을 드러내고, 풍경[景]을 만들어서, 풍토[土]를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 풍토도 그렇지만 풍물은 일순간 누군가의 선언이나 번득이는 지혜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풍물과 그것의 거리가 이젠 비주류 시장문화에서마저 사라지는 중이다. 소위 ‘황학동 풍물시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황학동이 아닌 신설동에 있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개발사업 전까지는 황학동과 청계 7, 8가 고가 아래에 있던 풍물시장이 개발 후 동대문과 동묘를 거쳐 현재 신설동에 자리 잡은 것이다. 재개발 때마다 관심 밖 나머지 빈틈의 지역을 찾아 떠도는 영세민과 다를 것이 없다. 신기한 곳, 재밌는 곳, 외국인 친구를 데려가는 곳, 그뿐이다. 개발 앞에 풍물 따위의 향수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다. 문화재는 박물관에 가고,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은 문화유산이 되지만 바람 같은 물건과 그것의 거리와 우리의 천한 정체성은 머물 곳이 없다. / 정이삭 (동양대학교 교수) 

 

 

©Hong Hyeondo

산곡동 영단주택

경인기업주식회사, 1943년, 인천시 부평구 산곡동 87번지 일원

조선주택영단(현 한국토지주택공사)은 1941년 7월에 설립되어 1945년까지 한국의 주요 도시에 노동자를 위한 표준주택을 만들어 공동주거지를 건설하였다. 1920년대 이후 인천은 군수산업의 입지 조건을 갖추어나갔으며, 조선주택영단은 이로 인한 주거난을 해소하고자 숭의동, 용현동 그리고 산곡동 지구에 집합주택을 건설하였다. 경인기업주식회사가 건설한 산곡동 영단주택은, 1940년대에 인천 육군조병창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의 전용 거주지로 계획된 주거단지다. 1960년 대한주택영단은 본 주택지를 개인에게 불하(拂下)하였고, 1960년대 후반 부평공단이 조성된 이후에는 주로 공단 근로자들이 모여 살며 오늘날까지 그 모습이 유지되고 있다. 이곳은 산업화 속에서 요구되었던 단지계획의 수법과 주거 공간의 형식이 담겨 있으며, 해방과 한국 근현대사의 현장 속에서 이어져 장소성의 역사적 의미를 전하고 있다. / 김태형(목천문화재단 연구원) 

 

 

©Oh Sinwook

부산 다대소각장

김종복, 1995년, 부산시 사하구 다대로 740

다대소각장은 쓰레기 벙커와 소각로가 1층에서 6층까지 대공간과 설비로 이루어진 특수한 산업시설이다. 또한 다대포 해수욕장에 근접해 장소적 의미가 매우 강하다. 2013년 재활용의 방향성 없이 가동 중단되었고,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다. 그리고 철거와 재생의 공론화 과정 없이 관광호텔을 유치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자는 목적으로, 2016년 3월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되어 관광숙박 시설용지(준주거지역)로 변경되었다. 최근 개발과 재생 그리고 관광의 인식 변화가 생기면서 철거보다는 보존의 시도가 모색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2021년 다대소각장의 활용에 대한 워킹그룹이 만들어지면서 공공건축가가 참여하였고, 보존 가치가 있는 소각장의 핵심 공간과 구조는 재생하여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지원시설과 나머지 부분을 활용해서 관광거점을 조성한다는 방향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빠르게 실행하려는 부산시의 입장과 민간 참여자의 사업성 문제로 보존보다는 전면 철거 후 신축될 우려가 있다. / 오신욱(라움건축사사무소 대표) 

 

 

©Namgoong Sun (covered in SPACE No. 564)​ 

서울 강남지구 A3 블록

리켄 야마모토 & 필드 샵 + 최문규 + 가아건축, 2013년, 서울시 강남구 자곡로3길 22

건축유산으로 지켜졌으면 하는 건축물은 무슨 기준으로 꼽아야 할까? 나는 ‘건축’유산이기에, 사람들의 생활상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강남지구 A3 블록의 보금자리주택을 택했다. 이 아파트는 나란한 두 개의 동 가운데에 커먼 필드(common field)가 있고, 이곳으로 열린 각 동의 복도, 개별 주거 안의 사랑방이 대칭으로 배치된다. 커먼그라운드의 폭은 12m 이내로 상대방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다. 입주민의 연령층과 가구 구성을 고려한다면, 이 공간은 공동체의 안전망인 셈이다. 건축가가 ‘열린 마당’으로 지칭한 복도는 서로 다른 폭의 포켓 공간, 복도 위의 천창, 빨래를 걸 수 있는 핸드레일 디테일을 통해, 진짜 마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세대에서 새어 나온 장독대, 빨래, 의자, 화초 등의 세간살이가 복도에 나와 있는 모습은 건축가가 디자인한 것이 건물이 아니라 함께 사는 풍경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 강예린(서울대학교 교수)

 

 

©Kim Changmook

매향리 쿠니사격장

건축가 미상, 1950~1960년대,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산 157-4 일대

 

매향리 쿠니사격장은 한국전쟁 중에 미군 전용 폭격장으로 사용하던 군사시설로서, 2005년까지 미군이 폭격장으로 사용했다. 매향리 주민들은 1988년부터 폭격장 폐쇄와 피해 보상을 요구하였고, 2005년 폭격장 폐쇄 이후 위병소, 장교 막사, 생활관, 카페 및 체력단련실, 헬륨저장소, 사격통제실 등 여섯 개의 건물이 남겨졌다. 화성시에서 2016년 경기도 우수건축자산 1호로 등록하고 평화생태공원으로 활용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전쟁과 냉전 시대의 아픈 역사를 온전히 담아내는 공간으로 보존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건축유산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축유산의 가치를 충분히 조사하고 확인된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 실행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매향리 쿠니사격장의 보전과 활용을 위해 앞으로 화성시와 지역주민, 그리고 관련 전문가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 이규철(건축공간연구원 건축문화자산센터장)

 

 

Screenshots from Kakaomap


연희동 189-2

김중업, 1985년,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맛로 17-3

연희동 189-2번지의 건축물대장을 떼어보면 불법의 흔적이 두 페이지에 걸쳐 가득하다. 1985년 김중업이 설계한 이 고급 주택은 2011년 카페로 사용하기 위해 화강석 담장을 허물고 울창한 조경수를 철거했다. 그 후로 캐노피, 새시, 계단 등을 무단 증축하여 여러 차례 행정처분을 받았다. 2013년엔 지하에 맥주 가게가 입점하며 파란색 간판과 커다란 메뉴 사진이 건물 전면에 붙었다.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작은 규격의 벽돌로 둥근 몸을 촘촘히 감싸고 있는 이 집은 모든 것을, 세월마저도 튕겨낼 것 같은 탄력을 가지고 있었다. 건물이 카페로 변하면서 늘 궁금하던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초록색 천막이 달리고 조악한 새시가 외부를 덮고 원형 계단에 회색 페인트가 덧입혀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현재 건물은 해체가 중단된 참치처럼 숨이 붙어 있는 상태다. /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 공동대표)

 

 

©Cho Jaewon

샘터사옥

김수근, 1979년,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16

샘터사옥은 김수근의 유작으로, 근대건축가의 시대적 과제와 그 과제를 풀어낸 건축가의 일관된 태도, 방법이 함께 담겨 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의 이전으로 새로운 서사를 기다리는 대지를 마주한 건축가는 1층에 광장을 만들어 공공의 통행에 내어주고 문화, 상업, 업무 용도가 어우러진 작은 도시를 제안했다. 한편 이 건축의 가치는 공공성을 지키고자 했던 시민들의 노력이 이어져온 데 있다. 샘터사는 광장과 만나는 저층부에 극장, 책방, 갤러리 등을 운영하며 유지했고, 이어 공공그라운드가 새롭게 리브랜딩하여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승효상이 계획한 2012년의 증축과 필자가 계획했던 2017년의 리노베이션은 각각의 시점에서 건축 원형이 가진 고유함을 존중하면서도, 시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재정립되도록 건축가의 개입이 어때야 하는지를 새로이 보태었다. 건축은 한 시점에만 행해지는 사건이 아니라 순환의 과정에서 장소의 서사를 이어가는 일이다. 켜켜이 쌓인 장소의 서사에 어떤 전개를 더할 것인지 이야기 전체가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훌륭한 건축의 탄생은 건축가의 창의와 상상의 성취일 수 있지만, 시간을 이기는 건축은 사회적 성취다. / 조재원(공일스튜디오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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