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2년 4월호 (통권 653호)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진행된 송상희의 개인전 〈자연스러운 인간〉이 2월 27일 막을 내렸다. 미디어아티스트인 송상희는 2008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과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재난, 테러, 전쟁, 학살의 현장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 존재와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꾸준히 주목해온 그가 활동한 지도 20여 년이 흘렀다. 국내 국공립 미술관에서 처음 열린 이번 개인전을 통해 작가는 한층 정교해진 작업 세계를 선보였다.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작업은 ‘자연스러운 인간’이란 주제 아래 다양한 시공간과 역사를 포섭하며 뻗어나간다. 75일간 진행된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송상희 아티스트 × 방유경 기자

〈자연스러운 인간〉전시 전경
방유경(방):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수상(2017) 이후 첫 개인전이다. 그 전시 이후 작업에 어떤 변화 혹은 고민이 있었나?
송상희(송):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내 작품이 “권력 구조에 의해 사라져가는 사람들, 몫이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담는다”고 소개됐는데 부끄러웠다. 나는 사실 옆에 가까이 있는 분들의 마음도 잘 헤아리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다. 전시를 마치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작업실에 앉자, 내가 모았던 그 목소리들이 다 어디론가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내 속에 다른 많은 ‘나’들이 말을 걸어왔다. ‘내가 이런 작업을 할 자격이 있는가’ 질문하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욕망으로 가득한 내 안의 무수히 많은 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을 찾고 싶었다. 그때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서 ‘자연 그대로의 인간’이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나’라는 개인에서 출발한 의심과 질문은 세계의 모순과 맞닿으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선과 악, 참과 거짓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로 설명될 수 없음을 느꼈다. 끔찍한 본바탕을 지닌 우리를 직시하고, 이 모순과 부조리가 개인과 사회 안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2019년에 처음 전시 기획안을 쓰면서 ‘자연스러운 인간’이란 제목을 정한 이유다.
방: 이번 전시에서 여섯 개의 신작과 한 개의 미공개작이 소개됐다. 작업 바탕에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양의 독서와 연구가 촘촘하게 깔려 있다. 이런 아카이브들이 드로잉, 사진, 영상,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복합적으로 구현되는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정리하는 작업 프로세스가 궁금하다.
송: 어떤 아이디어나 주제가 떠오르면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살피기 위해 논문, 책, 신문, 뉴스 등 자료를 수집한다. 작업 과정은 먼지 속을 헤매듯 손에 잡히지 않는 공허한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독서도 일기 쓰듯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책 제목과 날짜를 기입해 스크랩하고 연도별로 폴더를 정리하고 있다. 자료 수집을 마치면 드로잉,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 아이디어에 적합한 매체를 선택한다. 영상을 촬영할 때에도 해상도, 촬영 장비의 수준 등을 내용에 맞게 결정한다.
방: 세계 곳곳에서 촬영한 영상 아카이브를 모은 설치 작업 ‘대지의 노래’는 이런 작업 방식을 잘 보여준다. 배의 좌현과 우현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원유 유출 사건이 있었던 태안 앞바다를 촬영한 ‘모항’,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묻힌 일본의 오소레산을 찾아가 발등에 카메라를 단 채 진혼의 길을 걸으며 촬영한 영상, 노예무역이 성행했던 탄자니아 바가모요와 카나리아 제도에서 긴 장대 끝에 카메라를 매달아 망고나무 숲을 촬영한 영상 등 다양한 시점과 장비, 촬영 방식이 사용됐다.
송: 원래 이 작업은 2012년에 시작된 프로젝트다. 당시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망고나무가 식민지와 노예무역의 흔적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죽고 아픔의 역사도 잊혀지지만 들풀이나 돌멩이, 바람과 하늘 같은 자연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재난지역, 집단 학살의 현장 등 역사적 상흔을 지닌 장소들을 찾아갈 때마다 그곳의 상황에 맞는 촬영 장비를 챙겨 자연이 보는 시점에서 촬영하게 되었다. 물고기의 시선으로 촬영한 태안 앞바다, 자유로운 새의 시선으로 촬영한 탄자니아 망고나무, 화학공장 화재로 대기가 오염된 공장지역 부근의 방울양배추 밭에서 공 모양의 카메라 키트를 굴려 촬영도 같은 맥락이다.

‘대지의 노래’(2021)의 스틸 이미지
방: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프랑스 베르덩 등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들은 식민지, 전쟁, 테러, 학살, 환경파괴와 같은 상흔을 가진 곳들이다. 이런 장소를 찾아다니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송: 2003년에 삿포로의 레지던시에 참여했을 때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났다.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소야미사키를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세계인들이 평화롭기를’이라고 쓰인 작은 위령탑을 보았다. 냉전 시기였던 1983년, 소련이 대한항공 여객기를 전투기로 오인하고 격추시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던 참혹한 사고의 현장이었다. 그 순간, 어린 시절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던 텔레비전 속 장면이 생생히 떠오르면서 여기 어딘가에 잠들었을 피해자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다시 일본을 방문하게 됐는데 아픈 역사를 가진 장소들을 따라가며 막연히 가해자라고 생각했던 일본인들 역시 피해자였음을, 상처받은 사람과 상처를 준 사람이 그물망처럼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경험들이 계기가 된 것 같다.
방: 20세기 초, 인도네시아와 한국을 지배했던 식민 정부가 발행한 사진엽서 속 장소를 찾아가 현재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기거, 너 그리고 나’(2012)는 그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호시노 유키노부의 SF만화 『2001스페이스 판타지아』 속 ‘기거’라는 의태 생물은 상황에 따라 강한 자의 모습으로 변신하며 생존을 이어가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날카롭게 빗댄 존재다. 식민지, 군사독재, 민주화라는 내상을 겪으며 오늘에 이른 현대사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명징한 구도가 전복되거나 불분명해지는 모습이 현재 도시의 풍광과 옛 사진엽서를 겹쳐보는 장면에서 묘하게 오버랩된다.
송: 네덜란드에 거주하다 보니 그들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됐다. 식민과 지배, 착취와 관련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업한 것이 바로 ‘신세계’다. 인간의 정복욕이 초래한 무역전쟁과 식민지 개척의 상징적 모티프들을 각각 델프트 블루 타일 벽화(‘정신과 기계’), 여섯 점의 라이트박스 드로잉, 분재 세 가지 형태로 표현했다. 하나의 작품 안에 여러 작업들을 모아두고 이들이 상관성을 가진 맥락 안에서 읽히기를 바랐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붓다의 두상만 잘라 국립미술관에 전시한 네덜란드(‘붓다의 머리’)와 종교전쟁이라는 명목 아래 고대 도시 팔미라의 사원 유적을 폭파한 시리아 이슬람국가(‘팔미라 유적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결국 이런 태도는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우주의 행성을 탐사하는 모습과도 연결된다. 인간은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선택했다고 하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완벽한 테러이자 폭력이다.
방: ‘신세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처음 선보였던 네덜란드 특산품인 델프트 블루 타일이 사용됐다. 한 변이 20cm인 정사각형 타일 80장으로 거대한 벽화를 완성했는데 어떤 의도였는지 궁금하다.
송: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준비할 당시에 시리아 내전을 보도하는 신문에 게재된 폭발 사진을 보며 이 비극적 사건이 일상적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델프트 블루 타일의 ‘푸른색’과 ‘그리드’라는 형식에 착안해 이 폭발 장면을 일종의 픽셀처럼 표현했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는 타일이 유럽에서 전통적으로 벽화에 사용된 재료라는 점에 주목했다. 델트프 블루는 네덜란드인들이 아시아의 청화백자에 매료되어 17세기에 이를 본떠 만든 도자기다. 왕실이나 부유층 사람들은 아름답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대상, 성화를 델프트 블루 타일 위에 그려 벽화로 소장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타일에 지배와 착취의 역사를 반증하는 사탕수수, 후추, 천연두, 노예, 헤르메스, 도도새, 군사위성 밀, 화성 탐사로봇 등을 빼곡히 그려 넣었다. 인간이 지닌 왜곡된 욕망과 우월의식을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신세계’ 중 ‘정신과 기계’ 타일 벽화 (2021)
방: ‘신세계’가 여러 이야기들을 쭉 나열했다면, 3채널 영상 작품 ‘사과’는 이분법적 사고의 오류와 모순을 드러내는 세 가지 에피소드를 사과라는 모티프 아래 엮는다. 영상과 자막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느슨하면서도 긴밀하게 짜여 있어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작업이라 느꼈다.
송: ‘사과’의 시작은 선악과였다. 중세시대부터 선악과를 상징했던 사과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해 진리와 거짓, 선과 악, 좋음과 나쁨 등의 기준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한 전쟁 영웅임에도 성소수자란 이유로 범죄자로 내몰렸던 비운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최근 재조명되는 현상을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백설공주 이야기와 연결하는 식이다. 이제는 진리로 받아들여지지만 당시에는 이단으로 규정됐던 갈릴레이의 지동설, 미국의 원폭 개발을 이끌었지만 실전에 사용된 핵무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반핵운동을 펼친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사람에서 갑충으로 변한 그레고르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죽게 되는 카프카의 「변신」 등의 이야기가 사과를 중심에 두고 연결된다.
방: 다양한 서사를 독자적인 어법으로 재조합하는 작업 방식을 두고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는 ‘디지털 퀼트메이커’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기도 했다. 특히 영상, 자막, 음악의 조화가 돋보이는데 이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가?
송: 지금 살고 있는 암스테르담 극장에서 ‘파우스트’와 같은 1910~1920년대 무성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 배경 음악이 감정의 흐름을 연결하고 이야기는 영상과 자막을 통해 전개된다. 음악, 영상, 자막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도 그 사이 사이의 틈새에서 감정과 상황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각 어법을 무성영화에서 배운 것 같다. ‘사과’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처럼 5~6분 길이의 영상이 순차적으로 이어진다.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각 영상의 호흡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는 작업이 중요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는 소설의 문맥이 불연속적인 특성을 고려해 쇤베르크의 무조성 음악을 삽입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애니메이션 영상 아래로 앨런 튜링의 전기가 전개되는 이야기에는 낭만적인 쇼팽의 발라드를, 미국의 핵개발 실험인 맨해튼 프로젝트 기록 영상에는 앞의 두 음악과 달리 경쾌한 느낌을 주는 바흐의 음악을 삽입했다.

3채널 영상 ‘사과’(2021)
방: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업을 꼽으라면 ‘꿈’이 아닐까 싶다. 국일고시원 화재 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등 사회적 타살을 암시하는 오브제들이 전시장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들은 영상 안에서 고시원, 지하철역, 양재천 같은 현실의 공간 안에 불쑥 등장하며 서로 연결된다. 마치 ‘마블 시리즈’에서 각자 서사를 가진 히어로들이 ‘어벤져스’에서 모인 것과 같은 시너지라고 할까? 매체 사이의 연결과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 가장 어울리는 작업이자, 작업의 변화를 암시하는 작품이라 흥미로웠다.
송: ‘꿈’은 우리가 알고 있던 타인의 희생, 개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고된 노동과 삶의 무게, 지옥의 세계가 결코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우리가 지닌 회한과 죄책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날카로워지면서 기억 어딘가에 잠복한 채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꿈’의 오브제와 영상은 이런 감정이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의 세계 속에서, 그리고 동시에 전시장의 내 눈앞의 사물들로 드러난 모습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로 시작하는 영상 중간에 세시봉의 ‘백일몽’이 흘러나온다. 끝내 실현되지 못한 유토피아를 향한 꿈이 백일몽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점을 연결하며 이야기하고 싶었다.


‘꿈’(2021) 영상의 스틸 이미지
방: 전시는 ‘말걸기’로 마무리된다. 여섯 대의 드론이 공중을 돌며 “Who are you?”라고 질문하면, 스크린에 투사된 영상이 이에 화답하는 형태다. 질문과 답이 어긋나는 대화 속에서 단절된 개인과 그럼에도 소통을 시도하는 의지가 동시에 읽혔다.
송: ‘말걸기’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담은 작업이다. 네덜란드에 살면서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삶의 환경이 바뀌면서 나를 둘러싼 관계에 따라 나를 정의하는 관점이 달라짐을 느꼈다. 화면에는 내전과 테러, 분쟁이 일어났던 장소들이 흐르는 가운데 “나는 당신에게 상처받은 사람입니다”, “나에게 왜 그랬습니까”, “나는 당신을 통해서만 설명됩니다”, “당신이 나에게 한 질문으로 나는 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등 여러 문장이 화면에 투사된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사회 속에서만 정의 내릴 수 있는 존재라 느꼈다.
방: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인지 그 ‘대상’이 조명을 받았다면, 이번 전시는 이 서사를 어떻게 입체적으로 확장, 증폭할 수 있는지 ‘태도’와 ‘방식’에 주목하게 된 자리였다. 20여 년의 여정을 총망라한 전시를 마친 소회가 궁금하다.
송: 이번 전시는 팬데믹이라는 상황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함께 고생하며 전시를 준비해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올해가 나에게는 인생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는 시기인 것 같다. 전시를 마친 뒤 엊그제 12년간 썼던 작업실을 정리했는데, ‘업고’ 드로잉 자료로 모아두었던 신문 기사가 벽면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흑인 인권운동인 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 도중 흑인에게 폭행당한 백인을 다른 흑인이 업고 가는 사진이었다. 미워했지만 구해야 하고, 업고 가야만 하는 것처럼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 역시 또 하나의 본능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걸기’에 삽입했던 존 버거의 『결혼을 향하여』도 같은 메시지라 생각한다. 평면적으로 보면 불굴의 사랑을 담은 신파로 느껴질 수 있지만, 아파하는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려는 노력 없이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시대인 것 같다. 작가로서 그 마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작업하고 싶다.

(위) ‘말걸기’(2021) 영상의 스틸 이미지 / (아래)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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