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8월호 (통권 669호)
매년 여름, 런던 하이드 파크 내 서펜타인 갤러리의 앞마당이 새롭게 채워진다. 2000년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을 시작으로, 영국에 건물을 지어본 경험이 없는 건축가를 대상으로 자신만의 건축 어휘를 자유롭게 실험할 기회를 주는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건축계의 대표적인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2023년 초청 건축가로 레바논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리나 고트메(리나 고트메―아키텍처 대표)를 선정했다. 전 지구적 기후 위기와 지속가능성이 화두인 시대에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리나 고트메와의 인터뷰를 통해 올해의 파빌리온을 살펴본다.
2023 서펜타인 파빌리온 ‘아 타블르’ 전경
인터뷰 리나 고트메 리나 고트메―아키텍처 대표 × 김지아 기자
김지아(김): 2023 서펜타인 파빌리온 ‘아 타블르(À Table)’를 디자인했다. 공원과 호수, 서펜타인 갤러리와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들어설 파빌리온을 어떻게 해석했나?
리나 고트메(고트메): ‘아 타블르’는 프랑스어로 식탁으로 모이라는 요청이자 제안이다. 식탁은 한 장소에 둥그렇게 모여 앉도록 유도하는데, 이는 우리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구와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파빌리온은 우리가 주변 환경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사유하도록 이끈다. 형태는 공원을 거스르지 않고,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디자인을 의도했다. 나무 캐노피가 만들어내는 원을 따라 가장자리를 조성하고, 목재 기둥을 배치해 공원과의 연속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김: 파빌리온을 모듈식 목구조로 구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트메: 파빌리온은 임시 구조물의 특성상 쉽게 조립하고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언제든 새로운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목재는 이에 부합하는 재료다. 친환경 저탄소 재료이면서 가볍고 모듈화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김: 무늬를 낸 합판 패널을 벽으로 설치했다. 처음에는 유리벽을 구상했다가 비용과 지속가능성 측면을 고려해 계획을 변경했다고 들었다.
고트메: 무늬 합판 패널은 파빌리온 내부에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화창한 오후 볕이 들 때 무늬 모양의 그림자가 맺히는 모습을 염두에 뒀다. 이처럼 패널은 공간에서 빛과 기후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더운 여름에는 통풍과 환기에 도움을 주고, 우천 시에는 비바람으로부터 방문객을 보호한다. 합판 패널이 아닌 투명 유리벽을 설치했다면, 기능의 일부만 수행했을 것이다.
바이오 소재와 저탄소 목재를 사용한 벽면에는 나뭇잎 형태의 구멍을 냈다.
김: 지붕 중앙에 낸 3.4m 크기의 원형 천창에 우산 형태의 ETFE 프리텐셔닝 패브릭 구조물을 덧대었다. 채광창을 뚫린 상태로 두지 않고 구조물을 설치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트메: 우산 형태의 구조물은 비로부터 내부 공간을 보호한다. 런던은 기후 특성상 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므로 이는 지역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또한 중앙 개구부에 비현실적으로 떠 있는 이 구조물은 은은한 빛을 안으로 들여, 야외 공간에 얇은 외피로 자리한 파빌리온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김: 서아프리카 말리의 오두막인 ‘토구나’를 모티브로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토구나는 사람들이 앉아서 토론하고 쉬어갈 수 있는 장소다. 이를 어떻게 재해석했나?
고트메: 이 파빌리온은 문자 그대로의 토구나를 재현하기보다, 공동체 회합의 장소라는 맥락을 비유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중점을 뒀다. 지붕을 구조물의 주 요소로 내세우고 비교적 낮게 자리 잡은 점을 차용했지만, 혹자는 파빌리온이 토구나와 전혀 닮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파빌리온은 자신만의 맥락을 반영한다. 주름진 지붕이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전목마의 구조물을 떠올리게 하듯 말이다. 건축가의 작업에 단 하나의 영감만 작동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건축은 연구 과정이며, 건축이 구현된 형태는 다층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결과물이다.
김: 내부에 배치한 테이블은 함께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자는 파빌리온의 주제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요소다. 가구 디자인에 있어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고트메: 테이블은 일체형이 아니라 개별 부위가 모여 하나의 식탁을 이루는 모듈식으로 디자인했다. 저마다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둘러앉아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공통된 세계를 경험하기를 바랐다. 가구의 재료로는 오크를 택했다. 오크는 강하고 단단하며 무겁고 촘촘한 나뭇결을 가진 재료로 알려져 있다. 또한 벌레나 곰팡이에 대한 내성도 강하다. 주제를 정한 시점부터 테이블과 의자를 직접 디자인했다. 제작은 더콘란샵이 담당했는데,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높은 품질의 제품을 구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내부에는 방문객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쉬어갈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했다.
김: 음식은 공동체를 결속하는 힘이 있을 뿐 아니라, 지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음식을 주제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고트메: 음식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더 지리, 토양, 지형, 날씨, 그리고 그것들과 밀접한 음식과 연결된 기후 안의 존재임을 상기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파빌리온을 통해 이러한 주제 의식을 강조하고 함께 대화하며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했다. 어떻게 하면 지구와 더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이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현재 기후 위기와 관련된 담론을 형성하고 증폭하고자 했다.
방사형 캐노피 구조는 서아프리카 말리의 오두막인 토구나를 모티브로 했다.
김: 건축 작업에 대한 접근 방식을 ‘미래의 고고학’이라 정의했다. 이번 파빌리온에서는 서아프리카 민족의 전통인 토구나, 음식과 지리의 관계 등 일련의 요소를 통해 땅에 새겨진 역사를 추적하는 고고학적 접근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미래의 고고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
고트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건물이 위치한 환경에 대한 역사적 연구와 맥락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한다. 이는 건축가에게 보편적인 접근일 수 있지만,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성장한 건축가로서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땅에서 새롭게 지어지는 건축물들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 건축물이 다시 땅이 되고, 고고학의 흔적 위로 다시 건축을 쌓아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렇기에 건물을 짓기 위한 설계, 즉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건축이 곧 미래를 드러내는 과정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베이루트의 스톤 가든(2020)은 도시의 기억을 소환하는 수직적 고고학이라 할 수 있다. 흙색의 외피로 대지를 감싼 이 건물은 땅에 속해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건물이 서 있는 지리를 설명한다.
김: 지속가능성을 화두로 작업해왔다. 작업에서 지속가능성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고트메: 지속가능성이 핵심 주제다. 건물을 지을 때 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주변과 공생하며, 장소와 연속성을 유지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에는 프랑스 최초의 능동 에너지(energy-positive) 저탄소 건물인 아틀리에 에르메스(2022)를 완공했다. 이 건물은 현지에서 조달한 벽돌과 저탄소 바이오 소재를 사용해 구축했고, 재생에너지로 운영된다.
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고트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옛 수도인 알 울라에 미래의 현대미술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1세기 미술관의 새로운 역할과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도다. 미술은 자연, 농경, 삶, 그리고 공동체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파빌리온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지구와 공생하기 위한 우리의 문제 의식은 지속될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도 미와 지속가능성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지붕의 주름은 야자수 잎의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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