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인터뷰 이해든, 최재필 오헤제 건축 공동대표 × 최은화 기자
오래된 동네의 옛집에서 지내요
최은화: 서촌에 있는 한옥을 사무실 겸 집으로 사용하고 계세요. 언제부터 이곳에 자리 잡으셨어요?
최재필: 서촌에 처음 발을 디딘 건 사무소효자동에서 일하면서부터예요. 그러다 일본에 가서 공부를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 잠시 한남동에 있기도 했는데, 곧 서촌으로 왔어요. 이 동네에서 살고 일한 지는 5년 정도 됐어요. 여기가 두 번째 공간이고요.
이해든: 걷기 좋은 동네에 살고 싶었어요. 저희가 생각하는 걷기 좋은 동네는 차가 없고 사람이 있는 곳이에요. 1층 필로티 주차장 대신 사람들이 골목에 의자도 놓고 화분도 둘 수 있는, 그런 사람 사는 모습이 길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동네이길 바랐죠. 서촌을 돌아다니면서 그런 매력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어요.
최은화: 한옥에서의 생활은 어때요?
이해든: 처음 한옥에서 잘 때, 서까래가 주는 압도감 때문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고래 뱃속에 누워 있는 것 같았거든요. 집 안에서 바깥 소리가 잘 들리는 것도 처음엔 적응이 안 됐어요. 이게 왜 이럴까를 살면서 생각해보고 있는데, 한옥은 지붕의 위계가 굉장히 세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기둥, 보, 모든 부재가 지붕을 지지하기 위해 존재하고 그 구조가 그대로 노출돼요. 거실이나 침실과 같이 방을 단위로 삼지 않고 칸으로 구성되는데, 칸의 크기와 개수도 지붕의 스케일에 따라 결정되죠. 그렇다 보니 벽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소리나 공기가 유연하게 안팎을 드나들죠. 사람도 수평적으로 쉽게 드나들다 보니 동네와의 거리감이 매우 가까워요. 동네 슈퍼마켓이 여기서 거리가 좀 되는데, 멀게 느껴지지 않아서 기꺼이 다녀오곤 해요. (웃음)
최은화: 하나의 공간에 일과 생활을 모두 담아야 했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최재필: 보통은 일과 생활의 공간이 뚜렷하게 구분되죠. 저희는 두 가지를 함께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하나의 공간을 어떻게 시간적으로 나눌까를 고민하다가 저희의 삶이 예전의 한옥에서의 생활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100~150년 전 한옥을 보면 취미, 일, 생활의 영역이 구분되지 않아요. 경계가 없는데도 각자 잘 작동하죠. 이곳은 대지 면적이 26평 정도예요. 규모는 작지만 이곳에서의 일과 생활의 전환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요.
최은화: ‘워크-라이프 밸런스(이하 워라밸)’에 대한 생각을 묻지 않을 수가 없네요. (웃음) 오헤제 건축(이하 오헤제)의 워라밸은 어떤가요?
최재필: 직장인들의 마음은 백 번 공감하고 이해해요. (웃음) 다만 저희의 삶에 있어서는 일과 생활이 일체화되어 있어요. 워라밸이 이야기된다는 것 자체가 그 전제에 일과 생활이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뜻인데, 저희는 일 속에 생활이 있고, 생활 속에 일이 있어요.

DDP 사인맵 ⓒo.heje architecture

DDP 디자인 라이브러리
관찰하고 체화해요
최은화: 오헤제에게는 ‘워크-라이프 블렌딩’이 더 적합한 단어 같아요. 동네를 산책하며 보고 관찰한 것이 진행하는 건축 프로젝트와 맞닿는 게 다 이유가 있었네요.
최재필: 저희는 주변과 이어지는 건축이면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단순히 말로만 “도시와 이어진 건축을 만들자”, “마을과 이어진 건축을 하자”라고 하면 굉장히 추상적이에요. 그걸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아주 구체적인 작업들이 필요하죠. 어떻게, 무엇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현장 조사를 시작하게 됐어요. 학부 때부터 일본 도쿄예술대학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으니 도쿄 버전, 서울 버전이 있는 셈이에요. 오래된 주거지에서 ‘생활적 개방감’을 발견하고, 도시의 구조를 건축의 구조로 치환하고, 다시 우리의 건축이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되는 순환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이것을 사진, 글, 드로잉으로 기록하고 있고요.
최은화: 단순히 관찰일지가 아니라 지향하는 건축에 실제로 가닿기 위한 방법을 수집하는,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네요. 오헤제가 수집하고 있는 ‘생활적 개방감’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이 사례들을 모아 일본 「LIXIL」에 칼럼 ‘서울-생활적 개방감이 만드는 프라이빗한 공공성’을 게재하셨던데, 이러한 장소들이 어떻게 도시의 공공성에 트리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최재필: 도시와 건축은 서로 다른 성질의 세계를 가지면서도 하나의 틀을 가지고 공존하죠. 양면으로 뒤집어서 입을 수 있는 리버서블 의류처럼 말이에요. 그 경계면을 채집하고 있어요. 개인의 삶이 도시로 삐져 나온 부분, 다시 말해 각자의 삶으로부터 연장된 재미있고 작은 공적인 풍경을 저희는 ‘사적인 공공성’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예를 들어 도쿄에서는 맨션의 외부 복도에 개인 세탁기를 놓고 사용하는 게 흔해요. 그 풍경을 보고, 예전에 개울가에 모여서 빨래할 때처럼 자연스러운 만남을 만들어주는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연결하는 거죠.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후로 많은 공공시설들이 폐쇄되면서 공공성이 마치 스위치로 켜고 끄듯이 온오프 되는 상황인데,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작은 공공 장소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모두를 위한 최대공약수적인 공공성이 아닌, 개개인의 생활에서 실제로 필요하고 또 작동하는 공공성이 오늘날 도시에 새로운 가능성이 되지 않을까 하며 다양한 장면들을 채집하고 있어요.
최은화: 대상을 기록할 때에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는데 꼭 드로잉을 하는 단계를 거치고 계신데요. 이렇게 한 번 더 체화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아요.
이해든: 맞아요. 정말 중요해요. 왜 빨간 선으로 그리냐는 질문도 많이 받아요. 일본에서 일할 때, 도면에 빨간색 펜으로 수정했거든요. 그래서 저에게는 빨간 선이 기존의 것을 수정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이 드로잉들도 사진을 그대로 묘사한 게 아니고 기존 도시 구조에 약간씩 변형을 주거나 디자인을 가미한 거예요. 한 장소에서 무엇을 봤는지, 채집할 대상이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내 것으로 가져올지에 대한 중간 과정으로 드로잉을 해요. 결과물을 잘 표현하고 설명하기 위한 드로잉이 아니고,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것이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한 상상으로서의 드로잉이자 일종의 디자인 과정이에요.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공간이 물건, 사람, 시간과 함께 어떻게 쓰일지 고민하는 작업으로 드로잉을 하고 있어요. 일종의 장소화인 셈이에요.

‘사적인 공공성’ 드로잉 ⓒo.heje architecture

한옥C ⓒo.heje architecture
주어진 상황에 빨간 선을 그어요
최은화: 오헤제의 관찰과 작업만 블렌딩되는 게 아니라 오헤제가 작업하는 도시와 건축도 블렌딩되네요. 그런 점이 잘 드러나는 프로젝트가 사무소효자동과 함께 작업한 DDP 디자인 라이브러리(2018)인 듯해요. 일본에서 관찰한 도시 풍경에서 착안해 도시-건축-가구-오브제가 하나가 되도록 작업하셨죠?
최재필: 도쿄 진보초에 가면 헌책방 거리가 있어요. 건물의 입면에 책장이 박혀 있고, 천막으로 여닫을 수 있게 되어 있어요. 한두 개 서점만 이런 특이점이 있는 게 아니고 거리 전체가 다 그래요. 그래서 거리가 책이자 책장이자 도서관이 돼요. 일반적으로는 책-책장-도서관의 위계가 뚜렷하게 나뉘잖아요. 도서관 건물이 있고, 그 안에 책장이 서 있고, 책장 칸마다 책이 꽂혀 있죠. 이 확고한 위계가 유연하게 다시 규정되기를 바라면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책장이 가구와 건축의 스케일을 넘나들면서 책장을 중심으로 길이 만들어지고 중정과 같은 열린 공간이 생기기도 해요. 또 입면이 되기도 하고 의자와 평상 같은 요소가 되기도 하면서 건물로서의 존재는 옅어지고 그 안에 책과 사람만 남는 풍경이 되기를 바랐어요.
최은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또 다른 작업도 하셨어요. 비상 상황시 탈출 루트를 시각화한 DDP 사인맵(2019)인데요. 일반적인 피난 지도와 어떻게 다른가요?
이해든: 디자인오피스 미래물산과 함께 진행한 그래픽 작업이에요. 사실 평면도 위에 피난 동선을 화살표로 그리기만 하면 되는, 일반적인 피난 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였거든요.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피난 지도는, 도면을 읽는 훈련을 받은 사람만 볼 수 있어요. 게다가 피난 지도는 지도(map)보다는 지시(sign)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해서 그 중간인 ‘사인맵’이란 것을 새롭게 시도하게 됐죠. 지도는 동서남북을 찾아야 하지만, 사인맵은 자신의 위치를 중심으로 오토 로테이션되는, 마치 휴대폰의 길찾기 어플리케이션 같은 그래픽이에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공간 형태도 다 다르고, 방향성도 없는 공간이라 난이도가 높아요. 그래서 더 직관적인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최은화: ‘티맵’ 같은 네비게이션을 장소마다 시각화한 거네요.
이해든: 네, 총 156개의 사인맵을 제작했어요. 150여 곳의 장소마다 현재 위치, 비상구, 루트. 이렇게 딱 세 개의 정보만 남겼어요. 하나씩 다 그리느라 손목을 잃었지만 재밌었어요. (웃음)


최재필(왼쪽)과 이해든(오른쪽)
나누기가 아닌 그러데이션으로 둘 사이를 규정해요
최은화: 요즘 하고 계신 작업들도 구경시켜 주세요. 저기 있는 모형이 지금 공사 중인 한옥 C 프로젝트죠? 와, 모형을 굉장히 크게 만드시네요.
이해든: 3D 이미지로 보는 것과 모형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관점이라고 생각해요. 초기부터 모형으로 스터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큰 규모의 프로젝트는 1:50 스케일로, 작은 규모는 1:20으로 모형을 만들고 있어요.
최재필: 1:20이면 상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물을 볼 수 있거든요. 이 한옥은 서촌에 있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쪼개지고 덧붙여진 도시형 한옥이었어요. 11자형으로 한옥 두 채가 자리하고 그 사이에 콘크리트 슬래브가 한옥에 의해 지지되는 구조였죠. 구조는 분리하고 공간은 통합하도록 작업했어요. 그리고 두 채의 한옥이 서로 다른 성격으로, 하나는 벽과 문으로 둘러싸인 내적인 공간으로, 다른 하나는 마치 누각처럼 열린 공간으로 계획했어요. 집의 중앙에는 전통 한옥의 대청마루처럼 방의 연장된 공간이 되었다가 마당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공간을 두었고요. 거실과 주방과 같은 열린 공간부터 침실처럼 내밀한 공간까지 단계별로 전개될 수 있도록 계획했어요. 지금 공사 중인 프로젝트고, 올해 완공될 예정이에요.
최은화: 신축 프로젝트도 동시에 진행하고 계시죠. 하우스 D는 커다란 지붕 두 개가 교차하는 단독주택이에요. 거대한 지붕을 보고 있자니, 아까 인터뷰 처음에 이해든 소장님께서 이야기한 고래 뱃속과 같은 공간이 떠오르네요. (웃음)
최재필: 동탄의 택지개발지구에 위치하게 될 집이에요. 이런 주택단지에는 보통 균질한 집들이 같은 모습으로 쭉 늘어서게 돼요. 주어진 대지에서 최대한의 면적을 뽑은 다음 공간을 분할해나가는 거죠. 거실은 이만큼, 침실은 이만큼 하는 식이죠. 이 집에서는 공간을 기능에 따라 분절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치 큰 나무를 위에 두고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이 머물 장소를 찾아가는 방식을 적용했어요. 두 개의 지붕이 틈을 두고 위치하고, 사이사이마다 다양한 공간들이 겹겹이 쌓이도록 계획하고 있어요. 처음 집에 들어서면 낮은 지붕의 공간을 마주하고, 내부로 들어서면 9~10m의 높은 층고를 가진 광장 같은 공간으로 가도록 설계했어요. 외적인 공간부터 내적인 공간까지의 단계를 촘촘하게 공간에 적용하고 있어요.
이해든: 간단하게 말해서 마당을 지붕으로 덮은 셈이에요. ‘마당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게 궁극적으로는 ‘실내에서 느끼는 감각을 전환시키고 다른 활동을 하고 싶다’는 욕구라고 봤어요. 한국의 기후는 사계절이고, 옆집과 가까이 붙어 있는 대지 특성상 외부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게 1년에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햇빛과 바람은 통하지만 비는 맞지 않는 공간으로 만든다고 클라이언트에게도 설명했는데 좋아하셨어요. 이 프로젝트에서 지붕의 위계가 매우 중요한 만큼 이 구조를 어떻게 직관적이고 아름답게 형태화 시킬 것인가가 요즘 저희의 가장 큰 숙제예요.
이해든·최재필은 2022년 3월호에서 황동욱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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